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어 선생 노릇을 35년간 하면서 초창기에는 피천득 선생의 ‘수필’이란 수필을, 뒤에 가서는 ‘인연’이란 수필을 가르치면서 수필의 참맛을 들였다. 적어도 5개 반 이상의 학급을 담당하면서 같은 단원을 여러 번 답습하면 싫증날 법도 하지만 비유가 많은 ‘수필’이란 수필은 씹을수록 맛있는 고기처럼 즐길 수 있었고, 구성이 돋보이는 ‘인연’ 역시 감수성이 예민한 고3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시인이자 영문학자인 피천득 선생의 문학세계는 시보다 오히려 수필을 통해 진수가 드러나는데, 일상의 정감을 섬세한 필체로 그려 산문화된 서정시처럼 곱고 아름답다. 그의 대표작인 ‘인연’을 비롯하여 ‘수필’, ‘은전 한 닢’ 등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는데,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루 사랑을 받고 있다. 바람이 몹시 부는 그제 오후 한라수목원에 갔다가 붉게 피어있는 제주도의 상징인 참꽃을 찍었는데, 피천득 선생의 수필 ‘봄’과 ‘오월’과 함께 싣는다.
♧ 봄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天痴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 같은 범속한 사람들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우고 하늘을 바라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어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 발자취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젊음을 다시 가져 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
잃었던 젊음을 잠깐이라도 만난 본다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 헤어진 애인이 여자라면 뚱뚱해졌거나, 말라 바스라졌거나 둘 중이요, 남자라면 낡은 털 재킷이 축 늘어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빛이 혼탁해졌을 것이다.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서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게서는 안타까운 미련을 가진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이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늙으면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지혜도 젊음만 못하다.
인생은 40부터라는 말은 인생은 40까지라는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들은 93퍼센트가 사십 미만의 인물들이다. 그러니 40부터는 여생인가 한다. 40년이라면 인생을 짧다. 그러나 생각을 다시 하면 그리 짧은 편도 아니다.
'나비 앞장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
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나비는 작년에 왔던 나비는 아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지만 그 제비는 몇 놈이나 다시 올 수 있을까?
키츠가 들은 나이팅게일은 4천 년 전 루스가 이역 강냉이 밭 속에서 눈물 흘리며 듣던 새는 아니다. 그가 젊었기 때문에 불사조라는 화려한 말을 써 본 것이다. 나비와 나이팅게일의 생명보다는 인생은 몇 갑절 길다.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이 아니다. 더구나 봄이 40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것이다.
녹 슬은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황궁에 유폐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아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
♧ 5월 - 피천득
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5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5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5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5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 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5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6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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