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후회하고
내일을 희망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습관처럼
어제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그렇게 산다.

삶이 너무나 힘들어도
세월은 위로해주지 않는다.

버거운 짐을 내리지도 못하고
끝없이 지고가야는데
어깨가 무너져내린다.

한없이 삶에 속아
희망에 속아도 희망을 바라며
내일의 태양을 기다린다.

낭떠러지인가 싶으면
오를 곳을 찾아 헤메이고
암흑인가 싶으면
빛을 찾아 한없이 뛰어야 한다.

죽음의 끝이 다가와도 애절하게
삶에 부질없는 연민을 갖는다.

산처럼 쌓아 둔 재물도
호사스런 명예도 모두 벗어 놓은 채.

언젠가 우리는
그렇게
그렇게
떠나야 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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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경_봄날에-김제에서_종이에 잉크펜_100×80cm_2010   작가 이미경을 만난 것은 2년 전, 첫 책을 출판한 지 오래지 않은 초 가을의 오후였습니다. 종이에 일일이 잉크펜을 이용해 세밀하게 그려놓은 옛 기억의 추억들이 저를 사로잡았죠. 소소한 일상의 고적함, 무엇보다 삶의 빠듯함 속에서 과거의 어느 한 순간...
출처 : 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글쓴이 : 김홍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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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


박종국(교사, 수필가)


  임종을 앞둔 늙은 스승이 마지막 가르침을 주기 위해 제자를 불렀다. 스승은 자기의 입을 벌려 제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내 입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혀가 보입니다."

  "이는 보이지 않느냐?"

  "스승님의 치아는 다 빠지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다 빠지고 없는데 혀는 남아 있는 이유를 알겠느냐?"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렇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 이것이 세상사는 지혜의 전부이니라. 이제 더 이상 너에게 가르쳐줄 것이 없구나. 명심하거라."


  살면서 숱하게 겪었던 일이지만 우리들은 다만 강한 것에, 단단한 것에, 크고 값진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단단하기로 따지자면 사람의 끝없는 욕망도 마찬가지다. 집을 마련하거나 차를 살 때, 냉장고나 가전제품을 들여놓을 때, 먹을거리를 챙길 때도 작고 부드러운 것보다 크고 때깔 좋은 것에 먼저 손이 간다. 크고 단단한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녀 끝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평소에는 그토록 부드럽던 바람과 겸손하던 물도 어떤 힘을 받으면 그렇게 사납고 거셀 수가 없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부드러움이 능히 강한 것을 이겨낸다.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성정(性情)도 이와 같다. 항상 뜻을 세워 자기를 꼿꼿하게 내세우나,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면 극히 심약해서 풀꽃 하나 밟는데도 마음 조리는 보드라운 심성 갖고 있다. 그는, 외유내강(外柔內剛)하는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이 많이 시끄럽다. 강한 것만 좇아가는 현대문명이 결국엔 치유 불가능한 병마를 붙들고 애원하는 시대가 되었다. 서로 흘겨 뜯고, 더 나은 자리에 오르겠다고 아득바득대는 짓거리 또한 부질없는 양태만 빈발시킨다. 아름답게 사는 것, 참으로 좋은 향기를 나누며 정답게 사는 데는 남을 윽박지를 만큼의 강함을 필요치 않다.


  일찍이 노자는,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나앉아 있는 것이 물이고, 가장 착한 것 또한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일정불변의 고정된 모습이 없다.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습을 하고, 모난 그릇에 담기면 모난 모습을 한다. 뿐만 아니라 뜨거운 곳에서는 수증기가 되고, 차가운 곳에서는 얼음이 된다. 이렇듯 물의 자기 고집이 없다. 강함을 앞세워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그저 내면의 부드러움으로 남의 뜻을 따른다.


다시 노(老)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에 대해서 스스로의 삶을 되짚어본다. 여태껏 하고자 했던 일, 애써 얻으려고 갈망했던 것에 대해서 따져본다.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게 한둘 아니다. 몇몇 사단들은 드러내놓기조차 부끄럽고 천박하기까지 하다. 항상 강한 것, 좋은 것, 편한 것만 최선인 것처럼 발발댔고, 작고, 보잘것없고 밋밋한 것에는 눈길조차 던지지 않았던 미천함에 얼굴이 붉어진다.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얼굴 붉혔던 일들이 많았을까?


