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막걸리 몇 통 들고
권석창
지난 2월 27일, 한국작가회의 영주지부 회원들과 함께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고 스스로 서거한 곳이다. 영주 막걸리 몇 통 들고 가서 작은 비석 앞에 한 잔 드리고 마을 회관에서 국밥 한 그릇 먹고 올라온 것이 전부다. 여느 마을이나 다름없는 먼 남쪽 농촌 마을에 굳이 다녀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무슨 연유에서였을까?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고 온 나라가 애도의 물결로 울먹였다. 그가 떠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우리는 그를 잊어가고 있다. 격렬하게 끓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 양은냄비 같은 세태, 지금이라도 다녀오지 않으면 나의 머리도 양은냄비가 될 것 같은 위기감에서였는지 모른다.
봉하에 가면서, 또 다녀와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죽음이라는 어휘였다. 모든 죽음에는 의미가 있다.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은 죽음에는 다 쓰지 못한 미래의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어른의 죽음에선 서사시와 같은 평화로움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서는 범인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큰 사랑의 가르침이 있다. 히틀러의 죽음에서는 광기의 역사를 마감한 역사의 교훈이 있다. 법정 스님의 죽음에서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준 귀한 가르침이 있다.
법정 스님이 서울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시다가 송광사 불일암으로 내려가신 까닭도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있었다. 2002년 국가인권위는 중앙정보부가 날조한 사건이라고 발표했지만, 대구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이 선고되자마자 그날로 8명을 사형 집행한, ‘사법살인’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법정은 생목숨을 죽인 일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불일암으로 가셨다 한다.
요즘 정치인들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태연히 말하는 걸 보고 섬뜩함을 느꼈다. 지구상의 192개국 가운데 사형이 집행되는 나라는 25개국이다. 사형 제도가 있는가, 없는가는 국가의 품격과 관련되는 일임에도 우리 역사의 수레바퀴는 뒤로만 굴러간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의미의 생성이다. 어떤 죽음에도 의미가 있다. 특히 스스로 택한 죽음에는 더 많은 의미가 생성된다. 그 의미는 그가 살아 있을 때의 행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어떤 죽음의 의미를 한 마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의 삶에 대해서 우리가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무현의 죽음도 그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왜 노무현인가? 우리가 뽑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도덕적으로 살아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우리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묻듯이 노무현이 부엉이바위로 간 까닭을 물어야 할 것이다.
자치분권연대 회보.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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