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잘잘못에 대해서 어떻게 훈육하나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명쾌하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하거나,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이면 아이들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심리상태가 그늘이 지면 궂은 날씨처럼 몸의 상태가 찌뿌듯하고, 모든 게 무료해집니다. 하던 일을 제쳐두고, 어떤 일도 손에 닿지 않습니다. 의욕상실에 빠집니다. 언제나 우울하고, 기분이 좋지 못해서 그냥 마음이 나빠집니다. 마음속에 먹구름이 잔뜩 쌓입니다. 끝없이 추락하는 낭패감으로 자학하게 되고, 현실상황과 괴리된 채 자폐성향 마저 보이게 되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급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 하는 짓을 보면 자잘한 것에서부터 제법 덩치 큰 일까지 잘못을 가려주고, 꾸짖고 질책할 일들이 많아 잔소리가 늘어납니다. 결국 애써 다그치다가 벌을 주고 매를 듭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그때 그 순간뿐입니다. 아무리 마음에 두고 잘못을 일깨워보지만 사사로운 버릇은 고쳐지지 않고 오래갑니다.
그러니 부모 마음 조급해집니다. 아이들의 행동이 어른들처럼 당장에 바로 선다면 어찌 어린이겠습니까. 눈에 벗어나는 행동을 바로잡겠다고, 좋은 버릇들이겠다고 애써 각인시키지 않아도 좋습니다. 잘 놀아야 잘 크듯 아이들은 아이들다운 행동을 해야 희망적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는 어른들의 잣대가 그리 필요치 않습니다. 논밭에 알곡들만 가려 잘 키울 것 같지요? 꽃밭에 아름다운 꽃만 골라 심으면 예쁜 꽃들이 어우러질 것 같지요? 그러나 그 틈새에 잡초들은 아무렇게나 대접을 받아도 잘 자랍니다. 애꿎게 잡초만 가려 뽑아내지만 어느새 잡초도 제 나름대로 자리를 차지합니다. 아이들은 들풀같이 잡초처럼 키워야합니다. 너무 손이 많이 간다고 결코 좋은 아이로 자라지 않습니다. 연꽃은 진흙 펄에도 함초롬히 피어나는 법입니다.
부모로서 자녀들에 대해서 확신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늘 확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자녀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애매한 태도를 갖지 않아야합니다. 자녀의 잘못에 대해서 분명하게 꾸짖는 것도 아니고, 용서하는 것도 아니며, 늘 잔소리만 거듭하는 부모의 태도에 영향을 받은 아이는 불만족스럽습니다.
늘 다그침을 받고, 구박받으며, 위협을 받은 아이는 부모를 무서워하며 불안해합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의기소침하며, 심리상태가 불안정해집니다. 그러한 일들은 아이에게 불건강한 요소를 갖게 할 뿐이며, 아무런 득도 없습니다. 그렇게 어정쩡한 훈육이라면 차라리 아니함만 못합니다.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서 닦달한다지만 부모의 미지근한 태도 이면에는 자녀에 대한 구박이 따르며, 대리만족하려는 욕심이 스며있습니다. 자녀의 잘못에 대한 명쾌한 결단을 보이지 못한 데서 오는 초조함이 결국 아이들한테는 참아내기 힘든 구박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부모가 분별해서 벌을 주는 명쾌한 태도만이 솔직한 아이로, 심신이 건강한 아이로, 행동이 느긋한 아이로 자라게 하며, 결코 그늘지지 않는 자녀를 만듭니다.
또한 부모가 스스로의 신념에 대해서 성실하지 못하고, 자녀를 어정쩡하게 교육하면서, 자녀만은 신념이 있는 사람이 되어 줄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모순입니다. 연목구어하듯이 항상 자녀가 좋은 짓만 하도록 기대한다는 것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 자녀 양육방식입니다.
요즈음 체벌은 야만이라고 생각하는 풍조 탓에 그다지 아이들을 때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아이들의 마음을 고치는데 꼭 필요하다면 그 수단과 방법은 분별해야 합니다. 따끔한 일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저 내 아이가 귀엽다고 아이의 잘잘못에 대해서 손도 대지 않고, 다만 자녀들을 지켜볼 따름인 방관자적 태도는 체벌을 혐오하는 민주주의 따위와는 무관하게 부모로서의 직분을 상실한 어정쩡한 마음일 뿐입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귀엽다고 가시에 찔러 피가 나면서까지 품어 안습니다. 부모라면 그런 사랑을 베푸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부모가 사사로운 정을 버리고서 아이를 철저하게 다그치는 것이라면 자녀도 부모의 훈육에 애정을 느낄 것입니다.
체벌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음의 교정에 있는 것이므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체벌이 아니라면 체벌은 필요합니다. 아이들, 시루의 콩나물처럼 나약하게 키우는 것보다 오뉴월 뙤약볕에도 당당하게 이파리를 곧추세우는 콩 나무로 키워야합니다. 2010. 09. 09.
바자회를 위해 입지 않는 옷을 수집한다며 양이 많으면 가지러 오겠다고 하여 전화번호를 적었다.
남편은 뇌경색과 천식으로 생의 마지막을 산소기에 의지한지 오래다. 남편을 보고 있으면 사람 목숨이 실낱처럼 점점 가늘어져간다는 느낌이 요즈음 들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병상을 박차고 일어날 가망이 보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그의 옷을 보내기로 마음을 정했다. 멀쩡한 옷이라 아는 사람이 가져다 입어줬으면 좋으련만 입던 것을 선뜻 주기란 쉽지 않고 더구나 생사의 귀로에 있는 남편옷을 받는 사람의 기분이 언짢을까봐서였다.
