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_봄날에-김제에서_종이에 잉크펜_100×80cm_2010
작가 이미경을 만난 것은 2년 전, 첫 책을 출판한 지 오래지 않은
초 가을의 오후였습니다. 종이에 일일이 잉크펜을 이용해 세밀하게 그려놓은
옛 기억의 추억들이 저를 사로잡았죠. 소소한 일상의 고적함, 무엇보다 삶의 빠듯함 속에서
과거의 어느 한 순간...
임종을 앞둔 늙은 스승이 마지막 가르침을 주기 위해 제자를 불렀다. 스승은 자기의 입을 벌려 제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내 입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혀가 보입니다."
"이는 보이지 않느냐?"
"스승님의 치아는 다 빠지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다 빠지고 없는데 혀는 남아 있는 이유를 알겠느냐?"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렇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 이것이 세상사는 지혜의 전부이니라. 이제 더 이상 너에게 가르쳐줄 것이 없구나. 명심하거라."
살면서 숱하게 겪었던 일이지만 우리들은 다만 강한 것에, 단단한 것에, 크고 값진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단단하기로 따지자면 사람의 끝없는 욕망도 마찬가지다. 집을 마련하거나 차를 살 때, 냉장고나 가전제품을 들여놓을 때, 먹을거리를 챙길 때도 작고 부드러운 것보다 크고 때깔 좋은 것에 먼저 손이 간다. 크고 단단한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녀 끝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평소에는 그토록 부드럽던 바람과 겸손하던 물도 어떤 힘을 받으면 그렇게 사납고 거셀 수가 없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부드러움이 능히 강한 것을 이겨낸다.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성정(性情)도 이와 같다. 항상 뜻을 세워 자기를 꼿꼿하게 내세우나,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면 극히 심약해서 풀꽃 하나 밟는데도 마음 조리는 보드라운 심성 갖고 있다. 그는, 외유내강(外柔內剛)하는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이 많이 시끄럽다. 강한 것만 좇아가는 현대문명이 결국엔 치유 불가능한 병마를 붙들고 애원하는 시대가 되었다. 서로 흘겨 뜯고, 더 나은 자리에 오르겠다고 아득바득대는 짓거리 또한 부질없는 양태만 빈발시킨다. 아름답게 사는 것, 참으로 좋은 향기를 나누며 정답게 사는 데는 남을 윽박지를 만큼의 강함을 필요치 않다.
일찍이 노자는,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나앉아 있는 것이 물이고, 가장 착한 것 또한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일정불변의 고정된 모습이 없다.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습을 하고, 모난 그릇에 담기면 모난 모습을 한다. 뿐만 아니라 뜨거운 곳에서는 수증기가 되고, 차가운 곳에서는 얼음이 된다. 이렇듯 물의 자기 고집이 없다. 강함을 앞세워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그저 내면의 부드러움으로 남의 뜻을 따른다.
다시 노(老)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에 대해서 스스로의 삶을 되짚어본다. 여태껏 하고자 했던 일, 애써 얻으려고 갈망했던 것에 대해서 따져본다.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게 한둘 아니다. 몇몇 사단들은 드러내놓기조차 부끄럽고 천박하기까지 하다. 항상 강한 것, 좋은 것, 편한 것만 최선인 것처럼 발발댔고, 작고, 보잘것없고 밋밋한 것에는 눈길조차 던지지 않았던 미천함에 얼굴이 붉어진다.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얼굴 붉혔던 일들이 많았을까?
사물을 대하는 데 태도를 부드럽게 가져야겠다. 사는 데 온유함을 배워야겠다. 항시 달콤한 맛에 길들여졌던 혀끝도 다독여야겠다. 맑은 물에 눈을 씻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귀를 후벼야겠다. 크고 값진 것에 매달리기보다 조그만 것이더라도 알뜰하게 챙겨 사는 따사로움으로 다시 서야겠다.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안다면 더욱. 2010. 10. 02.
