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여정

                     -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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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MJB(커피의 상표로 추정)의 미각을 잊어버린 지도 이십여일이나 됩니다. 이곳에는 신문도 잘 아니오고 체전부(우체부)는 이따금 '하도롱'(hard-rolled paper. 다갈색 종이로서 봉투, 포장지를 만듦) 빛 소식을 가져옵니다. 거기는 누에고치와 옥수수의 사연이 적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 일가 때문에 수심이 생겼나봅니다. 나도 도회에 남기고 온 일이 걱정이 됩니다.

건너편 팔봉산에는 노루와 멧도야지가 있답니다. 그리고 기우제 지내던 개골창까지 내려와서 가재를 잡아먹는 '곰'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동물원에서밖에 볼 수 없는 짐승, 산에 있는 짐승들을 사로잡아다가 동물원에 갖다 가둔 것이 아니라, 동물원에 있는 짐승들을 이런 산에다 내어 놓아준 것만 같은 감각을 자꾸만 느낍니다. 밤이 되면 달도 없는 그믐 칠야(옻칠을 한 듯 어두운 밤)에 팔봉산도 사람이 침소로 들어가듯이 어둠 속으로 아주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공기는 수정처럼 맑아서 별빛만으로라도 넉넉히 좋아하는 '누가'복음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참 별이 도회에서보다 갑절이나 더 많이 나옵니다. 하도 조용한 것이 처음으로 별들의 운행하는 기척이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객주집 방에는 석유등잔을 켜 놓습니다. 그 도회지의 석간과 같은 그윽한 내음새가 소년시대의 꿈을 부릅니다. 정형! 그런 석유등잔 밑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호까'-연초갑지(煙草匣紙 : 이해하기 곤란한 단어. 아시는 분은 보산에게 연락)-붙이던 생각이 납니다. 벼쨍이가 한 마리 등잔에 올라 앉더니 그 연두빛 색채로 혼곤한 내 꿈에 마치 영어 '티'자를 쓰고 건너 긋듯이 유다른 기억에다는 군데군데 '언더라인'을 하여 놓습니다. 슬퍼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도회의 여차장이 차표 찍는 소리 같은 그 음악을 가만히 듣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또 이발소 가위 소리와도 같아집니다. 나는 눈까지 감고 가만히 또 자세히 들어봅니다.

그리고 비망록을 꺼내어 머루빛 잉크로 산촌의 시정을 기초합니다.

그저께신문을찢어버린
때묻은흰나비
봉선화는아름다운애인의귀처럼생기고
귀에보이는지난날의기사

얼마 있으면 목이 마릅니다. 자리물-심해처럼 가라앉은 냉수를 마십니다. 석영질 광석 내음새가 나면서 폐부에 한난계 같은 길을 느낍니다. 나는 백지 위에 싸늘한 곡선을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청석(靑石) 얹은 지붕에 별빛이 나려쪼이면 한겨울에 장독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납니다. 벌레 소리가 요란합니다. 가을이 이런 시간에 엽서 한 장에 적을 만큼씩 오는 까닭입니다. 이런 때 참 무슨 재조로 광음(光陰, 시간의 흐름)을 헤아리겠읍니까? 맥박소리가 이 방안을 방채 시계로 만들어버리고 장침과 단침(시계의 두 바늘)의 나사못이 돌아가느라고 양짝 눈이 번갈아 간질간질합니다. 코로 기계 기름 내음새가 드나듭니다. 석유등잔 밑에서 졸음이 오는 기분입니다.

'파라마운트'회사(영화사) 상표처럼 생긴 도회 소녀가 나오는 꿈을 조곰 꿉니다. 그리다가 어느 도회에 남겨 두고 온 가난한 식구들을 꿈에 봅니다. 그들은 포로들의 사진처럼 나란히 늘어섭니다. 그리고 내게 걱정을 시킵니다. 그러면 그만 잠이 깨어 버립니다.

죽어 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여 봅니다. 벽 못에 걸린 다 해어진 내 저고리를 쳐다봅니다. 서도천리(潟千里)를 나를 따라 여기 와 있읍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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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심지를 돋우고 불을 켠 다음 비망록에 철필로 군청빛 '모'를 심어갑니다. 불행한 인구가 그 위에 하나하나 탄생합니다. 조밀한 인구가-.

내일은 진종일 화초만 보고 탈지선(脫脂線)에다 '알콜'을 묻혀서 온갖 근심을 문지르리라, 이런 생각을 먹습니다. 너무나 꿈자리가 뒤숭숭하여서 그리는 것입니다. 화초가 피어 만발하는 꿈 '그라비아'(사진 제판에 사용되는 인쇄법) 원색판 꿈 그림 책을 보듯이 즐겁게 꿈을 꾸고 싶습니다. 그리면 간단한 설명을 위하여 상쾌한 시를 지어서 7'포인트' 활자로 배치하는 것도 좋습니다.

도회에 화려한 고향이 있읍니다. 활엽수만으로 된 산이 고향의 시각을 가려 버린 이 산촌에 팔봉산 허리를 넘는 철골전신주가 소식의 제목만을 부호로 전하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볕에 시달려서 마당이 부스럭거리면 그 소리에 잠을 깨입니다. 하루라는 '짐'이 마당에 가득한 가운데 새빨간 잠자리가 병균처럼 활동입니다. 끄지 않고 잔 석유등잔에 불이 그저 켜진 채 소실된 밤의 흔적이 낡은 조끼 '단추'처럼 남아 있읍니다. 작야(어젯밤)를 방문할 수 있는 '요비링'(초인종)입니다. 지난밤의 체온을 방 안에 내어던진 채 마당에 나서면 마당 한 모퉁이에는 화단이 있읍니다. 불타오르는 듯한 맨드라미꽃 그리고 봉선화.



지하에서 빨아 올리는 이 화초들의 정열에 호흡이 더워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 처녀 손톱끝에 물들을 봉선화 중에는 흰 것도 섞였읍니다. 흰 봉선화도 붉게 물들까-조금 이상스러울 것 없이 흰 봉선화는 꼭두서니 빛으로 곱게 물듭니다.

수수깡 울타리에 '오렌지'빛 여주가 열렸읍니다. 당콩넝쿨과 어우러져서 '세피아'빛을 배경으로 하는 일폭의 병풍입니다. 이 끝으로는 호박넝쿨 그 소박하면서도 대담한 호박꽃에 '스파르타' 식 꿀벌이 한 마리 앉아 있읍니다. 농황색에 반영되어 '세실.B.데밀'(미국의 유명한 영화제작자로 <십계>, <삼손과 데릴라> 등 대형 스펙터클 영화를 잘 만든 사람)의 영화처럼 화려하며 황금색으로 치사(사치와 같은 말)합니다. 귀를 기울이면 '르넷산스' 응접실에서 들리는 선풍기 소리가 납니다.

야채 '사라다'에 놓이는 '아스파라가스' 입사귀 같은 또 무슨 화초가 있읍니다. 객주집 아해에게 물어봅니다. '기상꽃'-기생화(妓生花)란 말입니다.

무슨 꽃이 피나-진홍 비단꽃이 핀답니다.

선조가 지정하지 아니한 '조셋트'(우아한 여름 옷감) 치마에 '외스트민스터' 권연(영국담배 이름)을 감아놓은 것 같은 도회의 기생의 아름다움을 연상하여 봅니다. 박하보다도 훈운한 '리그레추윙껌'(미국의 껌 이름) 내음새 두꺼운 장부를 넘기는 듯한 그 입맛 다시는 소리-그러나 아마 여기 필 기생꽃은 분명히 혜원(화가 신윤복의 호) 그림에서 보는 것 같은-혹은 우리가 소년시대에 보던 떨떨 인력거에서 홍일산(붉은색 양산) 받은 지금은 지난날의 삽화인 기생일 것 같습니다.

청둥호박이 열렸읍니다. 호박꼬자리에 무 시루떡-그 훅훅 끼치는 구수한 김에 좇아서 증조할아버지의 시골뜨기 망령들은 정월초하룻날 한식날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국가백년의 기반을 생각케 하는 넓적하고도 묵직한 안정감과 침착한 색채는 '럭비'구를 안고 뛰는 이 '제너레숀'(generation)의 젊은 용사의 굵직한 팔뚝을 기다리는 것도 같습니다.

유자가 익으면 껍질이 벌어지면서 속이 비져 나온답니다. 하나를 따서 실 끝에 매어서 방에다가 걸어둡니다. 물방울져 떨어지는 풍염(豊艶)한 미각 밑에서 연필같이 수척하여가는 이 몸에 조곰식 조곰식 살이 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야채도 과실도 아닌 '유모러스'한 용적에 향기가 없읍니다. 다만 세수비누에 한겹씩 한겹씩 해소되는 내 도회의 육향(肉香)이 방 안에 배회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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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산 올라가는 초경(草俓;수풀로 덮인 지름길) 입구 모퉁이에 최XX송덕비와 또 XXXX아무개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妃)가 항공우편 '포스트'(우체통)처럼 서 있읍니다. 듣자니 그들은 다 아직도 생존하여 계시다 합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교회가 보고 싶었읍니다. 그래서 '에루살렘' 성역을 수만리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의 농민들까지도 사랑하는 신 앞으로 회개하고 싶었읍니다. 발길이 찬송가 소리 나는 곳으로 갑니다. '포푸라' 나무 밑에 '염소' 한 마리를 매어 놓았읍니다. 구식으로 수염이 났읍니다. 나는 그 앞에 가서 그 총명한 동공을 들여다봅니다. '세루로이드'로 만든 정교한 구슬을 '오브라-드'(oblato;전분으로 만든 얇은 원형의 부편. 그냥 먹기 어려운 약을 싸는 데도 쓰임. 투명한 전분지.)로 싼 것 같이 맑고 투명하고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도색(桃色;복숭아색)눈자위가 움직이면서 내 삼정(三停;머리와 이마의 경계, 코끝, 턱끝 이 세 곳을 가리킴)과 오악(五岳;이마, 코, 턱, 좌우 관골)이 고르지 못한 빈상(貧相;가난한 관상)을 업수여기는 중입니다.

