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승화’ “문학의 영역을 음악으로”
<주제가 있는 수필> 이현실, ‘내가 사랑하는 트로이메라이'
 
수필가 이현실

▲ 혼자 길을 걸을 때 문득 내 등을 두드리며 다가 올 것 같은데······. 정녕 ‘트로이메라이’란가!
 

음악에도 영혼이 있나보다. 낯선 동네 막다른 골목을 서성대다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방위를 잃고 어리둥절할 때 기억의 회로에서 불이 켜지며 들려오는 노래.

마음의 행로에 환하게 빛이 열리는 소리. 보도블록 틈새 비죽 고개를 내밀던 민들레처럼 반가이 웃으며 들려오는 그 멜로디.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인다.

빨간 꼬마전구가 켜진 턴테이블이 느릿느릿 돌아간다. 원을 그리며 흐르는 LP판에서 흘러내리는 낮은 첼로 음. 어렵사리 구한 낭만주의 대표 음악가들의 오리지널 레코드판을 걸어놓고 음악에 심취했었던 젊은 시절이 마치 어제 일인 듯 떠오른다. 

로베르트 슈만의 트로이메라이(Traumerei)가 흐른다.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다. 

스승의 딸을 사랑한 슈만.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인 딸을 가난한 무명의 작곡가에게 결코 줄 수 없다는 스승의 완강한 반대에 결국은 법정소송으로 까지 이어진다. 슈만과 클라라의 결합은 출발부터가 엄청난 시련이었다. 

슈만은 일생동안 음악만 큼이나 문학에도 심취했으며, 한때는 적잖은 시를 쓰기도 했던 시인이었다. 슈만은 문학이 표현하는 영혼의 세계를 음악 화 하려 했다.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 중의 하나는 문학의 영역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표현 영역을 넘나들면서 예리한 감성으로 시의 분위기를 노래에 담아내기도 했던 슈만.

두 개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에서의 시인은 슈만 자신이다. 하이네의 시에 음악의 옷을 입혀 새로운 혼을 불어 넣은 슈만. 사랑했던 여인과의 이별의 아픔을 그린 슈만은 결국 빛나는 사랑을 가슴에 안게 되고 그 절절했던 마음을 음악적 표현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사랑의 기쁨이 충만했던 날들의 슈만과 클라라.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단하나의 부르짖음은 이렇듯 아름다운 연가곡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 하이네의 시에 음악의 옷을 입혀 새로운 혼을 불어 넣은 슈만. 사랑했던 여인과의 이별의 아픔을 그린 슈만은 결국 빛나는 사랑을 가슴에 안게 되고…. 
 
사랑은 묘한 순환의 고리를 가지는 것인가. 스승의 딸을 사랑한 슈만과 스승의 아내를 사랑한 브람스 이들의 사랑은 수많은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도 사랑 하나에 사랑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작은 숨결로 다시 놓이게 된다.
 
“그대는 영원히 잠들었네, 나에게는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네. 나는 단지 옛날의 회상을 그리며 산다. 첫사랑의 회상을….” 

슬픔과 고독, 그리움은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불타는 열정이 예술적 영감으로 더 깊이 있는 사랑의 위대함으로. 

트로이메라이는 1838년 작곡된 총 13곡의 피아노 소곡이며 이중 7번째에 해당하는 곡이다. 어린 날에 대한 동경을 담은 곡들이다.

트로이메라이가 들어있는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 정경>은 28세의 슈만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아름다운 곡들이다. 제목만 읽고도 어떤 아름다운 상상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묘한 호기심에 사로잡힌다. 

1곡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 2곡 ’신기한 이야기‘ 3곡 ‘술래잡기’ 4곡’보채는 아이‘ 5곡 ‘완전한 행복’ 6곡 ‘중요한 사건’ 7곡 ’트로이메라이(꿈)‘ 8곡 ‘화롯가’ 9곡‘목마 탄 기사’ 10곡 ’너무 진지한‘ 11곡 ’놀램‘ 12곡 ’잠이 드는 아이‘ 13곡 ’시인이 말한다’. 

어느 음악비평가는 슈만의 음악은 슈만의 맨 정신을 깎아 먹으며 영롱하게 빛났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 말은 슈만은 음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육체가 그의 정신을 놓쳐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트로이메라이는 노년에 아이 적 일을 회상하며 아이의 마음으로 듣는 음악이라고 한다. 

한 평생을 흔들리지 않고 같은 길을 가며 서로의 동반자가 되어준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묵묵히 스승의 아내를 사랑하며 지켜준 요하네스 브람스, 아가페 적인 숭고한 사랑 앞에 성호를 긋고 싶다.

아득히 기억할 수도 없는 시간의 우듬지에 서면 비릿한 해초냄새가 묻어난다. 긴 머리카락을 해풍에 나부끼며 모래사장을 걸어가는 젊은 날의 내가 보인다. 어느 날부터 지독하게 트로이메라이를 그리워하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

혼자 길을 걸을 때 문득 내 등을 두드리며 다가 올 것 같은데······. 

정녕 ‘트로이메라이’란가!



▽ 이현실 프로필

시인 수필가
한국예총 월간 예술세계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꿈꾸는 몽당연필>




기사입력: 2010/02/21 [23:55]  최종편집: ⓒ 뉴민주.com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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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

김문억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가 할퀸 자국과 마지막 나를 끌어안았던 따뜻함이 아직 내 가슴속에 남아 있지만 그는 편안한 쉼터로 갔다. 그리고 나도 할퀸 자국의 쓰라림과 그의 포옹의 애틋함을 점점 잊어가고 있다.
  간호대학에서 병원 쪽으로 가다 보면 ‘사랑의 쉼터’라는 등나무가 지붕을 이룬 휴식처가 있다. 초여름에는 젊었을 적 어머니의 젖 모양을 닮은 아름다운 자주색 꽃송이들이 천장에서 거꾸로 내려오기도 한다. 등나무 밑둥치들은 서로 다른 두 서너 개의 가지로 분지되었다가 다시 비비 꼬며 서로 엉겨 붙어 하나의 줄기를 만들고 있다. 서로 엉킨 자리에는 홈이 파져서 서로의 몸에 상처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서로를 끼어 넣고 감아 돌아간 등나무는 나무처럼 뻣뻣하게 되어 높은 쉼터 지붕 위로 올라간다. 그 모습은 나와 한동안 갈등하다가 마지막 화해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갔던 한 환자를 떠오르게도 한다.        

  그는 제지하는 간호사를 젖히고 막무가내로 내 진찰실로 들어섰다. 눌러쓴 모자, 종이 반창고로 들어 올린 왼쪽 눈까풀, 그 밑으로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꽉 다문 입, 딱 버러진 어깨, 중심이 잡힌 듯한 땅땅한 키, 그러나 파리한 피부·····.
“교수님, 불편해 죽겠어요. 하루라도 눈을 똑 바로 뜨고 살아야지, 반창고로 눈까풀을 들어 올리고 살자니 미치겠어요. 반창고 붙인 자리도 따가워 죽겠고요. 어떻게든 고쳐주세요.”
그는 위압적으로 수액 병을 매달은 받힘 대를 한 번 흔들었다. 그리고는 쓰고 있는 모자 창을 약간 들어 올리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반창고로 들어올려진 왼쪽 눈까풀을 가리켰다.

안과에 입원해 있던 그를 본 것은 약 1년 전이었다. 안과의 협진을 요청받고 그의 병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비교적 공손하게 문진에 협조를 해 주었다. 비록 전공의가 ‘그 환자는 골치 아픈 환자이므로 전과(轉科)를 받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사전에 이야기했지만, 그리고 간호사들도 ‘그 환자는 정말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환자예요.’ 라면서 그를 두려워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약 1년 반 전에 이비인후과에서 상악동(上顎洞)에 생긴 혹에 대하여 조직검사를 받으셨네요. 그리고 방사선 치료도 받으셨고요.”
나는 암이라는 말 대신 혹이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제 찍은 안구 CT 사진을 보니 왼쪽 눈알 뒤쪽 상방에 혹이 또 있습니다. 아마 상악동 혹이 전이(轉移)된 것 같은데요······.”
  그의 눈치를 살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혹이 전이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무척 실망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도 잠시 움찔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스무 살 근처의 딸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제 맘을 잡고 딸하고 잘 살려고 했는데······. 할 수 없죠. 선생님, 제발 수술을 잘 해서 저를 좀 살려주세요.”라고 말했다.
수술하는 방법 및 합병증, 수술 후 항암제 투여의 필요성 등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처진 눈까풀은 수술을 받은 후 약 6개월 이상은 기다려야 호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술하던 날, 가능한 암을 완벽하게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비록 그렇게 수술해 주어도 재발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수술 후에도 그는 한 번씩 병실에서 소동을 일으켰다. 전공의들한테 협박도 했고 간호사들한테도 한번씩 윽박지르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무슨 원인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병에 대한 분노, 불치병이 자신한테 생겼다는 불행한 운명에 대한 자포자기적 발광을 가끔 하곤 했다. 그리고는 무섭다고 했다. 한번씩 죽음이 두려워 미칠 지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술상처가 나은 후 항암제 투여를 받게 하기 위하여 그를 종양내과로 전과(轉科)시켰다. 그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호스피스 병실로 옮겨갔다. 그 후에도 호스피스 병동에서 그를 가끔 만나곤 했다. 나를 볼 때면 ‘언제 눈까풀이 올라가느냐?’고 묻곤 했다. 한번씩 외래로 찾아와 신세타령을 하기도 했다.
“교수님, 제가 열여덟 살 근처부터 조폭 생활을 했어요. 부모님 속도 무척 썩혀드렸고 큰 집도 몇 번 들락날락 거렸어요. 그 바람에 아내도 도망가 버리고·····. 이제 맘 잡고 택시를 운전하며 딸하고 잘 살려고 했는데 이렇게 몹쓸 병에 걸렸으니·······.”
  처진 눈까풀은 아주 느린 속도로 호전되고 있었고, 나와 그와의 관계도 한 동안 그저 그런 상태로 지속되고 있었다. 그는 항암제를 투여받기 위하여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퇴원했다가는 다시 입원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빠진 머리카락으로 민둥해진 머리를 감추기 위하여 그는 항상 모자를 썼다. 푹 눌러 쓴 모자 차양 밑으로는 왼쪽 눈까풀이 아직 종이 반창고로 들어 올려져 있었다.
  그의 딸이 결혼한다고 양가 부모가 상견례 하던 날, 그는 역시 모자를 쓰고 처진 눈까풀을 종이 반창고로 들어 올리고 상견례 장에 갔다고 했다. 양가 부모와 딸과 사위가 될 사람이 서로 마주 앉아 인사한 던 때, 그는 민둥한 머리를 보이기 싫어 모자를 벗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눈가풀이라도 종이 반창고로 들어 올리지 않았더라면, 가발을 쓰고 폼이 나는 모습으로 참석할 수도 있지 않았나하고 수없이 생각되더란다. 그때, 문득 내가 그렇게 미워지더라고 했다. 수술하면 금방 처졌던 눈까풀이 들어 올려질 줄 알았는데····. 비록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호전 될 것이라고 말을 들은 것이 기억되었어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나와 자신한테 생기더란다. 그래서 그는 지금 나를 찾아 왔다고 했다.
  나는 진찰실 창문을 통해 ‘사랑의 쉼터’ 등나무를 바라보았다. 그와 나는 지금 의사와 환자라는 인연으로 묶여 치유라는 꽃을 피우기 위하여 서로 몸을 부대기며 피부가 긁히는 상처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서로 무척 쓰라리고 아린 아픔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 등나무가 서로 엉켜 붙어 상처를 만들면서 자라 올라가 향기로운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우리들도 지금 아픔을 느끼면서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서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몸을 돌렸다. 한동안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눈싸움, 그가 눈길을 내렸다. 그리고는 소리 없이 외래 진찰실을 나갔다.
그 일이 있은 후 약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가 다시 내 외래 진찰실로 찾아왔다. 종이 반창고 없이도 눈까풀은 거의 정상으로 올라가 있었다.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면서 한통의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에는 ‘지난 날 내 앞에서 보인 행동을 반성한다. 몹쓸 병이 자기한테 생겨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운명에 맡기겠다. 마지막으로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교수님을, 생을 마칠 때가지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겠다.’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화해를 했다. 내가 그를 치료하면서 무척 가슴 아파했다는 사실을 그가 인정을 해 주었고, 나도 그가 죽음을 두려워해서 그렇게 어린아이같이 투정을 부렸었다고 이해를 했다. 삶이란 결국 서로 부대기고, 상처를 만들고, 치유하고, 그리고 그런 아픔 후에 꽃을 피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진 눈까풀이 올라간 지 1년이 지나지 않아 그는 결국 영원한 쉼터로 떠나갔다. 갓 결혼한 딸과 사위가 그의 빈소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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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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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풀과 딱풀

