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체육대회를 앞두고 회지를 내는데, 고향의 전설을
쓰기로 했으나 2002년에 이미 써버린 상태여서, 고심 끝에
요즘 뜨고 있는 올레에 대한 얘기를 취재해서 싣기로 하고
15코스와 16코스를 다녀왔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19km와
17.8km는 한 번에 걷는 거리치고는 너무 길다.
6~7시간 걸린다고 나와 있는데, 천천히 걸어서는 9시간을 걸
어도 힘들 것같다. 포장도로나 난삽한 길도 섞여 있기 때문에
길어야 한 10km씩만 나누었으면 부담이 없었을 것이다. 평일이
고 인기가 없는 코스여서 그런지 두 코스에서 걷는 사람을 한
분도 안 보였다. 그 길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이 나팔꽃을 만난
것이다.
나팔꽃은 메꽃과의 한해살이풀로 줄기는 높이가 2~3m이고
덩굴져 감아 올라가며, 잎은 어긋나고 심장 모양인데 세
갈래로 깊이 갈라진다. 여름에 나팔 모양의 보라색, 붉은색,
재색, 흰색 꽃이 피고 열매는 둥근 삭과를 맺는다. 관상용
으로 재배하며 씨는‘견우자(牽牛子)’라 하여 약용한다.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이다.
♧ 나팔꽃 속에 - 홍해리(洪海里)
행여 그대 꿈이 깨어질라
세 갈래 손바닥 이슬 머금어
이른 아침 영롱한 햇살에
눈 비비는 꽃
한번 피면 한나절
긴긴 여름날의 아침마다
마디마디 맺혀 있는
자주꽃 빨간 꽃의 신비여
바람 한 파람마다
휘감겨 오는
그대 가느란 허리
외로만 기어올라서
소녀의 단 하나 고집 부린다
나팔꽃 속에 사는 소녀는
이른 아침 한나절만 살고
낮이면 꽃 속에 숨어
문 닫고 하늘나라다.
♧ 나팔꽃 - 박만식
허물없는 세상과는
동조하지 않는다
번지르르한 꽃들의 눈빛 피해
아무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멧비둘기의 염주 알 같은
눈망울로 날아와
외딴집 바지랑대에 기대어
말줄임표로만 말없음표로만
꼬장꼬장하게 뻗어가며
턱 괴고 먼 산 바라보지만
아픈 사람들의 발끝에 피어
손뼉을 쳐주는 사람처럼 사는 꽃
우리가 보는 앞에서는
절대
나팔 소리를 내지 않는다
♧ 나팔꽃 사랑 - 유소례
가는 허리 꼬아낼 때마다
피를 짜낸 떡잎은 병들어 눕고
곡예사처럼 간장 녹는 외줄 타기,
내가 꼭 가야하는 비애입니다
진보라 나팔을 가슴에 담고
그대 새벽 꿈길에
세레나데로 나팔을 불어
아침을 열어주는 속 심지가 불타
오르고 또 오르는 불꽃나팔입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그대 침상에 은은한 나팔소리 번질 때
아련한 귀를 대고
미소짓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못내 첫사랑의 고백은 목안에 넘기고
눈썹에 이슬 맺힌 채 보랏빛 색깔을 띄워
진한 가슴으로
행복을 외치고 있습니다
한낮, 긴긴 시간
나팔을 접어 가슴에 안고
그대 창가에 침묵을 지키다가
새 아침이 오면
진보라 나팔소리로 그대를 부르겠습니다.
♧ 나팔꽃 - 서정우
묻나니
네가 이제 찾는 것은 무엇이더냐
친구를 보내고
어깨에 걸친 가방 속에
가족을 묻고
정신없이 걸어가는 아침 골목길
삶이라는 것은 애당초 목표는 있는 것일까
굳혀 정돈시킨 생각들 와르르 무너진 담장 아래로
너는 또 지나가고.
나팔꽃
네 눈이 멈춘 곳이면 어디라도 기어올라
연분홍 나팔 무더기로 들이대면서
묻나니
삶이라는 것은 애당초 목표는 없는 것일까
한 계절 내내 뱃심 끌어 올려 끅끅거리다가
잃어버린 목소리
안으로 삼켜가면서 다시
묻나니.
♧ 나팔꽃 피어난 후로 - 홍수희
그대 기다리다 지친 날,
나 나팔꽃을 심었네,
그대 기다리다 슬픈 날,
나팔꽃 베란다에 조용히 피어났네,
보랏빛 서글픈 꽃 피어난 후로,
이상한 일이네,
나 더 이상 그대를 그리워할 수가 없네,
나팔꽃 푸른 줄기, 밤낮없이 오로지 출렁이는,
출렁이는 내 그리움의 여윈 끝을 휘어잡아,
위로만 친친 감아 오르더니,
이상한 일이네,
이제 더 이상 그대를 그리워할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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