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어린 시절 어머니는 저에게
가끔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습니다.
보통의 경우 군말 없이 심부름을 했지만
귀찮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머니께서 아무런
말씀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핑계거리가 하나 있었지요.
이 말 한마디면 어머니께서는 내게 심부름시킨 것을
접어두시고 당신이 직접 움직이셨습니다.
"엄마, 숙제해야 해요."
어느새 내가 내 어머니의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헌데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인가 봅니다.
"준형아, 아빠 심부름 좀 다녀오겠니?" 그러면
"예!" 하고 흔쾌히 심부름을 잘 다녀오는 아들놈이
가끔씩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하곤 합니다.
"아빠, 숙제해야 해요."
그러면 나는 두 말 없이 내가 직접 움직입니다.
예전에 내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그런데 뒤에서 넌지시 아들놈을 보고 있으면
숙제가 아닌 딴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면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누가 내 아들 아니랄까봐,
내가 하던 짓을 그대로 하고 있잖아.'
하고 말입니다. 내 어머니도 그러셨을 테지요.
내 어머니도 다 알고 계셨을 테지요.
지금의 나처럼 피식 웃으셨을 테지요.
오늘은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작은 수고로
"저예요. 별일 없으시죠?"로 시작되는
무뚝뚝한 목소리를 어머니께 들려드려야겠습니다.
그것이 한 첩에 몇 십만 원 하는 보약보다
더 좋은 보약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콤한 나의 인생』
(박성철 지음 | 책이있는풍경)
출처 : 박종국 수필가의 좋은글밭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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