허효남
  

   월말이면 습관처럼 편지를 보낸다. 고작해야 작은 문학회의 월례회 안내장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내게 번거롭고도 소중한 시간을 선물한다. 풀로 회원들의 주소를 하나하나 붙이다 보면 가끔씩은 받는 이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도 있고, 작품을 발표할 사람의 차례에는 새 글에 대한 기대로 벌써부터 가슴이 뛰기도 한다. 끈적끈적한 풀로 봉투를 모두 붙이고 나면 내 마음마저 끈끈하게 동인들 곁에 다가간 것 같아 이 일은 늘 귀찮으면서도 즐겁기 그지없다.
  
   어느 달엔가는 봉투를 붙이다가 풀이 다 되어버린 적도 있다. 슬리퍼를 신고 동네 문구점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하지만, 정작 풀은 사지도 못한 채 오히려 고민에 빠져 버렸다. 신랑각시처럼 나란히 붙은 물풀과 딱풀, 그 중 어느 것을 고를지 갈등이 된 까닭이다. 언제부터인가 뒷마무리가 깔끔한 딱풀이 등장하면서 물풀은 오래된 유물인 양 뒤 안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것은 잘못 누르면 흥청망청 갈지자의 취객이 될 뿐 아니라, 손에 쩍쩍 감기는 추태까지 부린다. 오히려 그런 칠칠맞고 세련되지 못한 느낌 때문인지 나는 이날 물풀을 집어 들었다. 모질지 못하고 무른 데다 수필 공부 한답시고 흐느적흐느적 감정을 흘려대는 꼴이 꼭 나와 닮았다고 여겨져서이다.
  
   물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딱풀 같은 사람도 존재한다. 천성이 우유부단해서인지 나는 누구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딱 부러지게 내 의사를 잘 드러내는 데 서툴다. 이런 감정의 흐리멍덩함으로 인해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어쩌면 이 흐리터분함 덕분에 결국 남편과의 만남도 이루어진 것 같다.

    매사에 끊고 맺음이 분명한 그이는 연애시절 경기도에서 주말마다 꽃을 사들고 대구로 오곤 했다. 먼 거리를 왕복하는 고마운 마음에 미안함과 호감이 섞여 만남을 이어갔고, 일 년 후에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그와 내가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이가 사들고 온 노란 후레지아처럼 결혼은 모든 것을 화사하게 밝혀 줄 거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물풀 같은 나와 딱풀을 닮은 그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물풀 같은 진밥을 좋아하고 그이는 딱풀 같은 고두밥을 즐긴다. 물컹물컹 씹혀서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죽밥을 내어놓으면, 그는 알갱이가 톡톡 톡 살아있는 밥이 먹고 싶다고 타박을 한다. 계량컵을 들고 부산을 떤 지 서너 달이 지나도 상 위에 진밥만 오르자, 결국 그것 때문에 우리는 다투고 말았다.
  
   물풀처럼 끈적끈적한 인정이 넘쳐흐르는 재래시장을 나는 좋아하지만, 딱풀처럼 잘 정돈되고 깨끗한 대형마트를 그는 더 선호한다. 계절마다 바뀌는 시장의 모습을 내가 넋 잃은 듯 바라보면, 그이는 볼멘소리로 꼭 한 마디씩 초 치는 말을 던지고 만다. 고등어 눈이 이렇게 흐리멍덩해서 어디 사 먹겠느냐, 국내산이라고 할머니들이 내놓은 콩은 모조리 중국산일 거라고 말이다. 그이의 청대로 다음번에는 대형마트에 가 보지만, 두 시간에 걸친 충동구매 끝에 양 손 무겁게 짐을 들고 돌아오자 또다시 말다툼을 하고 말았다.
    
   나는 물풀같이 물크러진 성격 탓에 따지기를 꺼려하지만 그는 딱풀처럼 딱따그르 말싸움도 서슴지 않는다. 식당에서 머리카락이 나오면 그럴 수도 있다며 내가 얼버무리는 데 반해, 그이는 단골식당의 복어찜에서 다른 때보다 고기가 적게 나온 날에는 어김없이 주방장과 다투고야 만다. 하물며 극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발견하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주변 사람의 눈총을 한꺼번에 받은 적도 있다.
  
   주말이면 나는 물풀 모양으로 끈질끈질한 이웃들의 모습이 정겨워 어머님과 전국노래자랑을 본다. 반면 그이는 젊은 사람이 뭐 그런 걸 보냐며 한마디 툭 던지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홀로 박자가 딱딱 떨어지는 최신가요 채널을 돌린다. 어머님과 둘이서 끈지근한 트로트를 흥얼거리면, 그는 혼자서 딱따개비 마냥 리듬 빠른 인기가요를 엉덩이춤까지 곁들여 신나게 따라 부른다.
  
   어쩌다 외출을 할 때도 그렇다. 나는 물풀처럼 가는 곳마다 감정을 철철 흘리고 다니고, 딱풀 같은 그이는 딴딴한 표정으로 내 감상이 멎기만을 기다린다. 붕어빵을 보면 나는 호떡 굽는 농아인 부부를 소재로 한 「침묵」이라는 수필이 떠올라 그에게 전해주고 싶어 하지만, 그이는 다른 곳보다 호떡이 비싸다는 한마디 말로 내 입을 막아 놓고서야 직성이 풀린다.
  
   문구점의 물풀과 딱풀은 나란히 붙어있어도 항상 선택되기 위해 자리다툼을 벌인다. 통상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딱풀에게 밀려날까 봐 물풀이 향기를 머금는가 하면, 고운 색으로 몸을 물들이고 반짝이를 바를 때도 있다. 이에 뒤질세라 딱풀은 더욱 세련된 디자인으로 겉옷을 갈아입고, 우둔한 물풀보다 자신이 현대적이라며 광고까지 한다. 기득권을 가지기 위해 둘은 가까워도 먼 채로, 또는 멀어도 가까운 채로 늘 거리를 두며 살아간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물풀은 딱풀이 처음부터 저렇진 않았다며 실망의 감정을 쏟아냈고, 딱풀은 물풀이 계속해서 축축 처진 물풀인 채로 살아가는 게 못마땅하다며 투덜댔다. 물풀은 딱풀이 되기를, 딱풀은 물풀로 살기를 원했기에 둘은 다투고 또 다투었다. 이기지 못하면 도태되어 버린다는 불안감에 기를 쓰고 맞서고, 양보해 버리면 서로의 자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오기에 악을 내어 달려들었다.
  
   물풀은 액체이고 딱풀은 고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액체와 고체의 다툼은 늘 칼로 물 베기며, 물로 칼베기에 불과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흐름을 가진 물풀은 본래 부드럽고 감성적이며, 형태가 있는 딱풀은 천성이 딴딴하고 지적이라는 것도 몰랐다. 늘 곁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물풀 공장과 딱풀 회사에서 납품되어 온 탓에 상대방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또다시 월례회 편지를 보내는 날이다. 겉봉투에 회원들의 주소를 붙이는 물풀 곁에, 어쩐 일인지 딱풀이 다가와서 봉투 시접을 마무리해 준다. 그간 종잇장처럼 찢어졌던 마음을 물풀과 딱풀이 어루만져 주자 한결 편해지기 시작했다. 또, 그때 처음으로 알 것만 같았다. 물풀과 딱풀은 생김새부터 시작해서 서로가 하나같이 다르다고 여겼지만, 무엇인가를 붙인다는 공통점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흔 아홉 개의 다른 점 가운데도 한 개의 같음이 존재하기에 숱한 허물은 모두 덮어질 수 있는 것인가. 비밀 같은 아흔 아홉 개의 문을 모두 열고 들어가면 그 끝에는 정녕 무엇이 있단 말인가. 오늘 같은 날에는 누군가 내게 그 비밀의 문을 열 수 있는 작은 열쇠라도 던져 주었으면 좋겠다. 물풀과 딱풀이 하나 될 수 있는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발췌 : http://cafe.daum.net/chojung45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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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인정이라

                                                                                                                           조    지    훈

제 돈 써가면서 제 술 안 먹어 준다고 화내는 것이 술뿐이요, 아무리 과장하고 거짓말해도 밉지 않은 것은 술 마시는 자랑뿐이다. 인정으로 주고 인정으로 받는 거라, 주고 받는 사람이 함께 인정에 희생이 된다. 흥으로 얘기하고 흥으로 듣기 때문에 얘기하고 듣는 사람이 모두 흥興 때문에 진위를 개의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마시고,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흥에 취하는 것’이 오도五道의 자랑이거니와, 그 많은 인정 속에 술로 해서 잊지 못하는 인정 가화佳話 두 가지를 지니고 있다.

17,8년 전 얘기다. 친구 한 사람이 관철동에 주인을 정하고 있어서 통행 금지 시간이 없는 그 때에도 우리를 가끔 붙잡아 재워 주곤 했다. 그 해 겨울 어느 날 몇 사람이 어울려 동아부인상회 맞은편 선술집으로부터 시작해서 '백수白水'니 '미도리'니 하는 우미관優美館 골목을 휩쓸고 내처 '백마白馬'니 '다이야몬드'니 하는 카페로 돌아다니며 밤 깊도록 마시고 나서 어찌된 셈인지 뿔뿔이 다 흩어지고 말았다.
 
대취한 나는 발걸음이 자연 관철동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 친구집 대문을 흔들고 들어가 그 친구가 쓰는 문간방에서 방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그냥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떠 보니 이건 어찌된 셈인가. 옆에 자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반백이 넘은 노인이었다. 방 안을 살펴보니 내가 노상 자곤 하던 친구의 방이 아니었다. 나는 쑥스럽고 놀랍고 해서 슬그머니 일어나 뺑소니를 치려던 참이었다. 늙은이라 나보다 먼저 잠이 깨어 있던 그는 완강히 나를 붙잡았다.

