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는데도 여전히 덥다. 중부지방에 내리는

비가 습기를 많게 하고 바람을 통하지 않게 하니, 그런

모양인지 하루 종일 선풍기를 끼고 산다. 명절 분위기는

먼저 휴대폰 문자에서 먼저 조성하는지 간간히 ‘추석

잘 보내라’는 사연이 장식한다. 


어제 오름 다녀오다가 건널목 정류소 옆에서 이 꽃을 만

났다. 이제는 곡식도 세계화가 되어선지 확실히 안 보았

던 꽃이 가끔 나타나 나를 헷갈리게 한다. 우리가 강낭콩

이라 했던 것은 밭 구석에 올려 반달 모양으로 달렸던

것인데, 두불콩이라 부르던 것이 강낭콩이고 그 종자는 

지금 사라진 모양이다. 한참 찾아보니, 이것은 덩굴강낭콩

인 것 같다.


덩굴강낭콩은 콩과에 속한 한해살이풀로 잎은 호생하며

3출엽으로 엽병이 길고 소엽은 넓은 난형 또는 사각상

난형이며 길이 10cm정도로서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끝이

길게 뾰족해지며 엽병이 짧다. 꽃은 7-8월에 피고 백색

또는 연한 홍색이며 액생하는 총상화서에 달리고 꽃받침

은 술잔 같으며 끝이 5개로 갈라지지만 위쪽 2개는 붙어

있고 기핀의 윗부분이 젖혀져서 서며 용골판은 선형으로

꼬인다. 수술은 10개이고 암술은 1개이며 용골판과 더불

어 나선상으로 꼬인다. 협과는 길이 10-20cm로서 다소 굽

고 종자는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품종에 따라서 형태와

빛깔이 각각 다르다. 길이 1.5~2m이고 잔털이 있다.

 



 

♧ 강낭콩 밭에서 - 변상순


언덕배기 바람

칡넝쿨처럼 끌어안으면

이슬방울 목젖을 타고 내려갑니다.


푸른  콩잎 그늘아래

두꺼비와 이야기 소리

타오르는 능소화처럼 아름답습니다.


당신 사랑으로

노란 초가집 속의 사랑이

여물어가는 모습 기쁨으로 다가오니


밭고랑처럼 깊이 패인 얼굴은

삶의 흔적으로 간직하고픈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엘리아스*에게 - 김상현


잘 익은 강낭콩 같은 아이야

하루 종일 가축을 돌본다는,

하늘과 새와 나무와 사람을 그려 보낸

짐바브에 있는 네게 나는

나무처럼 자라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와 같이

꿈을 펼칠 수 있기를 빌 뿐이다

흰 이를 보이며 환하게 웃는,

맨발이 잘 어울리는 엘리아스야

문명에 찌든 내가 너의 후원자가 아니라

열 두 살의 네가 내 영혼의 후원자이구나

너의 맑디맑은 눈으로 보는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세상의 이야기를

사진속의 검은 눈망울에서 듣는다

지구의 보석!

하나님이 남겨 둔

너 아프리카의 소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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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아스는 아프리카 짐바브에서 하루 종일 소를 돌보는 흑인소년이다.


 

♧ 회상 - 김순진


서너 칸 지붕 위 매년 이엉을 엮어 덮는다. 몇 겹의 이엉이

가느다란 굴참나무 석가래에 목숨 걸고 얹혀있다. 어지럽게

지붕을 달팽이처럼 돌아선 이엉! 황토흙 개어 찍고 바른 흙

벽돌집의 처마 밑은 연기에 까맣게 그을린 거미줄이 주레

주레 매달렸다. 싸릿가지를 펴서 만든 들창이 있는 방안

엔 반닫이 궤짝 두개가 놓여 있고, 그 위엔 광목 소창으로

두른 목화솜 이불 누데기가 간밤의 잠덧을 해찰하듯 얹혀있

다. 부엌엔 무쇠솥과 그 위에 걸린 대조리, 나무로 깍은 주

걱, 나무뿌리로 만든 솥씻개가 걸려 있고, 사과 궤짝을 층

층이 얹어 놓은 찬창에는 보리밥에 찐 깻잎 짱아찌와 낮에

먹던 호박푸렝이가 시커멓게 바랜 양은 그릇에 반주발

쯤 담겨 있고, 아궁이 앞엔 부지깽이가 호령하듯 군림하

고, 불담도 없이 지지부진 타고 말 힘없는 지푸라기들이

은단먹은 닭모냥 쓰러져있다. 지렛대로 구멍을 뚫어 졸참

나무 틀어박은 울타리엔 파랑꽃 강낭콩이 주리를 틀며 기

어 오르고, 누우런 늙은 호박이 싸립문 여는 이의 시선을

부르며 매달려 있다. 울타리 밑엔 매닭 꿩닭들이 흙목욕

에  토실토실 뽀얗고, 고무신 물어 뜯던 삽살이는 숨을 헐

떡이며 마루밑에  잠자고, 한 아이 툇마루에 가방 팽개치

고 연필에 침을 바르며 갸우뚱 갸우뚱 숙제를 한다. 나의

옛집에....

 



 

♧ 빗방울과 물풍선 - 박종영


초봄 가뭄이 오래가더니 단비가 내린다

토닥토닥 낙숫물 소리도 정겹게

마른 땅이 젖어가며 겨울 이기고 일어선 풋풋한 

강낭콩 줄기가 가늘게 흔들린다

푸른 잎은 파란 하늘을 입에 물고 으스댄다

마당 웅덩이에 빗방울이 툭툭 떨어질 때마다

힘없는 바람이 빗물에 갇히면서

투명한 물풍선이 동그란 웃음을 만들어 내고

좁은 도랑물에 흘러가다 바람이 건드리면 금세 얼굴을 숨긴다

저렇듯 물풍선이 쉼 없이 일어서는 날은

이별 남기고 떠난 사랑이 반가운 기별을 보낸다는데

들리는 빗소리가 그리운 임의 손길로 옷소매를 잡아당긴다

흘러가는 회색 구름은 아직도 비를 머금어 댕댕하고 

비 그치고 나면,

차진 땅 깊이 한 촉 가늘게 숨어

흔들림 없이 살아남은 분분한 새싹의 웃음이 더욱

차분하게 초록 들판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

가늘게 흩어지다 설레는 신부의 걸음으로 다가와

작은 웃음으로 몸 섞으며 푸른 강을 만드는 빗방울

 



 

♧ 어머니의 시간 - 이남일


기억에도 없는

어릴 적 울음소리는

잠깐이었습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지켜보던

어머니의 시간은

매일 그을리는 햇빛만큼이나

순간이었습니다.

징검다리 같던 짧은 시간들은

어머니의 주름 살 속에

강낭콩처럼 영글어

마당가를 가른 빨랫줄만큼이나

길게 늘어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콩꼬투리를 까듯이 하나씩

가슴에 모아둔 어머니의 시간은

어쩌면

평생을 세고도 남을 것입니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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