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눈물〉 전송열 지음/글항아리·1만4800원
“통곡이 끝나도 또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 거두니 또 울음이 터지네/ 울음이 터짐에 또 무슨 말을 하랴/ 그저 애간장만 마디마디 끊어질 뿐” 조선 영조 때 좌의정을 지낸 조태억이 둘째아들을 잃고서 남긴 오언절구 10수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처럼 가까운 이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시를 ‘만시’(挽詩)라 한다. 한문학자 전송열(연세대 강사)씨의 <옛사람들의 눈물>은 조선 시대 만시를 종류별로 모아 엮고 작품의 배경과 미학적 특징에 대한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우리 형의 얼굴은 누구를 닮았던가요/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형을 보곤 했지요/ 오늘 형이 그리운데 어디 가서 볼까 하다/ 옷매무새 바로 하고는 시냇물에 비춰봅니다” 연암 박지원의 시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을 그리워하며>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호가 난 연암이지만, 산문에 주력하느라 그가 쓴 시는 15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버지와 두 형제 사이의 닮은꼴 외모를 통해 아버지와 형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솜씨는 ‘역시 연암’이라는 찬탄을 자아낸다. 만시의 대상은 가족과 친구, 또는 스승이나 제자가 대부분이었지만, 남을 대신해 지은 ‘대만시’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쓴 ‘자만시’도 없지 않았다. 특히 부부유별의 엄격한 유교적 법도가 중시되던 조선 사회에서 만시는 점잖은 선비들이 사별한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거침없이 표현할 통로가 되기도 했다.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문을 들어서려다 다시 나와서/ 고개 들어 바쁘게 두리번대네./ 남쪽 언덕엔 산 살구꽃이 피었고/ 서쪽 물가엔 해오라기 대여섯” 조선 후기의 빈한했던 선비 이양연이 처와 둘째아들을 연이어 잃고 쓴 <슬픔을 피하려고>라는 작품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몇 달 상관으로 떠나 보낸 가장의 아픔이 은근하면서도 둔중하게 다가온다. 제목에서 보듯, 슬픔을 표나게 내세우는 대신 ‘딴청’을 부리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독자의 슬픔과 아픔을 자극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너희 남매의 혼은/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겠지/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랄까” “해 떨어져 하늘은 칠흑과도 같고/ 산은 깊어 골짜기가 구름과 같네/ 천 년토록 지키자던 군신의 의는/ 슬프게도 외로운 무덤뿐이로구나” 앞의 것은 비운의 여성 예술가 허난설헌이 어린 남매를 차례로 잃고서 쓴 <죽은 자식을 통곡하며>라는 작품이고, 뒤엣것은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함께 죽임을 당한 기준이 사약을 받고서 자신의 죽음을 읊은 ‘자만시’다. 어느 죽음이 무겁고 어느 죽음이 가벼우며 어느 죽음이 억울하고 어느 죽음이 통쾌하다 하겠는가. 계절처럼 오고 가는 생과 사 앞에 다만 옷깃을 여밀 따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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