“여보 노형, 해장이나 하고 가야 피차 인사가 되지 않소?”

나는 그 때만 해도 아직 소심과 수줍음이 심할 때라 이 말 한 마디에 그만 취했을 때의 야성은 간 곳 없고 망연자실하여 한참을 서 있다가 그냥 주저앉았다. 그 노인은 내가 앉는 것을 보고는 일어나 주전자와 냄비를 들고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조금 뒤에 따끈하게 데운 술과 뜨거운 해장국 상을 앞에 놓고 이 노소老少 두 세대는 이내 담론이 풍발風發했다.
 
다시 술이 취한 뒤에사 알았거니와 내가 친구집인 줄 알고 문을 흔들 때 열어 준 사람도 자기였다는 것이다. 밤은 깊고 날은 몹시 추운데 낯모를 젊은이지만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서슴지 않고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앉혀 놓고 잠이 드는 내 꼴이 재미가 있더라는 것이다.
 
백발의 위의威儀에다가 무디지 않은 그의 인품이 엿보이는 이 노인은 자기도 젊었을 땐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것을 따뜻한 표정으로 말해 주었다. 그가 장성한 아들을 꺾었다는 것도 알았다. 무척 애주가이기 때문에 젊은 술꾼인 나의 행장을 미소로써 들으며 흥겨워했다.
 
사실은 날 재운 것이 길가에 쓰러져 자다가 어떻게 될까 하는 어버이 같은 염려도 있었지만 해장술을 한번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나는 그분의 성함도 모른다. 그 노인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술을 아는 이만이 서로 알아주는 그것이 바로 따뜻한 정임을 이 일로써 깨달았다.

또 하나는 바로 1·4후퇴 때 일이다. 1월 3일 밤 여덟시에 마포를 건너 수원에서 자고 거기서 기차를 탄 것이 7일 아침에야 대구에 내렸었다. 그 동안 사흘 밤을 우리는 기차 안에서 잤거니와 이 이야기는 어느 작은 역을 이른 아침에 기차가 닿았을 때 일어난 이야기다.
 
지붕에까지 만원이 된 피난열차가 플랫폼에 멈추자 재빠른 사람들은 모두 내려와 불을 피우고 밥을 짓느라고 부산하였다. 비꼬인 몸과 답답한 가슴을 풀어 보려고 비비면서 뛰어내려 나는 아주 희한히 반가운 일을 보았다. 어떤 여인이 플랫폼 한쪽 귀퉁이에 불을 피워 놓고 약주를 팔고 있지 않겠는가? 벌써 어떤 중년 신사가 한 잔 들이켜고 있었다.
 
나는 얼른 뛰어가서 그저 덮어놓고 한 사발 달래서 쭉 들이켰다(그 술맛의 쾌적했음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하리라). 안주로 찌개 둬 숟갈도 들었다. 아무래도 미진해서 한 사발만 더 달랬더니 어쩐 일인지 술 파는 부인은 웃기만 하고 술도 대답도 주지를 않았다. 그 때 둘째 잔을 마시고 있던 중년 신사는 술잔을 놓고 유심히 눈웃음을 지으며, “선생도 술을 무던히 좋아하시는구려…… 목 마르신 것 같아서 한 잔 권했지만 이 술은 파는 게 아니요, 부산까지 가는 동안에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한두 잔씩 하려고 가져온 겁니다.” 하면서 술을 더 못 주는 이유는 말하지 않고 손수건을 꺼내어 입을 닦으면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글쎄 자기 피난 짐은 아무것도 꾸릴 필요가 없다면서 약주 여섯 병만 묶어 들고 나섰잖아요. 호호호.” 입을 가리고 조용히 웃는 그 여인, 돈 안 받고 술을 팔던 그 여인은 물론 그 신사의 부인이었다.

술로써 오달悟達한 그 체관諦觀과 유유함이 이 혼란 중에 한층 의젓하고 멋이 있어서 부러웠다. 그는 기차가 이렇게 천천히 간다면 부산까지 가는 동안에 술이 모자랄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둘이 마주 쳐다보고 함께 웃었다.
 
그렇게 아끼는 술을 말없이 주는 인정, 이것이 술을 아는 마음이요 인생을 아는 마음이 아니냐. 파는 술인 줄 알고 당당히 손을 내민 내 행색은 지금도 고소苦笑를 불금不禁하거니와 낯모르는 사람에게 흔연히 한 잔 따라주던 그 부인도 인생의 진미를 체득한 것 같았다. 이것이 모두 술의 감화라고 생각하면 약간의 허물이 있다 해서 덮어놓고 술을 폄貶하는 폭력 의지는 아직 술을 모르는 탓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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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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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酒道유단有段

                                                                                                조    지    훈

술을 마시면 누구나 다 기고만장하여 영웅호걸이 되고 위인偉人 현사賢士도 안중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주정만 하면 다 주정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酒歷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 주정도 교양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이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주격酒格은 높아지지 않는다. 주도酒道에도 엄연히 단段이 있다는 말이다.

첫째, 술을 마신 연륜이 문제요, 둘째 같이 술을 마신 친구가 문제요, 셋째는 마신 기회가 문제며, 넷째 술을 마신 동기, 다섯째 술 버릇,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그 단段의 높이가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음주에는 무릇 열여덟의 계단이 있다.

1. 불주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 외주畏酒 :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3. 민주憫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 은주隱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 상주商酒 : 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6. 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7. 수주睡酒 :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8. 반주飯酒 : 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
9. 학주學酒 : 술의 진경眞境을 배우는 사람酒卒.
10. 애주愛酒 :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酒徒.
11. 기주嗜酒 :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酒客.
12. 탐주耽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酒豪.
13. 폭주暴酒 : 주도酒道를 수련하는 사람酒狂.
14. 장주長酒 : 주도 삼매에 든 사람酒仙.
15. 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酒賢.
16. 낙주樂酒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酒聖.
17. 관주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는 없는 사람酒宗.
18. 폐주廢酒·열반주涅磐酒 :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불주·외주·민주·은주는 술의 진경眞境·진미를 모르는 사람들이요, 상주·색주·수주·반주는 목적을 위하여 마시는 술이니 술의 진체眞諦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학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酒道 초급初級을 주고 주졸酒卒이란 칭호를 줄 수 있다. 반주는 2급이요, 차례로 내려가서 불주가 9급이니 그 이하는 척주斥酒 반주당反酒黨들이다.

애주·기주·탐주·폭주는 술의 진미·진경을 오달悟達한 사람이요, 장주·석주·낙주·관주는 술의 진미를 체득하고 다시 한 번 넘어서 임운자적任運自適하는 사람들이다. 애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酒道의 초단을 주고 주도酒徒란 칭호를 줄 수 있다. 기주가 2단이요, 차례로 올라가서 열반주涅磐酒가 9단으로 명인급名人級이다. 그 이상은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니 단段을 매길 수 없다.

그러나, 주도酒道의 단은 때와 곳을 따라, 그 질량의 조건에 따라 비약이 심하고 강등이 심하다. 다만 이 대강령만은 확호確乎한 것이니 유단有段의 실력을 얻자면 수업료가 기백만금이 들 것이요, 수행修行 연한이 또한 기십 년이 필요할 것이다(단, 천재는 비한比限에 부재不在이다).

요즘 바둑열이 왕성하여 도처에 기원이다. 주도열酒道熱은 그보다 훨씬 먼저인 태초 이래로 지금까지 쇠미한 적이 없지만 난세는 사도斯道마저 추락케 하여 질적 저하가 심하다.
내 비록 학주의 소졸小卒이지만 아마추어 주원酒院의 사범쯤은 능히 감당할 수 있건만 20년 정진에 겨우 초급으로 이미 몸은 관주觀酒의 경境에 있으니 돌돌口出口出, 인생사 한도 많음이어!

술 이야기를 써서 생기는 고료는 술 마시기 위한 주전酒錢을 삼는 것이 제격이다. 글 쓰기보다는 술 마시는 것이 훨씬 쉽고 글 쓰는 재미보다도 술 마시는 재미가 더 깊은 것을 깨달은 사람은 글이고 무엇이고 만사휴의다.

술 좋아하는 사람 쳐놓고 악인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술꾼이란 만사에 악착같이 달라붙지 않고 흔들거리기 때문이요, 그 때문에 모든 일에 야무지지 못하다. 음주 유단有段! 고단高段도 많지만 학주의 경境이 최고 경지라고 보는 나의 졸견은 내가 아직 세속의 망념을 다 씻어 버리지 못한 탓이다. 주도의 정견正見에서 보면 공리론적功利論的 경향이라 하리라. 천하의 호주好酒 동호자 제씨의 의견은 약하若何오.

조지훈   1920년 경북 영양 출생. 시인. 1939년 '문장'지로 등단. 자유문학상 등 수상. 고려대 교수 역임. 1968년 작고. 시집 '풀잎단장' '조지훈시선' '역사 앞에서' 등과 수필집 '돌의 미학', 그외 '조지훈전집'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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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어떻게 써야 하나>
                      - 최승범 -


수필은 어떻게 써야 하나. 딴은 그동안 몇몇 잡지사의 수필 청탁에도 응해왔고, 내 나름의 몇 권 수필집을 내놓기도 하였다. 또한 대학에서는 <수필론>의 강의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붓을 움직이자니 자신이 없다.
나의 두번째 수필집 『여운의 낙서』(1973)를 엮고 나서, 나는 다음과 같은 후기를 덧붙인 바 있었다.

수필의 정체·본령을 파고 들면 들수록 확연한 모가 잡히질 않는다. 그러면서도 수필에 대한 매력만은 잊을 수가 없다. 수필을 쓰고 싶은 일이나 수필을 알고 싶은 일이 매한가지다. 내 삶을 갈아(耕)가는 한, 수필(隨筆)하는 일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이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이지만, 수필에 대한 생각은 그제나 이제나 나아진 것이 없다. 오직, 그 동안 수필의 매력에 이끌려 오면서 생각한 바 몇 가지를 들어 이 글을 이어보고자 한다.

먼저 수필이란 무엇인가를 잠시 살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제 ‘수필이 문학이다’엔 누구나 이의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신문학’의 출발 이후, 특히 30년대 초반만 해도 문학인 간에 있어서조차 수필의 문학성을 놓고 회의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다음 임화(林和)의 글(『文學과 論理』, 1940)로도 짐작할 수 있다.

몇 해 전 어느 문예잡지의 좌담회에서 수필에 관한 이야기를 교환한 일이 있었다. 자세히 기억치는 못하나 이야기의 초점은 아마 수필도 과연 다른 문학, 이를테면 소설과 같이 하나의 독립한 장르로써 취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었던 듯싶다. 그때 이런 제목이 골라진 것은 수필이 차차 성황해가므로 문학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쓰는 데다가 다분의 정력을 경주해서 족한지 아니한지 하는 문제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그런데 당시로부터 벌써 5~6년의 세월이 지났고, 이즈음에 와서는 잡지에는 물론 신문에까지 수필이 여간 많이 실리는 것이 아니다.