옥수수밭은 일대 관병식(觀兵式;군대의 행진 등을 지켜보는 예식)입니다. 바람이 불면 갑주(甲胄;갑옷과 투구) 부딪치는 소리가 우수수 납니다. '카-마인'(carmine;연지벌레에서 뽑아 낸 홍색 안료) 빛 꼭구마(꼬고마;군졸이 벙거지에 꽂던 붉은 털)가 뒤로 휘면서 너울거립니다. 팔봉산에서 총소리가 들렸읍니다. 장엄한 예포소리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곁에서 소조(小鳥;작은새)의 간을 떨어뜨린 공기총소리였읍니다. 그러면 옥수수밭에서 백, 황, 흑, 회, 또 백(모두 색), 가지 각색의 개가 퍽 여러 마리 열을 지어서 걸어 나옵니다. '센슈알'한 계절의 흥분이 이 '코삭크'(cossack; 카자흐의 영어식 이름. 카스피해의 북동쪽,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대에 위치함) 관병식을 한층 더 화려하게 합니다.

산삼이 풀어져 흐르는 시내 징검다리 위에는 백채(白菜:하얀 야채) 씻은 자취가 있읍니다. 풋김치의 청신(淸新:푸릇푸릇하고 풋풋한)한 미각이 안약 '스마일'을 연상시킵니다. 나는 그 화성암으로 반들반들한 징검다리 위에 삐뚜러진 N자로 쪼그리고 앉았노라면 시야에 물동이를 이고 주저하는 두 젊은 새악씨가 있읍니다. 나는 미안해서 일어나기는 났으면서도 일부러 마주 보면서 그리로 걸어갑니다. 스칩니다. '하도롱'빛 피부에서 푸성귀 내음새가 납니다. '코코아'빛 입술은 머루와 다래로 젖었읍니다. 나를 아니 보는 동공에는 정제된 창공이 '간쓰메'(통조림의 일본어)가 되어 있읍니다.

M백화점 '미소노'(1930년대 일제 화장품 이름) 화장품 '스위-트 껄'(sweet girl)이 신은 양말은 이 새악씨들의 피부색과 똑같은 소맥(밀)빛이었읍니다. 빼뜨름히 붙인 초유선형 모자 고양이 배에 '화-스너'(fastener;분리되어 있는 것을 잠그는 데 쓰는 기구의 총칭. 지퍼나 클립 등)를 장치한 갑붓한 '핸드빽'-이렇게 도회의 참신하다는 여성들을 연상하여 봅니다. 그리고 새벽 '아스팔트'를 구르는 창백한 공장소녀들의 회충과 같은 손가락을 연상하여 봅니다. 그 온갖 계급의 도회여인들 연약한 피부 위에는 그네들의 빈부를 묻지 않고 온갖 육중한 지문을 느끼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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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난하나마 무명같이 튼튼한 피부 위에 오점이 없고 '추잉껌' '초콜레이트' 대신에 응어리는 빼어먹고 달절지근한 꼬아리(꽈리)를 불며 숭굴숭굴한 이 시골 새악시들ㅇ르 더 나는 끔찍이 알고 싶습니다. 축복하여 주고 싶습니다. 교회는 보이지 않습닏. 도회인의 교활한 시선이 수줍어서 수풀 사이로 숨어버리고 종소리의 여운만이 근처에 내음새처럼 남아서 배회하고 있읍니다. 혹 그것은 안식을 잃은 내 혼이 들은 바 환청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조밭 한복판에 높은 뽕나무가 있읍니다. 뽕 따는 새악시가 전공부처럼 높이 나무 위에 올랐읍니다. 순백의 가장 탐스러운 과실이 열렸읍니다. 둘이서는 나무에 오르고 하나이 나무 밑에서 다랭이를 채우고 있읍니다. 한두 잎만 따도 다랭이가 철철 넘는 민요의 무대면(舞臺面)입니다.

조이삭은 다 말라 죽었읍니다. '콜크'처럼 가벼운 이삭이 근심스럽게 고개를 숙였읍니다. 오- 비야 좀 오려무나 해면처럼 물을 빨아들이고 싶어 죽겠읍니다. 그러나 하늘은 금한 듯이 구름이 없고 푸르고 맑고 또 부숭부숭하니 깊지 못한 뿌리의 SOS의 암반 아래를 흐르는 지하수에 다다르겠읍니다.

두 소년이 고무신을 벗어들고 시냇물에 발을 잠가 고기를 잡습니다. 지상의 원한이 스며 흐르는 정맥- 그 불길하고 독한 물에 어떤 어족이 살고 있는지- 시내는 대지의 신열을 뚫고 벌판 기울어진 방향으로 흐르고 있읍니다. 그것은 가을의 풍설(風說)입니다.

가을이 올 터인데 와도 좋으냐고 쏘근쏘근하지 않습니까. 조이삭이 초례청 신부가 절할 때 나는 소리같이 부수수 구깁니다. 노회한 바람이 조잎새에게 난숙(欄熟;너무 익음)을 최촉(催促;재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의 마음은 푸르고 초조하고 어립니다.

조밭을 어지러뜨린 자는 누구냐- 기왕 한될 조여든- 그런 마음으로 그랬나요 몹시 어지러뜨려 놓았읍니다. 누에-호호(戶戶;집집)에 누에게 있읍니다. 조이삭보다도 굵직한 누에가 삽시간에 뽕잎을 먹습니다. 이 건강한 미각은 왕후와 같이 지존스러우며 치사(侈奢;사치와 같은 말)스럽습니다. 새악시들은 뽕심부름하는 것으로 몸의 마지막 광영을 삼습니다. 그러나 뽕이 떨어졌읍니다. 온갖 폐백이 동이 난 것과 같이 새악시들의 정열은 허둥지둥하는 것입니다.

야음을 타서 새악시들은 경장(輕裝;가볍게 입음)으로 나섭니다. 얼굴의 홍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뽕나무에 우승배가 놓여 있읍니다. 그리로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조밭을 짓밟습니다. 자외선에 맛있게 끄실른 새악시들의 발이 그대로 조이삭을 무찌르고 '스크람'(srcum)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에 닿을 지성이 천고마비 잠실(누에가 있는 방) 안에있는 성스러운 귀족가축들을 살찌게 하는 것입니다. '코렛트'부인(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콜렛트)의 '빈묘'(牝猫;암코양이. 작품 제목)를 생각케 하는 말캉말캉한 '로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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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학교 곁집 길가에서 들여다 보이는 방에 틀이 떠들고 있읍니다. 편발처녀(머리를 땋아내린 처녀)가 맨발로 기계를 건드리고 있읍니다. 그러면 기계는 허리를 스치는 가느다란 실이 간지럽다는 듯이 깔깔깔깔 대소하는 것입니다. 웃으며 지근대이며 명산 XX 명주가 짜여나오니 열대자수건이 성묘갈 때 입을 때때를 만들고 시집살이 설움을 씻어주고 또 꿈과 꿈을 말소하는 쓰레받기도 되고-이렇게 실없는 내 환희(幻戱)입니다.

담배가게 곁방 안에는 오늘 황혼을 미리 가져다 놓았읍니다. 침침한 몇 '가론'(gallon)의 공기 속에 생생한 침엽수가 울창합니다. 황혼에만 사는 이민 같은 이국초목에는 순백의 갸름한 열매가 무수히 열렸읍니다. 고치-귀화한 '마리아'들이 최신지혜의 과실을 단려(端麗:단정하고 아름다운)한 맵시로 따고 있읍니다. 그 아들의 불행한 최후를 슬퍼하며'크리스마스 츄리'를 헐어 들어가는 '피에다'(Pieta:예수의 시체를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상) 화폭 전도입니다.

학교 마당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고 생도들은 글을 배우고 있읍니다. 그들은 열심히 간단한 산술을 놓아 그들의 정직과 순박을 지혜와 교활로 환산하고 있읍니다. 탄식할 이식산(利息算:이자 계산)이 아니겠읍니까. 족보를 찢어 버린 것과 같은 흰 나비 두어 마리 백묵내음새 나는 화단 위에서 번복(飜覆:고치거나 바꾸는 일)이 무상합니다. 또 연식 '테니스'공의 마개 뽑는 소리가 음향의 흔적이 되어서는 등고선의 각점 모양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마당에서 오늘 밤에 금융조합 선전 활동사진회가 열립니다. 활동사진? 세기의 총아-온갖 예술 위에 군림하는 '넘버' 제8예술의 승리. 그 고답적이고도 탕아적인 매력을 무엇에다 비하겠읍니까?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활동사진에 대하여 한낱 동화적인 꿈을 가진 채 있읍니다. 그림이 움직일 수 있는 이것은 참 홍모(紅毛:붉은 머리) 오랑캐의 요술을 배워가지고 온 것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동포의 부러운 재간입니다.

활동사진을 보고 난 다음에 맛보는 담백한 허무-장주(莊周:장자)의 호접몽이 이러하였을 것입니다. 나의 동글납짝한 머리가 그대로 '카메라'가 되어 피곤한 '따불렌즈'(double lens:이중렌즈)로나마 몇 번이나 이 옥수수 무르익어가는 초추(初秋:초가을)의 정경을 촬영하였으며 영사하였던가-'후래슈빽'(flashback:영화에서 과거의 회상 장면을 말함)으로 흐르는 엷은 애수-도회에 남아 있는 몇 고독한 '팬'에게 보내는 단장(斷腸:애를 끊는)의 '스틸'(still:영화 중의 한 장면을 보통 사진기로 찍어 확대 인화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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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습니다. 초열흘 가까운 달이 초저녁이 조금 지나면 나옵니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전설 같은 시민이 모여듭니다. 축음기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북극 '펭귄' 새들이나 무엇이 다르겠읍니까. 짧고도 기다란 인생을 적어 내려갈 편전지(便箋紙;편지지)-'스크린'이 박모(薄暮;땅거미) 속에서 '바이오그래피'(biography;전기)의 예비표정입니다. 내가 있는 건너편 객주집에 든 도회풍 여인도 왔나봅니다. 사투리의 합창이 마당 안에서 들립니다.

