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팔월 한가위 차례는 동생네 집에서 치르게 되어 있어
10시에 증조 이하 부모님까지 차례상을 진설하고 모셨다.
12시에는 온 친족이 종손집에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며,
벌초 이야기라든가 종친회 일들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해마
다 계속되는 일이지만 그 의미는 퇴색되어 가는 것 같다.
방울꽃은 쥐꼬리망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30~60cm이고
원줄기는 네모꼴이다. 잎은 마주나며 넓은 달걀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고 양면에 털이 있다. 9월에 연한 자주색 꽃이 피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든다. 물가 그늘에서 자라는데,
제주도에 분포한다. 은방울꽃과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 가을에게 보내는 편지 - 반기룡
잉걸불 같던 여름 날씨도 서서히 꼬리를 감추고
고추잠자리와 국향으로 가득 메울 가을이
살금살금 입맞춤을 하려고 예행연습을 하는 이때,
발칸반도의 남단에 있는 그리스에선
우리의 심장을 콩닥콩닥하게 하고
밤잠을 설치게 하는 승전보가 들려오곤 하지
그동안 피. 땀. 눈물을 흘린 결과가
메달 색깔을 달리하며 웃게도, 울게도 하는
짜릿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단다.
그런데 일년 동안 아무런 소식 없이 꼭꼭 숨었던 가을, 너는
늘 그랬듯이 금년에도 가을비와 태풍을 동반하여 오고 있구나
(이번엔 메기인데 다음번엔 가물치일까)
이젠 며칠 후면 처서가 오고 좀 있다가 추분이 오겠지
너를 기다리는 분들이 즐비하게 장사진을 치고 있단다.
지금도 시마을엔 네 이름이 간혹 회자되고 있고
세종대왕께서 한글 창제를 한 보람을 느낄 정도로
다양하고 멋있는 시어가 속속 알몸을 드러내고 있지
그 이름 자주 거론되고
여기저기에 삽입하고 삭제하고 수정하더라도
짜증없는 아름다운 맘 갖기를 바란다.
준비된 사수가 목표물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듯
얼마 후에 벌겋게 수놓을 그 가을 꽃동산이
눈앞에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날을 기다리며 지식과 지혜의 완결판이오,
살아있는 대백과사전들의 힘찬 행진을 지켜보렴,
그리고
너도 가슴에 품었던 시어들을 몽땅 토악질하여 주기 바라며
일신 일일신 우일신(日新 日日新 又日新)하는 나날이 되길 바란다.
♧ 한가위 풍경 - (宵火)고은영
플라타너스 나무는 살아 있는 내내
몇 천 번의 수피를 벗을까
나이만큼 벗어내는 걸까
높아진 담청색 하늘에 구름 들은
흩어졌다 다시 모인다
만월의 밤이면 소곤거림에
점점 무르익어 비워내야 할 것이
무엇임을 아는 자연의 소리
고통을 지나온 걸음은
비로소 행복에 근접하는 것이다
거기 말할 수 없는 진실로 엎딘 풍경도
마지막 고단한 열매를 달고 고열로 헉헉거리다
한가위 보름달에 그리움을 풀어내며
지극히 평화롭고 고요한 종을 울릴 것이다
♧ 한가위 - 月靜 강대실
어머니 뵈올 그 날
희끗이 바랜 세월 먹칠 하고
개운히 세목 마친다
가뿐가뿐 계단을 내려서자
먼 동공에서 초초히 기다리시다
금세 아들을 알아보고는
덩두렷한 웃음
보드레한 은빛의 손길로 연신
등을 쓰다듬어 준다
늘 안팎의 몸가짐 번듯이 하고
꼬옥 용서를 앞에 두라며
따라 마당까지 오시더니
시장할 테니 어여 들라 등 떠민다
봉숭아 같은 아내 얼굴
수제 젓가락 가지런한 밥상
둘러앉은 가운데에 놓는다.
♧ 고향 - 오보영
그냥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감싸주던 풍경들
조용히 눈감고
그려만 보아도 포근하고
정겨운 얼굴들 살며시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서린다
맘껏 그리워할 수 있는
임이 있는 곳
언제든 돌아가면
편안히
쉼을 얻을 수 있는 그곳이 있음으로
난
많이 행복하다
♧ 나는 불 꺼진 숲을 희망이라 말하고 싶다 - 고영
추분 지나 급격하게 야위는 가을밤,
실내등 불빛 아래서 『랭보―지옥으로부터의 자유』를 읽다가
랭보의 무덤에 이르러 나는 밑줄을 긋는다
밑줄 아래로 펼쳐진 회화나무 숲에서
자유롭게 비행하는 산비둘기가 보였다
잉크로 쓴 내 첫사랑은 유성이 되었다
검정파랑빨강 삼색의 잉크병을 비우면 희망도 상처로 번졌다
책을 떠나서 가벼워진 단어들 문법들 그리고 금방이라도
뾰르릉 날아갈 것 같은 詩語들,
유혹은 놓칠 수 없는 것들만 밤새 끌고 다녔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숲은 마약처럼 위험했다
부도난 어음은 찢겨져 길거리에 뿌려졌다 지갑 속에서
낯선 명함들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 내 연락처엔
야윈 발자국들만 웅성거렸다
바람이 이끄는 길을 밟고 가기도 너무 벅찼다
세상은, 문법이 통하지 않는 미로 같았다
랭보의 무덤을 지나 밑줄도 끝났다
밑줄 너머로 펼쳐진 회화나무 숲에서
아름다운 유성을 품고 있는 산비둘기가 보였다
저토록 눈부신 알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산비둘기 날 때마다 숲은 환해졌던 것인가
나는 불 꺼진 숲을 이제 희망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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