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비에 젖어도 향기와 빛깔은 젖지 않습니다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한겨레
» 꽃은 비에 젖어도 향기와 빛깔은 젖지 않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나의 삶 나의 시’를 매주 연재합니다. 도종환 시인이 써 온 시들 가운데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들을 골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산문으로 풀어 놓을 예정입니다. 시인의 오랜 지기인 판화가 이철수씨가 채색 그림으로 시인의 연재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편집자

꽃은 산맥을 보게 하고
산 너머를 동경하게 합니다.
시련이 닥칠 때마다 거칠어지지 말라고
괜찮다, 괜찮다… 다독입니다.

지난해 사월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거리를 걸어가는데 어디서 달콤한 향기가 번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골목 끝에 라일락꽃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 꽃 옆으로 걸어갔습니다. 꽃이 지나가는 나에게 향기를 흘려보낸 건 내게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향기는 꽃의 언어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 식의 음성언어를 사용하여 의사를 전달하지만 꽃은 빛깔과 향기로 누구를 부르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소통하기도 하는 거지요. 벌은 춤으로 동료들에게 어디에 꿀이 있는지 알려주고, 개미는 페로몬으로 적의 침입을 알리지 않습니까? 저마다 자기 언어가 있는 것이지요.

저를 부른 이유가 무얼까 하고 생각하며 라일락꽃 옆을 서성이다가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라는 꽃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나를 불렀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꽃의 말을 베껴 적었습니다. 라일락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으면서도 제 빛깔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습니다. 연보라색이라 비에 젖으면 금방 지워질 것 같은 여린 빛인데도 제 빛깔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니 내일 또 비에 젖어도 제 빛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을 것이고 내년에 다시 비에 젖어도 제 빛깔 제 향기를 잃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라일락꽃 한 송이보다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그런 생각들이 모여 <라일락꽃>이란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 <라일락꽃> 전문

나는 길을 가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걸음을 멈춥니다. 꽃이 나를 부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푸른 하늘을 보면 일을 멈춥니다.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장면을 보면 책을 덮습니다. 사물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 사람, 감동적인 장면을 만나면 그 속으로 빠져듭니다. 내가 그 사물, 그 장면과 만나게 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희망의 바깥은 없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이런 구절들은 대개 그런 순간에 만나면서 그 자리에서 베껴 적은 언어들입니다.

첫 시집 <고두미마을에서>를 냈을 때 사람들은 웬 풀 이름, 꽃 이름이 이렇게 많이 등장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시골에 오래 살아서 그래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태어나기는 청주시 변두리인 운천동 산직말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바로 증평(장뜰)으로 이사를 가셨기 때문에 증평군 증평읍 대동 단군전 아랫동네에서 자랐습니다. 거기서 열한 살 때까지 살았으니까 내 의식과 무의식 속에 내재된 어린 시절의 기억은 증평읍의 풍경들입니다. 우리 집에서 조금 내려가면 고모네 집이 있었습니다. 고모네 집은 마당도 컸고 뒤뜰도 넓었습니다. 그 집에서 고종사촌 형제들과 많이 어울려 놀아서 그런지 우리 집에 대한 기억보다 고모네 집에 대한 기억이 더 많습니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오래된 기억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고모들이 울면서 마당으로 달려오던 기억입니다. 서너 살 무렵의 기억입니다. 또 하나 오래 남아 있는 기억 중의 하나가 고모네 집 마당가에 있던 꽃밭입니다. 그 꽃밭에는 채송화, 분꽃, 과꽃, 맨드라미, 달리아 이런 꽃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꽃들은 내 기억 속에 가장 오래 각인되어 있는 꽃들입니다. 어디서나 그 꽃을 보면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내가 분꽃씨 만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거기 어머니와 꽃밭이 있었다
내가 아장아장 걸음을 떼기 시작할 때
내 발걸음마다 채송화가 기우뚱거리며 따라왔고
무엇을 잡으려고 푸른 단풍잎 같은 손가락을
햇살 속에 내밀 때면
분꽃이 입을 열어 나팔소리를 들려주었다

왜 내가 처음 본 것이 검푸른 바다 빛이거나
짐승의 윤기 흐르는 잔등이 아니라
과꽃이 진보라 빛 향기를 흔드는 꽃밭이었을까

민들레 만하던 내가 달리아처럼 자라서
장뜰을 떠나온 뒤에도 꽃들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사나운 짐승처럼 도시의 골목을 치달려갈 때면
거칠어지지 말라고 꽃들은 다가와 발목을 붙잡는다
슬픔 속에 잠겨 젖은 얼굴을 파묻고 있을 때면
괜찮다고 괜찮다고 다독이며
꽃잎의 손수건을 내민다

지금도 내 마음의 마당 끝에는 꽃밭이 있다
내가 산맥을 먼저 보고 꽃밭을 보았다면
꽃밭은 작고 시시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꽃밭을 보고 앵두나무와 두타산을 보았기 때문에
산 너머 하늘이 푸르고 싱싱하게 보였다
꽃밭을 보고 살구꽃 향기를 알게 되고
연분홍 그 향기를 따라가다 강물을 만났기 때문에
삶의 유장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눈을 열어 세상을 보았을 때
거기 꽃밭이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지금도 내 옷 소매에 소박한 향기가 묻어 있는 것이

- 졸시 <꽃밭> 전문

나는 충청도의 소읍에서 자랐습니다. 장엄한 산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산악도 아니고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 마을도 아닌 비산비야의 시골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보고 꽃밭을 보며 자랐습니다. 단군전 넓은 마당과 동네 골목을 따라 풍물을 치며 동네를 도는 마을사람들의 뒤를 따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리랑고개를 넘어서 퉁퉁골 방죽까지 잠자리를 잡으며 놀러 다니던 길에는 작은 개울이 흘렀고 그 개울에는 피라미, 송사리, 미꾸라지가 많았습니다. 찰방거리는 개울물소리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게 좋았습니다. 과수원까지 가다가 묏등에 덜렁 누워 쪼이는 눈이 부신 햇볕의 희디흰 빛이나 깻잎이 손에 닿았을 때 나는 고소한 향이 좋았습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백마고지 전투 그 참혹한 백병전에서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이듬해에 나는 태어났습니다. 가난하고 살기 힘들었지만 내겐 평화로운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시절은 거기서 끝나고 열 살 이후 내 삶은 가난과 시련과 좌절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세상은 살기 힘들었고 순박하던 심성은 수시로 거칠어지기 일쑤였습니다.

» 도종환 시인

그러나 그때마다 거칠어지지 말라고 꽃들은 다가와 발목을 붙잡곤 합니다. 슬픔 속에 잠겨 젖은 얼굴을 파묻고 있을 때면 괜찮다고 괜찮다고 다독이며 꽃들이 손수건을 건넵니다. 꽃에게서 위안을 받고 눈물을 삭입니다. 지금도 내 마음의 마당 끝에는 꽃밭이 있습니다. 내가 산맥을 먼저 보고 꽃밭을 알았다면 그 꽃밭은 시시해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꽃들을 알고 난 뒤에 산맥을 보았기 때문에 산 너머를 동경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꽃을 보면 가던 걸음을 멈추곤 합니다. 그래서 내 시에는 꽃의 향기가 묻어 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소박한 향기가 묻어 있는 것이.

도종환 시인/ 그림 이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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