▒ 삶의 종점에서 남는 것
                                                                / 법정 스님
        눈이 내린다.
        오랜만이다.
        아직은 이 산중에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았다.
        내가 산을 비운 사이 
        두어 차례 눈이 다녀가면서 
        응달에 그 자취를 남기긴 했지만 많은 양은 아니다.
        난롯가에 앉아 모처럼 차를 마셨다.
        초겨울 들어 내 몸에 세월의 무게를 느끼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차를 거의 마시지 못했다.
        뭔가 속이 채워지지 않은 채 뻑뻑했고 
        내 속뜰에 겨울 숲이 들어선 느낌이었다.
        오늘 마신 차로 인해 그 숲에 얼마쯤 물기가 감돌았다,
        차의 향기와 맛 속에 
        맑은 평안이 깃들어 있었다.
        한 동안 표정을 잃은 채 다소곳이 놓여 있던 다기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보고 
        그 동안 돌보지 못했음을 미안해했다.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삶의 종점에 다다랐을 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요즘 가끔 생각하는 과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원천적으로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재물이 됐건 명예가 됐건 
        그것은 본질 적으로 내 차지일 수 없다.
        내가 그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그림자처럼 따르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진정으로 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곳을 떠난 뒤에도 
        그 전과 다름없이 
        그 곳에 남아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가 평소 이웃에게 나눈 
        친절과 따뜻한 마음씨로 쌓아올린 덕행만이 
        시간과 장소의 벽을 넘어 
        오래도록 나를 이룰 것이다. 
        따라서 이웃에게 베푼 것만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될 수 있다.
        옛말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자신의 업만 따를 뿐이다'라는 뜻이 
        여기에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일찍이 이와 같이 말했다.
        “이 세상은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날이 갈수록 사람이 살아가는 데 
        위협이 되고 있는 지구 생태계의 위기 앞에 
        섬광처럼 떠오르는 잠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생활필수품 외에는 
        대개가 탐욕에서 기인한 사치요, 허영이다.
        적어도 굶주린 이웃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 사치와 허영이 
        세상을 궁핍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 전체 인구의 5퍼센트 밖에 안 되는 미국인들이 
        전 세계자원의 3분의 1 이상을 독점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미국식 생활방식이 
        세계평화와 지구생태계를 위협하는 커다란 재앙이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미국이 
        새로운 패권전략인 '세계화' 경제는 
        무역자유화와 시장개방으로 탐욕을 부채질 하고 있다.
        그 그늘 아래서 자원이 고갈되고, 
        생태계가 더렵혀지고, 
        토착문화가 파괴되고, 
        빈부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날마다 세계 전역에서 3만 5천 명의 어린이들이 먹지 못해 굶어서 죽어간다. 세계 전역에서 10억 명의 사람들이 하루에 1달러로 목숨을 이어가고, 10억 명 이상이 마실 물을 얻지 못해 병들어 간다. 이와 같은 상황인데도 미국에서 생산된 곡물의 80퍼센트가 사람들이 먹는 식량으로써가 아니라 가축들의 사료로 쓰이고 있다. 육식 위주의 식생활이 가져온 기이한 현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쇠고기를 우리나라에서도 어마어마하게 수입해 먹고 있다. 그리고 인류평화와 자유를 내세우고 있는 그들에 의해서 세계 무기 거래의 70퍼센트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웃나라와 번영을 나누지 않는 나라는 그 어떤 나라일지라도 원한과 증오를 낳게 마련이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11일, 미국이 본토에서 테러 공격을 받은 것도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빈부의 격차의 맥락으로 보는 견해가 미국 내의 양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다. 세상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이웃과 함께 살아간다. 이웃과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느냐에 의해서 그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매길 수 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이웃과 함께 나누며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았던 우리 선인들의 순박한 그 마음씨가 그립다. 분수 밖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맑은 가난의 미덕을 다시 생각할 때다. 탐욕을 이기려면 우선 이웃과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만나는 대상마다 보다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 임제스님을 깨달음으로 인도한 목주(睦州)선사는 고향땅 목주의 개원사 주지로 있으면서 깊은 밤이면 부지런히 왕골로 짚신을 삼아 그것을 곡식과 바꾸어 어머니를 봉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선사는 밤잠을 줄여가며 짚신 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이 되면 한 묶음 짚신 꾸러미를 남몰래 지고 나가 큰길가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오고가는 길손들에게 신고 가게 했다. 그래서 선사의 별명을 진포혜(陳浦鞋)라고 했다. '진'은 스님의 속성이고 '포혜'는 왕골로 삼은 짚신이다. 지리산 자락에 홀로 사는 60 넘은 한 노인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남들이 버린 물건을 거두어다 망가진 것은 말짱하게 고치고 해진 것은 빨아서 깨끗이 꿰매 놓는다. 집 뒤에 선반을 만들어 거기 물건을 놓아두고 아무나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도록 한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나는 이웃에게 어떤 일을 나누었는지 스스로 묻는다. 잘 산 한 해였는지 허송세월을 했는지 점검한다. 하루 한 가지라도 이웃에게 착한 일을 나누면 그날 하루는 헛되이 살지 않고 잘 산 날이다. 이웃과 나누는 일을 굳이 돈만 가지고 하는 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친절하고 따뜻한 그 마음씨가 소중하다. 나누는 일을 이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 이 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 홀로사는 즐거움 中 - 
          
          - 그림 /  저산 이익태화백
                    남정(藍丁) 박노수(1927~)화백(28세때 대통령상수상)  
          - 음악 /  For Only A Moment  /  Tim Janis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메모 :

 

주말에 엄청난 강우가 예보되어 있어, 거의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야외 행사가 있는 나에게는 괜히 부담이 많다.