시작입니다. 부산 잔교(棧橋;부두에서 선박에 걸쳐놓아 화물을 싣고 부리거나 선객이 오르내리게 된 다리. 지금부터는 활동사진의 내용입니다.)가 나타납니다. 평양 모란봉입니다. 압록강 철교가 역사적으로 돌아갑니다. 박수와 갈채-태서(泰西;'서양'의 옛날식 표기)의 명감독이 바야흐로 *(産과 頁로 결합된, 해독불가한 한자)色이 없읍니다. 십분 휴식시간에 조합이사의 통역부(통역 딸린) 연설이 있었읍니다.

달은 구름 속에 있읍니다. 금연-이라는 느낌입니다.(멋지죠? 어두운 영화관 안에 불 밝힌 금연등을 구름 속에 든 달과 연결짓고 있습니다.) 연설하는 이사 얼굴에 전등의 '스폿트'(spotlight)도 비쳤읍니다. 산천초목이 다 경동할 일입니다. 전등-이곳 촌민들은 XX행자동차 '헷드라이트' 외에 전등을 본 일이 없읍니다. 그 눈이 부시게 밝은 광선 속에서 창백한 이사는 강단(降壇:단상에서 내려옴)하였읍니다. 우매한 백성들은 이 이사의 웅변에 한 사람도 박수치지 않았읍니다.-물론 나도 그 우매한 백성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었읍니다만-.

밤 열한시나 지나서 영화감상의 밤은 '해피엔드'였읍니다. 조합원들과 영사기사는 이 촌 유일의 음식점에서 위로회를 열었읍니다. 나는 객사로 돌아와서 죽어가는 등잔심지를 돋우고 독서를 시작하였읍니다. 그것은 이웃방에 묻고 계신 노신사께서 내 나타(懶楕:게으름)와 우울을 훈계하는 뜻으로 빌려주신 고우다 로한 (辛田露伴) 박사의 지은 바 <人의 道>라는 진서(珍書:귀중한 책)입니다. 개가 멀리서 끊일 사이 없이 이어 짖어댑니다. 그윽한 '하이칼라' 방향(芳香:꽃다운 향기, 좋은 냄새)을 못 잊어 군중은 아직도 헤여지지 않았나 봅니다. 

구름이 걷히고 달이 나왔읍니다. 버래(벌레)가 무도회의 창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와짝 요란스럽습니다. 아지 못하는 노방(路傍:길가)의 인(人)을 사색하는 도회인적인 향수가 있읍니다. 신간잡지의 표지와 같이 신선한 여인들- '넥타이'와 동갑인 신사들 그리고 창백한 여러 동무들-나를 기다리지 않는 고향- 도회에 내 나체의 말씀을 번안하여 보내주고 싶습니다. 잠- 성경을 채자(採字:좋은 글을 가려뽑다, 인쇄하기 위해 활자를 뽑다)하다가 엎질러 버린 인쇄직공이 아무렇게나 주워담은 지리멸렬한 활자의 꿈 나도 갈갈이 찢어진 사도가 되어서 세 번 아니라 열 번이라도 굶는 가족을 모른다고 그립니다. 

근심이 나를 제한 세상보다 큽니다. 내가 갑문(閘門;수문)을 열면 폐허가 된 이 육신으로 근심의 조수가 스며들어 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메소이스트' 병마개를 아직 뽑지는 않습니다. 근심은 나를 싸고 돌며 그리는 동안에 이 육신은 풍마우세(風磨雨洗;바람에 닦이고 비에 씻겨나감)로 저절로 다 말라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밤의 슬픈 공기를 원고지 위에 깔고 창백한 동무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속에는 자신의 부고도 동봉하였습니다. 

 

 

 

 


 

1)성천:평안남도 성천군의 군청 소재지.
2)MJB:커피의 일종.

3)체전부:우편 집배원.
4)하도롱:hard―rolled paper. 다갈색의 종이로서 봉투, 포장지를 만듦. 여 기서는 다갈색 편지 봉투에 쓰인 내용을 말함.

5)한난계:온도를 재는 기계.

6)조밀한 인구:비망록에 쓰인 글씨들.
7)그라비아:gravure. 사진 제판에 응용하는 凹판 인쇄법.
8) 요비링:초인종의 일본어. 李箱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불러내는 기능으로 요비링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9)꼭두서니 빛:꼭두서니풀을 원료로 하여 만든 빨간 물감 빛. 꼭두서니는 풀 이름.

10)여주:박과에 딸린 한해살이 덩굴풀. 여름·가을에 노란꽃이 피고, 길고 둥근 열매는 붉노랗게 익는다.

11)세피아:sepia. 암갈색. 주로 수채화에 쓰이는 産頁料(안료)
12)세실·B·데밀:미국의 유명한 영화 제작자(1881~1959). 대형 스펙터클
영화를 잘 만들었음. 「십계」·「삼손과 데릴라」 등을 제작. 안소니 퀸의 장인.

13) 조셋트:지금의 쉬펀과 비슷한 우아한 여름 옷감.
14)외스트민스터 卷煙:웨스트민스트 卷煙. 영국의 良質(양질)의 紙卷煙(지 권연)

15)리그레추윙껌:리그레추잉검. 미국의 껌 이름.
16)蕙園:조선 후기의 풍속화가인 申潤福(신윤복·1758~?)의 호. 작품은 주 로 妓女(기녀)·巫俗(무속)·술집의 색정적인 장면 등을 그려, 인간주의적 인 욕망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엿보임.

17)호박꼬자리:호박을 썰어서 말린 것.
18)제너레숀:generation. 世代(세대).
19)오브라―드:oblato. 전분으로 만든 얇은 원형의 簿片(부편). 그냥 먹기 어려운 약을 싸는 데도 쓰임. 투명한 전분지.

20)三停:머리와 이마의 경계(上停), 코끝(中停), 턱끝(下停).
21)五岳:이마·코·턱, 좌우 관골.

22)갑위:갑옷과 투구.
23)카―마인:carmine. 카아민을 잘못 발음한 것. 연지벌레에서 뽑아 낸 紅色(홍색) 안료.

24)꼭구마:원표기는 「꼬꼬마」, 군졸이 벙거지에 꽂던 붉은 털.
25)코삭크:Cossack. 카자흐(Kazakh)의 영어식 이름. 카스피 해의 북동쪽,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대에 위치함.

26)간쓰메:통조림의 일본어.
27)미소노:1930년 무렵의 일제 화장품 이름.
28)화―스너:fastener. 분리되어 있는 것을 잠그는 데 쓰는 기구의 총칭. 지퍼·클립·척 등

29)꼬아리:꽈리
30)스크람:scrum. 여럿이 팔을 꽉 끼고 뭉치는 것.
31)코렛트 夫人:Sidonie Gabrielle Colette(1873~1954). 프랑스의 여류 소 설가. 정확한 발음은 콜레트. 「클로디느 이야기」·「방랑하는 여인」·「 지지」·「암고양이」 등이 있음.

32)빈묘:암고양이. 여기서는 코레트 여사의 작품명.
33)편발處女:머리를 땋아 내린 처녀.
34)가론:gallon. 용량의 단위.
35)피에다:Pieta. 예수의 시체를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像(상).
36)따불렌즈:double lens. 二重(이중) 렌즈.

37)후래슈빽:flashback. 영화에서 과거의 회상 장면을 말함.
38)스틸:still. 영화 중의 한 장면을 보통 사진기로 찍어 확대·인화한 사 진. 선전용으로 쓰임.

39)바이오그래피:biography. 傳記(전기).
40)幸田露伴博士:고우다 로한(1867~

 

이상의 수필 중 최고의 작품으로 일컬어집니다. 1935년 9월 27일에서 10월 11일까지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에 발표했습니다. 1935년 여름 한 달간 평안남도 성천에서 머물렀던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잘 아는 <권태>도 이 시기에 같은 성천을 배경으로 쓴 작품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정형'이라는 사람, 소설가 정인택으로 보입니다.-

 

 

 

