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박완서

 

신나는 일 좀 있었으면 가끔 별난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싶은 충동 같은 것 말이다. 마음 속 깊숙이 잠재한 환호에의 갈망 같은 게 이런 충동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샌 좀처럼 이런 갈망을 풀 기회가 없다. 환호가 아니라도 좋으니 속이 후련하게 박장대소라도 할 기회나마 거의 없다. 으례적인 미소 아니면 조소.냉소.고소가 고작이다. 이러다가 얼굴 모양까지 얄궂게 일그러질 것 같아 겁이 난다. 환호하고픈 갈망을 가장 속시원히 풀 수 있는 기회는 뭐니뭐니 해도 잘 싸우는 운동경기를 볼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국제경기에서 우리 편이 이기는 걸 TV를 통해서나마 볼 때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런 일로 신이 나서 마음껏 환성을 지를 수 있었던 기억도 아득하다. 아마 박신자 선수가 한창 스타 플레이어였을적, 여자 농구를 볼 때면 그렇게 신이 났고, 그렇게 즐거웠고, 다 보고 나선 그렇게 속이 후련했던 것 같다. 요즈음은 내가 그 방면에 무관심 해져서 모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처럼 우리를 흥분시키고 자랑스럽게 해 주는 국제경기도 없는 것 같다. 지는 것까지는 또 좋은데 지고 나서 구정물 같은 후문에 귀를 적셔야 하는 고역까지 겪다 보면 운동경기에 대한 순수한 애정마저 식게 된다. 이렇게 점점 파인 플레이가 귀해지는 건 비단 운동경기 분야일까. 사람이 살면서 부딪치는 타인과의 각종 경쟁, 심지어는 의견의 차이에서 오는 사소한 언쟁에까지 그 다툼의 당당함.깨끗함.아름다움이 점점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아무리 눈에 불을 밝히고 찾아도 내부에 가둔 환호와 갈채에의 충동을 발산할 고장을 못 는지도 모르겠다. 

요전에 시내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의 일이다. 집을 다 와서 버스가 정류장 못 미쳐 서서 도무지 움직이지를 않았다. 고장인가 했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앞에도 여러대의 버스가 밀려 있었고 버스뿐 아니라 모든 차량이 땅에 붙어 버린 듯이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괜히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 있었다. 그래서 버스가 정거장도 아닌데 서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요?]

나는 부끄럽게도 안내양에게 짜증을 부렸다. 마치 이 보잘것없는 소녀의 심술에 의해서 이 거리의 온갖 차량이 땅에 붙어 버리리라도 했다는 듯이, 그러나 안내양은 탓하지 않고 시들하게 말했다.

[아마 마라톤이 끝날 때까진 못 가려나 봐요.]

[뭐 마라톤?]

그러니까 저 앞 고대에서 신설동으로 나오는 삼거리쯤에서 교통이 차단된 모양이고 그 삼거리를 마라톤의 선두 주자가 달려오리라. 마라톤의 선두 주자! 생각만 해도 우울하게 죽어 있던 내 온몸의 세포가 진저리를 치면서 생생하게 살아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선두 주자를 꼭 보고 싶었다. 아니 꼭 봐야만 했다.

나는 차비를 내고 나서 내려달라고 했다. 안내양이 정류장이 아니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급한 김에 어느 틈에 안내양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정류장이 아니기 때문에 못 내려 주겠다구? 그럼 정류장도 아닌데 왜 섰니 ? 응 왜 섰어?]

[이 아주머니가, 정말-.]

안내양은 나를 험상궂게 째려보더니 획 돌아서서 바깥을 내다보며 상대도 안했다.

그래도 나는 선두로 달려오는 마라토너를 보고 싶다는 갈망을 단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짐짓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안내양의 어깨를 쳤다.

[아가씨, 내가 화장실이 급해서 그러니 잠깐만 문을 열어 줘요, 응.]

[아주머니도 진작 그러시지, 신경질 먼저 부리면 어떡해요.]

안내양은 마음씨 좋은 여자였다. 문을 빠끔히 열고 먼저 자기 고개를 내밀어 이쪽 저쪽을 휘휘 살피더니 재빨리 내등을 길바닥으로 떠다밀어 주었다.

나는 치마를 펄럭이며 삼거리 쪽으로 달렸다. 삼거리엔 인파가 겹겹이 진을 치고 있으리라. 그 인파는 저만치서 그 모습을 들어낸 선두 주자를 향해 목죽 같은 환호를 터드리리라.

아아, 니나라. 오늘 나는 얼마나 재수가 좋은 가. 오랫동안 가두었던 환호를 터뜨릴 수 있으니. 군중의 환호, 자기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전혀 상관 없는 환호, 그 자체의 파열인 군중의 환호에 귀청을 떨 수 있으니.

잘하면 나는 겹겹의 군중을 뚫고 그 맨 앞으로 나설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제일 큰 환성을 지르고 제일 큰 박수를 쳐야지. 나는 삼거리 쪽으로 달음질치며 나의 내부에서 거대한 환호가 삼거리까지 갈 동안을 미처 못 참고 웅성웅성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숨을 헐떡이며 당도한 삼거리에 군중은 없었다.

할 일이 없어 여기 이렇게 빈둥거리고 있을 뿐이라는 듯 곧 하품이라도 할 것 같은 남자가 여남은 명 그리고 장난꾸러기 아녀석들이 대여섯 명 몰려 있을 뿐이었고 아무 데서고 마라토너가 나타나기 직전의 흥분은 엿뵈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호루루기를 입에 문 순경은 차량의 통행을 급하고 있었다. 세 갈래 길에서 밀리고 밀린 채 기다리다 지친 차량들이 짜증스러운 듯이 부릉부릉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바퀴를 조금씩 들먹이는 게 곧 삼거리의 중심을 향해 맹렬히 돌진할 것처럼 보이고 그럴 때마다 순경은 날카롭게 호루루기를 불어땠다. 그때 나는 내가 전혀 예기치 않던 방향에서 쏟아지는 환호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내 뒤쪽 조그만 라디오 방 스피커에서 나는 환호소리였다.

