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貧者)와 성녀(聖女)
김창식
1984년은 서울-프랑크푸르트 노선이 개설된 해였다. 그때 항공사 프랑크푸르트 공항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새벽녘 작센하우젠에 있던 집을 나서는데 안개가 찬피동물의 혀처럼 으스스한 기운을 품고 감겨들었다.
안개가 심하면 항공기 운항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고 때로 이·착륙도 금지되어 극심한 혼란이 생긴다. 항공사에 입사한 후 줄곧 공항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안개가 끼어있지 않나 날씨를 점검하는 것이 일상의 버릇처럼 되었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그래도 탑승수속은 진행하여야 한다. 운항가능 여부는 마지막 순간에 결정되는 때문이다. 탑승 라운지 너머 주기장(駐機場)에는 비행기 동체들이 희뿌연 안개 속에 뒤엉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변화에 적응치 못하고 슬픈 운명에 몸을 내맡기고 있는 주라기 공룡 떼처럼.
수속을 대행해주는 루프트한자 직원과 업무협의를 하고 있는데 아까부터 미세한 기척과 시선에 신경이 쓰였다. 그녀임을 직감하였다. 며칠 전 그녀로부터 오늘 출국한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오랜만 이예요!"
그녀가 인사했다. 가끔 환청처럼 마음속에서 들었던 종(鐘)소리. 그러나 나는 머뭇머뭇 말을 잇지 못했다.
"글쎄, 그것이… 십년이 지났군요. 그 보다 더 되었나?"
그녀는 세월의 흐름을 감안한다고 해도 전에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여위었고 지친 모습에다 눈가의 주름이 도드라져 안쓰러웠다. 도대체 찬란하게 빛나던 그녀의 젊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순례 길에 마주친 '빈자(貧者)'의 모습이랄까. 그녀가 뒤를 돌아보더니 손짓을 했다. 그녀에게 일행이 있었다.
그녀는 대학교 때 매주 토요일 열리는 회화 클럽의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남학생들 사이에 '하일리게 프라우(성처녀·聖處女)'로 통했으며 선망의 대상이었다. 키가 큰 편인데도 귀엽고 정갈하며 온유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녀 주위에 은은한 빛 무리가 함께 있는 듯하여 어려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타입이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모임 후 같이 차를 타고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긴 했었다. 전공하는 언어와 청춘의 꿈과 방황, 그런 이야기들. 가끔 집 부근까지 바래다주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잰 걸음으로 걷는 그녀 보폭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남이 보면 오히려 의정(誼情)스런 누나가 동생을 데리고 가는 것이리라 짐작했을 것이며 동생이 누나를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음도 느꼈음직하다. 실제 그녀의 키가 한 뼘은 더 크기도 했었고.
그녀를 향한 일방적 감정으로 인한 갈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찌하랴. 드러나선 안 되는 침묵의 사랑이었으니. 언제 부터인가 그녀에게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토요 회합에 잘 나오지 않았고, 어쩌다 나와도 나와 함께 가지 않았다. 그녀에게 매번 일이 있었던 것이다.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씁쓸한 소문도 돌았다. 그녀를 안 지 삼년쯤 지난 시점이었고, 그 해말 나는 입대하였다.
입대 후 군사훈련을 받으며, 또 그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이 산란하거나 힘겨울 때면 그녀가 떠올랐고,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아지 못할 기운이 솟아나곤 했다. 아마 그녀는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힘의 원천이 되어 있음을.
첫 휴가를 나와 그녀를 찾아갔다. 외국문화원에 취직하여 타이프를 두드리고 있는 그녀의 생경한 모습이 유리창을 통해 보였는데, 서로 안부 몇 마디를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제 학생이 아니었고 너무 바빴다. 통 유리창은 그녀와 나를 가르는 견고한 벽이었다. 여자란 한 순간에 까마득히 멀어질 수 있음을 실감하였다. 다음 휴가 때 그녀가 결혼하고 유학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다. 난 제대 후 학교를 졸업, 항공사에 취직하였다. 또다시 십여년이 흘렀고 그녀와 다시 해후한 것이다.
루프트한자 직원이 항공기가 출발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가슴을 쓰러 내렸다. 다행이었다. 잠시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사이에도 침묵이 흘렀었고.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 학위… 했어요. 축하… 안 해 주세요?"
