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아침 먹고 박물관대학
강좌 원고를 정리해 보내고 나니, 바로 2시다. 부랴부랴
점심 먹고, 제주어 선생 강좌에 참여 두 시간 강의한 후
보전회 간부들과 저녁을 같이 먹고 7시 넘어서야 집으로
왔다. 오늘은 이것저것 일정표 정리와 해야 할 일을 챙겨본다.
내일은 어제 다녀온 올레 코스에 대한 것을 정리해 쓰느라
하루가 후딱 갈 것 같다.
수박풀은 아욱과의 한해살이풀로 높이는 30~60cm이며,
잎은 어긋난다. 7~8월에 연한 누런색 꽃이 잎겨드랑이
에서 나온 꽃자루 끝에 하나씩 피고, 열매는 삭과로 타
원형이다. 조로초(朝露草), 미호인(美好人), 야서과(野西瓜)
라고도 한다. 중부 아프리카 원산인 귀화식물이며, 한때
재배하던 것이 야생화가 되었다. 들이나 길가에서 자란다.
♧ 수박 - 최진연
작은 등불 하나가
바윗덩이보다 크고 견고한
어둠의 밤을 익히듯이
해는 한 덩이 수박을 익히고
그 붉은빛과 열기로
현란한 세상의 어둠도 익힌다.
천둥 벼락치고 폭우 쏟아지는 날
굴러 떨어지는 바윗덩이처럼
갈라지는 어둠을 보면서
지구처럼 생긴 수박을 가른다.
죄악의 상징 같은 까만 씨앗
두려운 미래처럼 뱉어버리며
하나님이 만드신 수박을 먹는다.
땀으로 멱을 감는 사람들의 여름
더위를 식혀 주려고 만드신
달고 시원한 사랑의 물 수박
그 연한 살을 먹는다.
캄캄한 어둠의 껍데기 속에서
빨갛게 잘 익은 환한 빛
작은 해를 먹는다.
♧ 수박 - 최영철
나는 늘 넘쳐나는 슬픔으로 가득합니다
끝없는 기다림으로 잠이 오지 않는
이 여름밤 그대 옆에 있기 위해
무수한 눈물방울 헛되지 않게
더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은 충만합니다
만약 내가 잠시의 아픔을 잊지 못해
철없는 계집아이처럼 때때로 투정을 부렸으면
이 터질 듯한 오늘이 없었겠지요
슬픔도 넘쳐나면 스스로 삭아
오히려 기쁨으로 출렁인다는 것을 압니다
나의 오랜 기다림은 제대로 익을수록
팽팽하고 달작지근합니다 그럴수록
그대에게만은 냉담하고 싶어요
이제 나의 뜨거움을 아신다면
오셔서 나를 가지세요
나의 젖어드는 슬픔과 고통을 기억하신다면
나를 열어두겠어요
나의 속 찬 슬픔도 그대를 위한 것
그대의 가슴으로 진하게 스며들어
무정한 듯 찬바람으로 일렁이겠어요
그러면 또 나를 잊은 그대 향해
점점이 먼 날을 눈물로 채우겠지요.
♧ 수박 - 유용선
뙤약볕 아래에서 수박의 탯줄을 끊어본 이는 저절로 알게 되지, 때로는 푸른빛이 붉은 빛보다 뜨거울 수 있음을. 서늘한 달빛 아래 수박의 탯줄을 끊어본 이는 저절로 알게 되지, 어째서 마음을 훔치는 일이 늦은 밤일수록 수월해지는지. 뜨겁거나 차거나 치마폭에 담기엔 너무 크고 둥글고 무거운 수박은 아틀라스처럼 어깨 듬직한 사내가 앞장서 들고 가야 제격이지. 꽃이 나비와 벌을 부르듯 뭇 사람을 모으는 과일. 옳지, 그늘을 찾았거든, 둥글게, 둥글게, 낯 두껍고 의뭉스러운 김씨, 속이 물렁한 홍안(紅顔)의 이선생, 젖꼭지가 까맣게 영글어진 란이, 푸릇하고 튼실한 준이…… 활짝 핀 꽃잎처럼 쩌억 제 가슴을 열어 한 생애를 다하는 수박. 그렇지, 그렇게, 소년이 소녀에게 처음 말을 건네듯 조심스럽게. 어때, 다들 드실 만한가? 제 몸을 들어 누군가에게 주어본 이는 듣게 되지, 알맞게 식은 뒤에야 두루 쓸만 해지는 심장의 진실.
♧ 수박밭에서 - 엄원용
저렇게 가늘고 작은 줄기에서 어떻게 이런 큰 수박이 열릴까 생각을 해보다가, 그렇지 않고 만일 나무에서 이런 것이 열린다면 무게에 눌려 가지가 찢어지고, 낙하하는 그 순간 그만 박살이 날 텐데 하고 생각을 해 보면서도,
박토(薄土)에 실뿌리 박고, 이슬 비 받아먹고, 바람 쐬며, 뙤약볕 아래 세월 두고 감당키 어려운 무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받쳐줄 넉넉한 땅이 있기 때문이리라.
정말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눈을 다시 크게 뜨고 보면 놀라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지구 어느 한 구석에서 살아 숨 쉬는 어떤 것인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또 한 번 놀라는 것이다.
♧ 수박 - 최원정
그녀는
잉태된 그리움을 지우느니
차라리, 낳기로 하고
하필이면
이 여름, 염천하늘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에서
허기만큼
불러오는 배를
고스란히 남산처럼
무장무장 키우다가
결국, 붉은 선혈
가득한 그녀의 몸에서 낳은
까맣게 익은 언어言語들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빠안히 쳐다만 본다
날, 어쩔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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