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유난히 더운 날씨에다 태풍이 중부지방을 강타해
온갖 제수품들이 엄청 비싸다는 힘겨운 추석을 맞았습니다.
지금도 중부지방에는 게릴라성 폭우가 몰아치고 있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언제 그렇게 녹록했던 추석이 있었던가요?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명절이기에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나누고,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다잡으면 하루쯤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어느 해보다도 뜻 깊고 보람 있는 추석으로 만들어 봅시다.
♧ 추석을 맞이하여 - 원영래
보라
저 벌판을 적시며 흐르는
황금빛 찬란한 풍요로운 물결을.
꽃샘추위와
모진 비바람
간단없이 찾아오는 병충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순간이
어디 한 두번이랴
마음 졸이며 지켜 보아야 했던
태풍 그 험로를 건너
땀방울로 영그는 가을의 결실
농부의 마음 하늘도 감동하니
나비도 감히 범접하지는 못하더라.
가을볕은 따사롭고
들판을 흐르는 바람은 맑고 그윽하여
오곡백과는 저마다의 빛깔로 물들어
가을을 맞이하니
이 풍요로운 성찬을 준비한
농부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하느니
빛이 밝을 수록 그림자는 짙어 가나니
백결선생의 방아타령으로 주리고 지친 마음 달래는
햇빛도 비껴가는 음습한 그늘 아래
쓸쓸히 처량한 한가위를 맞이하는 이웃은
둥근 보름달이 서럽고 원망스럽더라.
휘영청 보름달의 넉넉함과
무르익는 가을의 풍성함으로
나누는 기쁨이 함께하는
풍요로운 한가위가 되시기를...
♧ 추석 - 반기룡
길가에 풀어놓은 코스모스 반가이 영접하고
황금물결 일렁이는 가을의 들녘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설레임이
밀물처럼 달려오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한동안 뜸했던 친구와 친지,친척 만나보고
모두가 어우러져 까르르 웃음짓는 희망과 기쁨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날이었으면 합니다
꽉 찬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인심과 인정이 샘솟아
고향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지라도
슬며시 옛 추억과 동심을 불러내어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 수 있는
의미있고 소중한 추석이었으면 합니다
♧ 추석 - 정군수
고향집 우물가에는
지금도 놋대야에 달이 뜨고 있으리
흰 고무신 백설같이 닦아내던 누이
손끝 고운 그리움도 남아 있으리
눈엔 듯 보이는 듯 뒤안을 서성이면
장독대에는 달빛 푸른 새금파리
눈에 비친 어머니 안쓰러움도
오늘밤엔 기다림으로 남아 있으리
굴렁쇠 안에 뜨는 둥근 보름달
고샅길 이슬 맞고 달려오며는
달빛 받아 피어나는 할아버지의 수염
박꽃 같은 웃음도 남아 있으리
♧ 추석달을 보며 - 문정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달은
백동전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 추석 - 최상호
장난끼 많고 입심 좋은 학수 누님은 그 집 안마당 감
나무처럼 후덕스런 얼굴의 친척 누님 여름날 나무 그늘
에 앉아선 얘들아, 안강 사거리에서 할매 한 분이 버스를
기다리다 총각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물었단다. 총객, 총
객 갱주 가는 빤스 언제오노? 귀찮아진 총각 녀석 귀먹
은 듯 대꾸도 안 하는 데 눈치없는 할매만 애가 타서 옆
구리 자꾸 찔렀단다. 그래 이 고약한 총각녀석 꽥하며 한
다는 소리가 할매요 자꾸 건드리지마소 이번 꺼는 포항
가는 사루마다고 요담 오는 게 경주가는 빤스요. 이런 재
미난 우스개를 곧잘 하였다. 그 누님 시원하게 웃는 모습
은 더욱 좋았다. 여름날 감나무 밑에서 라디오 틀어 놓고
동숙의 노래 열심히 부르더니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
했던지 어느 가을 기타치고 콩쿨대회 일딩하던 청년과
바람이 나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집안 망신 시킨다고
머리 깎이고 무지무지 맞은 날 사라지고 말았다. 열 번의
명절이 지나도 소문조차 없던 누님 부산 어디서 보았다
는 대구 어디서 보았다는 뜬 소문 날 때마다 그 아버지
는 길을 나섰지만 동네에서도 집안에서도 영 잊힐 일 되
었더니 어느 해 고향 온 이웃이 그이 동두천 어느 거리
에서 보았단다. 새까만 깜둥이 팔짱끼고 가는 걸 보았단
다. 가슴 다시 뒤집어진 그 아버지 이젠 늙은 힘으로도
거기까지 허위허위 갔더라만 소식 모르긴 마찬가지 동
네 사람들 수근거림만 샀더란다. 추석이래도 아무도 찾
는 이 없는 그 집 깜둥이 손자면 어떻노 자식하나 데불
고 이래 고향 찾아오믄 얼매나 좋노 파삭 늙은 그 어머
니 평상에 앉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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