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에 대한 두 가지 소문
소설 '람세스'를 읽고--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소설의 마술은, 육체의 죽음이 주기를 거절했던 새로운 생명을 람세스에게 베풀었다.
-'람세스'의 저자 크리스티앙 자크의 서문 중에서 “흔히 서구 문화의 두 기둥은 그리스 중심의 헬레니즘과 이스라엘 중심의 헤브라이즘이라고들 한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무엇인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헬레니즘은 고전 시대의 순수 그리스인들의 별칭인 헬레네인들의 문화, 헤브라이즘은 이스라엘인들의 별칭인 히브리인 혹은 헤브라이인들의 문화를 일컫는다. 이 두 문화는 각각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 신을 그 정점으로 하는 문화와 유일신 야훼를 그 정점으로 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두 문화는 각각 자연발생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뒤 나름의 독자적인 발전을 성취한 문화인가, 아니면 여기에 선행하는 어떤 어미그루의 뿌리가 있었던 것일까? 만일에 어떤 어미그루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 어미그루의 정체를 추적하는 단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고대의 종교가 그런 단서 중의 하나일 수 있다.
헬레니즘의 어미그루는 어떤 문화인가?
그리스 신화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티탄 족에 속하는 튀폰이 공격해오자 올림포스의 신들이 각기 동물로 둔갑하고는 아이귑토스(이집트)로 도망쳐 숨어살았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때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는 암몬 양으로, 태양신 아폴론은 까마귀로, 주신 디오뉘소스는 염소로,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물고기로, 전쟁신 아레스는 멧돼지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이 흥미로운 것은 아무래도 그리스 신화의 기자들이 이로써 그리스 신화와 이집트 신화의 친연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스 문화가, 국제 무역의 중개지역 노릇하던 크레타를 통하여 이집트 문화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우아한 그리스 양식의 미술이 꽃피기 이전 시대의 출토품 조상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것을 승인할 수 있게 한다. 각기 그 직분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올림포스의 12신 체계는, 하늘의 신(누트), 생명의 신(라), 진리의 신(마아트), 지하의 신(민), 창조의 신(아몬), 생명의 신(프타) 등으로 그 직분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는 이집트 신들의 체계를 받아들여 이를 세련되게 확대재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분석심리학자 카알 융의 편저서 '인간과 상징'은, 네 복음서 기자 중 세 사람이 각각 사자(마르코), 소(루가), 독수리(요한)로 그려지는 것에 주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세 마리의 동물은 바로 이집트의 신 호루스의 세 아들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헤브라이즘은 어떤가?
구약성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다섯 책은 모세 오경이라고 불린다. 이 중 '출애굽기'는 주로 히브리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모세 행적을 그린 책이다. '출애굽기'가 다루고 있는 모세의 생애는 헤브라이즘이 이집트 문화에 가까이 닿아 있었음을 기정사실화 한다. 모세와 관련된 것으로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것은 미국의 영화감독 세실 B.드밀이 영화 '십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준 생생한 영상이다.
'출애굽기'의 기록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후대의 유태 역사가 필로스와 요세푸스 등의 기록을 토대로 모세의 출애굽 전 과정을 조명한 이 영화는 그 충격적인 영상으로 또 한 번 헤브라이즘과 이집트 문화와의 관계를 기정사실화 한다. 이 영화에서 벤허로 유명한 찰튼 헤스턴은 모세, 대머리 배우 율 브린너는 이집트 왕 람세스2세,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은 써 세드릭 하드위크는 파라오 세티, 앤 박스터는 네페르타리를 각각 연기한다. '출애굽기'가 그린 밑그림에다 '십계'가 인상적인 색채로 덧칠을 한 셈인데, 이로써 모세는 우리의 뇌리에, 움직일 수 없는 감동적인 영상으로 자리잡는다. 모세는 파라오의 자리와, 파라오의 아내로 내정되어 있는 아름다운 여성 네페르타리도 마다하고, 노예살이하고 있던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고단한 '엑소더스'의 길로 들어선 히브리의 영웅, 헤브라이즘의 영웅이 되는 것이다. 모세는 과연 그런 사람이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지금부터 약 60년 전에 아니라고 말한, 참으로 무모하게 보일 만큼 대담무쌍한 사람이 있다. '꿈의 해석'으로 이름 높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바로 그 사람이다. 말과 글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다. 말과 글을 통해 지닌, 이러한 마법과 같은 기능 때문에 말과 글의 약속인 철자를 뜻하는 '스펠(spell)'이 '마법(spell)'과 동일한 철자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는 또 하나의 마법을 이렇게 연출해 낸다. 프로이트는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에서, 여러 가지 정황 증거를 들어가면서 모세는 이집트인이었고, 모세가 히브리인들에게 가르친 유일신교는 이집트의 종교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태인인 그가 그 자신의 말마따나 "카톨릭 교회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그 논문을 쓴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 터인데, 그의 주장을 요약해보면 대략 이렇게 된다.