한국문학의 돌연변이, 한국 문학사의 이단아, 근대문학의 마침표이자 현대문학의 시작점, 한국 시사 최고의 아방가르드 시인, 한국 최고의 모더니스트, 한국의 보들레르. ‘이상’을 수식하는 말들을 살펴보면 ‘이상’이 정말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입니다. 친구였던 시인 ‘김기림’은 그의 죽음이 한국문학을 50년 후퇴시켰다고까지 이야기했는데요, 이쯤 되면 정말 궁금하지 않나요? 얼마나 천재였는지 말이에요. 그의 작품들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너무 앞서갔던 것일까요? 서양 철학자 ‘니체’도 자신이 너무 일찍 왔다며, 자신의 책이 당대에 읽히지 않는 것을 보며 한탄했었는데 ‘이상’도 그랬을까요? 저는 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친절하게 독자를 배려하는 글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런 글이 잘 읽히고 좋은 글이라고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어떤 글쓰기 강의에서든 독자를 고려해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글도 있습니다. 기분 나쁠 정도로 불친절한 글, 독자에게 “너 날 이해할 수 있겠어?” 하며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하는 글이 있습니다. 많은 글들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과는 다르게 이런 글들은 오만하게도 독자를 자기가 선택합니다. 오직 간택 받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글. ‘이상’은 그런 글을 쓰는 작가였습니다. 그러니 우리처럼 선택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것이죠. 아무튼 이상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오늘 이상의 두 번째 사랑, ‘권순옥’과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쪼금이라도 이상을 이해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처럼 똑똑한 척, 잘난 척하는 지식인 남자들이 가장 매력 없어 하는 여자는 바로 자기와 닮은꼴일 겁니다. ‘이상’은 그런 신여성들을 ‘눈 가리고 아웅의 천재’, ‘석녀’, ‘한개 요물’이라며 가혹하리만큼 공개적으로 매도했는데요, 흥미롭게도 신여성이었던 ‘권순옥’에 대해서만큼은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그녀는 고리키 전집을 모두 독파할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언변에도 막힘이 없어 당시 내로라하는 작가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습니다. ‘이상’이 ‘권순옥’을 처음 만났던 것은 다방 ‘제비’문을 닫고 인사동에 ‘쓰루’라는 다방을 개업했을 때였습니다. ‘이상’은 ‘금홍’을 대신해 다방을 운영해줄 여급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엔젤’이라는 다방에서 자신과 말이 잘 통해 눈여겨봤던 여성을 스카우트했는데, 그녀가 바로 ‘권순옥’이었습니다. ‘이상’은 ‘권순옥’이 ‘금홍’에게 부족한 지적인 면을 채워주고, 어쩌면 자신의 ‘날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권순옥’은 이상에게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삶의 태도와 천재적인 면모가 비슷해 ‘D.H 로렌스의 모조품’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는데, ‘이상’은 진심으로 감격해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권순옥’의 교양을 칭찬하며 추켜세웠는데요, 나중엔 너무 칭찬을 해서 친구 ‘정인택’에게 빼앗기게 생겼다며 후회할 정도로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권순옥’도 비범한 ‘이상’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금홍’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실망하게 됩니다. ‘이상’은 ‘순옥’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금홍’을 더욱 격렬하게 끌어안게 되었다고 고백하는데, 바깥에서 바람피우고 집에 들어오면 배우자에게 더 잘하게 된다는데 그런 심리였을까요? 어쨌든 ‘이상’은 ‘순옥’을 마음에 품고 동경하면서도 아편 같은 ‘금홍’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핵 환자가 섹스에 집착하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라고 하는데 ‘이상’은 자신의 생명을 그렇게 갉아먹으면서도 ‘금홍’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상’의 걱정대로 친구였던 소설가 ‘정인택’은 친구의 애인이었던 ‘순옥’을 좋아하게 됩니다. 새침하면서도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나눈다 한들 말이 잘 통했기 때문에 그런 지적인 면에 많은 문인들이 사랑에 빠졌는데요, 후에는 소설가 ‘박태원’까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정인택’은 신문사에서 퇴근하기 바쁘게 ‘쓰루’로 와서 번 돈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하숙비까지 밀려가며 애정 공세를 펼치자 ‘순옥’도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데요, 이때 ‘이상’과 ‘순옥’의 관계가 애매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금홍이’ 때문에 공개적으로 ‘순옥’을 자신의 애인이라고 밝힐 수도 없었던 ‘이상’은 ‘정인택’의 적극적인 구애 행위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상’ 스스로도 ‘금홍이’ 때문에 새 사랑을 시작하기 부담스러웠기에 ‘순옥’에게 적극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인택’이 괴로운 심경에 자살 기도를 합니다. 목숨이 경각에 붙어있는 걸 ‘이상’이 발견해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가까스로 살려내는데요, 이를 계기로 ‘순옥’은 ‘정인택’에게 마음이 기울게 됩니다. ‘금홍’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보다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건 사내를 선택한 것이죠. ‘이상’은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 주고 심지어 사회까지 봐줬지만,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인택’이 사경을 헤맬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놈이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술주정을 했다는 걸 보면요. 그렇게 ‘순옥’도 ‘금홍’도 떠나가자 ‘이상’은 또 골방에서 몇 날 며칠을 술 마시고 잠만 잤습니다. 그러다가 또 ‘쓰루’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었는데요, 이어서 명동에 ‘69’라는 다방을 개업했지만, 상호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하루 만에 허가가 취소됩니다. 당시 청소부로 일하던 동생의 봉급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살다가 친구 구본웅의 소개로 ‘변동림’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세 번째 사랑이 시작되는데요, 이것은 다음 영상에서 다루겠습니다. 추가로 ‘이상’이 죽은 뒤 ‘권순옥’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6.25전쟁 직후 남편 ‘정인택’과 함께 두 딸을 데리고 월북했는데요, 안타깝게도 얼마 후 ‘정인택’이 병으로 죽게 됩니다. 북에서 홀로 두 딸을 키우다가 극적으로 ‘박태원’을 만나는데요, 객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가웠던 것인지, 동병상련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박태원’과 재혼하게 됩니다. ‘박태원’은 ‘이상’이 동경으로 떠나기 전날 밤 술을 함께 마실 정도로 친한 친구였는데요, 그럼 ‘권순옥’은 ‘이상’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정인택’, ‘박태원’ 둘 모두와 결혼한 셈이 되겠네요. 아무튼 ‘권순옥’은 ‘박태원’이 말년에 뇌출혈로 전신 마비가 오고 백내장으로 실명해 글을 쓸 수 없게 되자 그를 대신해 원고를 작성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계명 산천은 밝아오느냐’, ‘갑오농민전쟁’입니다. 여기까지가 비록 문인은 아니었지만 1930년대 모더니즘의 주역이었던 세 남자, ‘이상’, ‘정인택’, ‘박태원’과 아주 묘한 인연으로 얽혀 기꺼이 그들의 뮤즈가 되어준 여인. ‘권순옥’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문인들의 사랑 이야기가 어찌 보면 사치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쪽에서는 많은 이들이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시기이니까요. 그렇지만 1930년대 경성은 황홀하고 멋진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자본주의로 인해 지금과 같이 무분별한 소비와 향락적인 유흥문화가 만연했으니까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은 그런 경성의 이중성을 목격했지만, 그럼에도 거기에 적응해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목숨을 걸 만큼 대단한 용기를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은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죠. ‘이상’을 비롯해 1930년대 모더니즘 작가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시대와 민족의 아픔을 외면한 채, 새롭고 화려한 것들, 즉 모던한 것들만 추구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당시의 삶을 왜곡하고, 그들을 매도하는 것입니다. 어둡고 우울한 시기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은 일상적 삶을 영위해 나가야만 했습니다. 시대적 상황에 과몰입해 평범했던 그들의 삶을 ‘시대’와 ‘민족’이라는 잣대로 거칠게 재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마치 200년 뒤 통일이 된 다음, 후손들이 지금 우리 시대를 분단의 아픔으로 얼룩진 우울한 시대로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요. 오늘의 국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의 영상은 ‘홍지화’의 ‘한국 문단의 스캔들’을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내일의 국어 이야기는 이상의 마지막 사랑, ‘변동림’과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내용이 재밌고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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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손광성

 

달팽이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험한 세상 어떻게 살까 싶어서이다.

개미의 억센 턱도 없고 벌의 무서운 독침도 없다. 그렇다고 메뚜기나 방아개비처럼 힘센 다리를 가진 것도 아니다. 집이라도 한 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찬찬이 뜯어보면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시늉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은 투명한 껍데기, 속까지 비치는 실핏줄이 소녀의 목처럼 애처롭다.

달팽이는 뼈도 없다. 뼈가 없으니 힘이 없고 힘이 없으니 아무에게도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물며 무슨 고집이 있으며 무슨 주장 같은 것이 있으랴. 그대로 ‘무골호인’이다. 여리디여린 살 대신에 굳게 쥔 주먹을 기대해 보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그렇다고 감정마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감하기로는 미모사 보다 더하다. 사소한 자극에도 몸을 움츠리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에도 고개를 숙인다. 비겁해서가 아니다. 예민해서요, 수줍어서이다. 동물이라기보다 식물에 가깝다.

누구를 찾고 있을까?

달팽이는 늘 긴 목을 받쳐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그의 이웃은 아무도 없다. 소라, 고동, 우렁 그리고 다슬기 같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의 이웃이 아니다. 아득히 먼 물나라의 시민들이다.

모든 생물이 다 그러하듯 달팽이 고향도 바다였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먼 조상들 중 호기심이 많은 한 마리가 어느 날 처음 뭍으로 올라왔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물달팽이가 육지달팽이로 바뀌는 기구한 역사가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다.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육지에 사는 달팽이의 목과 눈은 물달팽이의 그것보다 훨씬 가늘고 길다. 슬픔도 내림이라, 수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조상들의 슬픔으로부터 그들은 자유로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실향민의 후예, 달팽이는 늘 외로움을 탄다.

어디 좋은 친구 하나 없을까?

달팽이는 개구리에게 다가가 본다. 개구리도 습지를 좋아하니 벗이 되어 줄 법도 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크고 너무 빠르다.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다. 개미나 벌은 어떨까? 부지런한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배타적인 것이 좀 마음에 걸린다. 제 동족이 아니면 자기들의 먹이로밖에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시인이 죽으면 나비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비가 죽으면 무엇이 될까. 아니 달팽이가 죽으면 무엇이 될까.

달팽이는 나비 곁으로 다가간다. 그냥 사귀기만이라도 했으면 싶다. 그러나 나비는 잠시도 한 곳에 머물러 주지 않는다. 설사 머문다 해도 걱정이다. 어떤 때는 환희에 넘쳐 춤을 추다가도 금세 침울해저서는 두 날개를 접은 채 마른 잎처럼 조용하다. 그 엄청난 감정의 기복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아, 배추벌레하고 놀아야지.

달팽이는 그들 옆에서 잠시 외로움을 달래본다. 외모는 좀 그렇지만 벌처럼 시끄럽지도 않고 나비처럼 팔랑대지도 않아서 좋다. 한데 한 가지 안 된 것은 그들은 탐식가라는 사실이다. 옆에 가서 등을 대고 누워도 눈 한 번 거들떠보는 일이 없다. “나는 먹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식이다. 달팽이는 풀이 죽어서 돌아온다.

달팽이는 이빨도 없다. 그의 입은 먹기 위한 기관이라기보다 차라리 이목구비를 갖추기 위한 필요에서 생긴 것 같다.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뭐든 먹기는 먹는 모양인데 그런 순간을 거의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짝짓기 하는 장면도 들키지 않으니 말이다. 귀여운 금욕주의자. 이 모든 쾌락보다 더 진실한 어떤 문제가 있다는 말일까.

달팽이는 언제나 긴 목을 치켜들고 길을 떠난다. 현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어떤 비밀의 문이라도 찾고 있는 것일까. 방황하는 영혼, 고독한 산책자.