선두 주자가 드디어 결승점 전방 십미터, 오 미터, 사 미터, 삼 미터, 골인 ! 하는 아나운서의 숨막히는 소리가 들리고 군중의 우뢰와 같은 환호성이 들렸다.

비로소 일등을 한 마라토너는 이미 이 삼거리를 지난 지가 오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삼거리에서 골인 지점까지는 몇 킬로미터나 되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상당한 거리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통행이 금지된 걸 보면 후속 주자들이 남은 모양이다. 꼴찌에 가까운 주자들이.

그러자 나는 고만 맥이 빠졌다. 나는 영광의 승리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이지 비참한 꼴찌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또 차들이 부르릉대며 들먹이기 시작했다. 차들도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다시 날카로운 호루루기 소리가 들리고 저만치서 푸른 유니폼이 가까이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몇등쯤일까, 이십등? 삼십 등?--저 사람이 세운 기록도 누가 자세히 기록이나 해 줄까? 대강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십 등, 아니면 삼십 등의 선수가 조금쯤 우습고, 조금쯤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

푸른 마라토너는 점점 더 나와 가까워졌다. 드디어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꼴찌 주자의 위대성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 처럼 느꼈다. 여지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이십 등, 삼십 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나는 그를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좀 전에 그의 이십 등, 삼십 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도 자기의 이십 등, 삼십 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옛다 모르겠다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내가 그걸 보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어떡하든 그가 그의 이십 등, 삼십 등을 우습과 불쌍하다고 느끼지 말아야지 느끼기만 하면 그는 당장 주저앉게 돼있었다. 그는 지금 괴롭고 고독하지만 위대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보면 안 되었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봄으로써 내가 주저않고 말 듯한 어떤 미신적인 연대감마저 느끼며 실로 열렬하고도 우렁찬 환영을 했다.

내 고독한 환호에 딴 사람들도 합세를 해 주었다. 푸른 마라토너 뒤에도 또 그뒤에도 주자는 잇달았다. 꼴찌 주자까지를 그렇게 열렬하게 성원하고 나니 손바닥이 붉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그러나 뜻밖의 장소에서 환호하고픈 오랜 갈망을 마음껏 풀수 있었던 내 몸은 날 듯이 가벼웠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 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밖에 생각 안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것을 좀더 좋아 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이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 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에.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나는 아직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의 참뜻을 알고 있지 못하다.

왜 그들이 그들의 체력으로 할 수 있는 허구 많은 일들 중에서 그 일을 택했을까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날 내가 이십 등, 삼십 등에서 꼴찌 주자에게까지 보낸 열심스러운 박수갈채는 몇 년 전 박신자 선수한테 보낸 환호만큼이나 신나는 것이었고, 더 깊이 감동스러운 것이었고, 더 육친애적인 것이었고, 전혀 새로운 희열을 동반한 것이었다.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메모 :

이 책을 통해 루이스를 처음 만났다. 이 책만큼 간절히 다시 읽고 싶은 책도 없었다. 이번에는 연필로 열심히 줄을 그어가며 읽게 되었다.

 

옥스퍼드 대학 영문학부 수석 졸업생으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 평생을 지낸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청소년기에 완고한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러나 세기의 지성인 답게 고뇌하고 연구하여 밝혀낸 변증적인 논리로 그가 처한 오류에서 벗어나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게 되었고, 위대한 기독교 저술들을 남기게 되었다. 특히 이 '순전한 기독교'는 출판사상 최고의 기독교 변증서로 알려진다. 

 

그의 이 기독교 논증은 우주의 생성과 인간의 본질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과 각 개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임하는데까지 철저하게 변증법적으로 풀어 나가고 있다. 우리가 믿음안에 있어도 논리적으로만 풀어낼 수 없는 이 땅에서의 삶에 끊임없이 부대끼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늘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그 가운데서 치밀하고 명료한 논리적 근거위에 세워진 그의 기독교가 우리에게 얼마나 견고한 믿음에 서도록 도우는지 모른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탄하며 이 책을 읽었다. 두번째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이것을 완전히 소화하여 나의 말로만 이루어진 멋진 독후감을 한번 써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 읽고 났을 때 나의 믿음은 한 계단 더 올라섰다고 생각되는데, 내가 처음 가졌던 그 생각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또 그의 수려한 문장을 옮겨 놓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실마리를 그는 이렇게 풀어간다. ' 우주를 지휘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 무언가는 내 안에서 옳은 일을 하도록 재촉하고 그릇된 일에는 책임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하나의 법칙으로 나타난다.' 그는 이것을 도덕률이라고 이름 붙인다.

 

도덕률에는 어떤 짓을 해도 다 받아준다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 -비인격적인 절대 선-이라면 결코 좋아할 수 없으며, 따라서 전혀 개의치 않겠다"고 말한다 해서 피할 길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마음 한편으로 절대 선의 편을 들고 있으며, 인간의 탐욕과 거짓과 착취를 인정하지 않는 그 절대 선에게 내심 동의하고 있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빠져 있는 끔찍한 곤경이 이것입니다. 절대 선이 우주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어떤 노력을 해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반면에 절대 선이 우주를 다스린다면 우리는 매일 그 선의 원수가 되는 셈이고 다음 날이라고 해서 사정이 나아질 기미 또한 전혀 없으므로, 이 경우에도 역시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선 없이 살 수도 없고, 그 선과 더불어 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위안인 동시에 최고의 공포입니다. 

