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생명존중의 방법론 /남재일 | |
일주일이 멀다 하고 자살기사가 실린다. 물론 보도되지 않는 자살이 훨씬 많다. 하루 수십명이 자살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얼마 전에는 ‘행복전도사’ 최윤희씨 부부가 동반 자살했다. 아내가 병고에 시달리다 삶을 마감하는 길을 택하자 남편이 뒤를 따랐다. 타인에게 행복을 전도하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도 차분한 어조로 세상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까지 전하며 떠났다? 거기에 충동의 흔적은 없었고 결단한 사람의 담담함만이 있었다? 이 광경은 낯설고 당혹스럽다. 아마 개인의 죽을 권리를 옹호한 ‘자유죽음’의 저자 장 아메리라면 이들의 죽음을 실존적 선택으로 인정했을 것이다. 자살을 명예롭게 삶을 마감하는 방법으로 이해했던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라면 한걸음 더 나아가 생존을 포기함으로써 삶을 구원한 행동으로 해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사회건 자살은 원칙적으로 부정의 대상이었다. 과거에는 처벌받아야 하는 죄였고, 현재는 치료받아야 하는 질병이다. 사회는 어떤 형태든 자살에 개입했고, 자살을 개인의 권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살의 의미는 자살자의 삶의 논리가 아닌 자살예방이라는 사회의 필요에 따라 재단됐다. 최씨의 자살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기사에 붙은 수많은 댓글들 중에는 “자살은 개인적인 선택이다”, “질병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남으라는 건 산 사람들의 심리적 평안을 위한 이기적 행동”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극히 소수다. 다수의 댓글은 ‘어떤 경우든 생명존중’이라는 성직자의 강박과 ‘어떤 경우든 미화돼선 안 된다’는 예방의학자의 불안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어느 누가 자살행위 자체를 미화한다고, 어느 누가 생명존중 자체를 거부한다고 방금 떠난 생명의 등을 떠밀고 있는가. ‘생명존중’의 풍경이 이런 거라면 도대체 누구의 생명, 어떤 존중을 말하는 것인가? ‘생명’은 생물학적 생명인 목숨과 사회적 생명인 삶을 포괄해야 한다. 인간에게 그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살자의 등 뒤에 내거는 생명존중의 구호는 삶을 거세한 생존에의 집착만 도드라진다. 이런 태도는 삶을 파괴하는 폭력에 무감각하고 목숨을 끊어 놓는 행위에만 민감하게 반응한다.(성폭행을 피해 투신자살한 소녀의 죽음에 성추행범의 책임이 없다는 경찰의 논리를 생각해 보라!) 그래서 자살자의 삶에 폭력을 가하면서까지 자살행위를 응징하는 데 집착한다. 이건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관념에 대한 물신숭배일 뿐이다. 생명이라는 관념을 절대화하면 생명 훼손에 대한 심판의 공포심은 증폭되고, 반사적으로 조금이라도 타인의 죽음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방어적 태도를 불러오기 쉽다. 이건 사실 타인의 삶은 애초에 관심이 없고 나의 생존에 대한 신경증적 불안만 있는 상태이다. 이런 심리상태는 생명이란 관념을 절대화해서 신의 권능에 의탁하면서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외면하는 도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곳곳에서 그런 징후들이 보인다. 성폭행과 살인을 동시에 저지른 김길태는 저주하지만 정신지체 소녀를 16명의 청소년이 성폭행한 사실에는 무감각한 것, 파키스탄에서 자행된 간통녀에 대한 투석형의 잔인함에 분개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미군 무인비행기에 의한 살육의 교활함에 무덤덤한 것, 뇌도 없는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며 낙태를 불법화하면서 미혼모에 대해 인격살인이 저질러지는 현실의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암치료술이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며 말기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시설에는 관심이 없는 것. 진정 살아 있는 생명을, 삶을 존중한다면 어떻게 이런 부조리가 가능할까? 현대사회는 죽음의 문제가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손으로 넘어온 사회이다. 생명존중의 방법 또한 생존의 물신화에서 삶에 대한 존중으로 관심을 돌려나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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