하기야 몇 년 동안 거의 그런 생활을 해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에 맞춰 왔지만, 같이 참여하는 분들은

그렇지 못하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번 일요일은 집안

선조들 묘소 벌초와 차례가 있는데, 150mm 비가 예정되었

으니, 벌초는 차라리 빗속에서 시원히 하겠지만 제물에

빗물을 피하기 위해선 천막이라도 쳐놓아야 할 것 같다.


누린내풀은 마편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1m 정도이고

고약한 냄새가 나며 온몸에 짧은 털이 있다. 잎은 마주나고

넓은 달걀 모양이다. 7~8월에 붉고 푸르스름한 꽃이 잎겨

드랑이에서 원추(圓錐) 꽃차례로 피고 전체를 약으로 쓴다.

산이나 들에 자라는데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산은 - 최범영


넓은 세상 길, 마음대로 살았어도

좁은 길로만 오를 수 있는 산은


제멋대로 커버린 나를 보듬고

문풍지 목탁 소리에 맞춰

내 마음 솔기에 사는 속세의 이기심

두 손톱 대고 한 마리씩 꾹꾹 잡아준다



 

♧ 산은 바다입니다 - 권경업

    

산은,

파도 밀려가고 밀려오는

푸른 숲 출렁이는 바다입니다

신갈 숲 달빛, 물비늘로 반짝이는

치밭목은 천삼백 고지(高地) 그 바다에 떠 있는 섬입니다


봄날 평촌리 잠녀(潛女)들

나물 캐는 자맥질에 넋 놓는 섬

내 어릴 때의 아쉬움 송송 솟아나

물결이 되어 밀려가고 밀려오는

아득한 그리움의 샘이 있는 섬입니다


고운 모래알로 부서지는 아침 햇살

물새 대신 찌르레기 우짖어

소녀 같은 꽃구름들 샘물 위에 재잘대며

때로는 먹장구름 억수비 쏟아지던 섬입니다


 

배를 타고 가다 비를 맞으면

그것도 구비진 능선에서 흠뻑 맞으면

온기 있는 가슴이 그립듯

쫓고 쫓기는 일상 속, 하루분의 분진과 소음을

정량으로 먹어대야 하는 이 도시에서

쪽배라도 타고 그 섬에 가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맑고 차디찬 그리움 길어 올려

벌컥벌컥, 말라비틀어진 이 가슴

적시고 싶습니다



 

♧ 산은 넘는 자의 것이다 - 정숙자


가다가 길이 막히면 거기서부터가 산이다

산을 넘지 못하면 그 너머 길을 잇지 못한다

평지에 허리를 감춘 산은 압구정동 네거리 거실 의자 중환자실 침대 위에도 있다

산을 허무는 일이야 산을 일으킨 바람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혼자다

갈수록 비탈일 수밖에 없다

많은 이가 한 길을 함께 걸어도 그 길은 제가끔 다른 길이다

관점이 길을 바꾼다

지상에 난 모든 길은 관점으로 가는 길이다

산을 오래 타다 보면 사람도 산이 되는지 얼굴 어딘가 폭포가 숨고 이끼가 끼고 나비가

되지 않는 벌레도 안고 키운다

전생을 건너온 발이 여기 발아된 그 순간부터 산이 매복하고 있었던 게다

많기도 하지

어디든 눈을 던지면 산이 산을 업고 또 기대고 있다

어둠이 다락같은 저 붉은 산들을 누가 다 넘어 갔을까



 

♧ 산은 책이다 - 이생진

    

산은 뜻 깊은 책이다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수려한 문장

구름을 읽다가 바위 곁으로 가고

바위를 읽다가 다시 구름 곁으로 간다



 

♧ 산은 바람으로 하여 큰다 - 김정화

    

바람이 오면서

내 가지에 놀던 바람

불러 앞세우고

투명한 하늘 아래

아스라이 먼 산 속으로 사라진다


그 산 속에

웃으면 살짝 마음 드러나는

골짜기의 꽃

바람 향해 얼굴 돌리는

또 다른 꽃


한때 머물었던

내 가지의 바람은 어디쯤에서

꽃을 열고 산을 키우며

서성이고 있을까


남김없이 주고 난 뒤 더는 줄 것 없어

숨죽이는 서글픈 나무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찾지 못한

오월, 무수한 눈빛들과 함께

어디쯤에선가 바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산은 말한다 - 박덕중 


산은 말한다.

낮은 곳에 뿌리 뻗어라

맑은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낮은 곳에 살아라.

하늘과 가까이 만나러

저녁별과 가까이 만나러

산비탈 기어 오른 나무들을 보라

심한 바람 속에 울고

뿌리조차 뽑힌다.


산은 말한다.

조용히 살아라

칼바람 소리도 귓가에 흘리고

뿌리로만 조용히 살아라

천둥이 내려치든

억수가 내려치든

불빛 칼날소리 받아치지 말고

조용히 뿌리로만 살아라.


산은 말한다.

그렇게 낮게 조용히 살다가

죽거든 내 품에 묻히거라

내 품 안에 잠들며

나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리라.

언젠가 나의 자궁 안에서

너는 다시 山有花로 태어날  테니.