 

여러분은 먼저 도덕률이라는 사실이 정말로 존재하며, 그 법칙의 배후에 어떤 힘이 있고, 여러분이 그 법을 어김으로써 그 힘과 잘못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기 전에는, 정말이지 이 모든 것을 깨닫는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기독교는 여러분에게 아무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임을 당했으며, 그 죽음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었고, 그가 죽음으로써 죽음의 세력이 힘을 잃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어야 하는 바입니다.

 

만약 예수가 인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라면 그의 고통과 죽음은 "그에게 지극히 쉬운 일이었을 것이므로" 아무 가치가 없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이들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완전한 순종, 완전한 고난, 완전한 죽음은 오직 그가 하나님이었기 때문에만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 삼아 그의 순종과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 같지 않습니까?

 

제가 급류에 빠졌는데, 강둑에 한 발을 딛고 있는 어떤 사람이 저의 목숨을 구해 주기 위해 팔을 뻗었다고 합시다. 그때 제가  "아니, 이건 불공평해! 당신은 지금 유리한 위치에 있잖아! 강둑에 한 발을 디디고 있으니까" 하고 소리쳐야(물에 빠져 숨을 헐떡거리면서) 마땅하겠습니까? 그가 가진 이점-여러분이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잇는-이야말로 가가 저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자기보다 더 강한 존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침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드러내놓고 직접 세상에 간섭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그 뜻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날은 바로 세상이 끝나는 날입니다. 극작가가 무대위로 걸어나오면 연극은 끝난 것입니다. 그가 지체하시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진해서 그의 편에 가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의 행동에 대해 진술하였고, 그의 글들은 나에게 얼마나 가슴벅차게 실천하고싶은 덕목으로 남았는지 모른다.

 

현대에 와서 '절제'라는 말을 음주 문제에만 국한해서 사용하는 바람에 생긴 큰 해악이 하나 있습니다. 음주외에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똑같이 무절제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골프나 오토바이를 자기 생활의 중심으로 삼은 남자나 옷이나 카드놀이나 애완견에 온통 정신이 팔린 여자는 저녁마다 술에 취하는 사람만큼이나 '무절제'한 사람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지요. 카드놀이나 골프광이 길 한복판에 쓰러져 자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겉모습에 속지 않으십니다.

 

심리적 재료가 나쁜 것은 죄가 아니라 병입니다. 따라서 회개할 것이 아니라 치료받아야 합니다. 이 점은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보고 서로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도덕적 선택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어렸을 때 성격이 비뚤어지는 바람에 잔인한 행동을 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보다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한복판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말씀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방법으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입니다.

어찌 되었든 용서는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이 일을 좀더 수월하게 만들 방법을 알아봅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듯이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한 치 오차없이 사랑하고 있습니까?

 

기독교 옛 스승들이 사람의 악한 행위는 미워하되 그 사람 자체는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어떻게 어떤 사람의 행위는 미워하면서 그 사람은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제가 평생동안 그렇게 대해온 사람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비겁함이나 자만심이나 탐욕은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계속 자신을 사랑해 왔습니다. 그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그런 것들을 미워한 이유는 바로 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짓을 저지르는 종류의 인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토록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잔인한 행동이나 배신 행위에 대한 미움을 티끌만큼이라도 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미워할 때, 자기 자신에게서 똑같은 것을 발견했을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미워하라고 합니다. 즉, 그 사람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안타까워하면서, 할 수만 잇다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든 치유되어 그의 인간다움을 되찾기를 바라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곧 위대한 비밀 하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비밀 말입니다.

 

독후감이 너무 길어져서 서둘러 결론을 내려야겠다. 그는 겸손한 그리스도인을 더 나가가 새사람이 된 자들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겸손한 사람을 만난다면 '요즘 사람들이 흔히 겸손하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겠지'라고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가 주는 인상은, 여러분이 그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들어 주는 쾌활하고 지적인 사람이라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만약 그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인생을 너무 쉽게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데 약간의 질투를 느꼈기 때문이겠지요. 그는 자신의 겸손을 의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목소리와 얼굴 자체가 벌써 우리와 다릅니다. 더 힘있고 더 평온하며, 더 행복하고 더 빛이 납니다. 우리 대부분이 포기하는 그 지점에서 그들은 새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관심을 끌어모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들이 여러분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는데도, 마치 여러분이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지만 그 누구보다 덜 필요로 합니다(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길 바라는 마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이것은 가장 이기기 힘든 유혹입니다). 그들은 대게 시간이 많아 보입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할 정도입니다.

출처 : 저녁 강가에서
글쓴이 : 안동꿈 원글보기
메모 : ㅜㅜ

 

수필문학 입문 4강

생각 비우기와 변죽 울리기
 

수필을 쓰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스스로 쓰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일단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남이 읽어서 의미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란 가치관과 윤리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용이 독자에게 얼마만큼 공감을 주겠느냐 하는 것을 말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지만 일단 쓰여진 글은 '나의 글'에 그치지 않고 '우리'라는 확대된 의미의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여과된 감정, 응축된 감동은 물론, 주변의 범상한 사건에서 진실의 요체를 밝혀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또한, 시대와 유리된 수필 작품은 공감대와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기고백의 차원을 넘어 현실을 진단하고 비판할 수 있는 확고한 자기 세계가 필요하다.

수필의 제재는 일상적인 신변잡기로부터 지성적이고 철학적인 사색, 비판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심지어 수필의 글감이 우주의 삼라만상 모두에 걸쳐 있다는 표현조차 가능하다. 그런데 다양한 제재들을 무조건 쓸어 담는다고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삶에 대한 깊은 사색과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바람직한 수필이 될 수 없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출판물 속에서 신변잡기에 가까운 잡문들이 수필의 문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수필은 평범한 일상사를 참신하게 해석 - 사색, 관조, 해학, 기지, 비평 - 하는 과정에서 문학성을 획득한다.