  사물을 대하는 데 태도를 부드럽게 가져야겠다. 사는 데 온유함을 배워야겠다. 항시 달콤한 맛에 길들여졌던 혀끝도 다독여야겠다. 맑은 물에 눈을 씻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귀를 후벼야겠다. 크고 값진 것에 매달리기보다 조그만 것이더라도 알뜰하게 챙겨 사는 따사로움으로 다시 서야겠다.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안다면 더욱. 2010. 10. 02.



출처 : 박종국 수필가의 좋은글밭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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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영실 다녀오던 날, 한밝저수지 동쪽 관음사로

통하는 산록도로 입구에서 억새를 찍고 동쪽으로 달리

는데, 싸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차를 세우고

보니, 날씨가 갑자기 어둑하고 태풍에 잎이 찢긴 싸리는

핀지 좀 되었지만 싱싱해 보이는 것들이 있어 찍었다. 


싸리는 콩과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높이는 2~3m이며,

잎은 세 잎이 나온다. 7월에 짙은 자색이나 홍자색

꽃이 총상(總狀)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협과(莢果)로

10월에 익는다. 나무는 땔감, 잎은 사료, 나무껍질은

섬유의 원료로 쓴다.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 10월의 서곡 - 반기룡


가을 햇살 내리쬐는 시월의 첫날

냉기가 몰려오고 살갗은 전율을 한다

그리움의 언어가 넘실대고

황금물결이 수를 놓으며

숲 속은 피톤치드의 향으로 그윽하다

머지않아 만산홍엽으로 채색된

장관을 보리라

여름내 더위와 투쟁을 하였던 나무들도

이젠 전환의 여울목에서 자연의 원리에

스스로 몸을 내어 주리라

아름다운 옷으로 물들 나뭇잎이

벌써 손짓을 하듯 팔랑거린다

세월의 수레바퀴는

어김없이 산과 들에 깊은 색조로 조각하여

인산인해를 이루리라

어떤 것은 빨강색으로

또 다른 것은 노란색으로

형형색색 물들은

단풍의 행렬이 힘찬 날갯짓 하며

이 산 저 산 쉼 없이 물결을 이루리라

어느 날 그대에게 단풍 옷 입고 다가갈 때

시월의 서곡은 힘차게 출발하였다고

힘주어 말 좀 해다오



 

♧ 싸리꽃 - 김남극


뒷산 산길 넘어가니 횃댓보 펼친 듯 싸리밭이다

싸리꽃 한창이다

어찌 보면 올망졸망한 새끼들 단 여윈 어미 같아

산자락 끝에 어둠이 걸리기만 해도 대궁이 흔들거리고

또 어찌 보면 젖멍울 만져질 듯한 기집애 같기도 하여

이파리 헤치면 분홍 속살이 살짝 비치기도 한다


저 꽃들 한 3년 피었다 지면

마을 길에 널린 사나운 생각 쓸어낼 빗자루를 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청태가 낀 아이들 불러 모아 개울가로 몰고 갈 회초리가 될 것 같기도 하여


오래 서서 싸리꽃 바라보다가

또 한참씩 오르내리며 싸리밭을 뒤적거린다

꽃잎이 무성하여 가렸던 오래된 길 보인다

그 길로 싸리 한 짐 지고 내려오니 날이 저문다

 



 

♧ 싸리꽃(90) - 손정모


바람에 휘감기는 석양

널브러진 수목의 숲에서

선정적인 춤을 추고


물안개 비껴선

허허로운 산굽이에

싸리꽃, 떼 지어 흩날린다.


미풍에는 보랏빛이었다가

강풍에는 선홍색으로

얼굴 붉혀 물결치던

싸리꽃의 군영들


공작의 깃털보다 서러운

노여움 조각 털어내며

하늘을 우러러

사무치게 몸부림치네.