그나마 옷 주인이 생존해 있을 때 주라는 이웃들의 권유에 수긍이 가서 복지관에 전화를 걸었다. 과연 잘하는 일인가 몇 번을 망설였지만 언젠가 한 번은 치러야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안방 장롱 안에 옷이 있어 누워있는 남편의 신경이 예민해질 것을 헤아리니 가슴이 조여 왔다.
옷을 가지러 오는 하루 전날 밤,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도둑처럼 옷을 옮겼다. 자그마치 정장正裝이 스물하고도 세 벌이었다. 감상적인 생각일랑 하지 않기로 모진 마음을 먹었지만 한 벌 두 벌 거실에 내놓으니 함께 했던 따뜻한 추억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려왔다.
게다가 다니러 온 둘째가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도 저래서 안 된다며 내 마음을 뒤집어 놓은 터라 더 심란하였다. 결국 안주머니에 이름이 새겨진 옷은 빼고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다음날 아침, 남편의 신발도 휠체어 탈 때 신을 슬리퍼 하나만 남기고 박스에 넣었다. 굶지도 않았건만 내 마음은 허기로 가득 찼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옷을 싣고 떠나는 승용차를 차마 볼 수 없어 현관문을 빨 닫았다. 보물을 도둑맞은 것처럼 다리도 휘청거렸다. 체취가 묻은 남편의 옷은 나에게 남편의 분신이라는 사실이 그 때 깨달아져 밤새도록 뒤척였다. 비어 있는 장롱은 내 마음을 더 휑하게 하였다.
바자회 날 그 옷을 다시 만날 거라고 자신을 달래가며 잠을 청했다.
마치 누구와 만날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잰 걸음으로 복지관엘 갔다.
낯익은 옷이 저만치 먼 발치에서도 눈에 들어왔으나 막상 용기가 나지 않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민망도 했다.
남편이 입고 있었을 땐 위풍당당해 보이던 옷이었건만 어깨가 축 늘어진 채 낡은 철사옷걸이에 달려있는 것을 보니 남편의 모습같아 더 애잔하였다.
먼지바람을 맞아가며 복지관 마당에 걸려있는 몰골이라니. 제대로 된 옷걸이로 떠나는 옷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갖출 것을! 후회가 밀려왔다.
후줄근한 옷처럼 남편의 자존심도 일그러진 것 같아서였다. 허겁지겁 혼 줄 나간 사람이 되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바자회 이틀 후 그곳에 갈 일이 생겼다. 복지관에 막 들어서려니 낯익은 옷이 다시 나의 눈과 마주쳤다. 팔리지 않은 옷을 어디로 가져가려는지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틀 전과 달리 가까이 다가가서 옷들을 어루만졌다.
쫓아내었던 아이를 다시 보듬는 마음이 이러하리라.
원망의 눈초리로 옷들이 나를 흘겨보는 것 같았다.
‘몹쓸 것, 왜 이다지 일찍 나를 내 쫓았지?’ 옷이 입을 가지고 말을 하는 것 같아 차마 발길을 떼 놓을 수 없었다.활기차고 씩씩했던 남편 모습이 다정하게 다가왔다. 한 땐 남편도 나와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는데...... 밖에서 막막한 일을 당하고 집에 와 우리가 눈치 챌까봐 가슴앓이를 하지는 않았는지.
떠나는 자동차 꽁무니를 대책 없이 쫓아다니던 철부지 시골 아이들처럼 마음이 다급해져 옷을 다시 집에 가지고 갈까하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큰 이별은 나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이것은 차라리 내 의지의 영역이 아니니 애증으로 치부하고 원망으로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옷을 떠나보낸 작은 이별이 큰 이별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미욱하게도 요즘에 깨달았다. 옷을 떠나보내는 것은 의지로 선택한 이별이기에 가슴이 저미고 이 작은 이별은 아물지 않은 생채기로 나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말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는 데 말이다. 그 이유와 차이가 뭘까.
말은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배운다. 부모나 형제들이 말하는 걸 듣다보면 말에 대한 뇌 회로가 생긴다. 삶 속에서 자연스레 익힌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갖는 언어 능력은 타고난 게 아니다. ‘늑대인간’을 통한 실험에서도 검증되지 않았던가.
우리 대부분은 말하듯이 글쓰기를 배우지 못했다. 말도 언어를 통해서 하고, 글쓰기도 언어를 통해서하는 데 말이다. 말은 글보다 한결 쉽고 간편하다. 글은 시공간의 제약을 어느 정도 받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글쓰기를 너무 어려워하고,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나 역시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았다. 다만 요 몇 해 ‘쓰고 싶은 글쓰기’를 많이 하면서 자신을 많이 치유했다고 할까. 이제는 누군가의 글을 보면 나 역시 그와 관련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왜냐?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을 통한 소통 못지않게 글을 통한 소통을 원하기 때문이다.
말이 갖는 장점이 많듯이 글이 갖는 장점도 많다. 우선 글은 한번 써두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말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진다. 그러니 사라지는 게 아깝거나 오래 보관하고 싶은 기억이나 생각이 있다면 즉시 글을 쓴다. 하다못해 메모라도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글 한 편 쓰는 게 어렵지 않다. 말하듯이 글이 나온다.
글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은 말과 달리 여러 사람과 시공간을 넘어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수백 수천 명이 모인 곳에서 하는 연설은 보통 사람에게는 기회가 거의 없다. 또한 연설이나 강의는 듣기만 할 뿐 공감을 나누기는 어렵다.
그러나 글은 간단하면서도 시공간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지 않는가. 인터넷 글쓰기만 해도 그렇다. 글 내용만 좋다면 언제든 얼마든지 여러 사람이 읽을 수 있다. 인터넷 글쓰기는 댓글이나 답글 기능까지 있기에 글쓰기 공부를 할 때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된다. 댓글 다는 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용기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나.