좋은 수필은 우선 문장의 맛깔스러워야 한다. 가수는 음성이, 화가는 색채 감각이 좋아야 하듯이 수필가는 문장을 다루는 힘이 기본적으로 갖추어 있어야 한다. 불확실한 단어, 호흡이 끊어진 문장, 문단 나누기의 오류 등이 반복되는 글을 끝까지 인내하고 읽어줄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시인이 시어를 발굴하듯 수필을 쓰는 사람은 수필어의 채광부가 되어야 한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하나의 말만 존재한다.(一物一語說) 단 하나의 적절한 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깊은 굴속에서 금을 캐는 광부와도 같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수필의 소재가 대부분 신변의 기록이다 보니 문학적 형상화를 위해 억지로 교훈적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교훈적인 글은 자칫 잘못하면 어떤 사실을 단정하여 훈계하기 쉽다. 억지로 교훈을 주려고 하다 보니 남들을 가르치려고 하게 된다. 수필은 가르치는 글이 아니라 느끼게 하는 글이다. 머리를 굴려 재치 있게 쓰려고 하지 말고 가슴을 느낄 수 있게 써야 한다. 수필을 읽고 나서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오랫동안 가슴 울림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해보자. 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을 쓸 때 생각은 많이 하고 쓰기는 쉽게 하라고 했다. 많은 생각 중에서 꼭 남아야 할 것만 남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생각을 비우는 작업은 바로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이다. 아주 힘들게 얻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이런 불필요한 욕심과 고집을 버리는 일이다.

문학적인 글의 형상화에는 토끼몰이식 접근이 필요하다. 주제를 향해 바로 돌진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멀리서 둥둥 북을 치고 변죽을 울리면서 그 울림으로 다가가야 한다.

수필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기 내면 세계를 고백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진실함'이 드러나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물론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쓸만한, 읽을 만한 소재라야 한다. 수필을 쓸 때는 쓰는 사람이 자기 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대개 감정을 승화시켜 자기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쓰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글이 여유를 갖게 된다. 여유가 있어야 '부드러운 즐거움, 번뜩이는 기지, 날카로운 비평 정신'을 담을 수 있다.

출처 : 수필사랑
글쓴이 : 수필사랑 원글보기
메모 :

한 눈없는 어머니

                                                                                                                                                        이은상   

 

   김 군에게

   김 군이 다녀간 어젯밤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소. 김 군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쓰고 싶으면서도 실상은 쓰고 싶지 않은 글이오. 왜냐 하면 너무도 어리석을 일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도 슬픈 사연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요. 그러나, 나는 이 글을 꼭 써야만 한다는 무슨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었소. 그래서 이 붓을 들었소.
   어젯밤 우리가 만난 것은 차므로 오랜만의 일이었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소. 아,거기서만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그대는 품속에서 그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소. 나는 그대의 어머니를 생전에 뵈온 일이 없었기로 반가이 받아들었소. 그런데, 그대의 가신 어머니는 한 눈을 상하신 분이었소. 그것을 본 순간, 내 머리에는 '불행'이란 말이 퍼뜩 지나쳤소. 그와 동시에 나는 그대가 더욱 정다워짐을 느끼었소.
   그러나 뒤를 이어 주고받은 그대와 나와의 이야기, 김 군, 그대는 이 글을 통해서 어젯밤 우리가 나눈 대화를 한 번 되새겨 주오. 그대는 어는 화가의 이름을 말하면서 내가 그와 친하냐고 묻기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소.

  "그럼, 한 가지 청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이 사진을 가지고 내 어머니의 모습을 하나 그려 달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보수는 상당하게 드리겠습니다."
  "내 힘껏 청해보지요."
   그림으로나마 어머니를 모시려는 그대의 착한 뜻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소.그래서, 나는 쾌히 약속을 했던 것이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온 그대의 말, 그대는 가장 부자연스런 웃음과 어색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였소.
  "그런데 그림을 그릴 적에 두 눈을 다 완전하게 그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김 군,
   순간 내 눈앞은 캄캄해지고 내 가슴은 떨리었소.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소. 두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소. 겨우 입을 열어 내가 한 말은 돌아가 달라는 한 마디뿐이었소.
   나는 그대를 보내고, 괘씸하고 분한 생각에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소. 
   그대가 평소에 어머니의 눈 때문에 얼마나 한스러웠기에 그림에서라도 온전히 그려 보려 했을까? 이렇게 생각하려고도 해 보았소. 그러나 그대의 품속에 들어 있는, 그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한 눈 상하신 그 어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 원망의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소.

김 군,
   그 즉석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대는 나의 열리지 않던 입에서 분명히 듣고 간 것이 있었을 것이오. 말없이 나의 입에서 듣고 간 것이 없소? 만일 없다면, 이제라도 한 마디 들어 주오. 그러나, 내 말을 듣기 전에, 그대는 먼저 그대의 품속에서 그대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오. 상하신 한쪽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자세히 보오.눈물 가진 눈으로 보오.

김 군.
   한 눈을 상하신 까닭으로 평생을 학대 속에 사셨는지도 모를 그 어머니‥‥‥. 애닯소. 한 눈 없이 그대를 낳고 기르고,그대를 위하여 애태우시다 이제는 저 차가운 땅 속에 드셨거늘, 자식인 그대마저 어찌 차마 그대 어머니의 상하신 한 눈을 업신여겨 저버린단 말이오? 그대에게 한 눈 가지신 어머니는 계셨어도 두 눈 가지신 어머니는 없었소.온 세상이 다 불구라 비웃는대도 그대에겐 그 분보다 더 고우신 분이 또 누구이겠소? 한 눈이 아니라 두 눈이 다 없을지라도 내어머닌 내 어머니요, 내가 다른 이의 아들이 될 수는 없는 법이오.