 

♧ 싸리꽃 - 홍석하


산비둘기 울어

떨어지는 싸리꽃

산그늘에 묻혀, 함께

흘러가는 강


저린 발목 움켜쥐고

세월만 헤이던 여인

파아란 입술


황량한 벌판에

꿇어 앉아

불러 모으는 꿈

한낮이 기운다


피곤한 몸짓으로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비 한줄기 적선해 주려나


눈 뜨고 

귀 열고

늘 불러보는

가엾은 사람아

 



 

♧ 싸리꽃 - 김영자


저 혼자

밤이 새도록 달을 끌어들였나보다

깊은 계곡 물 쌓이는 소리

산에는 무심히 진달래가 피고지고 하였다

가을에 솟아오른 산봉우리

다른 시간에 닫혀있다

진달래 꽃물에 젖어 있는 것일까

물은 깊어져

바위에 부딪히며 자꾸 물거품으로 오르는,

숲에 들어서지 못하고

길섶에 서서

푸른 시냇물 허문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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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어린 시절 어머니는 저에게
가끔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습니다.
보통의 경우 군말 없이 심부름을 했지만
귀찮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머니께서 아무런
말씀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핑계거리가 하나 있었지요.
이 말 한마디면 어머니께서는 내게 심부름시킨 것을
접어두시고 당신이 직접 움직이셨습니다.
"엄마, 숙제해야 해요."
어느새 내가 내 어머니의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헌데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인가 봅니다.
"준형아, 아빠 심부름 좀 다녀오겠니?" 그러면
"예!" 하고 흔쾌히 심부름을 잘 다녀오는 아들놈이
가끔씩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하곤 합니다.
"아빠, 숙제해야 해요."
그러면 나는 두 말 없이 내가 직접 움직입니다.
예전에 내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그런데 뒤에서 넌지시 아들놈을 보고 있으면
숙제가 아닌 딴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면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누가 내 아들 아니랄까봐,
내가 하던 짓을 그대로 하고 있잖아.'
하고 말입니다. 내 어머니도 그러셨을 테지요.
내 어머니도 다 알고 계셨을 테지요.
지금의 나처럼 피식 웃으셨을 테지요.
오늘은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작은 수고로
"저예요. 별일 없으시죠?"로 시작되는
무뚝뚝한 목소리를 어머니께 들려드려야겠습니다.
그것이 한 첩에 몇 십만 원 하는 보약보다
더 좋은 보약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콤한 나의 인생』
(박성철 지음 | 책이있는풍경)

 

 

 

 

출처 : 박종국 수필가의 좋은글밭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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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는 볏과 식물이기 때문에 추운 곳에서부터 먼저

이삭을 내민다. 그러기에 제주에서도 차이가 있어 한

라산에서부터 해변으로 내려오는 게 순서다. 어제 영

실에서 내려와 1100도로와 5.16도로를 잇는 산록도로

에 접어든 순간 새로 팬 억새가 도열해 맞는 듯 길 양

옆을 장식하고 있었다. 차진 공기를 의식해 일제히 몸

을 푼 것이리라.

      

오늘은 여러 가지 잡다한 원고를 정리하다가 모교인

애월중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를 위해 펴내는 동창회지

편집을 끝내고, 갖는 모임에 참여했다. 요즘 가뜩이나

동창회, 종친회, 향우회에 관심을 갖지 않은 세대들이

많은데, 향수(鄕愁)라는 무기만으로 이들을 결집시키는

건 힘들고, 어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억새는 볏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1~2미터이며,

잎은 긴 선 모양이다. 7~9월에 누런 갈색 꽃이 피는

데 작은 이삭은 자주색이다. 잎을 베어 지붕을 이는

데나 마소의 먹이로 쓴다.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 억새꽃처럼 - 권도중


간절함 다스려 참아야 함을 압니다

억새꽃처럼 다 날려 보낸 지난날이

허물과 후회만 남긴 언덕으로 있습니다


다시 알리고픔을 용납할 수 있을까요

못 울린 북소리 숨기어 남겼어도 이제

세상에 넓은 어느 공간에 집 하나 있습니다


이제 젊고 늙음이 다름없는 사이인데

저쪽에 피어 생생한 세상에서 슬픈 꽃

이 죄업 그대 생각이 억새꽃 같습니다


 

♧ 억새 사이로 - 이선명


바람처럼 슬프게 웃는다

흔들리는 지난날의 열정

언제나 자유롭고 싶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명한 흔적이고 싶었다

 