이렇게 글쓰기를 하다보면 말과 달리 아주 색다른 인연을 맺기도 한다. 보통은 낯선 사람에게는 선뜻 말을 건네기 어렵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비교적 쉽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쓴 글에 공감이 된다면 기꺼이 댓글을 달고, 더 필요하다면 서로 쪽지나 메일을 주고받으며 친해질 수 있다. 자신과 통하는 사람을 더 많이, 더 자주 만나고 싶다면 글을 쓰자.
글쓰기 장점은 이외에 자기 정리와 자기 치유에 도움이 된다. 자기정리라는 건 뇌 회로를 정리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말처럼 글도 자꾸 써보면 뇌에는 글쓰기 회로가 자연스레 생긴다. 말하듯이 글이 술술 나온다. 줄글은 물론, 느낌이 좋을 때는 시가 나오며, 감정이 출렁일 때는 노랫말이 되어 흥얼흥얼하게 된다.
또한 글쓰기는 자신을 보는 거울이 되어 자신을 한걸음씩 성장하게 만든다. 이를 테면 학교를 그만둘까 말까 하는 힘든 결정을 앞에 두고 있다고 치자. 고민 당시를 거짓 없이 진솔하게 기록을 해 둔다. 그리고 나서 한달쯤 뒤, 또는 일년 뒤에 다시 읽어보자. 그 사이 얼마나 자신이 달라졌는지. 처음에 가졌던 두려움이 어디서 나왔고,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또렷이 보게 된다. 만일 이런 정리와 성장과정에 대한 자기 확인이 없다면 그 사람은 계속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많이 허우적댈 것이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소중한 도구가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글쓰기가 쓸모가 많고 소중한데도 왜 우리는 글쓰기를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면 쓰고 싶은 글보다 써야하는 글을 많이 써왔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글쓰기 숙제’ 같은 경우다. 써야하는 글은 사람을 왜곡시킬 수 있다. 아이들이 자라다가 말을 저절로 배우듯이 글 역시 쓰고 싶을 때 바로 쓸 수 있어야한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자라면 병이 되듯이 쓰고 싶은 글을 못 쓰고 자라는 것 역시 병이 된다. 많은 걸 배운 다음, 어른이 된 다음에, 교단에 선 다음에 말을 하고,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또 하나의 잘못은 교육에 있다. 우리네 교육은 대부분 듣기 위주다. 말하기 위주로 하다보면 정해진 진도를 나가기가 어렵다. 한 사람이 일분씩만 말을 해도 30분이 후딱 간다. 듣기 교육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배우고 듣기만 많이 한 사람이라면 점점 글쓰기가 두려워질 수 있다. ‘완전한 글쓰기’를 생각하기에 글 한편 쓰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설사 어렵사리 썼다고 하더라도 이런 글은 잘 읽히지도 않는다. 어렵게 쓴 인문학자들 글이 잘 읽히지 않으며,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아놓은 시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말을 하듯 글을 쓰고, 글을 쓰듯 말을 할 필요가 있다. 남 글 하나를 읽으면 글 한 편을 쓰자. 하다못해 느낌 한 줄이라도 남기자. 일을 하거나 뭔가를 체험하다가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다면 주저 없이 메모를 하자. 말이 삶을 풍성하게 하듯이 글쓰기 역시 그렇다. 생명을 잘 돌아가게 하는 하나의 고리다.
지난 2월 27일, 한국작가회의 영주지부 회원들과 함께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고 스스로 서거한 곳이다. 영주 막걸리 몇 통 들고 가서 작은 비석 앞에 한 잔 드리고 마을 회관에서 국밥 한 그릇 먹고 올라온 것이 전부다. 여느 마을이나 다름없는 먼 남쪽 농촌 마을에 굳이 다녀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무슨 연유에서였을까?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고 온 나라가 애도의 물결로 울먹였다. 그가 떠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우리는 그를 잊어가고 있다. 격렬하게 끓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 양은냄비 같은 세태, 지금이라도 다녀오지 않으면 나의 머리도 양은냄비가 될 것 같은 위기감에서였는지 모른다.
봉하에 가면서, 또 다녀와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죽음이라는 어휘였다. 모든 죽음에는 의미가 있다.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은 죽음에는 다 쓰지 못한 미래의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어른의 죽음에선 서사시와 같은 평화로움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서는 범인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큰 사랑의 가르침이 있다. 히틀러의 죽음에서는 광기의 역사를 마감한 역사의 교훈이 있다. 법정 스님의 죽음에서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준 귀한 가르침이 있다.
법정 스님이 서울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시다가 송광사 불일암으로 내려가신 까닭도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있었다. 2002년 국가인권위는 중앙정보부가 날조한 사건이라고 발표했지만, 대구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이 선고되자마자 그날로 8명을 사형 집행한, ‘사법살인’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법정은 생목숨을 죽인 일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불일암으로 가셨다 한다.
요즘 정치인들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태연히 말하는 걸 보고 섬뜩함을 느꼈다. 지구상의 192개국 가운데 사형이 집행되는 나라는 25개국이다. 사형 제도가 있는가, 없는가는 국가의 품격과 관련되는 일임에도 우리 역사의 수레바퀴는 뒤로만 굴러간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의미의 생성이다. 어떤 죽음에도 의미가 있다. 특히 스스로 택한 죽음에는 더 많은 의미가 생성된다. 그 의미는 그가 살아 있을 때의 행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어떤 죽음의 의미를 한 마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의 삶에 대해서 우리가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무현의 죽음도 그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왜 노무현인가? 우리가 뽑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도덕적으로 살아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우리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묻듯이 노무현이 부엉이바위로 간 까닭을 물어야 할 것이다.
