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강]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 - 4. 수필의 특성 (1)
제5강] 4.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
- 수필의 특성. 수필쓰기의 자세.
1. 수필의 특성
일반적으로 수필은 아주 쉽게 쓰는 글로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한 편의 수필을 써 보라고 하면 시보다도, 소설보다도 훨씬 어려운 것이 수필입니다.
좋은 詩가 아니어도 詩는 詩일 수 있고, 좋은 小說이 아니어도 小說은 小說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隨筆은 隨筆이어야만 합니다.
아무 글이나 詩나 小說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냥 隨筆이라 이름 붙이는 것은
수필에 대한 인식의 부족입니다.
그런 글은 그 글을 쓴 자신에 대한 모욕입니다.
수필은 자신의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수필은 형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그것이 마치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데,
형식이 없다는 말 오히려 그것은 수필 쓰기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수필 문장은 깔끔하고 간결하되 건조하지 않아야 하며
평이하되 평범하지 않아야 되고,
정밀(精密)하고 솔직해야 합니다.
문장에는 호흡, 즉 리듬감도 살아 있어야 하는데
리듬은 문장의 율동으로 자연스러운 호흡을 일컫는 말입니다.
수필에는 몇 가지의 특성이 있습니다.
그 특성이 바로 수필을 결정짓는 요소가 됩니다.
곧 수필이 무엇인가. 수필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무엇을 쓸 것인가도 이 수필의 특성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지난번에 소개했던 '몽테뉴'의 <수상록>을 다시 한 번 보면서
수필의 특성을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참고 글.1> 독자에게 <몽테뉴>(鄭鳳九 옮김)
여기 이 책은 아주 ①성실 정직한 책이다.
독자여, 책머리에서 당신에게 그 사실을 말 해 두지만,
나는 이 책 속에
②내 가족적인 사사로운 일 밖에는 아무런 다른 목적을 두지 않았다.
나는 이 책에서 당신에게 대한 어떤 보탬이나 또는 내 영광을 위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마련은 내 힘에 넘치는 일이다.
나는 이 책을 내 친척들과 친구들의 쓸모의 보탬으로 드린다.
즉 그들이 나를 잃고 나서 (머지않아 그렇게 될 테니까)
③이 책에서 나의 타고난 기질의 그 어떤 특징을 생각해 낼 수 있게 하고,
또 이 책에 의하여 그들이 나에 관해서 지니고 있는 지식을 더욱 완전하고 더욱 생생한 것으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만약 이 책이 세상 사람들의 호평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면
나는 좀 더 자신을 분칠했을 것이고,
조심스러운 발자취로 스스로를 드러냈을 것이다.
나는 여러 분들이 이 책에서 나를 자연스럽고 예사로운,
긴장도 기교도 없는 담백한 모습으로 보아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왜냐하면
④내가 그려내고 있는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내 결심이 생생하게 그대로 읽혀질 것이고,
또 내 타고난 외모도 독자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예절의 한도 안에서는
있는 그대로 보여질 것이다.
만약 내가 아직껏 자유 관대한 자연의 최초의 법칙 밑에서 산다는
그런 민족들 속에서 생활한다면 틀림없이 나는 당신들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아주 기꺼이 완전하게 벗어붙인 나를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니까 독자여,
⑤내 자신이 바로 내 책의 내용이다.
이렇게도 가볍고, 이렇게도 별 볼 일 없는 내용이니
당신이 당신의 한가한 시간을 사용할 만한 구실도 못된다.
그러면 안녕.
1580년 3월 1일.
드 몽테뉴.
(1) 수필은 산문 문학(散文文學)입니다. - 문학성
수필이야말로 대표적인 산문문학입니다.
그래서 산문 정신(散文精神)이 강한 글입니다.
소설이나 희곡이 조탁(彫琢)하여 만들어진 글이라고 한다면,
수필은 빚어내는 글입니다.
그래서 수필은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특성이 아니라
자기의 생활 곧 생각, 체험, 느낌을 사실적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낸 글이라는 특성을 지닙니다.
그래서 위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말하듯
'내 가족적인 사사로운 일을 성실 정직하게 그려낸' 산문적 글이 수필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
산문(散文/prose)이란 운문(시. 시조 등)에 대하여 운율(韻律)이나 정형(定型)에 의한 제약이 없는 보통 문장을 말합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모든 문서류나 일상의 회화(會話)까지가 모두 산문에 속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문예용어로 산문문학을 뜻합니다.
지금의 소설·희곡·평론·수필·일기·서간·각종 논문·역사 등이 모두 산문에 속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나 로마에서 산문은 역사·지지(地誌)·철학 등 주로 비 순문학적인 내용을 기술하는 데
사용하였고,
시 뿐 아니라 희곡·평론·소설까지도 대부분 운문의 형식으로 서술되었습니다.
그래서 산문 문학은 운문문학보다 많이 뒤떨어져, 고대 그리스는 BC 6세기,
유럽은 중세 후기에야 비로소
산문 문학이 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학 주류는 오히려 산문이며,
이것은 18세기 이후에 소설이 급격하게 발전한 영향 때문입니다.
산문(散文)이란
영어의 프로즈(prose)에 해당되는 말로
프로즈의 어원은 라틴어의 프로루수스(prorusus)인데.