바람은 한 길로

억새는 수십 갈래로 흔들린다

꿈은 현실이지 못해 더 애틋한가

삶을 기억하고 기다림을 배운다

바람처럼 슬프게 웃는다

 


 

♧ 이효석억새 - 소양 김길자

 

자기의 길 외로이 걷는 바람아

세상 번뇌 다 짊어지고

탈골된 마디 시큰거리도록

가을을 밀어내는가


어둠을 밟는 달빛도

잊을 수 없는 한 세월 안고

휜 언덕길 숨차도록

풀피리 불며 고독을 노래하는데


밤새 잘잘거리는 은빛 물결위에

내일의 희망하나 띄워 놓고

높은 곳으로 비상할 소망이여

밤을 왜 뒤척이는가.



 

♧ 흔들리는 억새 - 손상근


아직도 제 모습

찾지 못해서 일까

흔들리지 말아야겠다는

숱한 다짐은

위선 일까

흔들리다 쓰러져도

아픔 말하지 않을 때까지

사랑을 배워야지

홀로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가슴 꼭 껴안아야지

목마름 

숨길 수 있을 때까지



 

♧ 억새꽃 - 양해선


무너져 내리는 지난날들

낡은 옷마저 찢겨져 바람에 날리고

호젓이 떨어지는 나뭇잎들


모두 다 내어 놓으라며

잔뜩 찌푸리고 으르렁거리는 하늘

번득이는 시퍼런 칼

가슴 깊숙이 내려 꽂히는 순간,

불쑥 치밀어 오르다 부서지는 분노

산산이 흩어진다


이제 가져갈 것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철 늦은 천둥번개 잦아들고

가을은 홀로 울고 있는데,

억세게 치켜 세워온 자존심들

한결같이 강물을 바라보고 서서

고개 숙이고

하염없이 젖고 있다


 

물안개 자옥이 피어오르고

점점 더 낮게 구부러지는 등줄기 따라

다스릴 수 없는 격한 성정(性情)이,

벗어날 수 없는 숱한 번뇌가,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련이,

축축하게 흘러내린다


다시금, 햇살이 등을 두드리면

모두 다 툭툭 털고

일어선다 보드라운 억새꽃은 하얗게

날아오르는 나비 떼가 된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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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한라산이 보고 싶어져, 배낭을 짊어지고 훌쩍

영실(靈室)로 떠났다. 제주 특산 식물들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그곳에 가서 그놈들과 조우하기 위해서….

지난 태풍은 특히 한라산 서부지역을 강타해서

나무들과 바위틈 식물들의 잎에 생채기를 남겨   

금년의 단풍은 그렇게 기대할 수 없겠다.


작년에 보았던 진범을 못 잡은 대신, 골짜기에

꼭꼭 숨어 바람을 피했던 이 한라돌쩌귀를 만났고,

환히 피어난 한라구절초와 마구 뜯겨 뒤늦게 꽃을

피운 제주황기, 바위 아래 몸을 숨긴 제주달구지풀,

꼭 한 포기 꽃을 피운 섬잔대를 만날 수 있었다.


 

한라돌쩌귀는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45~100cm이며, 잎은 어긋나고 세 갈래로

갈라진다. 9월에 자주색 꽃이 총상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골돌과를 맺으며, 한라산에 분포한다.

본토의 투구꽃과 비슷한데, 모양이 조금 다르다.



 

♧ 돌쩌귀 사랑 - 정일근


울고 불고 치사한 이승의 사랑일랑 그만 끝을 내고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 한 몸의 돌쩌귀로 환생하자

그대는 문설주의 암짝이 되고 나는 문짝의 수짝이 되어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우리 뜨겁게 쇠살 부비자

어디 쇠가 녹으랴만 그 쇠 녹을 때까지

우리 돌쩌귀 같은 사랑 한 번 해 보자



 

♧ 한라산 백록담 - 김윤자


먼발치에서 당신을 보고 간 한 여인이

다시 그리움 안고 와

하루의 역사를 온전히 쌓고 갑니다.