임화가 이 이야기를 『문학과 논리』라는 그의 평론집에 수록하기 전 글로 쓴 것이 1938년이니까, 이로부터 5~6년 전이라면 30년대 초반이 된다. 오늘날과 같이 수필이 하나의 독립한 문학 양식으로써 자리를 차지하기까지에는 이무렵 김기림(金起林, 『수필을 위하여』, 1933)·김광섭(金珖燮, 『수필문학 소고』, 1934)·김진섭(金晋燮 『수필의 문학적 영역』, 1934) 등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이론과 실제 작품으로 우리의 수필문학 정립에 기여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수필의 문학적인 특성에 관하여 많은 논자들의 이야기가 있어 왔다. 나도 졸저 『한국수필문학연구』(1980)에서 다음 6가지를 들어 말한 바 있다.

①형식의 자유성 ②개성의 노출성 ③유우머와 위트성 ④문체와 품위성 ⑤제재의 다양성 ⑥주제의 암시성

등이 곧 그것이다. 여기서는 딱딱한 이야기를 피하고, 한 편의 수필로 수필의 이모저모를 말한 피천득(皮千得)의 「수필」에서 몇 가지를 들어 보고자 한다.

⑴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의 서두다. 이 서두의 멋지고도 은유적인 표현은 수필의 문학적인 한 특성을 말해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특성을 말해줌에 있어서도 수필적인 표현으로 하였다.
청자 연적의 저 은은하고도 귀품스러운 빛깔, 난초의 잎이 지닌 선(線)과 꽃이 지닌 방향(芳香), 학이 앉았을 때의 모양이나 비상할 때의 모습, 여인의 호리호리 청초하고 날렵한 몸맵시, 이 모두가 얼마나한 멋인가. 시적(詩的)인가.
수필은 이러한 시적인 멋을 풍겨주는 산문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⑵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과 시, 수필과 평론, 수필과 연구논문 등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황홀 찬란하게 번쩍거리는 비단에 시를 비길 수 있다면, 수필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비단’이라는 것이다. 흑백을 가리는 게 평론이라면, 수필은 그렇듯 싹독싹독 잘라 말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이 분간하고 ‘미소’를 띠게 한다는 것이다. 또 연구논문이란 새로운 주장이 나오면 퇴락하여 추해지기 쉬우나, 수필은 사람들의 마음에 한 번 젖으면 언제나 그 빛으로 남아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연구논문을 소설로 바꾸어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⑶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지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 때의 무우드(氣分)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의 제재는 우리의 눈에 와 닿는 무엇이거나 다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직 그 개성적인 독특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토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필은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라고도 볼 수 있을지니, 무엇을 그 속에 담던 그것은 오로지 필자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다.(김진섭)

수필의 대상은 사유(思惟)의 전영야(全領野)인 것이다.(김동리)

위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어느 면, 문학평론의 대상은 문학이어야 하듯, 시를 쓰려면 시적인 것을, 소설을 쓰려면 소설적인 것을, 희곡을 쓰려면 희곡적인 것을 제재로 선택해야 하는 괴로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수필을 쓰기 위하여 수필적인 제재를 따로 찾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무엇을 제재로 하여 말하든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의 심경이 전인생 위에 확충되어 있기만 하면, 그 말한 것은 반드시 문학적인 가치를 가져오기 마련인 것이다.
다시 『문학과 논리』에서의 인용이지만, 임화는 수필의 문학적인 가치를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참말 좋은 수필이란 일상의 지지한 사소사(些少事)를 사상의 높이에까지 고양하고 마치 거목의 하나하나의 잎사귀가 강하고 신선한 생명의 표적이듯이 일상사가 모두 작가가 가진 높은 사상, 순량(純良)한 모랄리티의 충만한 표현으로써의 가치를 품어야 한다.

여기서도 강조된 것은 수필에 있어서의 제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제재에 대한 작가의 안목이나 사상이라는 것이다.

⑷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가지 성격을 가져보아야 된다. 쉑스피어는 햄레트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은 촬스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수필의 가장 근본적인 특색의 하나를 말하였다. 수필은 한 마디로 말하여 ‘자기표백(自己表白)의 문학’ ‘personal-note’ ‘필자의 심적(心的) 나상(裸像)’이라고 한 것도 이 점을 단적으로 들어 말한 것이다.
서구에 있어서 수필의 원조라 일컬음을 받는 몽테뉴도 그의 『수필집』의 서문에서,

내가 그리는 것은 내 자신이다. 나의 결점까지도 나의 수필에서 읽혀질 것이다. 내 자신이 이 수필집의 내용이다.

고까지 말하였다. 일본의 한 영문학자도 수필의 이 특색을 강조하여,

수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건은 필자가 자기 자신의 개인적 인격적인 색채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데에 있다. 그 본질에서 말할 때, 기술(記述)도 아니며 설명도 아니요 논의(論議)도 아니다. 보도를 주안으로 하는 신문 기사가 비인격적(In-personol)으로 기자 그 사람의 개인적 주관적인 노오트를 피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수필은 극단적으로 작자의 자아(自我)를 확대하고 과장하여 씌어진 것으로, 그 흥미는 전혀 personol-note인 점에 있다.

고 하였다. 모두 같은 맥락의 이야기들이다.

⑸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이는 수필의 형식이 지닌 특성을 암시한 것이라고 본다. 흔히 수필의 형식을 말하여,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징이다.(金珖燮)
‘붓이 가는 대로’의 형식으로써 산문화한 것이 수필의 일반적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고정된 형식에 맞추어서 쓰는 것이 아니고 가장 자유롭게, 시나 소설과 같은 특별한 형식의 제한이 없이, 붓이 가는 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다.(韓黑鷗)

고 하였다. 물론 수필의 형식은 이러한 것이다라고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본보기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의 연적에 똑같이 생긴 꽃잎들을 정연히 놓아가는 일이란 어떠한 형식만을 그대로 좇는 일이 된다. 이것은 어쩌면 기계적으로 되풀이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로 한 편의 수필을 이룰 수 있다면,

똑같이 생긴 꽃잎들을 정연히 놓아가는 일

을 수필의 형식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필은 그러한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정연히 꽃잎틀을 놓아가다가,

그 중의 꽃잎 하나를 약간 옆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일

정연한 균형 속에 있는 꼬부라진 꽃잎이면서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

에 수필의 멋은 있다는 이야기다. 굳이 수필의 형식을 들라면, 이 멋을 부릴 수 있는 ‘파격’일 수밖에 없다. 이 ‘파격’은 파격을 짓는 사람, 또 파격을 짓는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필의 형식이라면 일정한 것이 없는 ‘불구격투(不拘格套)’의 자유성을 지닌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상 피천득의 「수필」에서 수필이 지녀야 할, 문학적인 특성의 몇 가지를 들어 보았다. 자못 시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의 「수필」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수필이란, 문학의 다른 양식과 달리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있어야 하리라는 것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수필을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는 이 생각으로부터 각자가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다.
사실 문학이란 이론만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문학 뿐이랴. 미술도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론에 밝다고 꼭 좋은 작품은 내놓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흔히 무슨무슨 작법(作法)같은 것을 흔히 말하고, 그러한 것에 관한 책들도 내놓고 있다.
나도 졸저 『수필 ABC』(1965)에서 ‘수필 쓰는 법’의 한 장(章)을 마련하여 다음 몇 가지를 들어 말한 바 있다.

①자기의 렌즈를 갖자 ②일단의 구상은 필요하다. ③서두에서부터 관심을 이끌도록 하자 ④’누에가 실을 뽑듯’ 그렇게 써 나가자 ⑤품위있는 글이 되도록 하자 ⑥길이는 되도록 3천자 내외로 하자

는 것들이었다. 이제 보면, 여기저기서 줏어다가 열거한 것도 같고, 또 꼭 수필만이랴 다른 문학에도 마찬가지의 이야기지 않겠느냐는 항변도 있지만, 그때 내 나름으로는, 수필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수필을 써 나가기 전에 먼저 가져야 할 마음가짐으로 이러한 여섯 가지를 들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도 수필을 쓰고자 한 사람이면 이만한 유의점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예문을 들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

⑴ 나는 이 바위 앞에서 바위의 내력을 상상해 본다. 태초에 꿈틀거리던 지심의 불길에서 맹렬한 폭음과 함께 퉁겨져 나온 이 바위는 비록 겉은 식고 굳었지만 그 속은 아직도 사나운 의욕이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라고 .
그보다도 처음 놓여진 그 자리 그대로 앉아 풍우상설(風雨霜雪)에 낡아가는 그 자세가 그지없이 높이 보였다. 바위도 놓여진 자리에 따라 사상이 한결같지 않다. 이 각박한 불모(不毛)의 미가 또한 나에게 인상적이었다.

이는 조지훈(趙芝薰)의 「돌의 미학」 중 한 대문이다. 누구나 ‘바위’에서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훈의 ‘렌즈’에 비친 바위다. 지훈의 ‘렌즈’는 지훈의 눈이요 안목(眼目)이다.
스위스 조각가 쟈코메티는,

눈에 보이는 대로를 그린다.

고 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나 조각은 사진기의 렌즈에 비친 어떠한 풍경도 어떠한 사람도 아니었다. 쟈코메티의 눈이 아니고는 볼 수 없는 풍경이요 사람이 그의 작품에는 담겨지고 조소되었다.
「돌의 미학」은 지훈의 안목이 아니고는 쓰여질 수 없는 수필이다. 지훈은 또 다른 한 편의 글에서,

아안(雅眼)으로 속(俗)을 관(觀)하면 속도 아가 되고, 속안(俗眼)으로 아를 관하면 아도 곧 속이다.

이 말을 한 바 있다.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이 ‘아안’이 필요하다. 아안은 누구에게나 일조일석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부단한 ‘눈의 훈련’을 통해서 비로소 가질 수 있는 ‘렌즈’인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명구,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설흔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다.

는 말도 그만한 세상살이·사람살이에서 ‘눈의 훈련’을 거쳐온 사람만이 수필다운 수필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서 좋을 것이다.
알렉산더 스미스의 말,

수필을 쓰는 사람은 천하가 다 아는 바람둥이, 무슨 일이고 못할 게 없다. 민감한 귀와 눈, 흔히 있는 사물에서 무한한 암시를 식별하는 능력, 생각에 잠기는 명상적인 기질, 이 모든 것만 있으면, 수필가로서 수필 쓰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에서 수필가의 요건으로 든 ‘귀와 눈’ ’능력’ ’기질’이란 것도 따져보면 ‘눈의 훈련’을 통해 가질 수 있는 높은 ‘안목’을 이야기한 것이 된다.
수필을 쓰고자 하면, 평소 사물에 대한 높고도 우아한 자기 안목부터 부단히 닦아 지녀야 할 것이다.

⑵ 붓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 수필이라고들 하지만, 막상 수필을 많이 써 본 분이면 이런 안이한 수필작법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듯이 그대로 써 내려가면 된다는 말도 수긍이 안 간다. 글자로 표현된다는 것은 작품을 뜻하는 것이다. 작품이란 소재와 주제가 겸비되어야 하고 또 매끈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형식과 내용이 조화되고 통일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수필도 하나의 작품일진대 이런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것을 생각나는 대로 말하듯이 붓가는 대로 써버릴 수는 없다. 물론 쓸 수는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예술적인 작품으로 승화될 수는 없다. 낙서가 아니면 붓장난의 소산일 뿐이다.