 

♧ 산은 그러하더라 - 강희창


산은 올려주고 내려주는 일에 익숙하다

삭히고 곱씹어 다진 마음, 거기 서 있기 위해

채워서 충만하고 넘쳐야 했다

때로는 영감을, 때로는 꿈을


산에 들 때는 세상 생각은 두고 가자

그것은 택시에 두고 온 우산 같아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니

산에서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내리는 믿음들

안에 것 다 부려 놓은들 어떠하며

밖에 것 가득 채워간들 어떠하랴

산은 그러하더라


산 것과 죽은 것을 다 받아주고

놓아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가려주니

살아가는 지혜와 힘을 골고루 품고 있더라

산은 내내 그 타령이더라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메모 :

 

꽃만 보면,‘아, 이거 화단에 심어도 되겠는데.’할 정도로

많이 피고 그런 대로 보기도 좋다. 하지만 다가가서 향기를

맡노라 치면, 익숙치 못한 사람은 실망하고 만다. 하지만 이

것이 저 경상, 전라도 지방에서 선호하는 향기다. 한방에서는

곽향(藿香)이라 부르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방아’라 하여

깻잎처럼 배초향의 잎을 찌개나 전골을 끓일 때 향신료로 넣기

도 하고, 부치거나 튀겨 먹기도 한다.


배초향(排草香)은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높이가

40~100cm이고 네모지다. 잎은 마주나고 갸름한 심장 모양

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무딘 톱니가 있는데 잎자루

가 길다. 7~9월에 입술 모양의 자주색 꽃이 수상 꽃차례로

줄기 끝이나 가지 끝에 피는데 특수한 향내가 난다. 열매는

골돌과이다. 어린잎은 식용, 약용하고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산들의 습한 곳에 저절로 나는데 우리나라 각지에 분포한다.


 

♧ 가을에게 - (宵火)고은영


나는 삶의 내적 균형을 잃은 지 오래고

당신의 모습도 균열의 전철을 밟고 있다

밤마다 잠들지 못하는 쓸쓸한 강변에

당신은 바람의 갈기로 서 있는가

아니면 굳은 가슴 두드리는 당신은

희망을 위해 떠남을 준비하는가


청춘의 앳된 기억을 떠올리는 당신도

맨 가슴을 드러내고 돌아오지 않는

소멸의 어느 궤도를 헤매고 있는 것인가

그곳은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마당

떠남을 위한 떠남인가 만남을 위한 떠남인가


당신은 후미진 이방으로 추락하는

비로소 서글픈 실존이다 

당신은 왜 이리 긴 애증으로

시간이 갈수록 쓸쓸함을 가중시키고

불면의 그리움을 증폭시키는가


오늘 밤 세속에 잊힌 섬으로 오로지 시공을 떠돌다가

영혼의 그루를 후비던 삶의 상처를 위해

이제야말로 당신을 바라보는 삶의 더께에

나는 눈물나는 기도를 쓰리라



 

♧ 빗방울들의 수다 - 오영록


소리의 귀를 닫아야 한다는 말에

끝 숨까지 참다 보니

살고 싶다는 간절한 애원이 들렸지

그때부터 이상한 귀가 열렸어

새벽바람을 모아 이슬을 만드는 풀잎 소리와

꽃망울 열리는 소리가 책장 넘어가 듯 들렸고

건기에는 허기진 뿌리의 갈증도 들렸지

 

 

어쩌다 여우비라도 오면 모두가 춤을 추었는데

그것은 목마름의 해소가 아니라

빗방울들의 수다에 흥이 났던 거지

비가 오는 모습은 마구 흩뿌리는 것 같아도

바람위에 앉아 눈처럼 정해진 길로 오고 있었지

원추형에 긴 꼬리가 있어

자궁을 향하는 홀씨처럼 흔들리고

그 꼬리가 바람을 날릴 때마다 소리가 났지

그것이 빗방울의 언어였던 거야

양철지붕에서 혹, 갈대밭에서

초원의 누 떼처럼

벌떼처럼 무리지어 다니며

수다를 떨지

싯싯싯 숫숫숫 사사사



 

♧ 별이 되어 살아라 - 전병조


너는 살아라

참새처럼 살아라

참새처럼 조잘대며

빛나는 날개 달고 살아라


한 줄기 바람에도 감사하며

행복에 충만하여 살아라

슬픈 눈 하늘을 보지 말고

봄날의 꿈을 꾸는

초원의 나비처럼 살아라


햇살이 없어도 반길 이 없어도

어여쁜 꽃씨 하나

가슴에 간직한 채

뜨거운 불꽃처럼 살아라


 

세상을 포옹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천년이 한결같은

침묵의 바다처럼 살아라


내가 생의 다음 모퉁이를 돌아서

다시금 네 앞에 설 때까지

너는

밤하늘별이 되어 살아라


 

♧ 우리 사랑을 이야기 할 때 - 이희숙


숨 쉬는 마디마디 길을 내는 사랑아

우리 사랑을 이야기 할 때

사랑이 어떻게 길을 물어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하지 말자 다만

마음으로 켜는 현(絃)의 소리에 기뻐하며

지금 우리 서있는 배경 이곳에서

오늘을 태워 내일을 사는 마지막 순간에도

사랑을 위해 쓸 수 있기를 기도하자 그리하여

기다림의 습성을 먼저 배워버린 이력을

힘겨웠다고 말하기보다 행복했다고 말하고

눈물겨웠다고 말하기보다 눈부셨노라 이야기하자 


 

♧ 가을이 오면 - 오순화


푸른 날 바람이 말했지

그리워지는 것이 많아지면 가을이라고


뭉게구름 산위에 누워 말했지

눈 맞춤 하는 날 많아지면 가을이라고


은빛날개 접고 멀어져간 파도는 말했지

수평선에 섬하나 그려지면 가을이라고


창으로 하늘길 내면 맑아진 내 눈 속에 그대얼굴

창으로 바다길 내어 그물 던지면 우리얘기 한가득


 

그대는 말했지

가을이 오면 하얀 그리움 들국화로 피어난다고


그대는 말했지

길을 걸으면 모두가 가을사람이 된다고


그대는 말했지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마음에 섬집 하나 짓고 산다고


푸른 날 바람이 말했지

그리워지는 것이 많아지면 가을이라고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메모 :

 

 

동창회 체육대회를 앞두고 회지를 내는데, 고향의 전설을

쓰기로 했으나 2002년에 이미 써버린 상태여서, 고심 끝에

요즘 뜨고 있는 올레에 대한 얘기를 취재해서 싣기로 하고

15코스와 16코스를 다녀왔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19km와

17.8km는 한 번에 걷는 거리치고는 너무 길다.


