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이야기
/서 순 원
때는 1963년, 나의 대학시절 이야기이다.
터가 넓은 내 하숙집 남향받이 본채에는 주인집 식구들이 살았고, 본채 옆 길다란 행랑채에는 각각 부엌이 달린 방이 다섯 개나 있었는데, 그 다섯 개의 방중에서 가장 볕이 잘 들고 근사한 곳이 내 방이었다. 나는 그만큼 고참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인집 아주머니의 신망도 내가 제일 두터웠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하숙생활을 통한 나만의 비장의 노하우가 있었다.
그 노하우라는 게 특별난 것은 아니었다. 첫째는 하숙집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맛있게 먹는 것은 기본이고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를 자꾸만 추겨주어야 한다. "내가 먹어본 하숙집 음식 가운데서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라는 정도로. 둘째는 처음 것보다 약발이 훨씬 잘 먹히는 것인데, 주인집 아이들을 예뻐해야 한다. 여기에 개인의 사견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 키의 장단과 용모의 미추를 따져서는 안 된다. 무조건 아들의 경우 통통한 아이는 별 네 개 달아주면 되고, 야윈 듯하면 외무부 장관이나 문교부 장관자리 하나 떼어주면 된다. 아이를 번쩍 들어올리고 그의 볼에 뽀뽀를 해주며, "아따, 그 녀석 잘도 생겼네, 4성 장군은 땋아 논 당상이구나."라든지, 아이가 야윈 듯 하면 "그 녀석 미남으로 아주 잘 생겼다. 문교부 장관 한자리는 하고도 남겠다."는 식으로 하면 된다. 이때에 아이가 추남일수록 보상은 더 융숭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아일 때도 위에 준하면 된다. 이상과 같은 나만의 노하우와 겸손한 태도, 그리고 상냥한 말솜씨를 밑천으로 나는 2년 후 가장 햇볕이 잘 들고 근사한 방으로 이사를 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이었다. 나의 방 뒷벽에는 창문이 있었다. 좌우로 여닫는 고급스런 창이 아니고 창문 중심을 못으로 고정시켜 놓고 아래쪽을 밀면 위아래가 함께 열려 바람이 들어오도록 되어있는 가장 기초적인 구조의 창문이었다. 집밖에는 낮은 담장이 앞뒷집의 경계를 이루고 있을 뿐, 창문을 열면 뒷집의 생활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내가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젊은 부부가 세 들어 사는 단칸방이었다.
뒷집 부부는 부부싸움을 잘했다. 처음에는 방안에서 조그마한 목소리로 싸우더니 이제는 이웃 사람들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싸웠다. 싸우는 횟수도 빈번해지고 목소리도 커져서, 학생인 나로서는 피해가 막심했다. 특히 시험기간에는 신경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저토록 예의도 없을까?
나는 창문을 올리고 뒷집을 내다보았다. 울화가 치밀어서 소리라도 질러댈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뒷집을 내다본 그 순간, 내 혀는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저렇게 예쁠 수가! 울화가 치밀어서 소리라도 질러댈 마음이었던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여인을 본 순간, 나의 입이 저절로 다물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부부 싸움을 마치고 방에서 나온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의 방 쪽에 있는 대문을 향해 걸어나왔다. 나는 불에 데인 사람처럼 황급히 창문을 닫고 방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닌데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해댔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며칠동안 창문을 열지 못했다. 마치 그 여인을 훔쳐보기 위한 수작으로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였고, 또 창 밖을 내다보다가 그 여인과 눈이라도 마주치게되면, 남몰래 숨어서 여인들이나 훔쳐보는 비열한 인간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나의 이 생각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뒷집에서 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품위를 유지해야한다는 생각보다, 그녀를 보고 싶은 욕구가 훨씬 더 강렬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창문을 열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주 조금만 열고 틈 사이로 바라보다가 날씨가 점점 무더워지자 이젠 활짝 열어버렸다. 창문을 열어도 될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는 그녀와 나는 창문을 통해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약간 당황한 빛이었으나 크게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크게 당황한 쪽은 나였다. 나의 심장 뛰는 소리는 내 귀에도 들렸다. 내가 왜 이러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출근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나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되었고, 그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엷은 미소를 띄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못생긴 위인이었다. 깡마른 체격에다 까칠까칠하고 검은 피부하며, 웃으면 약간 위로 삐뚤어지는 입모습까지, 볼품 있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남편 모습은 마치 추운 겨울철 구정물에 빠진 뒤 양지 끝에서 졸고있는 생쥐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게다가 직장도 없는 만년 백수신세이고 보면 무엇을 보고 저런 남편과 살고있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이 좋아 하늘이 점지해준 배필이지 누가 보아도 어울릴 수 없는 부부였다.
