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는 볏과 식물이기 때문에 추운 곳에서부터 먼저

이삭을 내민다. 그러기에 제주에서도 차이가 있어 한

라산에서부터 해변으로 내려오는 게 순서다. 어제 영

실에서 내려와 1100도로와 5.16도로를 잇는 산록도로

에 접어든 순간 새로 팬 억새가 도열해 맞는 듯 길 양

옆을 장식하고 있었다. 차진 공기를 의식해 일제히 몸

을 푼 것이리라.

      

오늘은 여러 가지 잡다한 원고를 정리하다가 모교인

애월중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를 위해 펴내는 동창회지

편집을 끝내고, 갖는 모임에 참여했다. 요즘 가뜩이나

동창회, 종친회, 향우회에 관심을 갖지 않은 세대들이

많은데, 향수(鄕愁)라는 무기만으로 이들을 결집시키는

건 힘들고, 어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억새는 볏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1~2미터이며,

잎은 긴 선 모양이다. 7~9월에 누런 갈색 꽃이 피는

데 작은 이삭은 자주색이다. 잎을 베어 지붕을 이는

데나 마소의 먹이로 쓴다.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 억새꽃처럼 - 권도중


간절함 다스려 참아야 함을 압니다

억새꽃처럼 다 날려 보낸 지난날이

허물과 후회만 남긴 언덕으로 있습니다


다시 알리고픔을 용납할 수 있을까요

못 울린 북소리 숨기어 남겼어도 이제

세상에 넓은 어느 공간에 집 하나 있습니다


이제 젊고 늙음이 다름없는 사이인데

저쪽에 피어 생생한 세상에서 슬픈 꽃

이 죄업 그대 생각이 억새꽃 같습니다


 

♧ 억새 사이로 - 이선명


바람처럼 슬프게 웃는다

흔들리는 지난날의 열정

언제나 자유롭고 싶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명한 흔적이고 싶었다

 

바람은 한 길로

억새는 수십 갈래로 흔들린다

꿈은 현실이지 못해 더 애틋한가

삶을 기억하고 기다림을 배운다

바람처럼 슬프게 웃는다

 


 

♧ 이효석억새 - 소양 김길자

 

자기의 길 외로이 걷는 바람아

세상 번뇌 다 짊어지고

탈골된 마디 시큰거리도록

가을을 밀어내는가


어둠을 밟는 달빛도

잊을 수 없는 한 세월 안고

휜 언덕길 숨차도록

풀피리 불며 고독을 노래하는데


밤새 잘잘거리는 은빛 물결위에

내일의 희망하나 띄워 놓고

높은 곳으로 비상할 소망이여

밤을 왜 뒤척이는가.



 

♧ 흔들리는 억새 - 손상근


아직도 제 모습

찾지 못해서 일까

흔들리지 말아야겠다는

숱한 다짐은

위선 일까

흔들리다 쓰러져도

아픔 말하지 않을 때까지

사랑을 배워야지

홀로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가슴 꼭 껴안아야지

목마름 

숨길 수 있을 때까지



 

♧ 억새꽃 - 양해선


무너져 내리는 지난날들

낡은 옷마저 찢겨져 바람에 날리고

호젓이 떨어지는 나뭇잎들


모두 다 내어 놓으라며

잔뜩 찌푸리고 으르렁거리는 하늘

번득이는 시퍼런 칼

가슴 깊숙이 내려 꽂히는 순간,

불쑥 치밀어 오르다 부서지는 분노

산산이 흩어진다


이제 가져갈 것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철 늦은 천둥번개 잦아들고

가을은 홀로 울고 있는데,

억세게 치켜 세워온 자존심들

한결같이 강물을 바라보고 서서

고개 숙이고

하염없이 젖고 있다


 

물안개 자옥이 피어오르고

점점 더 낮게 구부러지는 등줄기 따라

다스릴 수 없는 격한 성정(性情)이,

벗어날 수 없는 숱한 번뇌가,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련이,

축축하게 흘러내린다


다시금, 햇살이 등을 두드리면

모두 다 툭툭 털고

일어선다 보드라운 억새꽃은 하얗게

날아오르는 나비 떼가 된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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