영실코스 가파른 절벽길을 숨이 멎도록 걸어오르며

오백나한의 기암 속에 망자로 선다해도

나는 진정 행복하여서

당신 그 넓은 품에 뒹굴어도 보고

병풍바위 지나, 구상나무 숲길 지나

선작지왓 고산의 너른 평원을 가로지르며

오월의 꽃불로 일어서는 철쭉꽃 축제의 물결에

지친 육신이 일어서고

노루샘 약수로, 혼미한 영혼이 일어서고

윗세오름봉에 거룩한 당신이 보일 때

발보다 눈이 앞서 달려가

당신을 사랑한 낮달이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하늘에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도 걸고 왔습니다.

어리목코스 하산 길에서

당신의 따슨 숨결로 키운 노루도 만나고

제주 바다 위, 순결한 해무와

무한한 자유로 용솟음치는 운해의 설경도 만나고

해가 지기 전 어서 가라고

숨 가쁜 음계로 깔아놓은 나무 계단을

잘박잘박 걸어 내려오며

당신만큼 용감해지리라 다짐하였습니다. 



 

♧ 그 여름의 선물 - 임영준


청춘의 한 자락

한라의 가슴 영실에

나만의 보금자리를 꾸미고

얼음 같은 계곡물에 몸을 담근 채

수많은 별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인생 별거 아니라 했다

사랑, 반짝하는 별똥별이라 했다

그리고 카르페디엠

두고두고 내리받은 선물이 되었다

나를 밝히는 빛이 되었다

그 여름 한라에 쏟아진 별들은

아직도 나를 벌렁벌렁 들뜨게 하며

유혹의 암시를 보내고 있다


 

♧ 한라산 까마귀 - 한도훈


뻐꾹채 엉겅퀴 도채비운장이

백록담 멧부리로 나란히 줄 서고

산그림자 사이로 얼굴 빼꼼 내밀다

빙애기 채가듯 똥소리기 발톱에 채인

생채기 난 햇살이라

한라산 까마귀떼

갈보름에 휘날리는 검은 날개로

머리 풀어헤친 여인상이 뚜렷한

한라산 꼭대기며

신선(神仙)의 집, 영실기암을 휘저으면

멀리 서귀포 바당으로부터

안개꽃은 시샘으로 피어올라

윗세오름 노리샘 언저리

주목나무숲 너덜바위에

한무데기 한숨 따위 부려놓으라


 

한라산 까마귀 서늘한 이망생이에

와들락와들락 삼족오(三足烏)가 새겨지면

숨비소리 비바리 사랑으로

천년의 이끼

만년의 이끼 청동거울을 닦으라

벌거벗은 태양을 인두로 지져

가슴 떨리게 하면

비룽비룽 흐르는 용천수는

불로불사야약(不老不死藥)으로

호루종일 쏟아지는 정방폭포가 되고

흰사슴 징검징검 백록담을 걸을 때

갈래죽으로 움푹 떠

설문대할망 스란치마 속에 쏟아붓고

똥소레기 부리로 콕콕 쪼아 만든

성산일출봉이며 산방산을 불러 모아

해마다 봄이면

호꼼 진달래꽃 영쿨로 춤추게 하라


 

---------------

★ 도채비운장 : 산수국에 대한 제주도 방언

★ 빙애기 : 병아리에 대한 제주도 방언

★ 똥소리기 : 솔개의 제주도 방언

★ 갈보름 : 서풍에 대한 제주도 방언

★ 바당 : 바다의 제주도 방언

★ 노리 : 노루에 대한 제주도 방언

★ 이망생이 : 이마에 대한 제주도 방언

★ 와들락와들락 : 와당탕와당탕의 제주도 방언

★ 숨비소리 : 해녀들이 잠수를 끝내고 나와서 내지르는 숨소리.