그러나 달팽이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기쁨을 노래하지도 않고 슬픔을 울지도 않는다. 매미에게는 일곱 해 동안의 침묵과 극기를 보상하고도 남을 이레 동안의 찬란한 절정의 순간이 주어지지만 달팽이에게는 그런 눈부신 순간이 없다. 그렇다고 종달새 같은 황홀한 비상의 기회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시며 그루터기며 사금파리 같은 현실, 맨살로 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이 그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육체의 고통이 때로는 영혼의 해방을 가져온다고 믿는 어느 고행승과도 같은 그런 표정으로 그저 묵묵히 몸을 움직일 뿐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의 말없는 순례, 지나간 자리마다 묻어나는 희고 끈끈한 자국들. 배설물까지 낙서일까. 아니면 그들끼리만 통하는 상형 문자일까. 끝내 판독되기를 거부하는 암호들.

여름도 다 끝나려는 어느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그 때 나는 달팽이의 이상한 몸짓을 보았다. 억새풀의 제일 높은 끝에 한 방울의 이슬처럼 위태롭게 맺혀 있었다. 목은 길게 솟아올랐고, 조그만 입은 약간 벌어졌으며, 꽃의 수술 같은 두 개의 눈은 긴장되어 있었다. 마치 노래를 부르려는 순간의 어떤 가수처럼, 나뭇가지를 떠나려는 순간의 새의 자세처럼 보였다. 가늘고 긴 목에서 벌레소리 같은 어떤 슬픈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달팽이는 끝내 아무소리도 내지르지 못했다. 투명한 달빛이 조그만 몸을 비추고 있었다.

밀폐된 유리벽의 저편에서 키가 작은 한 남자가 울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 작품은 송광성 선생님이 어려서 누님과 단둘이 고향 이북을 떠나 한국에 와 살며 외롭고 고달픈 삶을 겪은 자신을 달팽이에 비유해서 쓴 듯합니다.

‘밀폐된 유리벽 저편에서 키가 작은 한 남자가 울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즉 자신을 그렇게 숨겨서 표현한 작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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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 대하여 / 최민자

 

 

인간이라는 말.

 

인간은 그러니까 인+간이다. 사람 인人 자체도 사람과 사람이 기대고 받쳐주는 모양새지만 그 또한 완전히 공평하진 않다. 하나는 괴고 하나는 일어선다. 누군가 밑에서 떠받치지 않으면 비스듬하게라도 서 있을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가 인간이란 말이다. 거기에 또, 사이 間이 하나 더 붙어야 비로소 사람을 의미하는 독립적인 단어로 유의미하게 작동한다. 사람의 사람다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와 소통 같은 상호작용을 통해 스미고 물들이며 완성되어 간다는 뜻이다. 사람이 人이 아니고 인간人間인 이유다.

활자를 아무리 정연하게 배치해두어도 사유思惟가 일어나는 곳은 행간行間이듯이 사건과 사연, 역사와 이야기가 생겨나는 것도 '사이'다. 마음도 마찬가지, 영혼이나 정신이 뇌세포에 저장되어 있는 것도, 좌심실 우심방에 스며 있는 것도 아니다.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 간에 주고받는 전기적 신호가 촉발하는 생화학적 유기적 반응, ' 그것이 마음이고 감정이라는 거다. 하니 개별자의 인격이나 정체성이라는 것도 서로 다른 존재와의 맞물림 속에서, 타자와 타자 사이의 조웅 관계 속에서 누적되고 표출되는 현상들의 교집합 같은 것 아닐까.

존재의 세 기본재 뒤에 하나같이 間이 따라붙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시간時間 공간空間 그리고 인간人間……. 천체물리학자도 철학자도 아니었을 옛사람들이 어떻게 이 세계가 거대한 매트릭스임을, 모든 게 다 '사이'의 일임을 헤아리고 통찰할 수 있었을까. 인터넷의 웹도 화엄경의 인드라망도 그러니까 다 '사이'의 일이다. 낱말 하나 꿰맞추는 데에도 눈 너머 눈으로 성찰할 줄 알았던 선인들을 생각하면 기술의 진보와 지혜 사이에 어떤 함수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지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한다. 외롭게 홀로 떠 있는 것 같아도 물밑으로는 가만히 어깨를 겯고 있는 섬들처럼, 모두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목젖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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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색.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색. 화려한 듯 침울하고 침착한 듯 불안정한, 보라색은 마법의 색이다. 꿈과 현실, 기억과 몽상, 사랑과 이별 같은 생의 레시피를 두루 섞어 치대어 두면 그렇듯 오묘한 빛깔이 될까.

 

보라색은 아리송한 색이다. 과꽃의 천진함과 구절초의 애련함, 아이리스의 화사함과 도라지꽃의 외로움이 절묘하게 뒤섞인, 불분명한 정체성이 정체성인 색이다. 지적인가 하면 충동적이고, 그윽한가 싶으면 관능적이어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모순을 껴안고 냉정과 열정 사이를 서성거리는 여자. 누구와도 화친하나 누구와도 진정 동화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복합성향의 여자. 그 여자의 난해한 눈빛 같은 색이다.

 

보라의 층위는 천차만별이다. 적과 청이 어느 만큼의 비율로 섞여 들었는가에 따라 무한 변용이 가능하다. 천변만화의 진폭으로 흑백의 폭압을 다소곳이 견뎌 내는 수묵의 층위처럼 연보라·진보라·남보라·회보라·자주보라·청보라 갈피갈피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보라색이 숨어 산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까다롭고 비사교적이어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고 감상적인 구석이 많다고 한다. 우울하지만 직관력이 뛰어나 예술적 성향이 짙다고도 한다. 보라색을 좋아한다 하여도 제각기 좋아하는 자기만의 보랏빛이 따로 있을 만치 민감한 차이를 예민하게 감각하는 사람들이다.

 

연보랏빛 라일락과 남보랏빛 도라지꽃에 자주 마음을 빼앗기고 회보랏빛 어스름에 기분이 산란해지기도 하는 나는 보랏빛 이미지를 세련되게 매치할 줄 아는 사람에겐 기본 점수 50점쯤 일단 주고 들어간다. 대학시절엔 라벤더 빛깔의 셔츠를 입고 나왔다는 이유로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남학생을 몇 번 더 만나준 적도 있다. 그 시절 나는 보세가게에서 산, 보랏빛 시폰원피스를 나풀거리고 다녔는데 작고 하얀 꽃무늬가 보일 듯 말듯 날염된 앞자락이 바람이 불적마다 부드럽게 파닥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홀로 있어 아름다운 색, 어울리기는 힘들어도 잘만 소화하면 최고가 되는 색, 입는 사람의 분위기에 따라 기품 있어 보이기도, 천박해 보이기도 하는, 보라의 신묘한 이중성이 좋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것이면서 저것인 자아정체성으로 이중, 아니 다중 인격의 삶을 모호하게 살아 내고 있어서인지 나는 지금도 보라색을 좋아한다. 분열을 획책하는 이분법 세상에서 차고 뜨겁고 붉고 푸른 색깔의 편향을 지그시 제압하고 중도의 미덕을 완충해 내는 보라. 보라야말로 성과 속, 선과 악,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동시에 품어 안는 빛깔들의 총화라는 생각이 든다. 편파를 지양止揚하는 빛깔에 대한 편파적 인간의 편파적 취향인가.

 

내일모레 나는 서해의 작은 섬 자월도紫月島에 간다. 오염된 바닷가를 청소하는 환경단체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지만 나를 섬으로 유인하는 것은 바람도, 물살도, 자연보호라는 명분도 아니다. 그곳에 정말 보라색 달이 뜰까. 화성에서 온 여자의 살빛 같은 신비로운 달이 어둔 바다 저편에 환한 팬지곷처럼 떠올라 줄까. 그늘 냄새와 풀벌레 소리가 희미하게 배어든 멀리 가는 향기 같은 연보라 달빛이 섬의 치마폭을 흥건히 적실까.

 

시들지 않는 중년의 빛깔, 보라가 나를 꿈꾸게 한다.

 

 

 

<작가 소개>

≪에세이문학≫으로 등단하여 수필집 ≪손바닥수필≫, ≪꼬리를 꿈꾸다≫, ≪열정과 냉정 사이≫ 등을 펴냈다.

깊은 통찰과 번득이는 예지, 섬세하면서도 정갈한 말맛으로 한국 산문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최민자 수필가 <꿈꾸는 보라>|작성자 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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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시간 / 정목일
                                            
