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쇠기

주오돈(교사, 시인)


‘개 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보름날 개한테 먹이를 주면 한 해 내내 파리가 붙고 야윈다는 속설이다. 지역마다 세시풍속이 전해온다만 전승 과정에서 조금씩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야기문학을 적층문학이라고 한다. 모래흙이 물살에 실려 떠내려 와 한 켜 두 켜 쌓여 이룬 퇴적층과 마찬가지다. 물길에 따라 변하는 삼각주와 같아 구비문학을 유동문학이라고도 이른다.


내 어릴 적 설날은 동짓날부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부터 낮이 길던 밤이 점차 짧아졌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빚어주신 동지팥죽 새알을 나이보다 한 개 더 먹을 수 있었다. 당신은 동짓날 팥죽을 쑤어 여러 곳에다 뿌렸다. 부엌문은 기본이고 곳간이나 장독대에 붉은 팥죽을 훠이훠이 저으셨다. 외양간 기둥에도 뿌리셨다. 한 해가 오고감을 조왕신께 아뢰고 잡귀를 멀리 쫓으셨다.


절기는 동지이후 소한대한 지나 입춘이다. 입춘 전후 설날이 들고 정월대보름이다. 어릴 적 대보름은 겨우내 날렸던 연을 달집에 메달아 불살랐다. 액운은 연기로 날려 보내고 복은 숯불다리미에 받는 격이었다. 농경문화에선 정월보름날이 농사의 출발점이다. 보름날 별식인 부름과 귀밝이술은 주된 의미와 딸린 의미가 있다. 건강을 챙기십사는 뜻 말고도 이웃과 통하라는 뜻이 담겼다.


어릴 적 고향집에선 줄곧은 아니지만 개를 기른 때가 있었다. 불러준 이름은 고상하지도 않은 ‘누렁’이나 ‘까막’이였다. 정월대보름이면 어머님은 새벽녘 잡곡밥을 짓고 묵나물을 장만하셨다. 가족이 들기 전에 조왕신께 먼저 바치셨다. 그리고 문밖을 나서 고샅에다 음식을 놓고 두 손 모으셨다. 모르긴 해도 가족의 안녕은 집안에서 빌었을 테고, 한 해 농사가 잘 되길 비셨지 싶다.


세월이 흘러 쉰 고개를 넘었다. 수년 전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친부모 처부모 모두 선산으로 모셨다. 설이나 추석 명절이 다가와도 예전만큼 마음 설레지 않는다. 조상의 대가 한 대 갈라진 가장이 되어 어쩔 수 없나 보다. 예전의 개보름쇠기라는 속담은 개를 굶긴 동물학대가 아니었다. 나는 이 속담에서 선인들의 삶이 참으로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개는 묶여 있지 않았다.


나는 개보름쇠기라는 속담은 달리 해석한다. 보름날 개는 굶겨야한다는 의미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론 정월보름날이면 어머님은 조왕신께 바친 대보름 음식을 문간 밖에다 고수레했다. 지나는 날짐승길짐승이 먹고 가라는 배려였다. 이런 음식이 지천으로 깔린 날이니 보름에는 굳이 개한테까지 먹이를 줄 필요가 없었다. 보름날 개는 동네를 어슬렁거리면 굶지 않았다.


개보름쇠기에서 러시아 생리학자 파블로프가 떠올려 본다. 파블로프는 개의 침샘에 분비하는 조건반사설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다. 우리네 개는 정월대보름이나 상갓집에선 조건반사가 저절로 이루어졌다. 정월대보름에는 마을 어귀마다 보름음식이 깔렸고, 상가에서도 개한테 신경 쓸 만한 겨를도 없지만 뼈다귀가 굴러다녔다. 그러니 우리네 개는 대보름이나 상가에선 자력갱생했다.


내가 에둘러 보름이야기를 하는 데는 추석을 앞두어서다. 추석도 같은 열두 달 가운데 정월대보름 이상으로 우리 민족 고유 명절이다. 나는 선물이랍시고 어디 보내기보다 쑥스럽게도 받아본 횟수가 많다. 지위에야 위아래가 있지만 인격에야 위아래가 있겠는가? 나는 명절이면 몇몇 낮은 곳에 더 마음 쏠렸다. 어쩌면 내가 그만큼 세상 처세에 눈치 모르고 살았다는 반증이기도하다.


각설하고, 추석연휴를 앞둔 날이었다. 퇴근해서 시립도서관에 들렸다. 연휴에 읽을 몇 권 책이 필요해서다. 전에는 세 권까지였으나 이제는 다섯 권까지 대출 가능했다. 연휴기간 일용할 양식은 준비한 셈이었다. 돌아오다 집 근처 주막에서 혼자 막걸리를 한 잔 들었다. 주인아낙은 추석이랍시고 나한테 치약을 한 개 주었다. 나보고 추석 잘 쇠라더군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 10.09.20



출처 : 박샘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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