이는 장덕순(張德順)의 수필론 「힘들게 써서 쉽게 읽혀져야」의 서두 부분이다. 흔히, 수필의 글자 풀이, ‘따를 隋, 붓 筆에서 붓가는 대로 쓰여진 글’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기가 쉽다. 수필을 쓴 사람의 입장에서는, ‘붓가는 대로 마음 내킨 대로 쓴 글인데’의 겸사로 수필을 말할 수 있을지라도(사실 수필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의 의도는 그러한 것이었다), 문학인 수필을 놓고의 이러한 생각은 금물이다.
수필의 형식이 자유롭다고 해서 막연히 붓을 들고 원고지 앞에 잠깐 써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수필을 위해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작가에 따라서는 대충의 구상만으로 원고지를 메꾸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대충의 구상만으로 붓을 잡았고, 써나가는 동안에 그 구상을 다져 갔다고도 한다. 그런가하면 도스토엡스키는 『죄와 벌』의 구상에 3년이 걸리고 몇 권의 노오트가 필요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길이에 있어서는 소설에 비할 바 없는 짧은 길이의 수필이래도 무엇을 내용으로 어떻게 엮어나갈 것인가, 주제·제재·줄거리의 구상은 필요하다.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의 ‘균형’과 ‘파격’을 생각하는 것도 구상에 포함되는 일이다. 수필의 초보자인 경우, 이러한 구상은 더욱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

⑶ 문장의 첫 귀절이라면, 글을 쓰는 이는 누구든지 경험한 일이겠지만 글에 있어서 최초의 1귀 같이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최초의 1귀, 이것을 얻기 위해서 말하자면 모든 문장가의 노심초사는 자고로 퍽 큰 듯 보이고 그만큼 이 1귀는 문장의 가치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문장을 있게 만드는데 흰 원고지의 유혹도 확실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어데서 졸연히 때늦이 솟아 나왔는지 모르는 이최초의 1장 같이 문장인에게 창조의 정력을 일시에 제공하므로 해서 팔면치구(八面馳驅)를 하게 하는 요소도 없을 것이니, 백 사람의 문장가를 붙들고 물어본다면 그 중에 여든은 가로되 이 최초의 1장이 얼마나 고난에 찬 최대최시(最大最始)의 문장적 위기를 의미하는 동시에 그의 모든 준비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지도자임을 말하리라.

이는 김진섭의 「문장의 도」의 한 대문이다. 여기 ‘문장’을 수필로 바꾸어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수필이 짧은 글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서두의 몇 줄은 독자의 흥미와 긴장을 이끌기 위해서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계용묵(桂鎔默)은 그의 수필 「침묵의 변」에서,

이 서두 1행 때문에 살이 깎인다. 8·15 이후 내가 들었던 붓을 놓고 침묵을 지키기 거의 이태이거니와 구상까지 다 되어 있는 것도 이 서두를 내지 못해 머리 속에서 그대로 썩어 나는 게 4,5개나 된다.

고 했다. 이는 물론 소설의 경우이지만 서두가 중요하다고 하여 지나치게 거의 집착하다 보면, 이처럼 아예 글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여, 이태준(李泰俊)은 서두를 쓰는 요령으로, ‘①너무 덤비지 말 것이다 ②너무 긴장하지 말 것이다 ③기(奇)히 하려 하지 말고 평범하려 하면 된다’의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다.
한 편 수필의 구상이 이루어졌으면, 주제나 제재, 또는 줄거리를 암시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그 서두를 시작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줄거리에서 서두를 이끌어 내고자 할 때에는 인물·시간·배경에 관한 말로 첫줄을 시작하는 것도 쉽게 풀어나가는 방법의 하나가 되겠다.

⑷ ‘최선의 책이란 그것을 읽는 사람이 나도 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책이다.’ 이것은 빠스깔의 말이다. 사실 그렇다.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다면 나도 쓸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책, 그것이 정말 잘 쓴 책이다. 얘기도 그렇다. 정말 훌륭한 이야기란 쉬운 말로 쉽게 하면서 그 속에 교훈과 생명이 배어 있는 말이다. 들어서 알 수 없는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 자신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대학에서 강의를 해보면 그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완전히 내 것이 된 지식일수록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내가 아직 소화하지 못한 지식일수록 어려운 말로 어렵게 얘기하게 된다. 쉬운 말로 할 수 없으니까 어려운 말로 캄프라쥬하는 것이다. 문장의 호흡도 얘기의 호흡과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병욱(安秉煜)의 『문장도』에서 옮긴 것이다. 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써야 하고, 읽는 사람은 쉽게 느끼고 젖을 수 있어야 한다.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라고 한 피천득의 인용은 알렉산더 스미스의 『On the writing of essays』에 있는 말이다. 누에가 토사구(吐絲口)로부터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광경을 보면 지극히 수월스럽다.
이만한 ‘자연적인 유로(流路)’를 위해서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공정이 필요하다. 누에가 섶에 오르자면 넉 잠을 자고 다섯 돌을 맞는 탈바꿈이 있어야 한다.
한 편의 수필을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쓰자면 먼저 아는 것이 많아야 할 것이다. 수필가에게 폭넓은 견문과 박학다식, 그리고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것도 이에 말미암은 것이다.

⑸ 꽃가게 앞에서 고전(古典)과 양장(洋裝)이 가지런히 발을 멈춘다. 소담한 꽃묶음을 한 아름씩 안으며 맑고 아름답기가 첫애기를 기르는 산모와 같다.

이는 이동주(李東柱)의 「꽃」의 서두다. 정갈한 표현의 멋을 느끼게 한다. 비유가 시적이다. ‘고전’과 ‘양장’은 한복을 입은 여인과 양장 차림의 여인을 일컬음이다. 「꽃」의 중간에는,

사람도 그늘에 살면 생선처럼 상하기 마련인데 제마다 어둔 방, 이 한묶음 꽃을 고작 은촛대에 불을 켜듯 환히 밝히면 때로 후기(嗅氣)와 음습(陰濕)을 가시는 분향(焚香)일 수도 있는 일.

의 일절도 있다. 앞의 두 여인의 신분과 이들이 꽃묶음을 사든 까닭도 암시되어 있다.
「꽃」의 하반부(轉)에 가면,

취안(醉眼)으로 꽃을 대한 사나이란 죽순밭을 어질르는 악동(惡童)과 같이 심사가 사나와 화즙(花汁)으로 마구 문질러야 몸이 풀린다고.

의 구절이 있다. 이어서 이른바 홍등가에서 들을 수 있는 대화가 나오고,

비린 외어(外語)가 어색지 않다. 하룻밤 청춘이 박리로 팔리는데, 흥정에 따라 에누리가 있고 악착같은 거간이 붙는다. 정희와 희순이는 간간 나들이를 한다. 때로 꽃가게 앞에서 가지런히 발을 멈춘다.

로, 「꽃」의 결말이 맺어진다. 사람살이에 있어서도 그늘진 곳의 추한 이야긴데, 「꽃」을 읽으면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없다. 조촐하고 정갈한 글발은 오히려 멋까지를 느끼게 한다.
수필은 읽어서 멋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멋은 글발에 배어 있는 유모어나 위트로 드러난다. 수필 쓰는 이는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읽는이에게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하고 삼박한 재치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할 일이다.
다음은 수필의 길이에 관한 문제다. 나는 『수필 ABC』에서 ‘길이는 되도록 3천자 내외로 하자’고 한 바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수필을 써보고자 하는 초보자를 위해서 한 말이었다.
수필의 길이는 참치부제하다. 마해송(馬海松)의 「편편상(片片想)」과 같은 원고지 한두장의 짧은 길이의 것일 수도 있고, 이은상(李殷相)의 「무상(無常)」이나 김태길(金泰吉)의 「흐르지 않는 세월」처럼 한 권의 책이 되는 길이의 것일 수도있다.
수필을 쓰고자 할 때 이상 몇 가지를 유의하였으면 싶다는 것으로 들어 보았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글이란 이론만으로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직접 써보면서 스스로 글 쓰는 법을 터득하는 길이 상책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점에서, 수필 쓰는 법이 뭐네눠네 하는 너절한 이야기보다도 『후산시화(後山詩話)』에 나오는 구양수(歐陽脩)의 말,

-간다(看多-多讀)
-고다(做多-多作)
-상량다(商量多-多思)

로 이 글의 결말을 대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구양수는 문장에 익숙해지는 요령으로 이 3가지를 들었지만, 수필도 먼저 문장이 되어야 하느니만큼, 이 3가지는 바로 수필에 익숙해지는 요령으로 보아 다를 것이 없겠다.◑

◇최승범 문학박사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예총 전북지부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蘭緣記』, 『韓國隨筆文學硏究』, 『바람처럼 구름처럼』 , 『무얼 생각하시는가』, 『풍미산책』, 『거울』, 『蘭 앞에서』, 『3분읽고 2분생각하고』, 『朝鮮陶工을 생각한다』 등이 있다. 정운시조상, 현대시인상, 학농시가상, 가람시조문학상, 황산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69년 「전묵문학」을 창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전북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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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랑의 쉼터 4050
글쓴이 : 정소피아 원글보기
메모 :

계간 「수필界」 ‘수필신인문학상’ 작품공모


응모 자격 : 수필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성인 남녀

 

응모 원고:  수필 3편 이상(원고지 15매 내외)

 

원고접수 및 마감:   수시


보낼 곳 1)이메일: jlee5059@hanmail.net

        2)우  편: 서울 구로구 온수동 47-1 청곡빌딩 510호 해드림출판사

                  (우:152-120)


문의: 02-2612-5552


발표: 해당 계절호(사전 개별통보함)


기타

.응모작품은 반환하지 않음

.작품을 보낼 경우 성명/주소/연락처 반드시 기입

.응모자의 나이, 사회적 지위, 직업, 학력 기타 약력 등은 기재하지 말 것

.당선작 없을 수 있음

.해당 호에서 신인문학상 작품 발표로 등단은 완료되며(기성문인으로 대우) 별도 신인문학상 시상식은 없음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메모 :

동화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 동화창작법 (1)

선안나 

머리말 

당신도 동화작가가 될 수 있다.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고, 그 꿈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어떤 작가들도 처음에는 초보였다.
문학의 길에는 왕도가 없으며, 홀로 가야만 하는 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혼자 걸어갈 준비가 될 때까지는 경험자의 조언이 도움이 된다.
필자는 지난 20년간 동화를 쓰고 아동문학을 가르치며, 동화작가의 길을 꿈꾸었던 수백 명을 만났다.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원했던 길을 걷고 있고, 아주 유명해진 작가도 여럿 있다. 물론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때의 꿈에서 멀어진 길을 걷고 있지만 말이다.
그들의 행로를 지켜보면서 깨달은 바로는, 누군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소망의 간절함과 끈질긴 노력, 그리고 집중력이라는 거다. 반짝이는 재기보다 우직한 고집이 작가가 되려는 이에게는 더욱 필요하다.
당신은 진심으로 문학의 길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꿈을 향해 걷기 시작하라. 서두르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걷다보면 원하는 그 자리에 언젠가 서 있게 된다. 믿어도 좋다.
하지만 이 점을 명심하라.
어떤 작가와 이론가가 쓴 창작법도 문학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창작법이란 같은 방향의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들이 그려놓은 나름의 지도일 뿐이며, 가고 싶은 곳으로 당신을 데려가는 일은 오직 스스로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참, 그리고 그 길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니, 원하는 곳으로 쉽고 빠르게 가려는 마음도 일찌감치 접어두는 것을 잊지 마시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창작의 괴로움과 기쁨을 맛보러 떠나보자.