그렇다. 사람의 모습은 변해도 목소리는 남는다. 가끔 환청처럼 마음속에서 들었던 종(鐘)소리. 그때 뒤쪽 좀 떨어진 곳에 있던 남자와 열 살 어름으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다가왔다. 그녀의 남편과 아이였다.
그제야 그녀의 변한 모습이, 아까부터 놓아주지 않던 석연치 않던 느낌의 정체가 이해되었다. 인문학 학위를 취득하려면 보통 10년 넘게 걸린다.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아이 보살피느라 자기 공부하느라 혼자서 일인 삼역을 한 것이다. 세 식구의 하중, 학문의 무게에다 외로움까지 곁들여 홀로 십년 이상을 견디어 낸 것이다. 내가 동료 직원들과 어울리며 떠들썩한 회식을 하는 동안 그녀는 멘자(구내식당)에서 호밀 빵과 부어스트(소시지)로 허기와 외로움을 달랬으리라….
"아흐퉁, 비테. 마이네 다멘 운트 헤렌(잠깐 안내말씀 드립니다)!"
탑승을 재촉하는 아나운스멘트가 흘러 나왔다. 그녀와는 길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나는 보통석(Y·이코노미)이던 그녀 가족의 좌석을 특별석(C·프레스티지)으로 바꿔 주었다. 안개는 걷히지 않았으나 비행기는 몇 번의 선회 끝에 서울로 출발하였다.
잔무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생각하였다. 그리움과 함께 한 가닥 아픔이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십년을 견디어내며 일단 꿈을 이루었다. 졸업 후 학문의 끈을 놓아버린 회한이 앙금처럼 남긴 하였지만 딱히 내 처지를 비관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에겐 각자의 삶과 길이 있는 것이니까. 아니, 그것은 자기합리화요 변명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학문을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갈림길에서 편리함과 안일함을 택한 것이었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용기의 문제였다. 창밖을 보니 다시 안개가 끼려는지 물탱크가 어둠속에 잠기고 풍향 깃발이 펄럭임을 멈추었다. 마음속에 드리운 안개도 점점 짙어져 갔다.
다시 일상의 소소함-공항의 소음과 번잡함-에 파묻혔다. 기억은 저장하거나 묵혀둘 수 있지만 현실은 당장 처리하고 꾸려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녀에 대한 연모의 감정은 나 혼자의 것이었고 식은 재와도 같은 것이었다. 지난 세월 내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생겼다. 그녀에 대한 생각도 뜸해져갔다. 그렇더라도 그녀를-이제 그녀의 모습은 다른 의미와 구도로 자리 잡긴 하였지만-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그녀를 생각하면 청신한 기운이 피어올라 마음속을 환하게 비춰주는 것은 여전하였다.
그날도 옅은 안개가 끼었다. 출근하여 우편물을 정리하는 데 그녀의 편지가 있었다. 모교에서 자리를 얻게 되었으며, 아직 떡볶이와 김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싶은데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혼란스럽다는 내용. 의례적인 안부. 말미에 감사하다는 말. 아마 출국 시 좌석 업그레이드 조치에 감사하는 것이리라. 업그레이드 권한은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지점장 재량으로 행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겐 그 때가 바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겠는가.
나는 편지를 손에 쥔 채 망연한 생각에 빠져 들었다. 애초부터 그녀의 글에 특별한 마음이 실리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헛헛하고 야속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담담한 정조의 그녀의 편지는 그녀와의 관계를 새삼 뒤돌아보고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항상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의 문제였지 그녀의 나에 대한 감정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지 않은가. 혼자만의 사랑은 힘들고 애타는 것이지만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소망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은 무슨 새로울 것도 없는 생각인데 받아들이는데 왜 그다지도 오래 걸린 것이었을까…?
또 한 가지. 그녀 또한 내게 끊임없이 전해 준 것이 있었다. 그녀 자신이 그것을 몰랐을 뿐. 베푸는 이는 모르는 것이다. 원래 '빈자(貧者)'와 '성녀(聖女)'는 서로 통하는 것이 아니던가! '마더 테레사'에서 그 예를 보듯. 그녀는 여전히 운무 속을 선회하는 비행기에게 길을 밝혀 주는 탐조등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한 줄기 따뜻한 기운이 솟구쳐 박하 향처럼 퍼져 나갔다. 창밖을 보니 거대한 물탱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희고 푸른 색깔의 풍향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안개가 걷히는 것이다.
―『계간문예』2009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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