6~7시간 걸린다고 나와 있는데, 천천히 걸어서는 9시간을 걸

어도 힘들 것같다. 포장도로나 난삽한 길도 섞여 있기 때문에

길어야 한 10km씩만 나누었으면 부담이 없었을 것이다. 평일이

고 인기가 없는 코스여서 그런지 두 코스에서 걷는 사람을 한

분도 안 보였다. 그 길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이 나팔꽃을 만난

것이다. 


나팔꽃은 메꽃과의 한해살이풀로 줄기는 높이가 2~3m이고

덩굴져 감아 올라가며, 잎은 어긋나고 심장 모양인데 세

갈래로 깊이 갈라진다. 여름에 나팔 모양의 보라색, 붉은색,

재색, 흰색 꽃이 피고 열매는 둥근 삭과를 맺는다. 관상용

으로 재배하며 씨는‘견우자(牽牛子)’라 하여 약용한다.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이다.



 

♧ 나팔꽃 속에 - 홍해리(洪海里)

    

행여 그대 꿈이 깨어질라

세 갈래 손바닥 이슬 머금어

이른 아침 영롱한 햇살에

눈 비비는 꽃


한번 피면 한나절

긴긴 여름날의 아침마다

마디마디 맺혀 있는

자주꽃 빨간 꽃의 신비여


바람 한 파람마다

휘감겨 오는

그대 가느란 허리

외로만 기어올라서

소녀의 단 하나 고집 부린다


나팔꽃 속에 사는 소녀는

이른 아침 한나절만 살고

낮이면 꽃 속에 숨어

문 닫고 하늘나라다.



 

♧ 나팔꽃 - 박만식


허물없는 세상과는

동조하지 않는다


번지르르한 꽃들의 눈빛 피해

아무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멧비둘기의 염주 알 같은

눈망울로 날아와

외딴집 바지랑대에 기대어

말줄임표로만 말없음표로만

꼬장꼬장하게 뻗어가며

턱 괴고 먼 산 바라보지만

아픈 사람들의 발끝에 피어

손뼉을 쳐주는 사람처럼 사는 꽃


우리가 보는 앞에서는

절대

나팔 소리를 내지 않는다



 

♧ 나팔꽃 사랑 - 유소례


가는 허리 꼬아낼 때마다

피를 짜낸 떡잎은 병들어 눕고

곡예사처럼 간장 녹는 외줄 타기,

내가 꼭 가야하는 비애입니다


진보라 나팔을 가슴에 담고

그대 새벽 꿈길에

세레나데로 나팔을 불어

아침을 열어주는 속 심지가 불타

오르고 또 오르는 불꽃나팔입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그대 침상에 은은한 나팔소리 번질 때

아련한 귀를 대고

미소짓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못내 첫사랑의 고백은 목안에 넘기고

눈썹에 이슬 맺힌 채 보랏빛 색깔을 띄워

진한 가슴으로 

행복을 외치고 있습니다


한낮, 긴긴 시간

나팔을 접어 가슴에 안고

그대 창가에 침묵을 지키다가

새 아침이 오면

진보라 나팔소리로 그대를 부르겠습니다.



 

♧ 나팔꽃 - 서정우


묻나니

네가 이제 찾는 것은 무엇이더냐

친구를 보내고

어깨에 걸친 가방 속에

가족을 묻고

정신없이 걸어가는 아침 골목길

삶이라는 것은 애당초 목표는 있는 것일까

굳혀 정돈시킨 생각들 와르르 무너진 담장 아래로

너는 또 지나가고.


 

나팔꽃

네 눈이 멈춘 곳이면 어디라도 기어올라

연분홍 나팔 무더기로 들이대면서

묻나니

삶이라는 것은 애당초 목표는 없는 것일까

한 계절 내내 뱃심 끌어 올려 끅끅거리다가

잃어버린 목소리

안으로 삼켜가면서 다시

묻나니. 


 

♧ 나팔꽃 피어난 후로 - 홍수희


그대 기다리다 지친 날,

나 나팔꽃을 심었네,

그대 기다리다 슬픈 날,

나팔꽃 베란다에 조용히 피어났네,

보랏빛 서글픈 꽃 피어난 후로,

이상한 일이네,

나 더 이상 그대를 그리워할 수가 없네,

나팔꽃 푸른 줄기, 밤낮없이 오로지 출렁이는,

출렁이는 내 그리움의 여윈 끝을 휘어잡아,

위로만 친친 감아 오르더니,

이상한 일이네,

이제 더 이상 그대를 그리워할 수가 없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메모 :

 

요즘은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아침 먹고 박물관대학

강좌 원고를 정리해 보내고 나니, 바로 2시다. 부랴부랴

점심 먹고, 제주어 선생 강좌에 참여 두 시간 강의한 후

보전회 간부들과 저녁을 같이 먹고 7시 넘어서야 집으로

왔다. 오늘은 이것저것 일정표 정리와 해야 할 일을 챙겨본다.

내일은 어제 다녀온 올레 코스에 대한 것을 정리해 쓰느라

하루가 후딱 갈 것 같다. 