몇몇 사람들 사이에는 5, 6공 시절, 운동권 대학생 잡아들여 취조 고문을 하던 이의 사적인 증언이 떠돌았다. 그자의 말에 의하면 삼남(경상 전라 충청)의 특성이 취조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먼저 경상도 학생. 잡아 족치면 한번에 다 분단다. 그 다음 전라도 학생. 족친 만큼만 분단다. 다음날 조금 더 조져 보면 그만큼만 더 나온단다. 가장 독한 애들은 바로 충청도. 아무리 족쳐도
“물류. 그게 아뉴.”
소리만 한단다. 빨리 안 불어? 아무리 때리고 거꾸로 매달아도, 뭔 소리를 하는지 당췌 물르겄슈, 잘못 아신규, 소리만 해서 결국 내보내고 말았단다. 뒷날 알고 보니 내보낸 학생이 그들이 찾고 있던 사람이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충청도 출신 어느 시인 왈.
“독해서 그러기버덤은 갸도 말을 하려고 했을 겨. 막 실토하려고 하는데도 말 안한다고 두들겼을 겨. 그러니 원제 말을 햐.”
삼남의 기질 차이는 말투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경상도 말은 왜 그렇게 짧고 공격적일까. 답은 산이 높고 날카로워서. 어떤 방문자라도 불쑥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미 눈앞이라 재빠르게 대응할 수밖에 없어서.
전라도는 리듬을 타야 한다. 산이 낮지는 않지만 구릉이 많고 완만하여 그렇다고 본다. 그럼 충청도는? 평야가 넓은 곳이다. 모르는 이가 저만치에서 나타나면 궁리하기 시작한다. 삼국시대부터 그랬다. 침범이 잦았던 탓에 저것들이 고구려일까, 신라일까, 우리 백제일까, 정보가 모아질 때까지 판단을 유보한다. 그러기에 직설이 없다.
충청도 말이 느린 것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대답 없이 가만히 있는 것도 그 이유이다. 직설이 없다 보니 비유가 발달했다.
충청도를 배경으로 비유의 언어를 가장 뛰어나게 구사한 분이 돌아가신 명천 이문구 선생이다. <보기 싫은 새끼>가 충청도 언어로 가면 <장마철에 물걸레 같은 새끼>가 된다.
일전에 친구들과 술집엘 갔다. 안주가 마땅찮아 주저하고 있는데 빨리 안 시킨다고 안주인이 구시렁거렸다. 내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뱃속에 간도 있고 쓸개도 있고 곱창도 있고 다 있는데 뭐하러 안주 먹어요. 술만 넣어 주면 되지.”
이문구 선생의 단편 <우리동네 김씨>에 나오는 말이다.
이정록 시인도 충청도 출신이다. 그가 최근에 아들 운동화를 빨다가 갑자기 무릎을 치며 웃었다. 자기가 아들녀석 나이였을 때 뭔가를 잘못해서 선친께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저 운동화나 씹어 먹을 자식>이 그건데 무슨 내용인지 오래도록 알지 못하다가 아들 운동화 빠는 순간에 깨달은 것이다(도대체 무슨 말일까. 힌트. 댓돌에 신발 벗어 놓으면 누가 와서 이빨로 씹을까).
요즘 그는 아들이 잘못했을 때 해줄, 상처가 되지 않고 되레 웃음이 나는 그런 욕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자료/문장
구수하지유~ 늘어터져서 탈이지만 말예유~아 그래서 그만큼 넉넉하다는 얘기 아뉴?~ 선비가 뭐 아무나 돼는 건감유~^^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심심찮게 마주치는 풍경이 하나 있다. 살갗이 거무스름하고 눈이 큰 인도 사람들은 이른 아침마다 물통 하나씩을 달랑 들고 어디론가로 걸어간다. 처음에 나는 그들이 한 끼 밥을 얻기 위해 슬프게 걸음을 옮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똥을 누기 위해 그렇게들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적한 공터나 흙탕물이 흐르는 개울가를 찾아서 모두들 느긋하게 말이다. 물론 물통의 물은 뒤처리를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철로변에 저만치 쭈그려 앉아 태연히 똥을 누는 사람을 종종 볼 수도 있다.
그런 인도 사람을 보며 손가락질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똥이란 모든 동물의 생리적 작용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똥을 눈다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입을 통해 섭취한 것을 몸에서 걸러낸 뒤 그 찌꺼기를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행위다. 자연의 어머니인 대지는 절대로 똥을 밀어내거나 홀대하지 않는다. 대지는 똥을 고스란히 흡수하여 더욱 기름진 땅을 만든다. 대지는 똥뿐만 아니라 똥 냄새까지도 흡수한다. 그리고 그 땅에서 식물의 뿌리와 허리를 튼튼하게 키운다. 대지의 모성애는 그렇게 거리낌없이 똥을 빨아들임으로써 발휘된다.
그런데 대지가 똥을 거부할 때가 있다. 바로 대지의 얼굴에 시멘트나 아스팔트 같은 개발 문명의 분이 발라졌을 때다. 그것은 대체로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진행된다. 똥을 받아들일 능력을 상실한 도시의 땅은 똥 냄새까지도 끌어안지 못한다. 인도의 도시 변두리 곳곳에 유난히 똥 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대지가 자기 정화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똥의 지위와 역할을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으면 똥은 그 지독한 냄새로 사람들의 코를 마구 미틀고 찔러대는 것이다.