★ 비바리 : 처녀의 제주도 방언

★ 비룽비룽 : 구멍이 송송이라는 제주도 방언

★ 호루 : 하루의 제주도 방언

★ 갈래죽 : 흙을 파는 삽에 대한 제주도 방언

★ 설문대할망 : 한라산을 만든 할머니

★ 똥소레기 : 독수리의 제주도 방언

★ 호꼼 : 조금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

★ 영쿨 : 넝쿨의 제주도 방언

 

 

♧ 저항령 투구꽃 - 장승진

 

저항령 통해 황철봉 가는 길

우툴두툴 돌들 참 많네

계곡물에 잠긴 길을

돌에게 묻고 나무에게 물어

마침내 올라 앉은 봉우리

노오란 돌채송화 작은 꽃송이

절정의 바람은 흔들리네

엉겨붙은 바위들의 고요한 주검

검버섯 돋아나듯 세월만 살아

쉽사리 구원을 말하지 않네


하산 길에 몇 번이나 넘어지며 보았네

칠부능선 그늘 속

투구꽃들 모여 앉아

그 절정의 침묵을 지키는 걸

잠시도 투구를 벗지 않는 걸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메모 :

 

 

 

 

 

 

느리게 사는 즐거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보라.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어라.

가던 길을 멈추고 노을진 석양을 바라보며
감탄하기에 가장 적당한 순간은,
그럴 시간이 없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때이다.

언제든 즉흥적으로 이삼일 동안
짧은 휴가를 떠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는다.
지체하지 말고 미리 가방을 꾸려놓아라.

자전거를 타고 동네나 공원을 한바퀴 돌아보아라.
아름드리 나무와 새들, 푸른잔디 그리고 예쁜 꽃들과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즐겨라.

한 무명의 현자가 이런 말을 했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그래서 '오늘'을 영어로 프레즌트(present)라고 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제를 기념하며 축하할 수도 없고,
내일을 기념하며 축하할 수도 없으니,
오늘을 기념하며 축하해야 하지 않을까?

석양뿐만 아니라, 이따금 일출도 보도록 한다.
그렇게 할 마음이 있다면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라.
하루중 가장 어두운 때는 해가 뜨기 직전이라고 한다.

몹시 힘들고 우울할 때는 이렇게 생각하자.
지금이 바로 해가 뜨기 직전이라고,
이제 곧 해가 떠올라
모든 것이 환하고 따사로워질 것이라고 말이다.

인생은 짧다.
그러니 자질구레한 일들로 삶을 채우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인생에는 중요한 일들도 많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일들도 있다.
따라서 그 차이를 포착해 낼 줄 알아야 한다.

그 차이를 구별해 내지 못한다면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온갖 환멸과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당신이 갖고 있는 유머감각과 삶에 대한 열정을 발휘해
찌뿌드한 아침을 산뜻한 아침으로 바꾸어라.

주변환경을 바라보는 당신 자신의 눈을 바꾸면
인생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아무리 우울한 일이라 하더라도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하자.

밑에 누워 한두 시간 정도
소설책을 읽을 수 있을 만한 나무를 찾아봐라.

건강 전문가들은 최적의 건강을 누리는 데는
깊은 심호흡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아침에 밖으로 나가 걸음을 멈추고
깊게 심호흡을 다섯 번 정도 해보아라.

뭉개구름, 새털구름, 양털구름...
구름이 만들어내는 각양각색의 형태들은
참으로 매혹적이다.

어린 시절 이후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
구름을 올려다 본 일이 있었는가?

지금이라고 못 할 것도 없다.
잔디가 아니라면 벤치에라도 누워
지금 당장 한 번 해보자.

어떻게 하면 삶을 더욱 잘 이끌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효과적인 이야기가 있다.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의 가치를 계산하고 싶다면,
당신의 친구들을 세어 보라."

직장동료가 아닌 옛 친구나 일상의 친구들이야 말로
인생과 세계에 대해
더욱 폭 넓은 정보들을 주고받을 수 있다.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인 태도나
매사를 전적으로 일과 관련짓거나,
물질적인 성취만으로 스
스로를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루 해가 저물 무렵엔,
하루를 얼마나 잘 보냈느냐는 것 만큼이나
얼마나 많이 긴장을 풀고, 웃고 즐겼는지도 판단하자.

세상과 더불어 행복하고 느긋하며
평온한 기분을 느끼려면,
팔짱끼고 뒤로 물러 앉아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도록
관망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 흐름을 따라가는 방법을 좀 더 배우자.
때로는 뭔가 일이 되도록 애쓰지 말고
차라리 일이 되는대로
일어나도록 놔둬 보는 것도 좋다.

- 어니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 중에서 -

 

 

 

 


 

출처 : 박종국 수필가의 [좋은글밭]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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