수박풀은 아욱과의 한해살이풀로 높이는 30~60cm이며,

잎은 어긋난다. 7~8월에 연한 누런색 꽃이 잎겨드랑이

에서 나온 꽃자루 끝에 하나씩 피고, 열매는 삭과로 타

원형이다. 조로초(朝露草), 미호인(美好人), 야서과(野西瓜)

라고도 한다. 중부 아프리카 원산인 귀화식물이며, 한때

재배하던 것이 야생화가 되었다. 들이나 길가에서 자란다.

 



 

♧ 수박 - 최진연


작은 등불 하나가

바윗덩이보다 크고 견고한

어둠의 밤을 익히듯이

해는 한 덩이 수박을 익히고

그 붉은빛과 열기로

현란한 세상의 어둠도 익힌다.

천둥 벼락치고 폭우 쏟아지는 날

굴러 떨어지는 바윗덩이처럼

갈라지는 어둠을 보면서

지구처럼 생긴 수박을 가른다.

죄악의 상징 같은 까만 씨앗

두려운 미래처럼 뱉어버리며

하나님이 만드신 수박을 먹는다.

땀으로 멱을 감는 사람들의 여름

더위를 식혀 주려고 만드신

달고 시원한 사랑의 물 수박

그 연한 살을 먹는다.

캄캄한 어둠의 껍데기 속에서

빨갛게 잘 익은 환한 빛

작은 해를 먹는다.



 

♧ 수박 - 최영철


나는 늘 넘쳐나는 슬픔으로 가득합니다

끝없는 기다림으로 잠이 오지 않는

이 여름밤 그대 옆에 있기 위해

무수한 눈물방울 헛되지 않게

더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은 충만합니다

만약 내가 잠시의 아픔을 잊지 못해

철없는 계집아이처럼 때때로 투정을 부렸으면

이 터질 듯한 오늘이 없었겠지요

슬픔도 넘쳐나면 스스로 삭아

오히려 기쁨으로 출렁인다는 것을 압니다

나의 오랜 기다림은 제대로 익을수록

팽팽하고 달작지근합니다 그럴수록

그대에게만은 냉담하고 싶어요

이제 나의 뜨거움을 아신다면

오셔서 나를 가지세요

나의 젖어드는 슬픔과 고통을 기억하신다면

나를 열어두겠어요

나의 속 찬 슬픔도 그대를 위한 것

그대의 가슴으로 진하게 스며들어

무정한 듯 찬바람으로 일렁이겠어요

그러면 또 나를 잊은 그대 향해

점점이 먼 날을 눈물로 채우겠지요.

 



 

♧ 수박 - 유용선


 뙤약볕 아래에서 수박의 탯줄을 끊어본 이는 저절로 알게 되지, 때로는 푸른빛이 붉은 빛보다 뜨거울 수 있음을. 서늘한 달빛 아래 수박의 탯줄을 끊어본 이는 저절로 알게 되지, 어째서 마음을 훔치는 일이 늦은 밤일수록 수월해지는지. 뜨겁거나 차거나 치마폭에 담기엔 너무 크고 둥글고 무거운 수박은 아틀라스처럼 어깨 듬직한 사내가 앞장서 들고 가야 제격이지. 꽃이 나비와 벌을 부르듯 뭇 사람을 모으는 과일. 옳지, 그늘을 찾았거든, 둥글게, 둥글게, 낯 두껍고 의뭉스러운 김씨, 속이 물렁한 홍안(紅顔)의 이선생, 젖꼭지가 까맣게 영글어진 란이, 푸릇하고 튼실한 준이…… 활짝 핀 꽃잎처럼 쩌억 제 가슴을 열어 한 생애를 다하는 수박. 그렇지, 그렇게, 소년이 소녀에게 처음 말을 건네듯 조심스럽게. 어때, 다들 드실 만한가? 제 몸을 들어 누군가에게 주어본 이는 듣게 되지, 알맞게 식은 뒤에야 두루 쓸만 해지는 심장의 진실.




♧ 수박밭에서 - 엄원용


 저렇게 가늘고 작은 줄기에서 어떻게 이런 큰 수박이 열릴까 생각을 해보다가, 그렇지 않고 만일 나무에서 이런 것이 열린다면 무게에 눌려 가지가 찢어지고, 낙하하는 그 순간 그만 박살이 날 텐데 하고 생각을 해 보면서도,

 박토(薄土)에 실뿌리 박고, 이슬 비 받아먹고, 바람 쐬며, 뙤약볕 아래 세월 두고 감당키 어려운 무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받쳐줄 넉넉한 땅이 있기 때문이리라.

 정말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눈을 다시 크게 뜨고 보면 놀라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지구 어느 한 구석에서 살아 숨 쉬는 어떤 것인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또 한 번 놀라는 것이다.

 



 

♧ 수박 - 최원정


그녀는

잉태된 그리움을 지우느니

차라리, 낳기로 하고


하필이면

이 여름, 염천하늘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에서


허기만큼

불러오는 배를

고스란히 남산처럼

무장무장 키우다가


결국, 붉은 선혈

가득한 그녀의 몸에서 낳은

까맣게 익은 언어言語들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빠안히 쳐다만 본다

날, 어쩔 것이냐고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메모 :

 

 

추석 귀향이 시작된다. 이번 추석은 한 주의 중심에

사흘 동안 자리를 점령해 1주일 내내 명절 같은 느낌

이다. 오랜만에 오름 식구들과 숲에 다녀왔다. 이제

양하는 생태교란종이라 할 만큼 숲에 널리 퍼져 있다.

꽃봉오리는 독특한 향기를 갖고 있어 어른들이 즐겨

먹는다. 제주에서는 추석 때 나물로 차례상에 올리기

도 한다.