골목길에서 화가 o 교수를 만났다. “이 골목에 화실이 있으니 잠시 들렀다 가시라.”고 이끌어 작업실에 갔다. 벽에는 최근작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코스모스’ ‘민들레’ ‘풀꽃’ 등을 그린 그림들이었다.
“꽃밭에 사시는군요.”
O 교수는 환히 웃으며 “평생 꽃만 그려도 행복하다.”고 한다. 대학에서 은퇴한 지도 오래 되었건만 평생 ‘꽃’을 그리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자기만의 개성과 주제를 갖지 않고 누구나 좋아하는 꽃을 소재로 삼고 있음이 알 수 없었다. 화가로서의 개성, 탐구, 개척이 보이는 독창력은 없고 ‘꽃 타령’에 빠져 있는 듯했다. 안일하고 한가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은 누구나 좋아하는 소재이어서 평범하며 새로움을 얻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o교수는 어째서 평생 동안 꽃에만 빠져 있는가. 다른 사물과 소재에서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들지 않는가. 답답함을 말하려는 순간, 사군자가 떠올랐다. 평생 동안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만을 그렸던 조선시대 화가들도 있지 않았던가. 사군자 중에도 오로지 한 소재만을 탐닉하고 몰두하여 명인으로 떠오르는 화가도 있다. 사군자 그리기에 대하여 케케묵은 소재와 정신세계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새로운 세계의 창조가 예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지만, 전통예술도 지속돼야 할 일이 아닌가.
o교수의 꽃그림 속으로 들어가 본다. 코스모스 꽃이 활짝 피어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꽃의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다사로운 가을 햇살이 온 몸과 마음에 닿아온다. 꽃은 이제 완성에 이르렀다. 가을 햇살과 바람의 말이 들려온다. 꽃은 절정의 순간을 맞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일생과 마음을 활짝 피워 놓았다. 꽃은 드디어 눈부신 햇살 속에 깨달음에 이르고 있다.
꽃은 절정 속에 낙하의 시간이 당도했음을 짐작하고 있다. 바야흐로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는다는 걸 알고 있다. 꽃은 절정을 말하지만, 땅에 떨어질 운명의 시간이 당도했음을 안다. 꽃자리는 최상, 최고의 자리이지만 한 순간에 불과하다.
꽃 피우기는 일생의 완성이지만, 꽃자리에서 곧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송이 꽃을 피우는 일이 소망이었다. 천둥과 태풍, 어둠과 추위를 견뎌서 비로소 한 송이의 꽃을 피워내지만, 꽃의 시간은 길지 않다.
꽃의 시간은 깨달음의 시간이다. 나팔꽃은 ‘하루’가 아닌 ‘아침’이란 말만을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존재의 의미와 깨달음의 꽃을 활짝 피워내고 있다.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나팔꽃은 벌써 절정에 서서 깨달음의 나팔소리를 울리고 있다. 아침 서기를 받고 집중력을 기울여 삶의 극치를 보여준다. 삶이란, 지금 이 순간의 자각과 깨달음으로 피워내야 하는 한 송이의 꽃임을 알려 준다. 나팔꽃은 내일에 기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모습과 완성을 꽃피워낸다.
꽃을 보는 일은 황홀하지만, 벼랑 끝에 서있음을 느낀다. 아슬아슬하고 현기증이 난다. 나의 꽃 시간은 언제였던가. 하루씩의 시간 파도 위에 서서, ‘오늘의 삶’이란 생명의 꽃을 바라본다. 꽃은 잠시 피었다 지는 것일지라도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일생의 흔적과 의미를 아로새겨 놓아야 한다.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와 수로부인 일행은 화창한 봄날, 동해안 절경을 지나치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높이가 천 길이고 위에 척촉화(철쭉)가 만개해 있었다. 수로부인은 아스라이 절벽 위에 피어있는 척촉화에 마음을 빼앗겨 무심결에 말하였다.
 “누가 저 꽃을 꺾어서 바치겠는가?”
 일행들은 천길 높이 벼랑 위에 피어 있는 척촉화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때 마침 소를 끌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나섰다. 소고삐를 놓고 천 길 절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천 길 단애를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한 걸음씩 올라가고 있었다. 한 걸음씩 절벽 위로 오를 때마다, 꽃과 손의 거리가 차츰 좁혀져 갔다. 구경꾼들은 입을 벌리고 숨을 멈췄다. 노인은 생명을 걸고 최상, 최고의 꽃에 닿으려 하고 있었다. 노인은 마침내 아무도 꺾어 올 수 없었던 척촉화를 손에 들고, 절벽을 타고 내려와 수로부인에게 바쳤다. 푸른 바다와 절벽의 붉은 꽃, 절세의 미인과 노인은 이 순간 절정의 꽃이 되었다.
꽃의 시간 속으로 숨결을 돌리면서 나는 무슨 꽃이며 어떤 빛깔과 향기를 내고 있을까를 생각한다. 꽃송이들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꽃 시간은 언제인가?’ o교수가 평생 동안 꽃만을 그리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꽃은 일생의 절정이며 완성이지만, 비움의 시간에 임박해 있다. 꽃은 절벽 위에서 떨어질 듯 위태로운 순간 속에 있다. o교수는 평생 동안 ‘꽃’을 통해 일생의 정점과 완성을 바라보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인생이란 꽃을 피워놓지 못함을 느낀다. 그림 속의 수십 송이 코스모스 꽃들이 일제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활짝 핀 꽃을 바라보며 묻는다. 나는 삶의 꽃을 어떻게 피워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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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베리아를 보며/최원현

수상을 축하 한다며 보내온 화분 중에 산세베리아가 있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공기정화식물 중 정화능력이 가장 뛰어난 식물이라고 발표 되었다는 선인장 계열의 식물이다. 

음이온을 다른 식물보다 30배 이상 발생 시키며 새 집에서 방출하는 포름알데히드란 발암물질도 정화해 낸다 한다. 

무엇보다 병충해가 거의 없고 신경을 많이 안 써도 잘 자라는 환경 정화식물이라고 보내온 것이다. 

그런데 한달여가 지난 어느 날 보니 두 개의 줄기 끝이 뒤로 벌렁 나자빠져 있다.

‘아니, 그냥 놔 둬도 잘 자란다고 하더니 왜 이렇게 쉽게 썩어버리나.’ 

놀라움과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안고 인터넷에서 산세베리아를 검색해 봤다.

비로소 알 것 같았다. 3주 내지 한 달 만에나 물을 줘야 하는데 난과 마찬가지로 1주일에 한 번씩 물을 준 데다 햇볕을 좋아하는 식물인데 햇볕을 피해 놓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지.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어도 잘 자라는 식물이 어디 있겠는가.
 
손이 좀 덜 간다 할 뿐이지 적당히 바람도 햇볕도 쏘이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때맞춰 물도 줘야 제대로 살 것 아닌가. 

물을 가끔씩 주어야 하는데 자주 주어 죽이는 것 역시 관리를 잘 못 한 것 아니던가.

식물을 보면서 가끔씩 나는 흠칫 놀라곤 한다.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와 나, 네 식구 또한 가정이란 탁자 위에 올려져 자라는 네 개의 화분이 아닐까. 

제각기 성향이 달라 더러는 키가 크고 잎이 넓게, 혹은 키는 작지만 꽃은 탐스럽게, 그렇게 저마다의 특성대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꽃들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들녀석은 물을 잘 안 먹는다. 

그래선지 키만 껀정할 뿐 몸은 호리호리 하다. 

그런가 하면 딸아이는 얼굴은 나 닮아 작은 편인데 약간 통통해 보이는 편이다.
 
아내는 키가 조금 작다보니 보통 몸이건만 조금 뚱해 보인다. 

나는 호리호리 하다 못 해 가냘퍼 보이던 체형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갑자기 몸이 불기 시작 하더니 꿈에도 그려하던(?) 몸무게를 훌쩍 넘어서서 이젠 걱정거리 1호로 과중량을 지니게 되었다.

두 아이와 나는 눈물이 많다. 

작은 일에도 금방 눈물이 나와 버린다. 

마음이 여려서인지 아니면 감정이 넘쳐서인지 모르지만 때로 그게 영 신경 쓰일 때가 있다. 

하찮은 일인데도 금방 눈물이 맺히는 것을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만이 아니라 두 아이가 다 그렇다. 

그런가 하면 두 아이 모두 나처럼 멀리서 보면 걸어갈 때 약간 등이 구부정해 보인다.
 
그건 내 아버지께서도 그러셨단다. 

어렸을 적엔 어른들로부터 곧잘 그 얘길 듣곤 했었다. ‘네 아비가 그랬느니라. 

저만큼서 오거나 저만치 앞에 가도 금방 알아보았느니라’ 참 모를 일이다. 

그런 것까지도 유전이 되는가. 

그래 나는 곧잘 할머니로부터 허리를 곧추 펴고 걸으라는 당부를 많이 들었었다.
 
요즘은 신경을 안 써서 잘 모르겠지만 그땐 꽤 노력을 했는데도 그런 구부정 버릇은 쉽게 고쳐지질 않았었다.

나는 지천명을 벌써 넘겼지만 아직 흰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염색을 잘 했느냐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머리카락 색 그대로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만도 하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아내는 혹여 내 머리에서 새치라도 하나 발견할라치면 뽑아주려 하는 게 아니라 무슨 큰 보배라도 되는 양 뽑지 못 하게 한다. 

자기만 머리가 하얘지고 나만 검은 채로인 것이 불공평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거야 어찌 내 탓인가, 딱히 하려면 조상 탓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가족이란 뭔가, 부부는 서로 남남에서 이뤄지는 것이지만 그 부부로부터 태어난 자식들은 씨앗의 소산이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사랑하고 아끼고 나를 희생해서라도 지키고 보살펴 줘야 할 대상으로 인식을 한다. 
그렇다고 어찌 그들이 거저 자라는 것이랴.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자식인 법, 부모 눈엔 늘 철부지한 아이로만 보이기 마련이다. 

이젠 성인이 다 되었건만 그래도 밤 12시가 가까워도 들어오지 않으면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아내 역시 그렇다. 

괜시리 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혹여 아내가 일하는 데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고 보면 가족이란 함께 산다는 것이고, 함께 산다는 것은 곧 어떤 일이든 공유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아닐까.


산세베리아를 보면서 나를 많이 뉘우친다.
 
설혹 튼실히 뿌리를 내렸다 하더라도 햇볕과 물을 제대로 공급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사람 특히 가족도 그런 배려와 서로간의 보살핌이 없으면 공동의 목표인 행복에 이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부부가 함께 살다보면 오누이처럼 닮는다고 한다. 부모자식간에는 국화빵이니 붕어방인 할 만큼 빼다 박은 듯 닮은 모습이 많다. 

식성도 버릇도 누가 가르쳐 주거나 하라고 한 것도 아니건만 똑같을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족은 더더욱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모른다.

어느 날 한 생명이 태어났는데 그게 내 모습을 판에 박은 듯 닮았다고 하자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일 것인가.

얼마 전의 장모님 전화가 생각난다.

‘복숭아나무에선 복숭아꽃이 피고, 살구나무에선 살구꽃이 피었더라’ 봄이 되면 꽃은 피기 마련이건만 어떻게 제가 복숭아나무인 줄 알고 복숭아꽃을 피우고, 살구나무인 줄 알고 살구꽃을 피우느냐는 말씀이었다.
 
이 위대한 자연의 섭리와 질서는 사람이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산세베리아를 바람과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 놓는다. 

앞으로 3주간은 물을 주지 말라고 써 붙여 놓아야겠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에게도 아내에게도 미안한 게 너무 많다. 

나의 무심이 저들의 가슴에 어떤 아픔을 심어놓았을까. 