나는 그녀가 가여웠다. 하루종일 직장에서 시달리고 집에서도 아내 대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그녀가 너무나 가여웠다. 처음에 말로만 하던 부부싸움이 이젠 손찌검까지 하고있지 않은가! 코스모스의 야윈 목처럼 가냘프고 들국화처럼 애잔한 그녀가 손찌검을 당하면서 울부짖는 비명소리는 나의 가슴을 점점이 도려내는 듯한 아픔으로 느껴졌다. 요즘 들어 그들의 부부싸움은 전보다 훨씬 더 격렬해지고 그녀의 비명소리도 더욱 높아졌다. 그런 날 밤이면 나는 그녀가 가여워 밤새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부부싸움이 대판으로 벌어졌던 어느 날 밤에는 엉뚱하게도 내가 그녀와 함께 낯모르는 곳에서 새살림을 차리고 사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그녀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정은 남편에 대한 증오로 바뀌어 갔다. 나는 그 인간이 정말로 미웠다.
그 날은 나의 수업이 오전에만 있는 날이었다. 하숙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나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날 따라 뒷집 그 여인도 출근을 하지 않았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뒷집에서는 여느 때처럼 고함소리가 들리고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종종 있는 일이기 때문에 신경도 쓰지 않고 책장만 뒤적이고 있었다. 저러다 그만 두겠지.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남편의 고함소리도 다른 날보다 더 격앙되었고, 그녀도 악에 바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창문을 반만 열고 뒷집을 바라보았다.
방안에서 시작된 싸움이 마루까지로 싸움터를 넓혀 진행되고 있었다. 아내는 죽이라고 악을 쓰고 있었고, 남편은 아내의 머리채를 감아쥐고는 주먹으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자신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가까스로 심호흡을 하면서 울분을 삭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녀를 죽이겠다고 배를 타고 앉아서 목을 누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아니 그녀를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남편 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아내를 죽이려드는 저런 인간을 내버려 둘 수는 정말 없었다. 나는 한걸음에 담장을 뛰어넘어 뒷집으로 달려가 남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운 다음 보기 좋게 얼굴에다 한방을 날렸다. 남편은 비틀비틀 쓰러지는가 했더니 다시 일어나 그녀를 향해서, "이 화냥년이 샛서방을 여기까지 끌고 왔어?" 그리고는 나를 향해서 "나는 어떤 놈인가 했더니 네놈이 그놈이냐?"하며 대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확실하게 구하기 위해 이단 옆차기로 명치를 가격했다. 남편은 썩은 고목처럼 쓰러져버렸다.
내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 "이놈이 사람 죽이네!"하며 그녀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처음에는 내가 그녀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쇼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뒤에서 나를 힘껏 끌어안고는 나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그 순간 쓰러졌던 남편이 일어나 몽둥이를 들고 나의 이마를 힘껏 내려쳤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졸도를 하고 말았다.
내가 정신을 되찾고 깨어나니 나는 하숙집에 누워있었고, 옆에는 하숙집 아주머니와 뒷집 아주머니가 근심스런 눈빛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학생도 참,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 듣지도 못했어? 어쩌자고 남의 부부싸움에 끼어 들어 이 봉변을 당했냐고?"하숙집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씀하였다. 나는 이마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하숙집 아주머니와 뒷집 아주머니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저 여자가 바람을 피우기는 한 거여?" 하숙집 아주머니가 묻자 뒷집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워낙 인물이 반반하고 보니…." "그리고 끼도 좀 있는 것 같아."
몇 시간 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벗고 어깨에 나있는 상처를 거울에 비쳐보았다. 그녀의 앞 이빨 자국이 육군 중위의 계급장처럼 깊고 선명하게 패어있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운동회 날의 백군 머리띠처럼 하얀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미친놈!`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나는 웃고 또 웃었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의 깊은 속내를 알기까지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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