1. 동화의 독자는 누구일까?

책은 읽히기 위해 쓴다. 많이 읽힌다고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독자가 외면하면 보람이 없다. 따라서 동화 창작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독자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독자를 기대하고 상정하는가에 따라 글쓰기의 자세와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동화의 독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어린이들이다.
그런데 어른들 또한 동화의 막강한 독자이기도 하다. 아동잡지 및 아동도서 출판사 편집자, 어린이 책 비평가, 동료작가, 연구자, 언론, 도서관 사서, 학부모, 선생님, 서점 관계자, 논술학원 및 독서지도사, 어린이 책 독서 토론모임……. 이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책을 선택하며 구매한다.
또 늘어나는 어린이 청소년 도서관이라든지,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지는 우수 작품 지원 및 도서 구입 제도 등 체계적 시스템도 동화의 수요를 일정하게 보장한다. 뿐만 아니라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한국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이처럼 동화의 독자는 도처에 있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연령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당신의 책을 누가 사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독자의 사랑을 받는 동화책은 얼마든지 많다. 프로다운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인다면 인세 수입 또한 상당할 것이다.
허황한 장밋빛 비전을 제시하려는 것으로 보이는가?
물론 실제 현실은 꽤 골치가 아프다. 독자 대중이 반드시 좋은 책을 알아보는 것도 아니며, 수많은 개인과 단체들은 저마다 어린이 책에 영향력을 발휘하려 한다. 저 막강한 어른 독자들은 동화작가의 지지자나 후원자일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방해꾼이거나 꽉 막힌 검열자일 수도 있다. 한국의 출판과 마케팅, 유통 구조는 몹시 열악하며, 인세 수입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볼 때 한국에서 동화를 쓰기에 지금처럼 여건이 좋았던 일찍이 없었다는 얘기다.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여건도 상대적으로 나아졌고, 어린이와 그들 문화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근대 창작 문학이 발생한 이후로 줄곧 ‘애들이나 보는’ 주변문학쯤으로 취급되던 동화 장르가, 이제는 주목과 선망을 받고 있다. 더구나 사회가 진화할수록 어린이 관련 문화는 더욱 섬세하고 다채롭게 발전해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당신이 동화작가를 꿈꾼다면, 단단한 각오와 함께 보다 큰 꿈과 포부를 가져도 좋다. 당신이 어떤 작가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당신 소망의 크기와 노력과 집중력이 미래의 모습을 만든다.
이쯤에서 다시 정리하자.
당신은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동화를 써야 할까?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어린이여야 한다.
어른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어른의 눈치를 살피는 글쓰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그런 실수를 기꺼이 저지른다. ‘IQ동화’ ‘EQ동화’ ‘성교육동화’ ‘논술동화’ 등등, 그 시대 소비자의 관심사에 영합하는 출판물이 넘치도록 있어왔다. '역사’ ‘환경’ ‘빈부격차’ 근래의 ‘판타지’ 열풍까지, 유행적 소재를 뒤쫓는 작가들도 넘치도록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필자 역시 어린이 뒤에 서 있는 어른들의 그림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맛? 기득권자나 기존 이데올로기로터 자유로워지려면 인식과 경험, 그리고 내공이 필요한 법! 그러나 출발하는 여러분은 보다 빨리, 과감히, 진실을 말하기 바란다.
타인의 이데올로기나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들에 신경 쓰지 말고, 정직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시라.
동화작가로서 당신은 두 가지만 잊지 않으면 된다.
어린이가 자기 것이라고 여기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글을 쓰는 것. 정말 좋은 동화책은 어른 독자도 틀림없이 좋아할 테니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청소년이나 어른을 위한 동화도 물론 있어야 하겠다. 그러나 동화를 처음 쓰고자 하면서 어린이를 배제한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태도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현실적인 힘과 권력을 가진 어른들의 문화는 상대적으로 이미 풍성하다. 어린이 몫으로 여겨져 온 동화까지 전유하여 어른문화의 다채로움을 더하기보다, 자기 표현력을 갖지 못한 어린이들의 침묵에 귀 기울임이 옳다.
위 보다는 아래를,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을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길과 마음- 공평무사를 지향하고 생명력을 북돋우는 정신에서 동화가 나온다. 어린이의 동화에 이러한 ‘동화다움’의 원형이 있다. 이러한 장르적 속성을 충분히 체득한 뒤, ‘붓 가는 대로’ 자유로운 글쓰기를 해도 때는 늦지 않다.

2. 쓰기 전에 먼저 읽자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글쓰기 안내서는 입을 모아 말한다.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써라.”
진부하지만, 필자 역시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두말이 필요 없는 진리기 때문이다. 더러 예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글쓰기는 책 읽기에 자발적으로 몰입한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 책 자체가 좋아서 읽고 또 읽다보면 문학적 감수성과 소양이 쌓이고, 내면에 쌓인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스런 욕구가 들기 마련이다.
동화책이 좋아서 읽고 또 읽다보니 동화를 쓰고 싶어진 경우인가? 그렇다면 곧바로 글쓰기를 시작하라. 그게 아니라 단지 창작 욕구 때문이라면(혹은 다른 이유 때문이더라도) 먼저 동화책을 충분히 읽는 게 좋겠다. 왜냐면 동화에는 고유한 호흡과 리듬, 어법과 세계관이 있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설명해도 알아듣기 힘들기 때문이다. 동화를 읽고 또 읽으며 스스로 자연스럽세 느껴보는 게 제일 낫다.
소설이나 드라마 습작을 충분히 했다고 동화를 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품 구성력이나 형상화 능력이 탄탄해질 수는 있겠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동화는 어린이처럼 바라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어린이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단순 소박한 형태로 인간과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은, 다른 장르의 습작으로 배울 수 없다.
그런데 주의할 점 한 가지.
눈에 띄는 아무 동화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지 말 것! 잘못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겨우 이 정도야? 별 것 아니잖아!”
이렇게 생각하게 하는 동화가 너무 많다. 잘못하면 동화는 대충 써도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동화작가 되기가 너무 쉽고 책 내기도 너무 쉽다. 동화작가를 꿈꾸는 이에게는 좁은 문으로만 보일 수 있겠으나, 객관적으로 평가하건대 사실이 그러하다.
그러니 좋은 동화책을 애써 찾아 읽도록 하라. 외국동화를 권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지만(이미 번역서가 지나치게 많이 읽히므로), 사고와 상상력의 자유로움 면에서 한국 동화는 아직 한계가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세계의 어린이 독자가 검증한’ 좋은 동화책을 읽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한국의 역사 현실 속에서 싹트고 자란 우리 동화를 굳이 찾아 읽어야 한다. 남다른 근대사를 한반도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살아냈고 작가들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눈 여겨 보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작품보다 말과 의식을 앞세우는 일은 삼가야겠으나, 내가 누구이고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작가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꼭 필요하다. 좋은 동화책을 정선하여 충분히 읽고 어떤 내적 기준을 갖게 되면, 그때는 다양한 수준의 동화를 섭렵해도 상관없겠다. 작품에 대한 안목과 비판력이 생기면 취할 점과 버릴 점을 스스로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 동화책은 언제까지 읽어야 할까?
순수한 독자로서 동화 읽기는 시와 때를 가리지 않아도 좋겠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글을 쓰는 데 무엇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동화책을 읽고 나면, ‘글쓰기’를 생활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남들의 명작을 읽기보다 어눌하고 서툴망정 자기 생각을 자기 말로 표현하는 훈련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습작 틈틈이 동화책을 읽는 일은 여전히 자극이 되고 도움이 된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소화해 냈군.” “이 작가의 문장은 리듬감이 넘치는 걸. 나도 한번 따라 해봐야지.” “묘사가 너무 많아. 지루해. 나라면 대화문으로 처리했을 텐데.” 등, 당신은 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작품에 집중하게 되고, 어떤 의견을 갖게 될 것이다.
순수한 독자였을 때와는 다르게, 당신은 ‘작가의 눈’을 새로이 갖게 된 것이다. 

 

 3. 꾸준히 많이 써라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
에디슨의 말이다.
그러나 1%의 영감도 99% 노력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언제라도 받아 적을 준비가
되어 있고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 소용이 된다.
글쓰기는 어느 정도 기능이다. 집중하고 노력하는 만큼 능력이 향상된다.
이 시대 최고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인 조정래의 경우도 대학 시절 선생으로부터 ‘재능이 없으니 글을 쓸 생각도 하지 말라’는 요지의 모진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실망하고 포기하기는커녕 ‘과연 그런지 두고 보자’는 오기를 품고 지독하게 노력했고,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긋는 뛰어난 작품들을 내놓았다. 그의 책들은 순수문학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동시에 대중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어, 10권 분량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에 이어 12권 분량의 <아리랑>도 잇달아 밀리언셀러를 기록하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소모적 일상을 철저히 거부하고 창작에 시간과 노력을 전적으로 쏟아 붓는 엄청난 단절과 고집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해를 삼킨 아이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공모에 당선된 김기정 작가의 경우, 총 10편의 단편 동화마다 각각 2-3편의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고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작품을 얻기 위해,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심혈을 기울여 다른 기법으로 써보았던 것이다. 작가의 또 다른 단편 동화인 <두껍선생님>의 경우에는, ‘시점’ ‘공간’ ‘시간대’ ‘주제의 일관성’ 등의 기준으로 무려 7개의 버전까지 있단다. 작가는 그 가운데 한편을 골라 계간잡지에 발표하였으나, 그나마 미흡하게 느껴져 출판을 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1년 넘게 묵혀두고 있다. 가벼운 글쓰기와 조급한 출판이 주류를 이루는 아동문학 풍토에서, 최선의 작품을 위해 글쓰기의 고된 노역을 몇 번이고 감수하는 우직한 작가 정신과 끈기는 습작생뿐 아니라 동화작가들의 귀감이 된다. 출판에 열심인 작가는 얼마든지 많지만, 더 깊이 뿌리 내리고 충분히 열매를 익혀 내기 위해 오래 고심하고 진통하는 작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열심히만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최고의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꾸준히 노력하면 ‘괜찮은’ 동화작가가 될 수 있고, 더욱 간절히 노력하면 ‘좋은’ 동화작가가 될 수는 있다고 본다. 혹시 당신에게 작가적 자질이 있다면, 어쩌면 ‘훌륭한’ 동화작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어진 능력이 어떠하든, 일단 문학의 길을 택했다면 농사꾼처럼 우직하게 글 농사를 지어야 한다. 노력한다고 글이 꼭 써지는 것도 아니고, 쓴 글이라고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종일, 또는 일주일 내내 글을 쓰려고 노력해도 단 한 줄도 쓰지 못할 때도 있고, 몇 달을 힘들여 썼지만 휴지통에 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머리를 식히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 기간이 너무 오래 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 다작보다 좋은 작품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써야 좋은 작품도 내놓을 수 있다.
단, 한 가지 원칙은 세우시라. 많이 쓰되, 항상 자신이 앞서 쓴 글을 넘어서는 작품을 쓰고자 ‘노력’할 것!


4. 창작을 위한 첫 걸음

1) 혼자 쓸까, 창작교실에 나갈까?