이집트의 18왕조의 아메노피스 왕은 당시까지 이집트를 지배하고 있던 다신교를 금지시키는 한편 태양신 아톤만을 유일신으로 섬길 것을 강요한다. 그는 이렇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아케나톤', 즉 '아톤 신이 사랑하는 자'로 개명한 뒤 아몬 신의 성도였던 수도 테베를 버리고 새로운 도시 '아케타톤(아톤의 지평선)'으로 천도하는 종교 개혁까지 감행한다. 그러나 이 아톤교는 다신교에 버릇 들어 있던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획득하지 못한다. 나라는, 국왕의 편애를 받던 아톤교와 실지회복을 노리는 아몬교와의 갈등으로 무정부 상태에 빠진다. 이러한 상태는 호렘헵 장군이 18왕조를 쓰러뜨리고 19왕조를 세우기까지 계속된다. 프로이트는 일단 모세를, 몰락한 아톤교를 재건하려는 이집트인이라고 가정한다. 말하자면 이집트에서는 아톤교의 재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당시 '하비루'라고 불리던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 가나안에다 재건한 종교가 바로 야훼를 섬기는 유일신교라는 것이다. '주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는 바로 이 '아톤'에서 온 것이며,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는 입이 무거웠다"는 구절은 이집트인이어서 히브리어에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한다.
1930년대의 교황청의 시각으로 보면 프로이트의 논문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의 출판은 기철초풍할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어서 터진 히틀러의 발호와 프로이트 자신의 사망,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큰 논쟁의 불씨는 되지 못했다. 이제 프로이트의 주장이 프랑스에서 거대한 로망의 꽃으로 피어난다. '람세스'가 그 꽃의 이름이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는 '출애굽기' 및 '십계'가 전하는 모세 이야기보다는 프로이트의 주장 쪽을 향한 가파른 기울기를 보인다.
프로이트의 주장과 아주 같은 것은 물론 아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2세와 절친한 친구 사이기는 하나 처음부터 히브리인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 프로이트의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이 책에 유일신교인 아톤교를 편애하던 왕 아케나톤의 증손녀와, 그 증손녀를 통하여 18왕조와 아톤교를 재건하려는 오피르가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크리스티앙 자크는 분명히 프로이트의 주장을 소설 구성의 어미그루로 삼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책의 줄거리를, 그러나 나는 여기에다 소개하지 않겠다. 요약도 하지 않겠다. 찬양도 비난도 삼가겠다. 다만 게으르게, 독자들이 텅 빈 마음으로 이 '종교의 새벽'을 맞아 하루를 꾸미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한 대목을 귀띔하고 싶다는 유혹은 누를 길이 없다. 그것은 저 트로이 전쟁의 승리자인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가 귀향길에 이집트로 건너와 람세스 왕의 국빈으로 이집트에 머무는 대목이다. 아름다운 죄로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던 저 그리스 땅의 경국지색 헬레네, 눈이 어두운 대신 신들로부터 놀라운 지혜와 기억의 재능을 얻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저자인 시인 호메로스가 람세스와 만나는 대목이다.
람세스의 이집트 문화, 장차 모세가 이룩게 되는 헤브라이즘, 그리고 제우스의 딸 헬레네가 대표하는 헬레니즘의 동석을 목도하는 흥분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람세스2세는 기원전 1279년부터 1212년까지 67년 동안 재위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람세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무리짓고 돌아오는 메넬라오스와 만난다는 것은 트로이 전쟁이 그 직전에 끝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트로이 전쟁이 끝난 것은 기원적 1279년 무렵이었던 것이 된다. 우리는 기원전 8세기 인물로 알려진 호메로스가 기원전 1279년 전후에 이집트에 나타난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이 책의 저자에게, 크리스티앙 자크에게 묻고 싶어진다. 어쩌면 크리스티앙 자크는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소설가의 특권이다. 이 특권을 바탕으로 누리는 무한한 자유, 이것은 소설가가 고독한
소이연이기도 하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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