시골의 콩밭이나 풀숲에서 엉덩이를 까고 쭈그려 앉아 똥을 누어본 적이 있는가? 그때의 똥 냄새는 도시의 공중 화장실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도시는 똥과 똥 냄새를 밀어내려고 애를 쓰지만 흙은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 콩잎이나 매끄러운 아주까리 잎사귀로 뒤를 닦고 바지를 끌어올리며 일어설 때까지 똥 냄새는 우리를 푸근하게 감싼다. 흙과 똥의 궁합이 맞아떨어졌다는 뜻이다. 이때 매몰차게 똥을 그대로 놔두고 자리를 뜨면 안 된다. 흙으로 똥을 덮어주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흙으로 된 이불을 뒤집어쓰고 똥이 다시 흙의 가슴 속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똥에 대한 예의다.
옛날부터 민가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똥 위에다 재를 덮었다. 똥이 눈에 띄지 않아서 좋고, 신통하게도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아서 좋고, 재와 섞여 더 잘 삭을 수 있어서 좋다. 지금도 그런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뒷간을 간혹 만날 때가 있다. 전주 근교의 모악산 아래에 사는 박남준 시인의 오두막에 가 보라. 똥 위에 재를 뿌리는 노천 뒷간이 그 집에 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쭈그려 앉아야 하는 게 흠이지만, 코를 싸쥐고 인상을 찌푸리지 않아도 될 만큼 뒷간의 청결 상태는 양호하다.
어릴 적에 시골에 있는 큰집이나 외갓집을 가면 ‘통시’라고 부르는 변소가 위채와 아래채에 각각 하나씩 있었다. 하나는 여성용이고, 하나는 남성용인 셈인데, 그보다는 똥을 모아 거름으로 쓰고자 하는 목적이 더 컸을 것이다. 똥장군과 오줌통을 거느린 그 통시가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었다. 그래서 그 통시를 드나들 때마다 나는 하얀 수세식 변기가 있는 집을 머릿속에 그리곤 하였다. 물통에 달린 줄을 아래로 끌어당기면 맑은 물이 기분 좋게 콸콸 쏟아져 내리는 수세식 변기는 나를 똥의 공포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수세식 변기가 있는 집에서 서양식 양변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한 후에는 마치 신분 상승을 이룬 것처럼 뿌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옹색하게 쭈그려 앉아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고 의젓하게 가슴을 펴고 변기에 턱 걸터앉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똥 냄새로부터 멀어지면서 우리는 고향을 잃었다.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는 똥을 아무 생각 없이 물에다 풀어 버리면서 맑은 강을 잃었다. 똥을 오래 삭혀 거름으로 쓰던 지혜를 잊어버리면서 맑은 강을 잃었다. 똥을 오래 삭혀 거름으로 쓰던 지혜를 잊어버리면서 화학 비료가 땅을 망치도록 방기하였다. 나날이 늘어가는 자연의 온갖 재앙들이 똥을 무시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령, 광우병과 같은 신종 가축 전염병의 원인이 소의 사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은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싱싱한 풀을 먹고 자란 소보다 사료를 먹고 자란 소의 똥이 더 역한 냄새를 풍긴다고 한다. 말하자면, 똥의 반란이다. 똥을 잘 달래야 한다. 똥이 똥으로 대접받을 때 이 세상 전체가 편해진다.
⚈안도현은 1981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1998년에 소월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안도현의 아침 엽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연어』, 『외롭고 높고 쓸쓸한』, 『자장면』 등이 있다. 이 글은 『사람』(안도현 지음/이레)에서 옮겨온 글이다.
오늘 아침 뒤꼍에서 개망초를 꺾어다가 오지 항아리에 꽂았더니 볼만하다. 아니, 볼만하다가 아니라 볼수록 아주 곱다. 개망초는 산자락이나 밭두둑 어디서나 마주치는 흔한 꽃이다. 너무 흔하기 때문에 꽃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스치고 지나면서 눈여겨보지 못했는데 가까이서 두고 보니 아주 사랑스런 꽃이다. 꽃이 흰빛인 줄만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면 눈에 띌 듯 말 듯 연한 보랏빛을 머금고 있다. 그리고 그 어떤 화병보다도 오지 항아리하고 잘 어울린다. 이런 걸 찰떡궁합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디서나 지천으로 피어 있기 때문에 개망초의 아름다움을 미처 몰랐는데 잘 어울리는 그릇을 만나자 꽃은 가려진 자신의 속뜰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다. 이 일이 오늘 하루 명상의 실마리가 되었다.
장마철에 가끔씩 날이 들면 장화를 신고 대지팡이를 끌며 숲길을 어슬렁거렸다. 7월의 들꽃 중에서는 나리가 가장 눈에 띈다. 그 중에도 꽃잎이 가늘고 여린 ‘하늘말나리’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들꽃은 그 꽃이 저절로 자라는 그 장소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꽃만 달랑 서 있다면 무슨 아름다움이겠는가. 덤불 속에 섞여서 피어 있을 때 그 꽃이 지닌 아름다움과 품격이 막힘없이 드러난다.
이런 자연의 조화(調和)를 잘 알면서도 엊그제 나는 ‘하늘말나리’를 몇 그루 내 오두막으로 데려왔다. 가까이에 두고 싶어서였다. 부엌 들창문을 열면 요즘 원추리가 무리지어 꽃대를 들어 올리고 있다. 그 곁에 하늘말나리를 심었다. 잘 어울린다. 부엌일을 하면서도 눈길은 연방 하늘말나리 쪽으로 간다. 이따금 고추잠자리가 그 여린 꽃에 잠깐 머물기도 한다. 하늘말나리가 지고 나면 뒤를 이어 원추리가 피어날 것이다.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자생식물원’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희귀한 들꽃도 구경하고, 꽃나무 모종도 구할 수 있다. 7, 8월이면 다리 건너에 산수국의 군락지가 있어, 다른 데서는 보기 드문 산수국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오두막 묵정밭에 전나무, 자작나무, 가문비나무, 복숭아나무, 모란과 함께 마가목을 여남은 그루 심었었다. 가을이면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열매도 일품이지만 산에서는 겨울철에 마가목을 달여 차로 마신다. 그런데 풀 베는 일꾼이 화목에는 무지해서 죄다 베어 버리고 단 한 그루만 겨우 남겨 두었다. 미리 일러두었는데도 그랬다.