→ 문학은 원래 혼자 하는 것이다. 독자가 아직 성장과 변화의 과정에 있기에 동화 창작은 훨씬 더 까다로운 점이 많지만, 창작법을 굳이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화책을 즐기다 보면 책이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필요하면 동화작법이나 아동문학 이론서를 참고하면 된다.
<말괄량이 삐삐>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나, <해리포터>를 쓴 조앤 K 롤링이 동화작법을 따로 배우지 않았듯, <꿈을 찍는 사진관>의 강소천이나 <몽실언니>의 권정생 등 한국의 동화작가들도 혼자 동화를 썼다. 사실 90년대 이전의 한국 동화작가들은 다 그렇게 동화를 썼고, 신춘문예나 잡지에 투고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작가로 성장해갔다. 지금은 시대가 훨씬 변화무쌍해졌
지만, 그렇다고 창작 원리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당신도 혼자 얼마든지 동화를 쓸 수 있다.

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창작교실을 이용해도 좋다. 자기 글에 대한 객관적 평을 받을 수 있고, 동료끼리 문학적 자극을 주고받으며 창작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필자의 경우도 문학사숙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습작을 시작하였는데, 그 이전에는 창작공부를 심도 있게 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1년 동안의 강도 높은 수련이 큰 도움이 되었다. 비평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었고, 문학이 내 길이라는 확신도 얻을 수 있었다.
동화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든 통신 매체를 통해 지도를 받든, 현대의 다양한 문화를 필요할 때 이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두 가지는 꼭 염두에 두시라.
첫째, 최상의 창작 프로그램을 신중하게 골라 참여할 것. 장인의 마인드로부터 상인의 마인드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둘째 각종 문학 교육 섭렵에 긴 시간 보내지 말 것. 창작 교실에는 장점뿐 아니라 폐해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문학은 자기 내부의 광맥을 파는 일이지 바깥에서 쇼핑하듯 구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창작할 시간, 어떻게 낼까?

막연히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보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지키는 게 좋다. 프로 작가는 필요할 때 알맞은 매수와 내용의 글을 언제라도 써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을 기르려면 양적인 노력부터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몇 가지 원칙을 제안하자면 이렇다.

⁍ 하루도 빠짐없이 쓴다.

“글을 쓰지 않은 날은 밥도 먹지 마시오.”
습작을 시작했을 때 선생님이 단호히 하신 말씀이다. 그 정도 각오를 하라는 비유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진짜로 밥을 굶으란다. 자신과 한 약속이 있으니까, 사정이 있는 날도 밥을 먹기 위해서라도 다만 ?? 줄의 글이라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날마다 쓴다는 원칙과 함께 일주일, 한 달, 백일 단위 등으로 목표 매수와 편수를 정하는 것이 좋다. 일주일이나 열흘에 1편, 최소한 한 달에 2편정도 단편 동화를 꼭 완성하도록 한다. 매수에 관계없이. 분량이 길든 짧든, 각 작품은 주어진 분량 안에서 문학으로서의 완성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 문장 한 문장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작품을 완결시키기가 어렵다. 정해진 기간 안에 일정한 분량을 써내는 능력도 중요하므로, 처음에는 자신이 지킬 수 있는 만큼 매수와 편수를 정하고 기간 내에 써낸다.
작품의 완성도는 계속 새로운 글을 써나가며, 또 여러 번 고치는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추구해도 늦지 않다.

* 날마다 두 시간 이상 쓴다.
창작에 순수하게 집중하는 시간이 최소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두 시간 정도는 규칙적으로 낼 필요가 있다. 컴퓨터 앞에 앉는다고 글이 바로 써지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아이디어를 굴려보거나 진행 중이던 글을 읽으면서 감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홀로 ‘한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은 책상 앞을 떠날 핑계거리를 자꾸 만들어 낸다. 손톱을 깎거나 방을 정리하는 둥, 딴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채봉 작가의 경우엔 자신이 하도 자주 일어나기에, 처음에는 다리를 의자에 묶어 놓았단다.
“안 되겠어. 꼼짝 말고 가만히 앉아서 동화만 써!”
자신을 혼내면서 의자에 다리를 묶어놓는 동화작가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동화작가가 되려는 당신에게도 그런 동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최소 두 시간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글쓰기에 바치는 시간의 ‘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노력을 통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거니와, ‘집중해서 오래 노력하는 힘’이 바로 능력이자 실력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라.

⁍ 글쓰기와 일상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여건을 갖기란 쉽지 않다. 동화작가가 된 후에도 인세수입만으로 가정 경제를 꾸려가긴 어렵고 다른 일을 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소설에 비해 동화는 분량과 호흡이 짧아서 다른 일을 겸하면서 창작을 하기에 유리하고, 생활 속에서 싱싱한 글감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전업 작가의 삶을 원하고 또 그럴 수 있다면 자기 귀에 들리는 북소리를 따라 가시라. 그러나 다른 일을 겸해야 한다면,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되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필자도 아이가 세 살이었을 때 창작을 시작하였는데,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 자꾸 리듬이 끊겼다. 그래서 한번은 아이한테 화를 크게 냈고,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달래며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애들을 위한 글을 쓰겠다면서, 이게 무슨 짓이람?’ 사실 아이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달라진 것은 엄마였지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는 ‘가족: 특히 아이 >동화쓰기>일상의 대소사’로 삶의 가치 순위를 먼저 매겼다. 이 말은 정신적 기준을 세웠다는 것이지, 그 순서대로 시간을 많이 들였다는 뜻은 아니다. 글을 쓰다가도 아이가 일단 다가오면 먼저 안아주고, 하려는 말을 들어주며, 자신이 엄마에게 첫 번째로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음으로 동화쓰기가 가사노동보다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글부터 쓰고 틈이 나면 집안일을 처리하였다. 집은 당연히 자주 엉망진창이었지만 나는 슈퍼우먼이 될 생각은 없었다. 집안의 큰일이나 아이의 학교 행사 등에는 참가하려 노력했지만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모임이나 만남은 절제했다. 창작을 하기 전에는 많은 시간을 일반적인 주부들과 비슷하게 보냈는데, 문학의 길을 택하면서부터 서서히 나 자신이 내 일상의 주체가 되어갔던 것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 자기 자신이 되어 간다는 것은 동화처럼 낭만적인 과정이 아니다. 주어진 다기한 환경과의 총체적 싸움, 지략과 전략을 총 동원해야 하는 긴 투쟁이다. 때문에 먼저 인생의 가치 기준을 정하고, 보다 소중한 것을 중심으로 24시간을 배분하여 써야 한다. 어떤 가치를 우위에 두고 보다 많은 시간을 썼는가에 따라, 10년 뒤 당신이 서 있는 자리는 극명하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 언제 어디서나 쓴다

책상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동화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창작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창작자의 마인드를 유지한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며, 다른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구상하고 얼개를 짜거나 줄거리를 발전시킨다. 미쳐야 미친다. 동화 작가가 되려면 동화와 연애해야 한다. 특히 습작 초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동화를 생각하고, 보다 많은 시간 동화를 쓰고자 하고, 마음처럼 써지지 않아 고통스럽기도 한 것이 당연하다. 열정을 쏟아봄으로써 자신이 진정 동화와 일생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작가 수첩과 필기구는 기본으로 항상 지니고 다닐 것. 약속 시간까지 틈이 있거나, 일을 보기 위해 순서를 기다려야 할 때, 그 밖에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보거나 메모하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할 것. 훈련이 되면 장소가 어디이든, 주위가 시끄럽든 말든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영감이나 아이디어는 순식간에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하므로, 메모하는 습관은 필수적이다. 영감은 집중하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긴장이 풀리는 느슨한 순간에 찾아오므로 언제 어느 때나 받아 적을 준비를 해야 한다.
필자는 수락산 가까이 살 때 운동을 할 겸 자주 산에 올라가 해지는 광경을 보고 내려오곤 했는데, 쓰건 안 쓰건 필기구는 늘 가지고 다녔다. 오후의 햇살이 데워놓은 바위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거나, 때론 나뭇가지 사이로 떠 있는 낮달을 보면서, 해와 달이 무슨 이야기인가 ‘동화작가’에게 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받아 적는 느낌으로 산에서 몇 줄 씩 쓰곤했였는데, 두 달쯤 후에 단편 동화 <해와 달이 들려준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일상이나 창작이 주는 부담을 내려놓은 가장 홀가분한 시간과 장소에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쓰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동화 한 편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를 쓰는 신현득 시인은 전?? 안이든, 길거리에서든, 시상이 떠오르면 바로 공책과 필통을 꺼내놓고 적기 시작한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지 않고,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공책에 동시를 꾹꾹 눌러쓰는 시인의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이의 모습이다. 동화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도 이런 열정과 천진함이다.

3) 창작 공간을 마련하자
형편이 된다면 자기만의 방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더라도 자기만의 창작 공간을 집안 어딘가에 마련하라. 구석방이나 다락방, 거실 한쪽이나 부엌 귀퉁이도 상관없다. 책상 하나, 컴퓨터와 인쇄기 한 대, 책꽂이, 원고 및 자료를 정리할 파일, 문구 등 꼭 필요한 비품을 갖추면 작가의 공간으로 충분하다.
필자도 처음 7년 동안은 22평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생활하면서 동화를 썼다. 안방에 놓여있던 책꽂이 달린 내 책상 위에 타자기 한 대를 사서 올려놓는 것으로 공간 마련은 끝이었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기 전이라 비싸서 살 엄두를 못 냈는데, 동화작가가 된 뒤 출판사와 첫 장편을 계약하고 받은 계약금으로 타자기를 컴퓨터로 바꾸었다.
글을 쓰는 엄마 근처에서 큰애는 그림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자기가 본 풍경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책상 앞은 엄마가 자기의 ‘일’을 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인식했고, 다른 집안일을 할 때와는 달리 웬만하면 이런저런 주문을 하거나 말을 걸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 때 쓴 작품들을 모아 첫 단편동화집『길 잃은 페르시아 왕』을 펴냈는데, 그 해 출판문화협회에서 주는 ‘한국어린이도서상’ 문학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는, 그럴듯한 집필 공간을 갖추어야 창작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어떤 조건 속에서건 자신의 ‘일’과 ‘일터’를 스스로 존중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점을 분명히 인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형편 닿는 대로 차차 보다 독립적인 창작 공간을 지향해 나가시라.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오늘날도 여전히 필요하다. 특히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에게는.

 

3장: 무엇을 쓸까?

문학은 인식과 형상으로 이루어진다. 작가가 세상에 대해 느낀 바, 특히 작품에 담긴 내용이 인식이 되겠고,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언어로 표현해낸 것이 형상이다. 작가가 갖고 있는 정신과 표현력 두 측면이 모두 중요하다.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사고 자체가 틀에 박혀 있으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고, 반대로 아무리 열린 정신을 갖고 있어도 글로 표현해 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여기까지는 모든 문학이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동화작가가 되려면 이에 더하여 요구되는 자질과 기법이 있다. 어린이처럼 세상을 보고 느끼는 마음과, 어린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별별 ‘어른’이 다 있듯, ‘어린이’도 물론 저마다 다르다. 더구나 어린이는 성장과 변화의 과정에 있고, 연령과 환경에 따라 개인차도 대단히 크다. 따라서 어른 문학에 비해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유의해야 할 점도 많다.
그러나 너무 많은 생각을 미리 할 필요는 없다. 일단 동화를 한 편씩 써나가면서, 체험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 좋다.