김 군,
   그림으로 그려 어머니를 모시려 한 착한 김 군, 그런 김 군이 어떻게 두 눈 가진 여인을 그려 걸고 어머니로 섬기려 했단 말이오? 그대는 지금 곧 한 눈 없는 어머니의 영원한 사랑의 품속으로 돌아가오. 그리하여 평생 눈물 괴었던 그 상하신 눈에 다시는 더 눈물이 괴지 않도록 하오. 이만 줄이오.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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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夫婦) 백경(百景)

이재부

 

  비가 하루종일 내린다. 겨울비가 얼마나 내릴까싶어 우산을 갖고 가지 않았는데, 일을 끝내고 귀가하려니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시내버스를 타고 오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우산을 버스승강장까지 가지고 오라고 하려다가 늙은 아내가 귀찮아 할 것 같아 비를 맞고 왔다. 흠씬 젖은 옷을 털고 현관을 들어서면서 "겨울비가 꽤 많이 와" 했더니 아내는 내다보지도 않고 부엌에서 "그까지 비를 가지고 뭘…."로 대꾸한다.


  내가 듣고싶었던 대답과는 천양지차다. 젊을 때 같으면 쫓아 나와 빗물을 털어 주며, '우산을 가지고 나오라고 하면 될걸, 비를 맞고 왔느냐'고 책망을 듣고도 기분 좋아했을 텐데. 늙어지니 무관심이 병이고, 처방이며, 약이다.
 
  부부 관계는 시종일관형, 성숙 발전형, 점진 퇴색 형 중의 하나일 텐데, 우리 부부는 퇴색형이지 싶다. 누구나 다 성숙된 변화를 희망하지만 긴 세월과, 반복되는 일상 앞에서 날마다 새롭게 되기는 어려우리라. 무관심인 듯, 관심으로 살아왔다. 높이 나는 새도 땅위나, 나무에서 둥지를 틀듯이, 다 고만고만한 사랑의 수준이지만 타인 부부는 멋있어 보였고, 정겨워 보여, 부러워했었다. 이성에 눈도 뜨지 않은 어린 시절, 어른들 소망에 따라 결혼을 했으므로 탐탁치 못함이 늘 잠재해 있었다. 


  내 것을 넘어서는 부러움증은 은연중에 소망이 되어, 기대수준을 높이고, 요구 조건이 많아지게 된다. 그리하여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불만을 자제하느라 고독을 느끼며, 갈등이 누적되어 소원해진 때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부부사이는 소망의 누각이요, 심리전의 전쟁터다.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 갈등 속에서 사랑을 무기로 부부관계를 성숙하게 연출함은 큰 기술이다. 그 기술은 무형의 재산이요, 행복의 기반이며, 자녀 양육의 지혜임을 알면서도 의무보다 권위를 앞세우며 순종의 미덕을 바로 보지 못 했었다. 남존여비 시대에 앞장서 남자의 권위를 과신하며 살았다. 이혼은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으니까 싸울 일도 없었고, 불만이 있어도 서로 참는 방법을 터득해 갔다.

 

  우리 부부는 무표정형이요, 강물형이라 별로 다투지도 않고 유유히 53년을  살았다. 젊어서 한 때는 줄다리기형이 되어 꽁한 마음을 속으로 닫아걸고, 자존심의 줄을 팽팽히 당기며, 양보의 기색을 보이지 않은 때도 있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웃음이 난다. 자식들이 그 줄을 타며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까. 지금도 그런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다. 아내가 타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 아내도 그러하리라. 뜨거운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지는 않지만 서로 기대는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무관심이 평생 쌓은 성곽 같아서 갑갑함을 느끼면서도 인고의 세월에 쌓인 굳은살 같이 불편함을 모른다. 일상 속에 굳어진 식탁이나 몸치장, 집안을 가꾸는 정돈에 변화는 없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협력의 고마움이 향기를 낸다. 


  세상도 많이 변했다. 여성 표에 정치인이 놀아나고, 아부를 떨었으며, 여성부가 생기고, 그 권한이 치솟아 법이 고쳐져도 우리 집은 아무 변화가 없다. 변화를 느낀 것은 자식 5남매가 다 결혼하여 분가한 후였다. 늙음이 실감되고, 힘없는 아내가 더욱 측은해 보이는 것이다. 상황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달인의 경지는 못 가더라도, 달라져야함을 자각하게 된다. 누리고 싶은 욕구를 참고, 말 없이 사는 것이 현명한 처사요, 가정평화의 묵시적인 조약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긴장을 풀 때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부부는 측은지심의 속울음이 있어야 서로가 바로 보이나보다. 서로 존중하고, 무엇인가 해주고 싶으며, 아끼게 된다. 그것이 무관심 속의 관심이다. 아내라는 존재가 있는 것도 잊은 듯 일에 몰두하며 살 때도 있고, 피곤에 지쳐 돌아보지 않는 때도 많다. 낭만이 무엇인지, 아내의 말이 푸념으로 듣기도 했고, 치열한 경쟁에서 아내의 내조를 원망도 했었다. 그런 것이 측은지심의 안경을 쓰면 다 후회로 걸러져 보인다.
 
