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별
김경애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여성복지관 승강기 안에 광고문이 붙어있었다.
바자회를 위해 입지 않는 옷을 수집한다며 양이 많으면 가지러 오겠다고 하여 전화번호를 적었다.
남편은 뇌경색과 천식으로 생의 마지막을 산소기에 의지한지 오래다. 남편을 보고 있으면 사람 목숨이 실낱처럼 점점 가늘어져간다는 느낌이 요즈음 들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병상을 박차고 일어날 가망이 보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그의 옷을 보내기로 마음을 정했다. 멀쩡한 옷이라 아는 사람이 가져다 입어줬으면 좋으련만 입던 것을 선뜻 주기란 쉽지 않고 더구나 생사의 귀로에 있는 남편옷을 받는 사람의 기분이 언짢을까봐서였다.
그나마 옷 주인이 생존해 있을 때 주라는 이웃들의 권유에 수긍이 가서 복지관에 전화를 걸었다. 과연 잘하는 일인가 몇 번을 망설였지만 언젠가 한 번은 치러야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안방 장롱 안에 옷이 있어 누워있는 남편의 신경이 예민해질 것을 헤아리니 가슴이 조여 왔다.
옷을 가지러 오는 하루 전날 밤,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도둑처럼 옷을 옮겼다. 자그마치 정장正裝이 스물하고도 세 벌이었다. 감상적인 생각일랑 하지 않기로 모진 마음을 먹었지만 한 벌 두 벌 거실에 내놓으니 함께 했던 따뜻한 추억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려왔다.
게다가 다니러 온 둘째가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도 저래서 안 된다며 내 마음을 뒤집어 놓은 터라 더 심란하였다. 결국 안주머니에 이름이 새겨진 옷은 빼고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다음날 아침, 남편의 신발도 휠체어 탈 때 신을 슬리퍼 하나만 남기고 박스에 넣었다. 굶지도 않았건만 내 마음은 허기로 가득 찼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옷을 싣고 떠나는 승용차를 차마 볼 수 없어 현관문을 빨 닫았다. 보물을 도둑맞은 것처럼 다리도 휘청거렸다. 체취가 묻은 남편의 옷은 나에게 남편의 분신이라는 사실이 그 때 깨달아져 밤새도록 뒤척였다. 비어 있는 장롱은 내 마음을 더 휑하게 하였다.
바자회 날 그 옷을 다시 만날 거라고 자신을 달래가며 잠을 청했다.
마치 누구와 만날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잰 걸음으로 복지관엘 갔다.
낯익은 옷이 저만치 먼 발치에서도 눈에 들어왔으나 막상 용기가 나지 않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민망도 했다.
남편이 입고 있었을 땐 위풍당당해 보이던 옷이었건만 어깨가 축 늘어진 채 낡은 철사옷걸이에 달려있는 것을 보니 남편의 모습같아 더 애잔하였다.
먼지바람을 맞아가며 복지관 마당에 걸려있는 몰골이라니. 제대로 된 옷걸이로 떠나는 옷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갖출 것을! 후회가 밀려왔다.
후줄근한 옷처럼 남편의 자존심도 일그러진 것 같아서였다. 허겁지겁 혼 줄 나간 사람이 되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바자회 이틀 후 그곳에 갈 일이 생겼다. 복지관에 막 들어서려니 낯익은 옷이 다시 나의 눈과 마주쳤다. 팔리지 않은 옷을 어디로 가져가려는지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틀 전과 달리 가까이 다가가서 옷들을 어루만졌다.
쫓아내었던 아이를 다시 보듬는 마음이 이러하리라.
원망의 눈초리로 옷들이 나를 흘겨보는 것 같았다.
‘몹쓸 것, 왜 이다지 일찍 나를 내 쫓았지?’ 옷이 입을 가지고 말을 하는 것 같아 차마 발길을 떼 놓을 수 없었다. 활기차고 씩씩했던 남편 모습이 다정하게 다가왔다. 한 땐 남편도 나와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는데...... 밖에서 막막한 일을 당하고 집에 와 우리가 눈치 챌까봐 가슴앓이를 하지는 않았는지.
떠나는 자동차 꽁무니를 대책 없이 쫓아다니던 철부지 시골 아이들처럼 마음이 다급해져 옷을 다시 집에 가지고 갈까하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큰 이별은 나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이것은 차라리 내 의지의 영역이 아니니 애증으로 치부하고 원망으로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옷을 떠나보낸 작은 이별이 큰 이별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미욱하게도 요즘에 깨달았다. 옷을 떠나보내는 것은 의지로 선택한 이별이기에 가슴이 저미고 이 작은 이별은 아물지 않은 생채기로 나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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