1) 소재와 주제는 자유롭게

동화의 소재와 주제가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신경 쓰지 말고 소재든 주제든 자유롭게 고르시라. 자잘한 일상의 생활 이야기로부터 현실 시공간을 벗어난 환상 이야기까지, 고대의 신화로부터 까마득한 미래의 시대까지 동화 소재의 시공간은 제약이 없다. 폭력, 죽음, 전쟁, 사랑과 성, 역사, 종교, 철학 등 어떤 주제도 다룰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권정생의 <몽실언니>는 한국전쟁과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첨예한 문제를 다루고 있고, 정채봉의 <오세암>은 설악산에 전해져 오는 불교 설화를 보편적 창작동화로 풀어냈다. 송재찬의 <돌아온 진돗개 백구>는 대전으로 팔려갔다가 진도까지 되돌아온 진돗개의 실화를 소재로 취하였고, 황선미의 <나쁜 어린이표>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초등학생의 학교생활을 소재로 삼았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E ‧B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은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나탈리 배비트의 <트리갭의 샘물>은 영원과 순간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동화화 하였다.

이처럼, 동화의 소재와 주제는 끝없이 다양하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로 다루는가에 있어 소설과 동화는 차이를 가진다. 즉 어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설가는 독자 수준에 상관없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충실히 표현하면 되는데 비해, 동화작가는 어린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과 적절한 ‘표현의 정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어린이가 처해 있는 생의 단계를 참고한다.

그렇다면 각 어린이 독자에게 적절한 표현의 방법과 정도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걸 체득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시중에 나와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들을 위한 좋은 책들을 골라 읽으면서 내용적 형태적 감을 잡는 수도 있다. 그 또래 독자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동학 관련 서적을 읽는 것도 어린이 발달 단계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물론 그 무엇에 앞서, 동화를 계속 써야 한다! 써 가면서 대상 독자에게 부적절한 내용이나 표현을 찾아내고 버려가는 한편, 알맞게 표현하는 힘을 계속 길러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기준이 필요하다면, 인생의 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동문학은 영유아기와 유년기 청소년기까지의 독자- 즉 인생의 초반부에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어른문학은 청년기와 중년기 장년기 독자- 인생의 중반 이후에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삼는다. 노년기에는 일반문학 보다 아동문학이 더욱 알맞을 것이지만, 그 내용은 좀 차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생의 초반부에 있는 어린이는 어떤 특성을 보이나? 어린이는 경험도 지식도 지혜도 부족하다. 객관적 인식과 비판력이 형성되지 않았기에, 자기중심적이고 상상적으로 사고한다. 모든 면에서 미약하면서도 우선적 사랑과 배려를 받는 존재이기에, 어른에 비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동화에는 이러한 어린이의 특성, 관심사, 경험, 욕망 등이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동화 장르에 흔한 해피엔드의 결말은 현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 생의 초반부에 있는 사람들의 낙관적 사고가 반영된 것이다. 해피엔드는 또한 어떤 경우에도 완전히 좌절하지 않는 인간 ‘희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조급하고 도식적인 해피엔드의 결말은 경계되어야 마땅하지만,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낙관적이고 따뜻한 태도 자체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 점이야말로 동화를 동화답게 하는 요소이니까 말이다.

어린이 생활 주변에서 소재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가 어른의 경험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어도 좋다. 그러나 어린이의 관심사와 흥미와 세계관이 반영되지 않은 개인적 자아를 동화에 투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린이가 공유할 수 없는 중년과 장년 노년의 심리를 말이다. 예컨대 피곤하고 지친 마음,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 의심하고 체념하는 마음, 쉽사리 순응하고 타협하는 마음, 과거 지향적이거나 현실 고착적인 사고, 정치적 사회문화적 각종 기존 이데올로기의 투사…등등.

초보자는 물론이고, 많은 작가들이 어린이들에게 뭔가를 ‘주고자’ 하는 신념으로 동화를 쓴다. 그러나 필자는, 당신이 어린이에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를 바란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진정한 동화작가들은 다 후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3)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쓴다.

독자가 어린이라는 점은 늘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그렇다고 독자를 먼저 고려한 글쓰기는 하지 마실 것.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나답게 표현’하는 일이다.
물론 ‘동화라고 생각되는 양식’ 안에서 말이??.
일단 창작을 할 때는, 동화의 소재는 이래야 하고, 주제는 이런 것이 바람직하고, 패턴은 대체로 이렇고… 등등의 조언은 싹 잊는 게 좋다. ‘남들의 말’이 자유로워야 할 당신의 사고를 구속하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말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기지만 실제 허위의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 가지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다.

<예 (1)>
어느 작가나 다 그렇겠지만, 필자 역시 책으로 내지 않고 버린 원고가 꽤 된다. 그 중에는 200자 원고지 500매 분량의 장편 동화도 있다. 개략적인 줄거리를 말하자면, 현실의 특정 공간이 무대이되 주인공이 시간의 문을 지나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신라 시대를 체험하고 다시 현대로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공간은 잘 아는 곳이었기에 지리적 배경을 묘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고, 신라 시대의 문물 자료 조사도 열심히 했다. 줄거리를 만들고 플롯까지 구성해서 여러 달에 걸쳐 장편을 완성했지만, 쓰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완성하고 난 후에도 어딘지 흔쾌하지 못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몇몇 지인에게 작품을 보여주었더니, 도대체 이런 작품을 왜 썼냐는 냉정한 비판이 돌아왔다. 문학적 감각이나 삶에 대한 태도 면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평가였기에, 나는 기꺼이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결정을 하면서 어찌나 개운하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주제의식이 빈약했다. 신라 시대 문물과 생활의 재현이라든지, 동일한 공간에 교차되는 시간의 흐름 같은 ‘소재’와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였으나,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절실한 이야기’가 없었다.
즉 나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진정한 관심과 흥미에 따른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작품은 결국 ‘소재주의’ 이상이 되지 못했다. ‘괜찮아, 괜찮아’하는 자신의 허위의식에 이끌려가면서도, 한편으로 ‘아닌데. 아니야’ 하는 무의식의 속삭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타인들의 냉정한 비판을 즉각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2)>
어느 날 낮에 잠깐 선잠이 들었는데, 꿈에 하늘색 작은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는 에메랄드 빛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을 마주보는 순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우주적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본래적 자아를 대면했다는 느낌이었고, 깨어나서도 하늘빛 작은 고양이의 모습과 눈빛이 생생하게 계속 떠올랐다.

그런데 한 달 쯤 뒤, 몹시 화나는 일이 생겼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더 힘 있는 상대였기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분이 몹시 언짢은 상태였지만, 약속한 원고가 밀려 있었기 때문에 일단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별한 글감도 말하고 싶은 주제도 없는 상황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적기 시작했는데, 힘센 존재들에 의해 소외되고 억눌린 주인공 앞에 파란 고양이가 나타나 분노를 풀어낼 수 있는 판타지 공간으로 안내하는 이야기가 저절로 쏟아져 나왔다.

파란 고양이를 따라 고양이 마을로 간 주인공 견우는 특별한 수업을 받는다. 마음껏 욕하고 소리 칠 때 나팔꽃이 활짝 피는 나팔꽃방, 진흙으로 미운 놈을 반죽하여 실컷 밟아주는 진흙방을 거치며, 아이들은 “그 무엇도 나를 누를 수 없어…” 하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리고 거품탕, 포도탕, 아이스크림탕 등에서 마음껏 놀다가 마지막으로 맑
은 물에 몸을 씻고 나온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억눌린 견우가 마음속 분노를 해소하고, 본래적 자아를 차차 회복함으로써 현실과 맞설 힘을 길러간다는 내용이다.

원고를 쓰는 사이에 나는 화가 났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수정 보완하는 과정도 내내 즐거웠다. 이렇게 완성된 동화가 저학년 장편 <고양이 마을 신나는 학교>인데, 이 책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어린이들을 꽤 자주 만나게 된다. 독서치료 활동에도 이 책이 많이 활용되고 있는 걸 보면,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절실함이 어린이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았는가 한다. 어린이야말로 억울할 때가 많으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대표적 약자이기에 말이다.

4) 잘 아는 이야기를 쓴다.

초보 시절에는, 크고 멀고 막연한 데서 소재를 찾기보다 가까운 데서 구체적인 글감을 찾는 게 좋다.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내용과 분량으로, 이야기를 한 편 한 편 소화해내는 경험을 쌓는 게 우선이다.

필자도 첫 장편을 쓰기 전에 20편 이상의 단편 동화를 썼는데, 그 가운데 절반도 단편 동화집에 묶이지 못했다. 쓰고 싶은 열망이 넘쳤고 많은 시간을 창작에 바쳤지만, 어떤 소재를 어떻게 다루고 어떤 이야기를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중요하다고 믿고 열심히 매달려 쓰고, 좋은 소재로 터무니없이 빈약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그치기도 했다.

오래 집을 지은 이는 주어진 건축 재료를 보고 그것을 활용하여 지을 수 있는 집의 전체적 그림을 떠올릴 수 있고, 돌을 이용하여 조각을 하는 이는 원석의 재질과 색깔과 무늬만 보아도 그 돌이 어떤 형상의 조각이 되어야 할지 안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스러운 ‘감’을 가질 수 있게 되기까지는 숱한 재료의 파손과 시행착오의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동화쓰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학적 재능이 있고 창작 이론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동화’라는 장르가 요구하는 속성을 ‘몸’으로 감지하고 구현해내는 ‘기술’을 체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때문에 초보자 시절에는 자기의 느끼는 바를 동화로 차분히 형상화하는 기능을 탄탄히 익힐 필요가 있다.

필자에게 유년기 체험은 습작 초기나 지금이나 주요한 작가적 자산이다. 그런데 아주 초기에 썼던 작품들은 남들과 나눌만한 이야기가 되지 못해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초보 작가 시절에 쓴 동화는 소품으로 몇 편 책에 실려 있다. <꽃담>, <내 동무 찔찔이>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그에 비해 작가 생활 15년째에 쓴 <삼거리 점방>은 문예진흥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한국아동문학상 수상작이 되었으며, IBBY(국제아동도서협의회)가 선정한 “Outstanding Books for Young People with Disabilities 2007"에 수록되기도 했다.

유년기 체험뿐 아니라, 현재적 생활을 소재로 삼아 쓴 이야기도 많다. 『떡갈나무 목욕탕 』에 실린 <놀이동산의 꼬마유령>은 아이를 데리고 가끔 갔던 놀이시설이 주요 배경이고, <살쾡이양의 저택>은 짝을 찾을 수 없는 양말이 수두룩한 우리 집 실태가 아이디어가 되었다. <꽃을 삼켜버린 천사>는 텔레비전에서 본, 팔과 다리가 모두 없는 구원이의 모습과 웃음이 마음을 떠나지
않아 써보게 된 작품이다.

글쓰기도 어느 정도 기능이라 많이 쓰면 형상화 능력도 좋아진다. 그러나 초보 단계이건 오래 창작을 해 왔건,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소재, 인물, 사건, 배경, 스토리, 기타 등등), 작품이 설득력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은 틀림없다.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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