  철모르던 중학교 시절, 남녀라는 이유로 부부로 살면서 수 백가지 욕구의 모델을 생각하며 인생의 수를 놓으며 살았다. 희로애락의 사랑의 무늬를 짜면서 소통이 되지 않아 멍하니 바라보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찢어지지 않는 직조의 바탕은 정직성이 배어있는 믿음인 것 같다. 측은지심도 그 바탕에서 울어나리라. '참으로 훌륭한 아내는 죽은 아내와, 얻지 못한 아내'라 한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리라. 나이 들고, 병들어 수술실에 밀어 넣으며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던지……. 속도를 더하며 늙는 시간이 안타깝다. 부부의 조건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암·수이면 되는 것이지, 그 이외의 조건은 욕심이요, 사치이리라. 겨울비에 젖은 옷을 벗으면서 어리석은 원망의 마음도 벗는다.
(2009년 12월 10일 겨울비에 젖어)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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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줄과 바지랑대 

                                                                                                                          모 임 득


 

모처럼 마당가에 번진 햇살위에 구름을 내걸고 싶다.

며칠째 내리는 비에 쌓여가는 시름만큼이나 빈 빨랫줄에서는 물방울만 오종종 매달리다 떨어지곤 했다.
서둘러 일상의 고단함을 빨래와 같이 탁탁 털어 줄에 넌다. 쌍둥이가 벗어놓은 옷들이 어찌나 많은지 세탁기로 휘휘 돌려 너는 일도 힘에 부친다. 하루 종일 쓸고 닦으며 치우다보면 지치고 짜증나는 날들이라서 얼굴은 펴질 때가 없다.
마당의 길이만큼 걸쳐진 빨랫줄이 주어진 삶이라면 바지랑대가 놓인 중간 지점만큼 온 인생이다. 숨 가쁘게 분주한 일상을 보냈지만 돌이켜보면 바지랑대 높이에서 바라보는 곳도 벗어나지 못한 채 종종거리며 살아온 듯싶다. 이십대 후반부터 외줄 타기하듯 발끝에 온몸을 지탱한 채 자식을 갖기 위한 일념으로 살았다. 하얀 기저귀가 널리기를 갈망하며 병원을 드나드는 횟수만큼 근심만이 널렸었다. 불혹이 가까워서야 쌍둥이를 낳았을 때 하루 세 번 세탁기를 돌리면서도 행복에 겨워하며 바쁘게 살았던 지난날들이 생각난다. 조금 힘들다고 너무나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다. 손길 닿을 빨래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빨래에는 내 행복의 원천인 가족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새벽같이 나가서 어둑해서야 들어오는 남편의 양말은 나보다도 남편의 일상을 더 알고 있을 터이다. 변비 때문에 놀림 당했을 아들아이 팬티를 볼에 대보니 냄새보다는 속살에 어울려 함께했을 체취가 전해져 온다. 치마는 한사코 마다하며 머슴애들하고만 노는 딸아이의 바지까지 널어놓고 보니 하늘이 참 곱다.
쪽으로 물들이면 저렇듯 고운 빛이 나올까. 내친김에 수돗가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 옷만큼은 손으로 비벼 빨고 있다. 울퉁불퉁 집에서 만든 비누로 비비다보면 피어나는 거품처럼 속이 후련하다. 한 번 두 번 헹굼질하는 단순한 움직임 속에 시름은 사라져 버린다. 커다란 자배기에 물을 받아 헹군 옷들은 짜지 않고 축 걸쳐 넌다.
옷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만큼 파이는 마당의 흙 무게도 느껴지지 못할 만큼 작은 존재인 물방울이 낙하하는 속도만큼 흙 마당은 자리를 비켜준다. 작더라도 큰 힘을 쓸 수 있고 맞서기보다는 돌아가는 이치이리라.
처마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돌담 옆에 있는 모과나무까지 걸쳐진 줄이 힘에 겨운지 축 늘어진다. 바지랑대를 중간에 세워 무게를 덜어주니 한결 보기가 좋다. 장대 하나가 버티기에는 벅찰 텐데도 아무런 불평 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피곤에 지쳐 처진 남편의 어깨위에도 바지랑대를 받쳐주면 한결 가벼워질까. 전 재산을 투자한 사업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사십이 넘어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남편의 마음이 가벼워진다면 기꺼이 바지랑대가 되어주고 싶다.
옷가지를 가득 달고 바람에 흔들리는 빨랫줄이 남편의 모습 같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내가 늘어진 줄 같았다. 인연이 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하는 태아들로 침통해 있을 때 남편은 바지랑대가 되고 따뜻한 햇살이 되어 힘을 보태주었다.
빨랫줄과 바지랑대처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인생살이이지 싶다.
무거워진 줄에 온 식구가 걸려있다. 혼자 두 팔 벌리고 힘겨움을 참고 있을 남편의 빨랫줄에 이제부터는 내가 바지랑대가 되어야  겠다.

 

 

출처 : http://cafe.daum.net/chojung45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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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는 게으르지 않더라

늦게 잎 나오지만 열매는 늘 많아
나무에서 인내의 가치 볼수 있어

며칠 전 대관령에 눈이 내렸다. 함께 고향에 걷는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4월 말 눈내린 대관령 옛길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사진을 보내며 이런 제목을 달았다. '5월이 오는데 발목이 빠지는 눈이라니'. 마치 봅슬레이 경기장처럼 둥글게 구릉이 진 대관령 옛길에 하얗게 눈이 덮인 사진을 보노라니 이게 한겨울에 내린 눈인지 4월 말에 내린 봄눈인지 알 수가 없다.

봄은 언제나 꽃과 잎의 풍경이다. 대관령엔 눈이 왔지만 비 한번 내릴 때마다 기온이 쑥쑥 올라가면서 아직 터지지 않은 꽃들이 펑펑 터지고, 잎도 쏙쏙 나온다. 하루 자고 일어날 때마다 세상 풍경이 더 환해진다. 봄꽃들이 피어나고, 잎들이 꽃보다 더 환하게 피어나는데 새들까지 와서 함께 지저귄다.

