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생활인의 철학과 사색이 담긴 수필을 많이 쓰신 이양하(李敭河) 선생의 수필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1980년대까지 ‘신록예찬’과 ‘페이터의 산문’, 그 이후에는 ‘나무’가 실려 학생들에게 나무와 우리 인간의 비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나 자연과 어울려 사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있다. 수필가이자 시인, 영문학자(1904~1963)로 활동하며 ‘영한사전’, ‘한미 대사전’을 편찬하였다. ‘이양하 수필집’과 시집 ‘마음과 풍경’이 있다.
병꽃나무는 쌍떡잎식물 꼭두서니목 인동과의 낙엽관목 병꽃나무는 5∼6월에 피고 9월에 열매가 익는데,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옆 일본과 중국에서도 분포한다고 써 있다. 개발을 했는지 화관이 처음부터 끝까지 백색인 흰병꽃, 꽃받침 열편의 길이가 5.0∼6.5㎜인 좀병꽃, 처음에는 꽃이 백색이고 통부만 적색이던 것이 전체가 적색으로 되는 색병꽃, 화관이 백록색이고 통부 겉에 붉은빛이 돌며 안쪽 순판을 따라 누른빛이 도는 것을 삼색병꽃이라 한다.
♠ 나무 - 이양하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滿足)할 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후박(厚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處地)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孤獨)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옴쭉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달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 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義理)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意思)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그야말로 바람쟁이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올 뿐 아니라, 어떤 때에는 쏘삭쏘삭 알랑거리고, 어떤 때에는 난데없이 휘갈기고, 또 어떤 때에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를 내놓고 달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 흥겨워 노래할 때, 노래 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무는 이 모든 것을 잘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달을 유달리 후대(厚待)하고 새와 바람을 박대(薄待)하는 일도 없다. 달은 달대로, 새는 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 같이 친구로 대한다. 그리고, 친구가 오면 다행(多幸)하게 생각하고, 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행(不幸)해하는 법이 없다.
같은 나무, 이웃 나무가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나무는 서로 속속들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동정(同情)하고 공감(共感)한다.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기쁘고, 일생(一生)을 이웃하고 살아도 싫증나지 않는 참다운 친구다.
그러나, 나무는 친구끼리 서로 즐긴다느니보다는, 제각기 하늘이 준 힘을 다하여 널리 가지를 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더 힘을 쓴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항상 감사하고 찬송하고 묵도(?禱)하는 것으로 일삼는다. 그러기에, 나무는 언제나 하늘을 향하여 손을 쳐들고 있다. 온갖 나뭇잎이 우거진 숲을 찾는 사람이, 거룩한 전당에 들어선 것처럼, 엄숙(嚴肅)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절로 옷깃을 여미고, 우렁찬 찬가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理由)도 여기 있다.
나무에 하나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명(天命)을 다한 뒤에 하늘 뜻대로 다시 흙과 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가다 장난 삼아 칼로 제 이름을 새겨 보고, 흔히 자기(自己) 소용(所用) 닿는 대로 가지를 쳐 가고 송두리째 베어 가곤 한다. 나무는 그래도 원망(怨望)하지 않는다. 새긴 이름은 도리어 그들의 원대로 키워지고, 베어 간 재목(材木)이 혹 자기를 해칠 도끼 자루가 되고 톱 손잡이가 된다 하더라도, 이렇다 하는 법이 없다.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요, 고독(孤獨)의 철인(哲人)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다. 불교(佛敎)의 소위(所謂) 윤회설(輪回說)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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