산문적이라고 하면,
어감이나 억양이 풍부하고 감정과 심상(心象)의 약동이 가득 찬 詩에 대하여,
무미건조하고 진부한 사물의 형용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따라서 산문정신(散文精神)이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시적(詩的) 감흥이나 낭만적 감각을 배제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자유로운 산문으로 표현하려는 문학상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산 백과사전 참조>
<주의>
그렇다고 수필이 산문정신에 투철하다 하여 감정이 없는 글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필은 시의 장점과 소설의 장점을 다 갖춘 문학이라고 합니다만
수필은 시적 요소를 더 많이 갖춘 산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수필은 무형식(無形式)의 형식문학입니다. - 무형식성
수필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글입니다.
시나 소설, 희곡 등에 비하여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형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은 내용 즉, 정서, 상상, 사상을 예술화하는 그릇이므로
어떤 장르이든 문학형식의 제약을 받게 되지만
수필은 비교적 제약을 덜 받고 자유롭게 써 갈 수가 있다는 특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구성이 없는 문학 장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필에선
그 구성마저도 의도적이고 계획적이기 보다
써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구성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조화의 미와 작자의 체취와 멋을 드러내는 것이 수필이기에
형식이 있다는 타 문학 장르보다 그래서 오래 수필을 써 오신 분들이 오히려
오래 쓰면 쓸수록 더 쓰기 어려운 것이 수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형식이 없는 것 같은데 가장 형식을 잘 갖춰진 문학이 수필이라는 것은
수필을 써 본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사실일 것입니다.
무형식이라는 말은 형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형식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로서
설명, 논증, 서사, 묘사 등 문장의 모든 기술(記述) 양식을 자유로이 부려 쓸 수 있다는 말입니다.
(3) 수필은 고백적(告白的)인 자조문학(自助文學)입니다. - 자기 고백성
수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드러내기'입니다.
몽테뉴가 '완전하게 벗어 붙인 나'라고 한 '드러내기'입니다.
그런데 이 드러내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 관한, '나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실적으로 정직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수필의 어려움이 있고, 수필의 맛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발가벗기'라고도 하는데
바로 모든 대중(독자) 앞에 나를 나신(裸身)으로 내보여야 하니 그게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렇다고 그것을 숨기거나 허위로 표현한다면 그건 수필의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②내 가족적인 사사로운 일' 과
'④내가 그려내고 있는 것이 바로 나'라고 했듯이
수필은 곧 나에 대한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이요,
자조(自助)하는 문학입니다.
소설이나 희곡은 표현 뒤에 주제를 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필은 그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허구(픽션)가 아닌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취미, 지식, 이상, 정서,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살아온 삶, 앞으로의 계획, 숨기고 싶은 습관까지도 솔직하게 노출시킵니다.
그래서 수필 쓰기는
자신의 삶과 인생을 진실의 거울 앞에 비춰 보이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실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보탬이나 덜어냄이 없이 숨김이나 치장함 없이 알몸이 되되 부끄럼 없이 고백하는 것,
그래서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았고, 도 앞으로는 어덯게 살려고 하는가?'
까지 숨김없이 드러내어 말하고,
속 마음을 열어보이는 문학이 수필입니다.
수필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은 곧 수필이 자기 고백적인 글이라는 의미이며,
또 자기를 비쳐보는 거울이라는 것이며,
자기의 깊은 사색과 철학과 인간학을 '마음'을 통해 여과하여 문자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필을 '고해성사(告解聖事)'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진실에 입각한 고백적 자조문학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수필은 픽션이 아닌 '넌픽션'이라는 특징에 아주 큰 비중이 주어지는 것도 바로
이 고백적 자조문학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예문.1]
위태롭게 뛰어내려오는 그 아이도 나와 비슷한 처지인 조실부모한 고아로서
일곱 살 때부터 숙모님의 시중을 들어 가냘픈 손마디가 거칠었고
총명한 까만 눈은 학교의 문턱마저 까맣게 잊고 사는 불쌍한 아이였다.
오빠가 귀대하는 날 아침
숙모님을 대신하여 동리 아주머니들을 찾아다니며
동백의 씨가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 팔아 갚겠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애원했었다.
어렵게 번 몇 푼의 돈을 손에 꼭 쥐고 뱃머리를 향하여 달렸던 것이다.
눈물범벅이 된 어린 동생은 따스한 형제의 정을 건네주고는 바위에 주저 앉아
외로운 오빠의 처지와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겹쳐가며 파도처럼 흐느꼈다.
가슴깊이 와 닿는 갸륵한 정의 전율을 느끼며 터지는 설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두 고아의 가엾은 눈물을 보고 나룻배의 일행도 모두들 측은해 눈시울을 적셨다.
바다 저쪽 하얀 갈매기도 같이 울어주었다.
다시는 휴가를 나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 고동주의 수필 <동백의 씨> 중에서
수필 <동백의 씨>에서 우리는
작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를 몇 문장으로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조실부모 했고,
숙부님 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군복무를 하고 있는데 휴가를 나온 것이고,
자신과 처지가 같은 사촌 여동생이 역시 숙부님 댁에서 신세를 지고 있고,
귀대하는데도 아무도 교통비조차 주지 않는 것을 본 어린 소녀가
동네 아주머니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려 오빠의 손에 쥐어 주는 이야기를 통해
모든 정황을 다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필 한 편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송두리째 벗겨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고백적인 글이라 하는 것입니다.
[자조 문학(自照文學)]
' 자조(自照)'란 스스로를 관찰하고 반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수필에서의 자기 고백성은 자신의 체험이나 사상, 느낌 등을
가식 없이 진솔하게 표출하는 고백적 문학으로
글쓴이의 내면적 심경이 투사되는 자기 고백적 문학인 까닭에
수필을 일러 자조(自照)문학이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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