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본토 곳곳을 하얗게 물들이는 구절초.

제주에는 쑥부쟁이나 해국, 산국 등의 들국화는 많지만

구절초는 드물다. 지난 9월 29일 영실 바위 사이에서

몇 포기 확인되어 반가웠는데, 어제 갔던 한라생태숲에

한라구절초가 많이 복원되어 이렇게 환하게 꽃을 피웠다.


한라구절초는 국화과 여러해살이풀로서 한라산 해발 1,300m

이상에서 자란다. 산국과 감국에 비해 두상화가 크고 가지

끝에 1개씩 달리며 총포 편은 선형이다. 9월 9일 중앙절에

꽃이 피기 때문에 구절초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한라산에

자라는 구절초라 하여 한라구절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줄기 높이는 20㎝ 정도이고 지하경은 옆으로 뻗으며 번식한다.

잎은 호생하며 가늘게 깃 모양으로 갈라지고 육질이다. 꽃은

보통 흰색, 분홍색이며 두화는 가지가 갈라지는 화경 끝에

1개씩 피고 두상 화서의 지름은 5~6㎝이다. 9~10월에 피고,

결실기는 10~11월이다.



 

♧ 구절초 - 박상희


강물이 세월 따라 흐른다.

산이 강을 안고 흐른다.

강물이 하늘은 안고 흐른다.


강 언덕배기

가슴이 탈수록 안으로 파고들어

거울처럼 제몸 비춰가며

세월의 강바람에도

언덕배기 산기슭에 붙어

바들바들 하더니

한 생을 살기위해 얻어낸

온 우주의 모든 것을

스스로 다 받아 살아 왔구나.


가슴 조이던 시간은 가고

참아온 인내의 향기로

너 거기 있음을 알아

이제야 생각하니

너보다 긴 날을 살고도

한 호흡 향기 없는 내가 부끄러워

강물에 일렁이는 너를 본다.

물에 잠긴 세월을 흔들어 본다.

 



 

♧ 구절초를 바라보며 - 구재기

    --千房山에 오르다가·73


무녀巫女의 눈 밖으로 쫓겨난 꽃

하이얀 구절초를 바라보며

이 땅에도 하루가 소리 없이 지나갔음을 알았다


가을빛이란, 잔 솔가지 사이로 빠져나온 가을햇살이란

물레방아 바퀴에서 흐느끼며 물방울로 흐르던 千房山 물소리는 사라지고

어느 새 세상과 어울려 싸운 곳에는 흰 머리칼만 돋아났다.

人事는 잠잠히 오고 가는 산허리에 감돌고

코 끝에 향기로 묻어나는 것은 새털처럼 가비야운 한 점 웃음뿐


느닷없이 발등 위로 이름 모를 낙엽 하나 떨어졌다.

못 견딜 바람 사이로 千房山 해거름을 걷는데

처음으로 가는 허리에 돋아난 두 다리가 서러웠다

이따금 꺼져가는 햇살이 있는 듯 없는 듯

실상은 하잘 것 없는 세상의 외출조차 몰라야 했다.


잊어버린 생각이나 잃어버린 시간을 마련할 자리도 없이

끝내 슬퍼버린 머리칼을 말끔히 빗어 내렸다

모두가 제 자리에 들어 주위를 한 번 휘돌아볼 즈음

멀리 손 가는 데 없이 구름이 일고 비가 내리는데

저녁 냄새가 산 아래 마을에서 몰려왔다


이제 구태여 千房山 봉우리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좋았다

뜨거워지는 눈두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하이얀 구절초를 바라보면서

더욱 가까와진 하늘 저만큼

새소리랑, 멀리 산등성이에서 달려오는 산짐승 울음소리랑

巫女가 홀로 깨어있음을 알았다



 

♧ 구절초 아름답게 피는 계절이라고 - 김명석


구절초 아름답게 피는 계절이었던가

나는 네게 이야기하였지 피어야 한다고

구절초 아름답게 피는 계절이었던가

나는 네게 이야기하였지 한 번 사는 인생이라고

구절초 아름답게 피는 계절이었던가

나는 네게 이야기하였지 비어진 가슴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구절초 아름답게 피는 계절이었던가

나는 네게 말을 하였지 구절초도 이제

지는 시간이 곧 돌아 올 것이라고.

 


 

♧ 구절초 꽃 - 홍윤표


산사에 소요(騷擾)가 일어나듯

다투어 앞으로만 걷는 너의 자태는

가을빛에 스승이 되었구나


가던 길 잃어 손을 놓은 그 아픔

유배라도 간 듯 옹기종기 시월의 하늘엔

운명을 여는 바람꽃이 피었구나


날카로운 외투 깃 세우고

산길 걸어 구만리 정상에 올라

목놓아 너를 부르니

귓전 가까이 들려오는

너의 의기소침한 신음소리는

가늘한 비밀을 남기었구나


지금도 영랑사에 내리는

옅은 햇살 속을 걷는 바람아

수줍은 얼굴 간지르는 생명의 꽃이 되었으랴


구절초, 나의 구절초 꽃

노랑배꼽을 내놓고 하늘을 보는

너의 순결은

수줍음 없는 자유의 혼이었구나.

 



 

♧ 구절초 엽서 - 이정자


먼 산 가까워지고 산구절초 피었습니다

지상의 꽃 피우던 나무는 제 열매를 맺는데

맺을 것 없는 사랑은 속절없습니다

가을 햇살은 단풍을 물들이고 단풍은 사람을 물들이는데

무엇 하나 붉게 물들여보지도 못한 생이 저물어 갑니다

쓸쓸하고 또 쓸쓸하여

찻물을 올려놓고 먼 산 바라기를 합니다

그대도 잘 있느냐고,

이 가을 잘 견디고 있느냐고

구절초 꽃잎에 부치지 못할 마음의 엽서 다시 씁니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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