산세베리아의 잎을 닦아주는 내 손이 그만 부끄러움으로 떨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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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물



최 원 현

선물이란 말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말도 드물 것이다.
남에게 주어버리는 것임에도 한없이 기쁘고, 내가 받으면 더없이 행복해 지는 것이 선물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선물을 해 보지 않은 사람 없을 테고, 선물 한 번 받아보지 않은 사람 또한 없으리라.
주는 사람 우선이 아니라 받을 사람 우선으로 정해지는 것이 선물이고,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정성으로 마련하여 건네는 것이 선물이다.
이 나이 이르도록 나는 몇 번의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은 바 있다. 값이 비싼 선물이라는 것이 아니다. 무엇으로 보나 내가 누구에게 선물을 받을만한 존재도 못 되는데 그런 내게 가없는 사랑을 선물로 보내 주는 마음과 손길들이 있어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던 때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선물이 있다.
그러니까 수 해 전 가을이었다.
오랜 서울살이를 벗어나 충북 음성에서 과수원을 시작하신 수필가 ㅂ선생이 사과 한 상자를 보내오셨다. 아니 내외분이 친히 오토바이에 싣고 내 사무실까지 가져 오셨다.
! 사과 한 상자, 선물로 흔히 오갈 수도 있는 물건이다. 허나 내게 보내진 사과 선물은 그런 흔히 있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었다. 사실 그냥 인편에 보내 주시는 것으로만 해도 고맙고 송구스러울 일이건만 일부러 친히 가져오신 것인지라 몸둘 바를 모르겠는데 두 내외분 말씀이 더욱 나를 당황하게 만들어 버린다.
몇 해를 고생하여 금년에 첫 수확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첫 수확은 가장 소중하고 고마운 이들에게 나누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외분이 몇 몇 분을 선정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의견일치를 보게 되어 선물을 하기로 하셨단다. 그 중에 나를 생각 하셨다는 것이다.
내외분이 사과밭을 두루 다니며 가장 크고 탐스럽게 잘 익은 사과들을 골라 따서 그득 한 상자를 만들었고, 그것을 손수 음성에서 서울까지 가져 오셨다는 것이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수줍듯 탐스런 자태를 자랑하며 보란 듯 결실의 여왕으로 익어간 사과, 그 사과들 중 유독 튼실해 보이고 잘 생긴 것으로만 따서 한 개, 두 개 망태기에 담는 두 분의 모습을 떠올리노라면 태초 에덴동산이 생각되면서 두 분 사이에 넘쳐나는 두 배의 기쁨, 두 배의! 보람, 두 배의 희망이 느껴진다. 그것은 나누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최상의 기쁨으로 그 모습은 천사와도 같아 보였다.
나는 그 사과를 받아놓고 한참을 고민에 빠졌다. 그 뜨거운 태양 아래서 사과나무에 손을 뻗쳐 사과를 따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그 분들의 사랑은 이해되면서도 그런 수고가 마음에 걸려 좀처럼 사과를 맛있게 먹을 용기가 생겨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식구 수에 맞춰 사과 네 개를 씻고는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그 분들과 내가 받은 사과 선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사과를 깎아 나눠 먹었다.
사과 맛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두 분의 일년간, 아니 수 해 동안 애씀의 정성으로 알이 굵어지고 맛이 든 사과요, 거기에 나를 기억해 주시고 내게 보내주신 사랑은 또 얼마나 큰가. 내가 사과 맛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사과 맛보다 그 분들 사랑의 맛이 더 강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음 날 나는 나머지 사과들을 두 세 개씩 나의 소중한 이들에게 일일이 나누어주었다. 그 분들의 사랑을 내가 받은 만큼 나도 나누고 싶었음이다. 아니 감히 나 혼자만 먹을 수 있는 배짱이 없었던 것이 더 큰 이! 유일 것 같다.

그러니까 수 해 전이었다. 내가 병원에 근무하는 덕택에 그 분들에게 약간의 편의를 제공해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사실 큰 도움이랄 수도 없는, 병원에 오는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필요한 그런 보통의 편의 제공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아프게 되면 평소의 침착함은 간 곳 없고 크게 당황하기 마련이듯 나의 작은 도움이 그 분들에겐 그토록 고마웠었던가 보다.
ㅂ선생은 일찍부터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 문인이시고, 설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든 그 정도는 해드렸을 일인데 너무나 황망한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나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내 작은 도움은 칠흑의 어둠 속에서 발견한 한 줄기 빛처럼 반갑고 큰 고마움으로 기억 되셨던 것 같다. 그 하고 많은 사람들 중 내가 맨 먼저 생각났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삶이 고달프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그 분이 보내주셨던 사과 선물을 생각하곤 한다. 당신들이 몇 년을 고생하여 이룩한 과수원에서 첫 열매 중 가장 좋은 것으로 지난날의 고마웠던 일을 갚고 싶으셨던 마음, 연세도 지긋하신 ? ?분이 사과나무 이파리 사이로 햇살을 받아 찬란히 빛나고 있는, 튼실해 보이는 잘 생긴 사과 하나를 발견해 내고 맞이하던 감격과 기쁨, 그리고 그 기쁨의 열매에 손을 뻗어 사과를 잡았을 때 손안 가득 넘쳐 났을 충만한 과육의 감촉, 그런가하면 손에 따 든 사과 위로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과 햇살을 받아 빛나는 빛 부신 사과를 생각해 보시라. 어찌 삶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을 것인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은 내 사랑하는 마음, 내 고마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ㅂ선생은 수필 작품을 통해서도 많은 감동을 주곤 하시더니 이처럼 선물로도 수필보다 더한 감동을 주고 있지 않은가. 글이 곧 사람이라고 했는데 ㅂ선생이야말로 그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삶과 글이 아름다운 감동으로 넘쳐나는 사람, 나는 이 날껏 살아오면서 내게 귀한 사랑의 베품을 주셨던 그 많은 분들에게 얼마큼이나 고마움을 표하며 살아왔을까.
과연 나도 몇 년을 고생하여 얻어낸 소중한 결실을 맨 먼저 주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진심 어린 감사를 해 본 적이 있을까. 내가 급할 때만 아쉬움이고, 그 때만 지? じ?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삶이 우리의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인정해 버리고서 내가 먼저 그런 삶의 사람으로 살아온 것은 아녔던가.

오늘은 편지라도 써야겠다. 날씨가 더운데, 햇볕이 뜨거운데, 오히려 ㅂ선생은 사과나무 아래서 이처럼 뜨거운 햇볕을 주시어 사과가 잘 익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 것 같다. 아니 이번 가을에도 탐스런 사과들을 따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아름다운 선물을 하게 해 주십사 기도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나눌 때 마음도 세상도 맑아지고 밝아진다고 했다. 아이 같은 마음으로 뜨거운 태양 빛을 하늘의 은총인 양 함뿍 받으면서 사과나무 사이에 서있는 ㅂ선생 내외분의 모습이 밀레의 '만종'을 보는 것 마냥 가슴을 찡하게 한다.
이번 가을엔 나도 그렇게 가슴 가득 감동과 기쁨으로 남게 할 그런 아름다운 선물을 하나쯤은 꼭 하고싶다.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던 말이 사과 맛보다도 더 싱그럽게 입맛으로 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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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을 적시는 수필 한 편 (18)을 띄우며.


요즘 시대를 다들 삭막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 삭막함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바로 나로부터 오는 것이란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겐 내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주어도 아깝지 않고, 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오히려 내 것보다도 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결국 내가 관심과 사랑으로 마음을 열 때 대상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이지만 서로 나누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보다 아름답고 행복하고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선물이란 받아서 즐겁고 주어서 행복한 것이다. 거기다 상대의 마음이 짙게 느껴지면 더더욱 감동하는 것이 선물이다. 내가 받은 사과 한 상자의 선물이 오래도록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잊혀지지 않는 것도 요즘처럼 삭막하다고 하는 때에도 한 여름 한 줄금 시원한 비처럼 상쾌함을 가져다주곤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마음과 마음을 열지 못하고,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겪는 실망과 좌절,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아닐까. 몇 년을 수고하여 이룬 과수원에서 그 첫 수확을 하면서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들로만 골라 따서 선물을 했? ? 사과를 따는 모습, 이것을 누구에게 주겠다고 포장을 하며 다시 그와의 정을 여는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지지 않는가. 사람의 마음보다 아름다운 것이 세상이 또 있으랴.
< 어떤 선물>은 선물을 통해 사랑이 교감되는 모습을 그려본 수필이다.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다. 왠지 가엾다는 생각이 들만큼 막바지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이럴 때 우리 에세이코리아 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이 여름을 이기고 찬란한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맞았으면 싶다. 그러나 가을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숙연한 계절임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아름답고 좋은 날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

2001. 8. 18. 토.
에세이코리아 최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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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작가 최원현(崔元賢)

수필문학가 최원현은 1951년생으로 《한국수필》천료(薦了)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국제펜클럽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강남문협 수필분과회장 및 《한국수필》편집위원. 《건강과 생명》편집위원이며, 제5회 [허균문학상]. 제1회 [서울문예상]을 수상했! 다.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아침무지개가 말을 할 때》《살아있음은 눈부신 아름다움입니다》와 시집《아름다울 수》가 있으며, 정감 넘치는 칼럼 연재, 작가탐방, 평론 등 문학 전반에 걸친 저력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수필문학 전문 사이트 [에세이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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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현 수필가의 수필

 

햇빛 마시기

최원현

 

 

마셔 보세요!”

김 원장이 내놓은 것은 투명한 유리잔이었다. 묵직했다. 그러나 무얼 마시라는 걸까. 유리컵 안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마셔보세요!” 다시 독촉을 해왔다.

오전에 제가 한 번 마셨으니 가득 차 있지 않을 지도 몰라요.”

컵을 입으로 가져가  하고 들이마셔 봤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았다.

햇빛이에요 그녀의 설명이었다.

