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한 훈육 방식

박종국(교사, 수필가)


 자녀의 잘잘못에 대해서 어떻게 훈육하나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명쾌하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하거나,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이면 아이들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심리상태가 그늘이 지면 궂은 날씨처럼 몸의 상태가 찌뿌듯하고, 모든 게 무료해집니다. 하던 일을 제쳐두고, 어떤 일도 손에 닿지 않습니다. 의욕상실에 빠집니다. 언제나 우울하고, 기분이 좋지 못해서 그냥 마음이 나빠집니다. 마음속에 먹구름이 잔뜩 쌓입니다. 끝없이 추락하는 낭패감으로 자학하게 되고, 현실상황과 괴리된 채 자폐성향 마저 보이게 되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급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 하는 짓을 보면 자잘한 것에서부터 제법 덩치 큰 일까지 잘못을 가려주고, 꾸짖고 질책할 일들이 많아 잔소리가 늘어납니다. 결국 애써 다그치다가 벌을 주고 매를 듭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그때 그 순간뿐입니다. 아무리 마음에 두고 잘못을 일깨워보지만 사사로운 버릇은 고쳐지지 않고 오래갑니다.


 그러니 부모 마음 조급해집니다. 아이들의 행동이 어른들처럼 당장에 바로 선다면 어찌 어린이겠습니까. 눈에 벗어나는 행동을 바로잡겠다고, 좋은 버릇들이겠다고 애써 각인시키지 않아도 좋습니다. 잘 놀아야 잘 크듯 아이들은 아이들다운 행동을 해야 희망적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는 어른들의 잣대가 그리 필요치 않습니다. 논밭에 알곡들만 가려 잘 키울 것 같지요? 꽃밭에 아름다운 꽃만 골라 심으면 예쁜 꽃들이 어우러질 것 같지요? 그러나 그 틈새에 잡초들은 아무렇게나 대접을 받아도 잘 자랍니다. 애꿎게 잡초만 가려 뽑아내지만 어느새 잡초도 제 나름대로 자리를 차지합니다. 아이들은 들풀같이 잡초처럼 키워야합니다. 너무 손이 많이 간다고 결코 좋은 아이로 자라지 않습니다. 연꽃은 진흙 펄에도 함초롬히 피어나는 법입니다.


 부모로서 자녀들에 대해서 확신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늘 확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자녀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애매한 태도를 갖지 않아야합니다. 자녀의 잘못에 대해서 분명하게 꾸짖는 것도 아니고, 용서하는 것도 아니며, 늘 잔소리만 거듭하는 부모의 태도에 영향을 받은 아이는 불만족스럽습니다.


 늘 다그침을 받고, 구박받으며, 위협을 받은 아이는 부모를 무서워하며 불안해합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의기소침하며, 심리상태가 불안정해집니다. 그러한 일들은 아이에게 불건강한 요소를 갖게 할 뿐이며, 아무런 득도 없습니다. 그렇게 어정쩡한 훈육이라면 차라리 아니함만 못합니다.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서 닦달한다지만 부모의 미지근한 태도 이면에는 자녀에 대한 구박이 따르며, 대리만족하려는 욕심이 스며있습니다. 자녀의 잘못에 대한 명쾌한 결단을 보이지 못한 데서 오는 초조함이 결국 아이들한테는 참아내기 힘든 구박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부모가 분별해서 벌을 주는 명쾌한 태도만이 솔직한 아이로, 심신이 건강한 아이로, 행동이 느긋한 아이로 자라게 하며, 결코 그늘지지 않는 자녀를 만듭니다.      


 또한 부모가 스스로의 신념에 대해서 성실하지 못하고, 자녀를 어정쩡하게 교육하면서, 자녀만은 신념이 있는 사람이 되어 줄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모순입니다. 연목구어하듯이 항상 자녀가 좋은 짓만 하도록 기대한다는 것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 자녀 양육방식입니다.


 요즈음 체벌은 야만이라고 생각하는 풍조 탓에 그다지 아이들을 때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아이들의 마음을 고치는데 꼭 필요하다면 그 수단과 방법은 분별해야 합니다. 따끔한 일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저 내 아이가 귀엽다고 아이의 잘잘못에 대해서 손도 대지 않고, 다만 자녀들을 지켜볼 따름인 방관자적 태도는 체벌을 혐오하는 민주주의 따위와는 무관하게 부모로서의 직분을 상실한 어정쩡한 마음일 뿐입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귀엽다고 가시에 찔러 피가 나면서까지 품어 안습니다. 부모라면 그런 사랑을 베푸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부모가 사사로운 정을 버리고서 아이를 철저하게 다그치는 것이라면 자녀도 부모의 훈육에 애정을 느낄 것입니다.


 체벌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음의 교정에 있는 것이므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체벌이 아니라면 체벌은 필요합니다. 아이들, 시루의 콩나물처럼 나약하게 키우는 것보다 오뉴월 뙤약볕에도 당당하게 이파리를 곧추세우는 콩 나무로 키워야합니다. 2010. 09. 09.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