어린 시절,마당가와 텃밭엔 참으로 많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냥 꽃나무를 심었던 게 아니라 할아버지께서 빈자리마다 과일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열 종류도 넘는 과일나무들이 온 집안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마당 한켠에 목련 한 그루 서 있지 못했다. 앵두나무,매화나무,살구나무,자두나무,복숭아나무,포도나무,사과나무,배나무,밤나무,대추나무, 호두나무,산수유,감나무,모과나무,석류나무.지금 이름을 부른 나무들은 꽃이 피는 순서보다 열매가 익는 순서를 따라 표기한 것이다. 꽃이 피는 순서는 매화가 먼저지만 익는 것은 언제나 그보다 작은 앵두가 먼저이다. 산수유도 꽃은 이른 봄에 노란 카스텔라처럼 아주 일찍 피어나지만 열매는 한가을이나 되어야 빨갛게 익는다.

나무도 세상 살아가는 게 사람과 비슷해 부지런한 나무들은 일찍 깨어나 일찍 꽃을 피운다. 매화가 그렇고,벚꽃이 그렇고,진달래며 개나리,복숭아,살구꽃이 그렇다. 그런 나무들은 대부분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그런데 다른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잎을 피운 다음에도 뻐꾸기 소리가 들릴 때까지 여전히 겨울잠을 자듯 기척이 없는 나무가 있다.

그래서 이 나무는 겨우내 얼어 죽은 게 아닌가 하고 가지를 꺾어보면 어김없이 거기에 물기가 배어있다. 바로 대추나무이다. 다른 나무들이 꽃을 다 피우고,잎을 다 낸 다음에야 대추나무는 뒤늦게 겨울잠에서 깨어나 잎을 피운다. 아주 게으르기 짝이 없는 나무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추나무는 뒤늦게 깨어난 대신 늦봄부터 늦여름까지 쉬지 않고 꽃을 피워(그러니까 봄에 꽃핀 자리에 이미 열매가 어느 정도 굵어진 다음에도 초여름과 늦여름에 다시 꽃을 피워) 그 열매들을 추석 때쯤 한꺼번에 익힌다.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 따라 저 나무는 겨울잠에서 늦게 깨어난다고 말하지만,사실 긴 겨울잠을 자며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더 충실한 여름준비와 가을준비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해마다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장마가 일찍 들면 늦게 핀 꽃에서, 또 장마가 늦게 드는 해는 일찍 핀 꽃에서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다.

우리가 한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재능을 일찍 꽃피우는 조숙한 천재들도 있고,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늦은 만큼 보다 크게 자신을 완성해가는 대기만성형의 대가들도 있다. 사람과 비교하면 대추나무가 꼭 그런 나무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사정이 어려워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 역시 그런 대추나무와 같은 여름과 가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잎과 열매가 익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며,그 나무의 생태를 자기 눈으로 깨닫는 것도 재미있는 자연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는 근면이나 성실과 같은 효율로만 따질 수 없는,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과 또 그것의 가치들이 있다. 이제 이 냉기가 물러가면 바로 다가올 이 봄과 여름 사이에도 꽃과 나무들이 그걸 우리에게 말한다.


이순원 <소설가>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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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이야기

 

/서 순 원


때는 1963년, 나의 대학시절 이야기이다.
터가 넓은 내 하숙집 남향받이 본채에는 주인집 식구들이 살았고, 본채 옆 길다란 행랑채에는 각각 부엌이 달린 방이 다섯 개나 있었는데, 그 다섯 개의 방중에서 가장 볕이 잘 들고 근사한 곳이 내 방이었다. 나는 그만큼 고참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인집 아주머니의 신망도 내가 제일 두터웠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하숙생활을 통한 나만의 비장의 노하우가 있었다.

그 노하우라는 게 특별난 것은 아니었다. 첫째는 하숙집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맛있게 먹는 것은 기본이고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를 자꾸만 추겨주어야 한다. "내가 먹어본 하숙집 음식 가운데서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라는 정도로. 둘째는 처음 것보다 약발이 훨씬 잘 먹히는 것인데, 주인집 아이들을 예뻐해야 한다. 여기에 개인의 사견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 키의 장단과 용모의 미추를 따져서는 안 된다. 무조건 아들의 경우 통통한 아이는 별 네 개 달아주면 되고, 야윈 듯하면 외무부 장관이나 문교부 장관자리 하나 떼어주면 된다. 아이를 번쩍 들어올리고 그의 볼에 뽀뽀를 해주며, "아따, 그 녀석 잘도 생겼네, 4성 장군은 땋아 논 당상이구나."라든지, 아이가 야윈 듯 하면 "그 녀석 미남으로 아주 잘 생겼다. 문교부 장관 한자리는 하고도 남겠다."는 식으로 하면 된다. 이때에 아이가 추남일수록 보상은 더 융숭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아일 때도 위에 준하면 된다. 이상과 같은 나만의 노하우와 겸손한 태도, 그리고 상냥한 말솜씨를 밑천으로 나는 2년 후 가장 햇볕이 잘 들고 근사한 방으로 이사를 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이었다. 나의 방 뒷벽에는 창문이 있었다. 좌우로 여닫는 고급스런 창이 아니고 창문 중심을 못으로 고정시켜 놓고 아래쪽을 밀면 위아래가 함께 열려 바람이 들어오도록 되어있는 가장 기초적인 구조의 창문이었다. 집밖에는 낮은 담장이 앞뒷집의 경계를 이루고 있을 뿐, 창문을 열면 뒷집의 생활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내가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젊은 부부가 세 들어 사는 단칸방이었다.