양하는 생강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40~100cm이며,

잎은 두 줄로 어긋나고 피침 모양이다. 8~10월에 노란

꽃이 수상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삭과이다. 어린잎과

땅속줄기, 꽃이삭은 향미료로 먹는다.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로 남쪽 지방에서 기른다.



 

♧ 귀향 - 권애숙


 메밀밭을 지나간다 툭툭 알밤이 떨어지는 산길을 돌아 고구마밭을 지나간다 바랭이풀 무성한 밭둑에 걸터앉아 흙묻은 햇고구마 쓱쓱 앞섶에 문질러 요기를 한다 둑 아래 용못에 비치는 꽃가마 어서 가자꾸나 가는 곳 어디기에 아무 말이 없냐고 만장을 흔드는 사위야 울음을 거두어라 아들아 세상 것 모두 버리고 한 벌 삼베옷으로 길 떠나는 내 발길 참으로 가쁜하구나 허리춤에 찔러넣어 준 저승길 노자돈도 며늘아 내겐 소용없으니 상두꾼 텁텁한 목이라도 틔워 주려므나 보아라 이제 내 돌아온 집 마당에는 개암나무 열매도 영글지 않느냐 북망산 까마귀도 반가워 저리 머리 위를 날지 않느냐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리고 나는 이제 조용히 흙이 되려 하느니라 바람이 되려 하느니라 구름이 되려 하느니라



 

♧ 귀향 - 윤수천


사는 일이 시들해지면

고향으로 돌아가자

눈 감고도 한숨에 달려갈 수 있는 곳


피라미떼 노니는 시냇물

송아지 엄마 찾는 들녘

그곳에 가서 코흘리개가 되어보자


느티나무집 초가 부엌에는

아직도 어머니가 지피시던 군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을 거야

그리고 따뜻한 아랫목에는

담요 밑에 묻어 둔 밥사발이

아직도 따끈한 채로 있을 거야


마당가 대추나무에는 대추들이

감나무에는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거야


생각만 해도 해복한 곳

사는 일이 시들해지면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곳에 가서

산울음처럼

청청한 울음 한 번 크게 울어보자

 



 

♧ 귀향(歸響) - 감태준


 서울역에서, 한번은 영등포 굴다리 밑에서 잠깐 스치

고 흘러흘러 너를 다시 만났을 땐 눈이 오고, 그해도 저

물었다 말이 없는 친구, 손에는 넝마줍기 삼 년에 절도

이범(竊盜二犯), 기차표 한 장,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불

구(不具)의 조각달이 떠 있다, 되는 것은 안 되는 것뿐이

라고 한없이 쓸쓸해 하는 네 얼굴에 눈은 날아가 앉고,

눈은 날아가 앉고, 우리는 타관 불빛을 맞으며 하룻밤

강소주에 혹한을 녹였다, 머리에 채 남은 눈을 떨면서,

살아도 곱게 살자 꽃같이 살자, 흩어진 마음을 챙겨들

고, 우리는 갈라섰다, 끝없이 몰리고 풀리는 행렬 속으

로, 너는 이제 기적소리에도 가볍게 떠밀리고, 떠밀리는

너의 등에서, 아니, 너의 물결소리가 들리는 머리 위 공

간(空間)에서, 나는 그때 새들의 고향을 얼핏 보았다



 

♧ 귀향 - 김동욱


날지 못하는 새들 깃털 하나 키우려

차운 밤 소리 없이 새울 때

가지 못하는 고향 그리워하는 이들

꿈길 눈 속 수만 리 짚어가며

번지 없는 주소 찾아 헤멘다


어디쯤 빈 몸 편히 누일 수 있을까

뭉그라진 날개죽지 펄럭일 때 마다

깃털 점점 떨어져 맨숭 해지고

아슴한 빈 가슴 울먹이며

텅빈 동굴 속 찾아들면

빛바랜 문패에 얼킨 거미줄이

외딴 나그네 향해 달겨든다


우린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는지 몰라

귀향 길 앞서 동굴 속 갇혀 허우적이는

나를 보아야 하는지 몰라

산새의 빈 가슴에 깃털 자라기 전에

꿈보다 길고 긴 먼 길 홀로 서서

황홀한 눈물 맛보아야 하는지 몰라

 

 

 

♧ 그날 불던 바람 - 이향아

  --귀향

 

한 십년은

바튼 기침 쿨럭거리며 목청을 닦고

한 십년은 강풍으로 숫돌을 씻었다

눈물로 그리면서 벼르고 별렀다

천만 리 쫓아내 못 본 듯이 지냈더니,

오고 보면 반나절 순탄한 길인 것을

십년이나, 십년이나 읊조리며 운다

골목들은 낯 색 하나 흔들지 않고

거드럭거리면서 올 수 없는 길손을

지푸라기 올가미로 엮어 달아서

어렵던 날 불던 바람 한복판에 매단다

이 사람 저 사람 안부를 묻고

나 혼자 달떠서 손목을 흔들다가

더운 머리 남창을 베고 누우면

파도가 달려와서 신을 벗긴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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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오는데도 여전히 덥다. 중부지방에 내리는

비가 습기를 많게 하고 바람을 통하지 않게 하니, 그런

모양인지 하루 종일 선풍기를 끼고 산다. 명절 분위기는

먼저 휴대폰 문자에서 먼저 조성하는지 간간히 ‘추석

잘 보내라’는 사연이 장식한다. 


어제 오름 다녀오다가 건널목 정류소 옆에서 이 꽃을 만

났다. 이제는 곡식도 세계화가 되어선지 확실히 안 보았

던 꽃이 가끔 나타나 나를 헷갈리게 한다. 우리가 강낭콩

이라 했던 것은 밭 구석에 올려 반달 모양으로 달렸던

것인데, 두불콩이라 부르던 것이 강낭콩이고 그 종자는 

지금 사라진 모양이다. 한참 찾아보니, 이것은 덩굴강낭콩

인 것 같다.