파리 길상사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어서 가는 길가의 가로수가 마가목인데 가을이면 눈이 시리도록 그 열매를 볼 수 있다.
뜰가에 회나무가 한 그루 무성하게 가지를 펼치고 있다. 10여 년 전 양재동 나무시장에서 어린 묘목을 사다 심었었다. 모진 추위를 어렵게 어렵게 견뎌내더니 올해 처음으로 가지 끝에 꽃망울이 부풀어 올랐다. 회나무가 어린 시절, 나는 차를 마시고 나서 우려낸 잎을 회나무에 주면서 나하고 잘 지내자며 그를 쓰다듬으면서 달래 주었었다.
이제 그 보답으로 꽃을 피우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식물은 들인 공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숙연해졌다. 사람인 우리는 살아 있는 나무와 꽃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지난 6월 1일 일요일이었다. 친구의 화실을 찾았다가 그와 함께 드라이브나 하려고 차를 세워둔 골목길로 들어섰다. 조금 전 화실로 들어설 때만 해도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져 사람들이 종종걸음쳤었는데, 어느새 비 그치고 길바닥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차 문을 열려할 때 문득 나는 보았다. 바알간 석류 꽃잎 하나가 물기가 닦이지 않은 창유리에 들러붙어 있었다. 머리를 쳐들어보니 차를 세워둔 2층집 담벼락 위로 석류꽃이 한창이었고, 자욱한 잎새에서 아직 간간이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기 전 나는 이번엔 창유리 안쪽에서 비에 젖어 들러붙은 석류 꽃잎을 잠깐 보았다. 그리고 출발하면서 와이퍼를 작동시키자 바알간 꽃잎은 몇 번 창유리 이쪽저쪽으로 밀려다니다가 어느새 길바닥으로 떨어져나가고 말았다.
그날 그때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나는 비에 젖은 그 작은 석류 꽃잎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다소 과장이다. 오히려 나는 늘 그 작은 석류 꽃잎을 생각하려 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차를 몰고 오갈 때나 일과 사이 짬이 생길 때나 화장실에서나 잠자리에서나, 내 머릿속 어느 한 곳에 빈 틈이 생길 때면 거의 언제나 나는 그날 내 차의 창유리에 혼곤히 잠들어 있다가 한순간 와이퍼의 거센 몸짓에 휩쓸려나간 바알간 석류 꽃잎을 생각해 왔다. 때로는 그 꽃잎이 차창 유리 안쪽에서 보았던 그 꽃잎을 향해 마른 입술을 내밀어보기도 한다. 혹은 차창 밖으로 휩쓸려가면서 내지르는 꽃잎의 마지막 비명을 듣기 위해 귀기울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나는 그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날 창유리 안쪽에서 꽃잎을 잠시 바라보았을 때처럼 지금 나는 마음속 그 꽃잎에게 다가갈 수 없고 말 걸 수 없다. 이를테면 마음속 그 꽃잎과 그 꽃잎을 바라보는 나 사이에는 투명한 유리판 같은 것이 있어서 어떤 청각 언어도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닥터 지바고>에서 주인공이 자기들을 해칠 것으로 생각해 달아나는 아내와 가족들을 힘겹게 부르면서 얼음판에서 버둥거리는 것과 같은 악몽적인 상황과 닮은 데가 있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소리질러도 들릴 리 없는 완전 밀폐된 유리병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은 어떤 극한에서 서성이는 대상들을 바라볼 때마다 드는 것이었다. 겨울 운동장 파인 웅덩이에 등을 대고 누운 빗물이나 도살장으로 실려가는 트럭 위 늙은 소의 큰 눈……
그러나 사실은 어떤 극한에서 서성이는 대상들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위의 낯익은 사람이나 사물 가운데 어느 하나도 우리를 밀폐된 진공의 유리병 속으로 불러들이지 않는 것은 없다. 남의 말투를 빌리자면 심연 아닌 존재는 없다. 우리 자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날 저녁 소낙비로 닦인 차 유리창 위에 웅크리고 있던 석류 꽃잎은 겨울 차가운 빗물이나 도살장으로 가는 늙은 소의 큰 눈망울과 마찬가지로 심연이며, 꼭 같은 정도의 공포와 질식의 느낌을 나에게 던지는 것이다. 그저 던지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이미 공포와 질식 속에 던져져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 공포와 질식의 느낌은,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까지 청각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시각 언어, 어쩌면 영원히 청각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비정한' 시각 언어로부터 오는 것이리라.
그날 투명한 유리창에 엎드려 있던 석류 꽃잎의 영상은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수정란처럼, 혹은 겹겹이 에워싸인 장미의 속처럼 내가 모르는 수많은 의미와 정보를 담고 있다. 돌려 말하자면 자석이 지나갈 때 책받침 위의 쇳가루들이 움직이듯이, 내 삶에 내장된 수많은 의미와 정보들은 그 꽃잎의 영상 아래서 막 깨어나려고 들썩인다. 그 영상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갓난아이 때부터 혹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내 삶의 전부가 움칠거리며 반응하는 것이다. 본시 그 반응은 몇 번의 손길에 발갛게 부풀어오르는 유두(乳頭)나, 알칼리용액에 담그면 이내 청색으로 변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민감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동 한번 걸려면 오만 진땀을 빼야하는 낡은 경운기 같은 나에게 그 반응은 늘상 일어나지는 않으며, 그 효과 또한 그리 선명치 않다.