어린 시절 어머니는 저에게 가끔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습니다. 보통의 경우 군말 없이 심부름을 했지만 귀찮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머니께서 아무런 말씀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핑계거리가 하나 있었지요. 이 말 한마디면 어머니께서는 내게 심부름시킨 것을 접어두시고 당신이 직접 움직이셨습니다. "엄마, 숙제해야 해요." 어느새 내가 내 어머니의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헌데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인가 봅니다. "준형아, 아빠 심부름 좀 다녀오겠니?" 그러면 "예!" 하고 흔쾌히 심부름을 잘 다녀오는 아들놈이 가끔씩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하곤 합니다. "아빠, 숙제해야 해요." 그러면 나는 두 말 없이 내가 직접 움직입니다. 예전에 내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그런데 뒤에서 넌지시 아들놈을 보고 있으면 숙제가 아닌 딴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면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누가 내 아들 아니랄까봐, 내가 하던 짓을 그대로 하고 있잖아.' 하고 말입니다. 내 어머니도 그러셨을 테지요. 내 어머니도 다 알고 계셨을 테지요. 지금의 나처럼 피식 웃으셨을 테지요. 오늘은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작은 수고로 "저예요. 별일 없으시죠?"로 시작되는 무뚝뚝한 목소리를 어머니께 들려드려야겠습니다. 그것이 한 첩에 몇 십만 원 하는 보약보다 더 좋은 보약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어라.
가던 길을 멈추고 노을진 석양을 바라보며 감탄하기에 가장 적당한 순간은, 그럴 시간이 없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때이다.
언제든 즉흥적으로 이삼일 동안 짧은 휴가를 떠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는다. 지체하지 말고 미리 가방을 꾸려놓아라.
자전거를 타고 동네나 공원을 한바퀴 돌아보아라. 아름드리 나무와 새들, 푸른잔디 그리고 예쁜 꽃들과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즐겨라.
한 무명의 현자가 이런 말을 했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그래서 '오늘'을 영어로 프레즌트(present)라고 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제를 기념하며 축하할 수도 없고, 내일을 기념하며 축하할 수도 없으니, 오늘을 기념하며 축하해야 하지 않을까?
석양뿐만 아니라, 이따금 일출도 보도록 한다. 그렇게 할 마음이 있다면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라. 하루중 가장 어두운 때는 해가 뜨기 직전이라고 한다.
몹시 힘들고 우울할 때는 이렇게 생각하자. 지금이 바로 해가 뜨기 직전이라고, 이제 곧 해가 떠올라 모든 것이 환하고 따사로워질 것이라고 말이다.
인생은 짧다. 그러니 자질구레한 일들로 삶을 채우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인생에는 중요한 일들도 많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일들도 있다. 따라서 그 차이를 포착해 낼 줄 알아야 한다.
그 차이를 구별해 내지 못한다면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온갖 환멸과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당신이 갖고 있는 유머감각과 삶에 대한 열정을 발휘해 찌뿌드한 아침을 산뜻한 아침으로 바꾸어라.
주변환경을 바라보는 당신 자신의 눈을 바꾸면 인생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아무리 우울한 일이라 하더라도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하자.
밑에 누워 한두 시간 정도 소설책을 읽을 수 있을 만한 나무를 찾아봐라.
건강 전문가들은 최적의 건강을 누리는 데는 깊은 심호흡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아침에 밖으로 나가 걸음을 멈추고 깊게 심호흡을 다섯 번 정도 해보아라.
뭉개구름, 새털구름, 양털구름... 구름이 만들어내는 각양각색의 형태들은 참으로 매혹적이다.
어린 시절 이후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 구름을 올려다 본 일이 있었는가?
지금이라고 못 할 것도 없다. 잔디가 아니라면 벤치에라도 누워 지금 당장 한 번 해보자.
어떻게 하면 삶을 더욱 잘 이끌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효과적인 이야기가 있다.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의 가치를 계산하고 싶다면, 당신의 친구들을 세어 보라."
직장동료가 아닌 옛 친구나 일상의 친구들이야 말로 인생과 세계에 대해 더욱 폭 넓은 정보들을 주고받을 수 있다.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인 태도나 매사를 전적으로 일과 관련짓거나, 물질적인 성취만으로 스 스로를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루 해가 저물 무렵엔, 하루를 얼마나 잘 보냈느냐는 것 만큼이나 얼마나 많이 긴장을 풀고, 웃고 즐겼는지도 판단하자.
세상과 더불어 행복하고 느긋하며 평온한 기분을 느끼려면, 팔짱끼고 뒤로 물러 앉아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도록 관망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 흐름을 따라가는 방법을 좀 더 배우자. 때로는 뭔가 일이 되도록 애쓰지 말고 차라리 일이 되는대로 일어나도록 놔둬 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