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참게

 

고윤자   

  늦가을 섬진강에선 연어와 참게가 만난다. 연어는 북태평양에서 돌아와 강을 거슬러 오르고, 참게는 계곡에서 기어 나와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이동하는 목적은 똑같다. 알을 낳기 위해서이다.
산란 후 자기가 태어났던 하천으로 돌아오는 연어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길을 잃고서 생을 마감한다. 바다 쪽으로 회유를 마친 참게는 부화 후에 대부분 폐사한다. 끝내 자신들의 숙명을 타 넘지 못하고 커다란 조력(潮力)이 그들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하나가 타의적 죽음이라면 하나는 자기희생적 죽음이라고 할까.
 
 막내 여동생이 돌아왔다. 새로운 세계에 둥지를 틀겠다고 남편과 함께 중국으로 떠난 후 삼 년 만의 귀국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 때문에 형제들에게 손을 내밀러 온 모양이다.
엄마는 나에게 여러 번 전화로 애원을 했다. 말년을 위해서 넣어 두었던 얼마 안 되는 당신의 비상금마저 몽땅 뽑아내 여동생에게 건네준 터이다. 그것도 모자라, 동생의 입이 되어 한 번만 도와달라고 내게 구차한 소리를 하고 있다. 배가 고파도 길거리에서 호떡 하나 허투루 사먹는 일이 없으신 분이 아니던가. 자식들이 용돈을 주면 액수가 크건 작건 은행으로 달려갔고, 그 손때 묻은 돈들이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 엄마의 즐거움이었으리라. 그 소박한 즐거움을 깨고, 자식이 어려울 때 부모 노릇할 수 있다는 크나큰 기쁨을 선택한 것이다. 자기의 모든 것을 벗어주고 알몸이 되어도 더 주지 못하는 것만이 안타까울 뿐이다. 엄마의 자아는 사랑이란 문턱 앞에서 풀처럼 바닥에 눕는다.
 
  엄마는 나에게 무엇을 주고 싶을 때는 늘 “필요 없어서”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의 가장 좋은 것과 아끼는 것들을 건네주면서 혹시 나의 마음이 편치 않을까 봐 배려하는 마음에서일 게다. 엄마가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내게 별로 필요치 않고 소중하지 않은 것을 고르느라 머리가 터진다. 어쩌다 한번 보청기나 편한 구두를 사드릴 때면 수중에 있는 돈과 몇 번씩 속으로 타협을 해야만 결정이 끝난다. 모처럼 마련해 드린 물건은 자신이 지닌 값어치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생색을 내주기를 기대한다. 마음의 갈등을 겨우 달래며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엄마에게 쥐어드릴 때면, 내가 한 행동 이상으로 더 많은 칭찬이 되어 되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나의 진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엄마는 늘 내게 착하다는 말씀을 잊지 않는다. 나의 쩨쩨하고 가증스러움이 엄마에게 들키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할 수 있는 한 고자세가 되어 동생에게 적선해 준 얼마 안 되는 돈도, “왜 엄마는 항상 ‘나’여야 하느냐.”고 패악을 부리면서 건네졌다. 아까운 마음을 겨우 감추면서 한 푼짜리 동정으로 우애를 대신한다.
 
  가을이 되면 엄마는 자주 꽃게 찌개를 상에 올려 주었다. 게는 산란 시기가 되면 알이 꽉 차고 영양도 풍부해진다. 특히 그믐게는 살이 찌고 맛도 그만이어서 바다의 보약이라고 말씀하셨다.
꽃게는 등과 배에 단단한 딱지가 있고, 다섯 쌍의 발에 집게발이 한 쌍이 달렸다. 이런 몸 구조가 우리 식구와 닮아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갑각류의 대부분은 중세 기사들이 입는 갑옷처럼 두꺼운 각질층이 발달해 있다. 몸 안에 부드러운 부분을 감싸기 위해 단단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나와 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엄마는 좀처럼 감정을 내보이지 않고 살아오셨다. 세상에게도, 우리에게도 무감각한 듯, 교갑 속에 연하고 살뜰한 마음을 숨기고 사셨다. 내가 폐렴에 걸려 의식이 없을 때, 열사흘을 눈 한번 안 붙이고 꼬박 새우며 간호하셨던 일은 그 병원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오래 입에 오르내렸다. 위협을 느끼면 바위 밑이나 바위틈에 숨기도 하고, 갯벌에 구멍을 파고들어가 살기도 했다. 혹시라도 자식들이 다칠세라 짧은 촉각으로 두리번거리며 평생 마음 편히 쉬어보지도 못한 삶이었다. 위급할 때는 스스로 자신의 집게발을 자르는 꽃게처럼,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것을 끊고 자르고 떼어주며 자식을 위해 바쳤다. 앞으로 전진하고 싶은 본심을 숨기고 겸허하게 옆걸음질 치며, 누구에게 눈 한 번 치켜뜨지 못하고 눈치 보듯 살아왔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참고 견디었기에 가슴은 노랗다 못해 붉은 덩어리로 채워져 있다. 모든 짐과 피로를 보내버리지 못한 채, 응어리가 되어 곪고, 터지고, 멍이 들어 버린 것이다.
 
  늦가을 계곡에서 기어 나와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섬진강의 참게, 그들은 산란을 끝내고 허물을 벗은 후 힘에 부쳐 쓰러져서는 생을 마감한다.
허우적허우적, 모래 바닥에서 허물을 벗고 맥없이 흐느적거리는 참게의 마지막을 본다. 허옇고 낡은 껍질은 바다 위에 남아 외로이 떠돈다. 둥둥.

 

출처 : http://cafe.daum.net/chojung45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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