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福狗)의 추억

                                                                        김창식

 

 개들이 한창 수난을 당하는 시절이다. 주인을 데리고(?) 산책 나온 개를 보거나 아파트 단지 어디선가 꿈결인 듯 개짓는 소리가 들려오면 꼬리 잘린 볼품없는 개 한마리가 거짓말처럼 나타난다. 길을 가다 보신탕이라고 쓰인 붉은 깃발이 내걸려 있는 '가마솥 집'을 지날 때면 그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혹시 복구(福狗)가 있나 하고.

 

 --복구는 우리 개 이름이었다. 복구는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가기 전 강아지 때부터 길렀는데 그간 나이가 들어 어중간한 중개(中犬)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어린 티가 아직 가시진 않았다. 녀석의 생김새는 볼품없었다. 누런 몸통에 등 쪽 색깔이 거무스름한 잡견이었다. 게다가 꼬랑지는 반 토막이었는데 스스로 잘랐다. 무슨 수를 썼는지 고개를 돌려 제 꼬리를 물고 몇날 며칠 맴을 돌더니 끊어 버린 것이다. 어른들은 자해행위를 한 복구를 미련하다고 '벅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복구도 잘하는 일이 있었다. 고양이도 아닌 것이 쥐잡기에 명수였다. 갑자기 쉬식 소리가 나면서 설쳤다하면 어김없이 쥐 한 마리가 발밑에 놓여있었다. 또 다른 개도 그렇겠지만 유독 귀가 밝았다. 냄새를 기막히게 잘 맡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방과 후 란도셀을 맨  내가 신발주머니를 휘휘내두르며 집으로 향하는 골목 어귀에 들어설 양이면 벌써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어디선가 나타나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어린 주인의 앞가슴에 '오시핀(옷핀)'으로 꽂아 놓은 코 묻은 손수건을 깡충 뛰어올라 물고 늘어져 타박을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무엇보다 골치 아픈 것은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벼대며 학교에 가려는데 신발짝이 없는 것이었다. 복구가 아니면 누구 짓이겠는가. 영락없이 복구 녀석이 툇마루 턱이나 장독대에서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 고무신짝을 질겅질겅 물어뜯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가야겠는데 그 모양이니 정말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그것 뿐 아니었다.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달리아 같은 꽃을 심어 놓은 작은 꽃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가 예사여서 그런 애물단지가 없었다.

 

 녀석을 결정적으로 달리 보게 된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대문간에서 놀고 있는데 동생이 "성, 이리와 보랑께. 복구가 이상해."하고 소매를 잡아끌었다. 화단께로 가보니 복구가 원을 그리며 낑낑대고 있었다. 동그라미 안에는 다리 어림을 다친 참새 한 마리가 짹짹거렸다. 보통 때의 복구라면 참새를 앞발로 후려쳐 끝장을 냈을 텐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혹시 동물들 사이에도 의사 교환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였다. 사람들이 말을 통해 의사를 주고받듯 동물끼리도 서로 뜻을 전달하는 그들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는데 그 믿음이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어린 참새는 아마도 복구에게 구원을 호소한 것이고 녀석은 그것을 알아들은 것이 아니었을까?

 

 동생과 나는 참새를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마분지 상자에 옭긴 후 발목에 '아까징끼(머큐러크롬)'를 바르고 붕대를 감아 주었다. 어린 참새는 도통 먹이를 먹지 않더니 며칠 못가 죽고 말았다. 우리는 화단 구석 양지 바른 쪽에 참새의 주검을 파묻고 조그만 무덤을 만들어 주었는데 복구는 어떻게 알아채고 그 주위를 빙빙 돌거나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곤 하였다.

 

 녀석과의 마지막 날을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국민학교 4학년, 아니면 5학년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복구가 달려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어디에도 기척이 없었다. 이놈의 자슥이 또 쥐약 먹고 널브러졌나보다 생각하며(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 억지로 양잿물을 먹여 토하게 했다) 마루 밑, 헛간, 노적가리고 간에 고샅 고샅 부지깽이로 들쑤시고 다녔다. 그래도 소식이 없었다. 외양간에도 가 보았는데 누렁소가 천연덕스럽게 여물만 씹고 있어서 밉살스러웠다. 마침 장닭이 옆으로 지나가길래 발로 걷어 차 주었더니 깃털만 흘리고 도망갔다. 어디 다녀오면 복구가 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동무들과 어울려 억지로 놀다 왔는데도 복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 어른들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복구가 낯선 사내 개장수에게 '후달려' 갔다는 것이다. 난 시장 통에 있던 몇 군데 개장국 집을 샅샅이 뒤졌다. 개를 그슬어 잡는 곳으로 알려진 변두리 공터 구덩이에도 가 보았다. 그곳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쓰레기만 쌓여있었다. 복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목에 올가미를 찬 채 구슬픈 울음을 울고 있는 복구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동안 복구에게 잘 대해주지 못한 것이 여간 후회가 되지 않았다. 그 때부터 보신탕집을 지날 때마다 그 안을 기웃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개장국집 앞에 머무는 버릇은 어른이 된 지금도 남아 우연히 보신탕 집 앞을 지나게 될 때면 그 안을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세월이 한참 흘렀지만 그래도 혹시 거기 복구가 있나 하고. '개'는 전통음식이고  '개먹는 행위'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갖고 있지 않지만 난 당연히 개를 안 먹는다. 어찌 개-복구-를 먹을 수 있으랴.  바라건대 이 세상의 모든 복구(福狗)들이 올 여름을 아무 탈 없이 지내기를…….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게재

  2010. 7. 23  김창식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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