그러기에 나는 전보다 더 열심히 엄지손톱만한 그 석류 꽃잎에 대해 생각하려 애쓴다. 지금은 마음의 유리벽에 빗물을 머금고 달라붙은 석류 꽃잎은 테두리 없는 추억의 항아리에서 저를 닮은 몇 개의 영상들을 끌어올려 저와 아주 가까운 곳에, 언제라도 내가 꺼내볼 수 있는 다른 항아리 속에 두고 있다. 그 영상들 하나하나를 다시 꺼내보면, 터져버린 빨간 고무풍선의 말려 비틀린 조각, 세면대 거울 앞 물에 젖은 분홍 화장지, 딸아이의 초경(初經, 어머니가 몹시 편찮으시던 날 아침 내가 엿들은 아내와 초등학생 딸아이의 대화), 대학 시절 봉천동 아니면 모래나 근처 여인숙에서 내 옆에 흐드러지게 자고 있던 술집 아가씨의 입술, 아주 가느다란 끈으로 이어진, 뭉치면 한줌도 안 되는 붉은 팬티, 50사단 근처 도살장으로 실려가던 허연 돼지의 분홍빛 음부……
그 영상들은 한결같이 그날 내가 본 석류 꽃잎의 색깔 또는 모양과 닮은 점이 있다. 그것들이 대체로 성적인 의미를 아루르는 것은 꽃잎의 선정적인 붉음에서 연유하는 것이며, 훼손되고 버림받은 모습을 띠는 것은 와이퍼의 거센 작동에 씻겨 짓밟힐 꽃잎의 헐벗은 처지와 관계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직 나는 빗물을 머금고 혼곤히 잠들어 기어코 일어날 줄 모르는 그 꽃잎의 한스런 모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끌어올린 기억 속 다른 영상들은 시멘트 바닥 일그러진 양은대야에 머리를 적시고 있는 여인, 돌 속에 긴 머리를 잠그고 엎드려 있는 로댕의 <다나이드>, 내 서가 위 액자 속에서 땀 흘리며 간구하는 흑인 여인, 연등처럼 곱게 떠 있던 여수 앞바다 스티로폼 부이의 행렬, 혹은 금박이 벗겨진 시계의 헐거운 줄, 기도하는 마리아의 긴 옷자락……
지난 6월 1일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 작은 석류 꽃잎 주위로 그런 잡다한 영상들을 마치 화투패처럼 펼쳤다 거두었다 하면서 그것들 대다수를 하나로 꿰는 단단한 끈 같은 것은 없을까 고심해왔지만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다. 이를테면 그것들은 고인을 안다는 것 외에 다른 공통점이 없는 문상객들과 흡사했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도 서먹하고 낯설 뿐이다. 하지만 비교적 화해로운 관계 속에 그것들이 편안히 자리잡을 때까지, 그날 비에 젖은 석류 꽃잎이 던지는 시각 언어는 이해 가능한 청각 언어로 번역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빈객들을 제대로 접대할 줄 모르는 얼띤 상주(喪主)나 다름없다. 나의 주변머리는 그날 이후 대학 노트의 지리멸렬한 메모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와이퍼가 움직이기 전 곤히 잠든 석류 꽃잎, 언젠가 그런 연애를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빗물에 눈이 부어 얼굴 못 들던 소녀가 서울의대 뒤 벤치에 웅크리고 좀체로 일어나질 않던 밤이 있었던 것 같다 와이퍼가 움직이고 공중으로 튕겨나가는 꽃잎 십오 년 전, 이십 년 전 그런 연애를 해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빨간 고무풍선 터진 자락 같다 화장실 좌변기에 말라붙은 핏자국 같다 한때는 팽팽했던 빨간 풍선, 스무 살의 세상은 부푼 꿈이었고 지금은 사타구니 가릴 꿈도 없다 지금은 빨간 고무풍선 터진 자락 위로 세상의 배가 부풀어오른다 띵띵하게, 腹水가 차오른다 혹시 임신한 것일까? 그러나 세상은 입덧을 하지 않는다
땅바닥에 떨어진 코피 자국 같다 와이퍼 바로 위 유리창에 들러붙은 석류 꽃잎, 차 안에서 내가 제 속을 들여다보는 줄도 모르고, 물에 젖어 아무 데나 던져놓은 붉은 속옷 같다 下血해도 표시 안 나는 붉은 팬티 같다 여인숙 냄새 나는 이불 걷어차며 돌아눕는 술집 아가씨 같다 빨면 더욱 붉어지는 얇은 입술 같다
잘못 만들어진 종이 비행기가 첫 동력이 떨어지자마자 이내 고꾸라지는 것처럼, 어떤 영상으로부터 출발했든 나의 글쓰기는 몇 행을 못 넘기고 좌초하고 만다. 이를테면 화투판에서 손에 쥔 패로 깔린 것을 따먹고 다시 제껴 깔린 것을 모아와야 할 텐데, 칠 게 없어 손에 쥔 패를 내고 제낀 것까지 맞아떨어지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도대체 서로 다른 시간 공간에서 솟아오른 그 잡다한 영상들을 하나로 꿰겠다는 의도 자체가 불순한 것이 아닐까. 조금 전의 상갓집 비유를 다시 들면 고인이 살아나 문상객들을 불러모은다 한들 그들의 서먹함과 불편함이 해소되겠는가. 그렇다면 차창 유리에 들러붙은 석류 꽃잎이라는 최초의 영상으로부터 나의 글쓰기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셈이다. 가스는 올라오는데 불이 켜지지 않는 라이터, 지금 내 처지는 그와 다름없다.