뒷집 부부는 부부싸움을 잘했다. 처음에는 방안에서 조그마한 목소리로 싸우더니 이제는 이웃 사람들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싸웠다. 싸우는 횟수도 빈번해지고 목소리도 커져서, 학생인 나로서는 피해가 막심했다. 특히 시험기간에는 신경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저토록 예의도 없을까?
나는 창문을 올리고 뒷집을 내다보았다. 울화가 치밀어서 소리라도 질러댈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뒷집을 내다본 그 순간, 내 혀는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저렇게 예쁠 수가! 울화가 치밀어서 소리라도 질러댈 마음이었던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여인을 본 순간, 나의 입이 저절로 다물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부부 싸움을 마치고 방에서 나온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의 방 쪽에 있는 대문을 향해 걸어나왔다. 나는 불에 데인 사람처럼 황급히 창문을 닫고 방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닌데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해댔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며칠동안 창문을 열지 못했다. 마치 그 여인을 훔쳐보기 위한 수작으로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였고, 또 창 밖을 내다보다가 그 여인과 눈이라도 마주치게되면, 남몰래 숨어서 여인들이나 훔쳐보는 비열한 인간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나의 이 생각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뒷집에서 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품위를 유지해야한다는 생각보다, 그녀를 보고 싶은 욕구가 훨씬 더 강렬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창문을 열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주 조금만 열고 틈 사이로 바라보다가 날씨가 점점 무더워지자 이젠 활짝 열어버렸다. 창문을 열어도 될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는 그녀와 나는 창문을 통해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약간 당황한 빛이었으나 크게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크게 당황한 쪽은 나였다. 나의 심장 뛰는 소리는 내 귀에도 들렸다. 내가 왜 이러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출근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나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되었고, 그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엷은 미소를 띄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못생긴 위인이었다. 깡마른 체격에다 까칠까칠하고 검은 피부하며, 웃으면 약간 위로 삐뚤어지는 입모습까지, 볼품 있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남편 모습은 마치 추운 겨울철 구정물에 빠진 뒤 양지 끝에서 졸고있는 생쥐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게다가 직장도 없는 만년 백수신세이고 보면 무엇을 보고 저런 남편과 살고있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이 좋아 하늘이 점지해준 배필이지 누가 보아도 어울릴 수 없는 부부였다.

나는 그녀가 가여웠다. 하루종일 직장에서 시달리고 집에서도 아내 대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그녀가 너무나 가여웠다. 처음에 말로만 하던 부부싸움이 이젠 손찌검까지 하고있지 않은가! 코스모스의 야윈 목처럼 가냘프고 들국화처럼 애잔한 그녀가 손찌검을 당하면서 울부짖는 비명소리는 나의 가슴을 점점이 도려내는 듯한 아픔으로 느껴졌다. 요즘 들어 그들의 부부싸움은 전보다 훨씬 더 격렬해지고 그녀의 비명소리도 더욱 높아졌다. 그런 날 밤이면 나는 그녀가 가여워 밤새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부부싸움이 대판으로 벌어졌던 어느 날 밤에는 엉뚱하게도 내가 그녀와 함께 낯모르는 곳에서 새살림을 차리고 사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그녀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정은 남편에 대한 증오로 바뀌어 갔다. 나는 그 인간이 정말로 미웠다.

그 날은 나의 수업이 오전에만 있는 날이었다. 하숙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나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날 따라 뒷집 그 여인도 출근을 하지 않았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뒷집에서는 여느 때처럼 고함소리가 들리고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종종 있는 일이기 때문에 신경도 쓰지 않고 책장만 뒤적이고 있었다. 저러다 그만 두겠지.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남편의 고함소리도 다른 날보다 더 격앙되었고, 그녀도 악에 바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창문을 반만 열고 뒷집을 바라보았다.
방안에서 시작된 싸움이 마루까지로 싸움터를 넓혀 진행되고 있었다. 아내는 죽이라고 악을 쓰고 있었고, 남편은 아내의 머리채를 감아쥐고는 주먹으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자신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가까스로 심호흡을 하면서 울분을 삭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녀를 죽이겠다고 배를 타고 앉아서 목을 누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아니 그녀를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남편 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아내를 죽이려드는 저런 인간을 내버려 둘 수는 정말 없었다. 나는 한걸음에 담장을 뛰어넘어 뒷집으로 달려가 남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운 다음 보기 좋게 얼굴에다 한방을 날렸다. 남편은 비틀비틀 쓰러지는가 했더니 다시 일어나 그녀를 향해서, "이 화냥년이 샛서방을 여기까지 끌고 왔어?" 그리고는 나를 향해서 "나는 어떤 놈인가 했더니 네놈이 그놈이냐?"하며 대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확실하게 구하기 위해 이단 옆차기로 명치를 가격했다. 남편은 썩은 고목처럼 쓰러져버렸다.
내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 "이놈이 사람 죽이네!"하며 그녀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처음에는 내가 그녀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쇼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뒤에서 나를 힘껏 끌어안고는 나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그 순간 쓰러졌던 남편이 일어나 몽둥이를 들고 나의 이마를 힘껏 내려쳤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졸도를 하고 말았다.

내가 정신을 되찾고 깨어나니 나는 하숙집에 누워있었고, 옆에는 하숙집 아주머니와 뒷집 아주머니가 근심스런 눈빛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학생도 참,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 듣지도 못했어? 어쩌자고 남의 부부싸움에 끼어 들어 이 봉변을 당했냐고?"하숙집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씀하였다. 나는 이마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하숙집 아주머니와 뒷집 아주머니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저 여자가 바람을 피우기는 한 거여?" 하숙집 아주머니가 묻자 뒷집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워낙 인물이 반반하고 보니…." "그리고 끼도 좀 있는 것 같아."
몇 시간 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벗고 어깨에 나있는 상처를 거울에 비쳐보았다. 그녀의 앞 이빨 자국이 육군 중위의 계급장처럼 깊고 선명하게 패어있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운동회 날의 백군 머리띠처럼 하얀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미친놈!`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나는 웃고 또 웃었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의 깊은 속내를 알기까지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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