덩굴강낭콩은 콩과에 속한 한해살이풀로 잎은 호생하며

3출엽으로 엽병이 길고 소엽은 넓은 난형 또는 사각상

난형이며 길이 10cm정도로서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끝이

길게 뾰족해지며 엽병이 짧다. 꽃은 7-8월에 피고 백색

또는 연한 홍색이며 액생하는 총상화서에 달리고 꽃받침

은 술잔 같으며 끝이 5개로 갈라지지만 위쪽 2개는 붙어

있고 기핀의 윗부분이 젖혀져서 서며 용골판은 선형으로

꼬인다. 수술은 10개이고 암술은 1개이며 용골판과 더불

어 나선상으로 꼬인다. 협과는 길이 10-20cm로서 다소 굽

고 종자는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품종에 따라서 형태와

빛깔이 각각 다르다. 길이 1.5~2m이고 잔털이 있다.

 



 

♧ 강낭콩 밭에서 - 변상순


언덕배기 바람

칡넝쿨처럼 끌어안으면

이슬방울 목젖을 타고 내려갑니다.


푸른  콩잎 그늘아래

두꺼비와 이야기 소리

타오르는 능소화처럼 아름답습니다.


당신 사랑으로

노란 초가집 속의 사랑이

여물어가는 모습 기쁨으로 다가오니


밭고랑처럼 깊이 패인 얼굴은

삶의 흔적으로 간직하고픈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엘리아스*에게 - 김상현


잘 익은 강낭콩 같은 아이야

하루 종일 가축을 돌본다는,

하늘과 새와 나무와 사람을 그려 보낸

짐바브에 있는 네게 나는

나무처럼 자라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와 같이

꿈을 펼칠 수 있기를 빌 뿐이다

흰 이를 보이며 환하게 웃는,

맨발이 잘 어울리는 엘리아스야

문명에 찌든 내가 너의 후원자가 아니라

열 두 살의 네가 내 영혼의 후원자이구나

너의 맑디맑은 눈으로 보는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세상의 이야기를

사진속의 검은 눈망울에서 듣는다

지구의 보석!

하나님이 남겨 둔

너 아프리카의 소년아. 

 

----

* 엘리아스는 아프리카 짐바브에서 하루 종일 소를 돌보는 흑인소년이다.


 

♧ 회상 - 김순진


서너 칸 지붕 위 매년 이엉을 엮어 덮는다. 몇 겹의 이엉이

가느다란 굴참나무 석가래에 목숨 걸고 얹혀있다. 어지럽게

지붕을 달팽이처럼 돌아선 이엉! 황토흙 개어 찍고 바른 흙

벽돌집의 처마 밑은 연기에 까맣게 그을린 거미줄이 주레

주레 매달렸다. 싸릿가지를 펴서 만든 들창이 있는 방안

엔 반닫이 궤짝 두개가 놓여 있고, 그 위엔 광목 소창으로

두른 목화솜 이불 누데기가 간밤의 잠덧을 해찰하듯 얹혀있

다. 부엌엔 무쇠솥과 그 위에 걸린 대조리, 나무로 깍은 주

걱, 나무뿌리로 만든 솥씻개가 걸려 있고, 사과 궤짝을 층

층이 얹어 놓은 찬창에는 보리밥에 찐 깻잎 짱아찌와 낮에

먹던 호박푸렝이가 시커멓게 바랜 양은 그릇에 반주발

쯤 담겨 있고, 아궁이 앞엔 부지깽이가 호령하듯 군림하

고, 불담도 없이 지지부진 타고 말 힘없는 지푸라기들이

은단먹은 닭모냥 쓰러져있다. 지렛대로 구멍을 뚫어 졸참

나무 틀어박은 울타리엔 파랑꽃 강낭콩이 주리를 틀며 기

어 오르고, 누우런 늙은 호박이 싸립문 여는 이의 시선을

부르며 매달려 있다. 울타리 밑엔 매닭 꿩닭들이 흙목욕

에  토실토실 뽀얗고, 고무신 물어 뜯던 삽살이는 숨을 헐

떡이며 마루밑에  잠자고, 한 아이 툇마루에 가방 팽개치

고 연필에 침을 바르며 갸우뚱 갸우뚱 숙제를 한다. 나의

옛집에....

 



 

♧ 빗방울과 물풍선 - 박종영


초봄 가뭄이 오래가더니 단비가 내린다

토닥토닥 낙숫물 소리도 정겹게

마른 땅이 젖어가며 겨울 이기고 일어선 풋풋한 

강낭콩 줄기가 가늘게 흔들린다

푸른 잎은 파란 하늘을 입에 물고 으스댄다

마당 웅덩이에 빗방울이 툭툭 떨어질 때마다

힘없는 바람이 빗물에 갇히면서

투명한 물풍선이 동그란 웃음을 만들어 내고

좁은 도랑물에 흘러가다 바람이 건드리면 금세 얼굴을 숨긴다

저렇듯 물풍선이 쉼 없이 일어서는 날은

이별 남기고 떠난 사랑이 반가운 기별을 보낸다는데

들리는 빗소리가 그리운 임의 손길로 옷소매를 잡아당긴다

흘러가는 회색 구름은 아직도 비를 머금어 댕댕하고 

비 그치고 나면,

차진 땅 깊이 한 촉 가늘게 숨어

흔들림 없이 살아남은 분분한 새싹의 웃음이 더욱

차분하게 초록 들판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

가늘게 흩어지다 설레는 신부의 걸음으로 다가와

작은 웃음으로 몸 섞으며 푸른 강을 만드는 빗방울

 



 

♧ 어머니의 시간 - 이남일


기억에도 없는

어릴 적 울음소리는

잠깐이었습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지켜보던

어머니의 시간은

매일 그을리는 햇빛만큼이나

순간이었습니다.

