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만큼 쓰자, 글쓰기 회로를 위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말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는 데 말이다. 그 이유와 차이가 뭘까.
말은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배운다. 부모나 형제들이 말하는 걸 듣다보면 말에 대한 뇌 회로가 생긴다. 삶 속에서 자연스레 익힌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갖는 언어 능력은 타고난 게 아니다. ‘늑대인간’을 통한 실험에서도 검증되지 않았던가.
우리 대부분은 말하듯이 글쓰기를 배우지 못했다. 말도 언어를 통해서 하고, 글쓰기도 언어를 통해서하는 데 말이다. 말은 글보다 한결 쉽고 간편하다. 글은 시공간의 제약을 어느 정도 받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글쓰기를 너무 어려워하고,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나 역시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았다. 다만 요 몇 해 ‘쓰고 싶은 글쓰기’를 많이 하면서 자신을 많이 치유했다고 할까. 이제는 누군가의 글을 보면 나 역시 그와 관련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왜냐?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을 통한 소통 못지않게 글을 통한 소통을 원하기 때문이다.
말이 갖는 장점이 많듯이 글이 갖는 장점도 많다. 우선 글은 한번 써두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말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진다. 그러니 사라지는 게 아깝거나 오래 보관하고 싶은 기억이나 생각이 있다면 즉시 글을 쓴다. 하다못해 메모라도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글 한 편 쓰는 게 어렵지 않다. 말하듯이 글이 나온다.
글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은 말과 달리 여러 사람과 시공간을 넘어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수백 수천 명이 모인 곳에서 하는 연설은 보통 사람에게는 기회가 거의 없다. 또한 연설이나 강의는 듣기만 할 뿐 공감을 나누기는 어렵다.
그러나 글은 간단하면서도 시공간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지 않는가. 인터넷 글쓰기만 해도 그렇다. 글 내용만 좋다면 언제든 얼마든지 여러 사람이 읽을 수 있다. 인터넷 글쓰기는 댓글이나 답글 기능까지 있기에 글쓰기 공부를 할 때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된다. 댓글 다는 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용기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나.
이렇게 글쓰기를 하다보면 말과 달리 아주 색다른 인연을 맺기도 한다. 보통은 낯선 사람에게는 선뜻 말을 건네기 어렵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비교적 쉽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쓴 글에 공감이 된다면 기꺼이 댓글을 달고, 더 필요하다면 서로 쪽지나 메일을 주고받으며 친해질 수 있다. 자신과 통하는 사람을 더 많이, 더 자주 만나고 싶다면 글을 쓰자.
글쓰기 장점은 이외에 자기 정리와 자기 치유에 도움이 된다. 자기정리라는 건 뇌 회로를 정리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말처럼 글도 자꾸 써보면 뇌에는 글쓰기 회로가 자연스레 생긴다. 말하듯이 글이 술술 나온다. 줄글은 물론, 느낌이 좋을 때는 시가 나오며, 감정이 출렁일 때는 노랫말이 되어 흥얼흥얼하게 된다.
또한 글쓰기는 자신을 보는 거울이 되어 자신을 한걸음씩 성장하게 만든다. 이를 테면 학교를 그만둘까 말까 하는 힘든 결정을 앞에 두고 있다고 치자. 고민 당시를 거짓 없이 진솔하게 기록을 해 둔다. 그리고 나서 한달쯤 뒤, 또는 일년 뒤에 다시 읽어보자. 그 사이 얼마나 자신이 달라졌는지. 처음에 가졌던 두려움이 어디서 나왔고,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또렷이 보게 된다. 만일 이런 정리와 성장과정에 대한 자기 확인이 없다면 그 사람은 계속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많이 허우적댈 것이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소중한 도구가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글쓰기가 쓸모가 많고 소중한데도 왜 우리는 글쓰기를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면 쓰고 싶은 글보다 써야하는 글을 많이 써왔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글쓰기 숙제’ 같은 경우다. 써야하는 글은 사람을 왜곡시킬 수 있다. 아이들이 자라다가 말을 저절로 배우듯이 글 역시 쓰고 싶을 때 바로 쓸 수 있어야한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자라면 병이 되듯이 쓰고 싶은 글을 못 쓰고 자라는 것 역시 병이 된다. 많은 걸 배운 다음, 어른이 된 다음에, 교단에 선 다음에 말을 하고,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또 하나의 잘못은 교육에 있다. 우리네 교육은 대부분 듣기 위주다. 말하기 위주로 하다보면 정해진 진도를 나가기가 어렵다. 한 사람이 일분씩만 말을 해도 30분이 후딱 간다. 듣기 교육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배우고 듣기만 많이 한 사람이라면 점점 글쓰기가 두려워질 수 있다. ‘완전한 글쓰기’를 생각하기에 글 한편 쓰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설사 어렵사리 썼다고 하더라도 이런 글은 잘 읽히지도 않는다. 어렵게 쓴 인문학자들 글이 잘 읽히지 않으며,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아놓은 시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말을 하듯 글을 쓰고, 글을 쓰듯 말을 할 필요가 있다. 남 글 하나를 읽으면 글 한 편을 쓰자. 하다못해 느낌 한 줄이라도 남기자. 일을 하거나 뭔가를 체험하다가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다면 주저 없이 메모를 하자. 말이 삶을 풍성하게 하듯이 글쓰기 역시 그렇다. 생명을 잘 돌아가게 하는 하나의 고리다.
출처 : http://cafe.daum.net/ian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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