대체 글쓰기의 어느 과정, 어느 부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 지금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지금 같은 맹목적 상황에서 나의 처지가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테니스 폼과 마찬가지로 문제 없는 부분을 하자로 간주해 고쳐버린다면 정상적인 글쓰기로 돌아가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상책인 것처럼 진전 없는 글쓰기를 고수하면서 형편이 나아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대체 지금까지 내가 든 비유들이 나의 상황에 적합한 것일까. 하지만 모든 비유는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오해의 시작이다. 어떤 비유든 가미되고 치장된 억측일 뿐이며, 의도에 감염되지 않은 비유는 없다. 하지만 또한 비유 아닌 이해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는 마침내 '흑암' 아닌 '무명' 속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세상에 아무도 아무것도 방해하지 않는데 너의 글쓰기가 진전되지 않는다면 책임은 전적으로 너에게 있다. 너는 항변할 것이다. 글쓰기 외에 다른 관심이 없는 너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느나고. 하지만 글쓰기 외에 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이 잘못이라면? 글쓰기에 대한 과도한 의식이 글쓰기를 가로막는 근본 원인이라면? 기필코 한 건 올려야겠다는 철벽같은 각오와 집념이 어깨에 힘이 들게 하고 무리한 동작을 낳는다는 건 어느 스포츠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일 아닌가. 어쩌면 나의 글쓰기는 애인의 배 위에서 사내로서의 구실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속절없이 시들어버리는 성기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럴 때 깨어나야 한다고, 일어서야 한다고 다짐하고 애원하고 협박하는 것은 신체의 무감각을 더욱 조장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 언제는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처럼 글을 쓸 수 없을까, 그것들의 삶에 먹고 입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없듯이 글쓰기를 의식하지 않는 글, 글을 의식하지 않는 글쓰기, 오직 글쓰기의 현재진행형만이 있는 지점에 도달할 수는 없을까. 글도, 글쓰는 자도 없고 종이와 필기구의 거의 비물질적인 만남, 한없이 가벼운 성적 접촉만이 지속되는 상태에 들어갈 수는 없을까. 그 상태에서는 지금처럼 이질적인 영상들을 무리하게 접합시키는 대신, 차례로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혹은 차례로 일어나는 파도처럼 영상에 영상이 꼬리를 무는 참 부드러운 광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하나의 영상은 다음 영상을 낳는 자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글쓰기는 낙원의 글쓰기, 글쓰기의 잃어버린 낙원일 뿐이다. 물에 뜬 갓난아이는 스스로 떠오르려 하지 않기에 뜰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글쓰기의 낙원은 모든 다른 낙원과 마찬가지로 유토피아, 즉 어디에도 없는 나라이다. 모든 낙원은 낙원에 대한 의식과 더불어 태어나고, 낙원에 대한 의식으로 인해 도달 불가능하다. 글쓰기에 다한 의식 역시 글쓰기를 가능케 하면서 동시에 불가능하게 하는 모순으로 존재한다. 마치 이곳에서 저곳을 보게 하면서 동시에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아감을 가로막는 유리창처럼, 글쓰기에 대한 의식은 글쓰기의 주춧돌이면서 걸림돌이 된다. 글쓰기에 대한 의식은 완벽한 글쓰기를 꿈꾸게 하지만, 완벽한 글쓰기는 바로 글쓰기에 대한 의식 때문에 좌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없이 유리창을 얇게 깎아가는 것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듯이 (유리창이 없어지면 이곳 / 저곳은 함께 사라진다), 글쓰기에 대한 의식을 무한히 지워가는 일이 글쓰기로 다가가는 유일한 방도가 될 것이다. 적어도 논리상으로는 말이다.
확실한 것은 글쓰기에 대한 의식은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지양하는 지식만이 '즐거운 지식'일 수 있듯이, 글쓰기를 배반하는 글쓰기, 글쓰기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일탈할 수 있는 글쓰기만이 즐거운 글쓰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의 정도는 글쓰기의 낙원에 얼마나 접근했는가를 가리키는 구체적 지표가 될 것이다. 글쓰기의 즐거움, 다시 말해 의식으로부터 글쓰기의 즐거운 일탈은 가령 자기를 유혹하는 여자와 감나무 아래서 일을 벌이다가 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는 벌떡 일어나 감 주우러 갔다는, 그래서 머쓱해진 여자가 깊이 참회하게 되었다는, 어느 스님의 일화에 비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즐거운 일탈은 글쓰기에 대한 의식의 치열함의 증거이기도 하다. 두 마음 없이 스님이 감을 주우러 간 것은 여자와 벌이는 일에도 두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논의를 포함한, 글쓰기에 대한 나의 모든 의식은 애초의 석류 꽃잎의 영상으로 돌아온 이제 비록 폐지될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괄호 속에 묶여야 할 차례가 되었다. 지금까지 내 머릿속은 글쓰기를 감시하는 위대한 작가들의 납골당에 지나지 않았으며, 글쓰기를 위해 축적해온 영상들은 나의 글쓰기를 지겨운 노역으로 만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물론 그 영상들이 결정적으로 폐기처분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다시 불릴 순간을 위해 본래의 시간과 장소로 돌아갈 뿐이다. 그리하여 흠뻑 빗물을 머금고 창유리에 달라붙은 그날의 석류 꽃잎 앞에 나는 두 마음 없이 다가선다. 이제 나는 시골 잔칫날 돼지 멱을 따고 그 아래 사발을 받쳐 붉은 피를 받듯이 석류 꽃잎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받아적어야 할 것이다. 내 의식의 벌어진 상처에서 새어나오는 방언이기도 한 그 말을. 어쩌면 이렇게 운을 뗄 수도 있으리라.
늦게 왔구나 발톱에 빨간 석류 꽃잎을 물들이고 너는 석류 꽃잎 빨간 발톱만 보여주는구나.
ㅡ 이성복 산문집『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문학동네(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