징검다리 같던 짧은 시간들은

어머니의 주름 살 속에

강낭콩처럼 영글어

마당가를 가른 빨랫줄만큼이나

길게 늘어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콩꼬투리를 까듯이 하나씩

가슴에 모아둔 어머니의 시간은

어쩌면

평생을 세고도 남을 것입니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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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유난히 더운 날씨에다 태풍이 중부지방을 강타해

온갖 제수품들이 엄청 비싸다는 힘겨운 추석을 맞았습니다.

지금도 중부지방에는 게릴라성 폭우가 몰아치고 있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언제 그렇게 녹록했던 추석이 있었던가요?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명절이기에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나누고,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다잡으면 하루쯤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어느 해보다도 뜻 깊고 보람 있는 추석으로 만들어 봅시다.



 

♧ 추석을 맞이하여 - 원영래


보라 

저 벌판을 적시며 흐르는

황금빛 찬란한 풍요로운 물결을.


꽃샘추위와 

모진 비바람

간단없이 찾아오는 병충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순간이

어디 한 두번이랴

마음 졸이며 지켜 보아야 했던

태풍 그 험로를 건너

땀방울로 영그는 가을의 결실

농부의 마음 하늘도 감동하니

나비도 감히 범접하지는 못하더라.


 

가을볕은 따사롭고

들판을 흐르는 바람은 맑고 그윽하여

오곡백과는 저마다의 빛깔로 물들어

가을을 맞이하니

이 풍요로운 성찬을 준비한

농부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하느니


빛이 밝을 수록 그림자는 짙어 가나니

백결선생의 방아타령으로 주리고 지친 마음 달래는

햇빛도 비껴가는 음습한 그늘 아래

쓸쓸히 처량한 한가위를 맞이하는 이웃은

둥근 보름달이 서럽고 원망스럽더라.


휘영청 보름달의 넉넉함과

무르익는 가을의 풍성함으로

나누는 기쁨이 함께하는

풍요로운 한가위가 되시기를...



 

♧ 추석 - 반기룡


길가에 풀어놓은 코스모스 반가이 영접하고

황금물결 일렁이는 가을의 들녘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설레임이

밀물처럼 달려오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한동안 뜸했던 친구와 친지,친척 만나보고

모두가 어우러져 까르르 웃음짓는 희망과 기쁨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날이었으면 합니다


꽉 찬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인심과 인정이 샘솟아

고향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지라도

슬며시 옛 추억과 동심을 불러내어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 수 있는

의미있고 소중한 추석이었으면 합니다



 

♧ 추석 - 정군수

                                               

고향집 우물가에는

지금도 놋대야에 달이 뜨고 있으리

   

흰 고무신 백설같이 닦아내던 누이

손끝 고운 그리움도 남아 있으리

     

눈엔 듯 보이는 듯 뒤안을 서성이면

장독대에는 달빛 푸른 새금파리

     

눈에 비친 어머니 안쓰러움도   

오늘밤엔 기다림으로 남아 있으리 

 

굴렁쇠 안에 뜨는 둥근 보름달

고샅길 이슬 맞고 달려오며는

   

달빛 받아 피어나는 할아버지의 수염     

박꽃 같은 웃음도 남아 있으리



 

♧ 추석달을 보며 - 문정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달은

백동전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 추석 - 최상호

    

 장난끼 많고 입심 좋은 학수 누님은 그 집 안마당 감

나무처럼 후덕스런 얼굴의 친척 누님 여름날 나무 그늘

에 앉아선 얘들아, 안강 사거리에서 할매 한 분이 버스를

기다리다 총각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물었단다. 총객, 총

객 갱주 가는 빤스 언제오노? 귀찮아진 총각 녀석 귀먹

은 듯 대꾸도 안 하는 데 눈치없는 할매만 애가 타서 옆

구리 자꾸 찔렀단다. 그래 이 고약한 총각녀석 꽥하며 한

다는 소리가 할매요 자꾸 건드리지마소 이번 꺼는 포항

가는 사루마다고 요담 오는 게 경주가는 빤스요. 이런 재

미난 우스개를 곧잘 하였다. 그 누님 시원하게 웃는 모습

은 더욱 좋았다. 여름날 감나무 밑에서 라디오 틀어 놓고

동숙의 노래 열심히 부르더니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

했던지 어느 가을 기타치고 콩쿨대회 일딩하던 청년과

바람이 나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집안 망신 시킨다고

머리 깎이고 무지무지 맞은 날 사라지고 말았다. 열 번의

명절이 지나도 소문조차 없던 누님 부산 어디서 보았다

는 대구 어디서 보았다는 뜬 소문 날 때마다 그 아버지

는 길을 나섰지만 동네에서도 집안에서도 영 잊힐 일 되

었더니 어느 해 고향 온 이웃이 그이 동두천 어느 거리

에서 보았단다. 새까만 깜둥이 팔짱끼고 가는 걸 보았단

다. 가슴 다시 뒤집어진 그 아버지 이젠 늙은 힘으로도

거기까지 허위허위 갔더라만 소식 모르긴 마찬가지 동

네 사람들 수근거림만 샀더란다. 추석이래도 아무도 찾

는 이 없는 그 집 깜둥이 손자면 어떻노 자식하나 데불

고 이래 고향 찾아오믄 얼매나 좋노 파삭 늙은 그 어머

니 평상에 앉아 중얼거렸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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