내가 지금 마신 건 창가에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둔 것이란다. 좀 맹랑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햇빛을 내 속으로 들여보내준다? 그러면 내 속에선 어떻게 반응할까. 갑자기 들어온, 아니 한 번도 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했던 한 밝음이 어둠 속의 그들에게 순간적으로 다가갔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는 산부인과병원 원장이다. 표정으로 보아도 전혀 장난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는 매일 그렇게 햇빛을 받아 마신다고 했다. 순간 내가 마셔버렸던 유리컵을 다시 바라보았다. 컵은 다시 창가의 제자리로 가 있었지만 해가 없어졌으니 햇빛도 없다. 그런데도 유리컵에 내가 채 마시지 못했던 몇 개의 햇빛 알갱이들이 남아 보석가루처럼 빛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렇고 보면 햇빛도 포근히 안기거나 한곳에 담겨 쉬고 싶을 수도 있겠다.

태양에서 발산된 빛이 대기 속을 뚫고 내려와 발견한 한 작은 공간, 거기 갇힌다기보다는 빠져든 순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건 어머니의 품속 같이 안온할 수도 있고 태양으로부터 보내지던 순간의 보드랍고 따스한 느낌일 수도 있다. 그 먼 거리를 달려와 이른 곳이 고작 작은 컵 속이라는 것이 화가 날 법도 하지만 땅으로 스며들어버리는 수많은 동료들을 보면서 그나마 그들과는 다른 곳에 이른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 빛은 초당 삼십만 킬로를 가니 태양에서 발산된 빛이 이곳에 닿는 데까진 약8 20초가 걸린 셈이다. 그렇다고 그 거리가 짧다는 것이 아니다. 만일 빛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었다면 어떨까. 로켓이라면 5개월을 가야 하는 거리요, 비행기라면 17, 소리였다고 하면 15년이고, 새마을호 기차라면 114, 걸어서는 4,270년이나 걸리는 거리다.

내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맛이 어때요?” 그녀가 다시 물어왔다. “글쎄요. 향긋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얼버무리자 마음이 상대에게로 가는 데는 0.5초라더니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맛은 없을 거예요 해 버린다. 그의 말은 참 사무적인데도 싫진 않다. 사실 여기 무슨 장황한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어느 날 진료를 하다 물을 마신 컵을 마땅히 치울 곳도 없어 창가에 놔뒀다. 그런데 햇빛이 창 안 깊숙이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그 햇빛이 창가의 컵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도 보였다. 순간 햇빛이 컵에 담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석가루 같은 빛의 알갱이, 하나님의 선물이 지금 컵에 담기고 있는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컵을 들어 주욱 들이 마셔봤다. 가슴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빛이 들어간 가슴 속에서 반가운 악수소리가 막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 바깥 나라는 어떠니?’ 서로 묻고 답하는 소리도 들려오는 듯 했다. 그는 그렇게 햇빛받이 컵을 창가에 계속 놓아두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매일 햇빛을 받아 마시게 되었을 수 있다. 어쩌면 나도 그랬을 수 있다. 내가 전혀 부정적이 안 되는 것도 그와 같은 생각을 나도 일찍부터 하고 있었을 수 있고 아니더라도 그의 생각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가능한 데다 거기에 내가 공감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에만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 잡히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이 세상이다. 정작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 아주 큰 것도 작은 것도, 아주 먼 곳도 가까운 곳도 볼 수 없는 게 우리 눈이고 들을 수 없는 게 우리 귀다. 공기나 햇빛, 바람의 냄새도 맡을 수 없고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문득 김 원장이 내게 햇빛이라며 마셔보라고 한 건 보이지 않는 것도 보라는 특별한 마음 씀 같이 생각이 되었다.

햇빛 마시기, 참 그럴싸한 생각이지 않은가. 내 안의 어두움을 밝혀줄 기회요, 엄청난 살균력이 있다는 햇빛이니 그게 또 내 안 깊숙이 들어가면 거기 있으면 안 될 것들이 순식간에 괴멸되는 최고 유익의 기회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선 가장 필요한 게 햇빛이었는데 나는 그걸 너무 모른 체 하고 살아오지 않았나싶다.

너무 큰 은혜나 사랑에는 고마워할 줄도 미처 깨닫지도 못 하고 사는 게 사람이란다. 그런 면에서 김 원장이 더욱 고맙다. 그 고마움의 마음 표시로라도 나도 당장 내 방 창가에 가장 투명한 컵 하나를 놓아두어야겠다. 그리고 거기 담긴 햇빛을 소중히 내 속 깊이로 들여보내 주리라. 그것이 어떤 상징적인 의미밖에 되지 않을 지라도 내 삶 속엔 아주 작게라도 소중한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 것 같다. 어쩌면 내 마음도 한결 깨끗해지고 생각도 정신도 맑아질지 모른다.

햇빛 마시기는 내 안으로 햇빛 들여보내기다. 바깥세상을 안 세상으로 들여보내기다. 생각의 전환이다. 마실 수 있는 것의 영역 확대다. 새롭게 보기다. 내 안에 자리하고 있던 아름답지 못하거나 바르지 못한 생각과 마음들이 들여보내진 햇빛으로 하여 씻기고 닦이고 다듬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컵을 준비하러 가는 내 마음도 창가의 햇빛보다 더 밝아진다. 내 안으로 햇빛 들여보내기, 내 안이 밝아지게 되면 세상도 조금 더 밝아질 게다. 내 안의 어둠이 걷히면 거기 새로운 희망의 싹들이 마구 피어날 것 같다.

 

누름돌 

최원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확실해 지는 것이 있다. 앞서 세상을 사신 분들의 삶이 결코 나만 못한 분은 없다는 생각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서가 아니다. 그 분들이 살아왔던 삶의 날들은 분명 오늘의 나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과 조건의 세상살이를 하셨다. 그런 속에서도 묵묵히 그 모든 어려움과 아픔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몫을 아름답게 감당하셨던 것이다.

요즘의 나나 오늘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그분들보다 어렵다고는 할 수 없겠고, 특히 그분들이 처해 있던 시대는 지금에 비교도 할 수 없이 열악한 참으로 어렵고 힘든 시대였었다. 그럼에도 묵묵히 보다 좋은 세상을 바라면서 엄격하게 당신들 스스로를 절제하고 희생하셨다. 그분들의 어느 한 삶도 결코 오늘의 우리만 못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저 잘났다는 표를 지나칠 만큼 서슴없이 해댄다. 향기도 지나치면 역겨움이 되지 않던가. 멋을 낸답시고 호화로운 옷에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녀도 그런 모습이 부럽고 아름답게 보이기보단 거스르고 거들먹대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명 적삼 내지 무명 두루마기에 흰 고무신을 신은, 어린 눈에도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던 앞 세대 어른들 모습은 지금에 생각해도 훨씬 더 아름답고 품위 있어 보이고 위엄 넘쳐 보인다.

강원도 정선엘 갔다. 다들 냇가로 나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 나갔는데 그곳에서 수석(壽石)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그저 돌일 뿐이었다. 다들 의미를 부여한 돌 한 두 개씩을 가져가는데도 나만 빈손이다가 문득 어린 날의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께선 한 해에 한번쯤은 부러 냇가에 나가서 납작 동글 손바닥 만 한 돌멩이를 한 두 개씩 주워오셨다. 그걸 무얼 하려느냐고 물으면 누름돌이라 했다.

누름돌, 나는 그때 그게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용도를 알게 되면서 부터는 나도 학교에서 돌아오다 냇가에 들러 그런 돌을 주어다 드리면 할머니께선 매우 좋아하셨다. 그 어린 날이 생각나 뒤늦게 마음이 급해져 누름돌로 쓸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어쩌면 그건 순전히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겠지만 내 삶에도 그런 누름돌이 필요하단 생각도 했을 것 같다.

누름돌은 모나지 않게 반들반들 잘 깎인 돌이어야 한다. 그걸 깨끗이 씻어 김치 수북한 김칫독에 올려놓으면 그 무게로 아주 서서히 내리누르며 숨을 죽여 김치 맛이 나게 해주는 돌이다. 그런가 하면 조금 작은 것은 때로 밭에서 돌아와 저녁을 지을 때 돌확에 담긴 보리쌀을 쓱쓱싹싹 갈아내는 돌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 돌은 어두운 부엌에서도 금방 알아볼 만큼 빛이 났다. 밤낮 없는 할머니나 이모의 쓰임에 따라 더 닳고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진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쩌다 나도 손에 쥐어보면 돌의 차가움이 아닌 왠지 모를 따스함이 감지되기도 했다.

요즘 내게 부쩍 그런 누름돌이나 돌확용 돌이 하나쯤 있었음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뭔가 모를 것들에 그냥 마음이 들떠있고 바람 부는 대로 휘둘리는 키 큰 풀잎처럼 좀처럼 내 마음을 안정시키기가 어렵다. 이런 때 그런 누름돌 하나 가져다 독안의 김치 꾹 눌러주듯 내 마음도 눌러주었으면 싶다. 거친 내 마음을 돌확에 넣고 확돌로 쉭쉭 갈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쳐가는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고, 욕심내지 않아도 될 것에 주제넘은 욕심을 펴는 날카롭게 결로 깨진 돌 같은 감정들도 지그시 눌러주거나 갈아내 주었으면 싶다. 아니다. 그보다 짜고 맵고 너무나 차가워 시리기까지 한 김장독 안에서 보아주는 이 없어도 자신을 희생하며 곰삭은 김치 맛을 만들어내는 누름돌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옛 어른들은 다 누름돌이거나 최소한 누름돌 하나씩 품고 사셨던 분들 같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누가 그렇게 하라고 안 해도 아주 자연스럽게 누름돌이 되었고, 또 상대를 자신의 누름돌로 인정도 해주었다. 내뻗치는 기운도 억누르고, 남의 드센 기운도 아름답게 받아 안는 희생과 사랑의 마음들이 서로 나눔으로 이해로 살아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 어려운 삶의 현장, 차마 견디어낼 수 없던 시대의 질곡에서도 아픔과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으리라.

우리 집에선 그때 내가 정선에서 가져온 누름돌이 단단히 한 몫을 했다. 베란다의 항아리 안에서일 때도 있고, 오이지를 담글 때도 곧잘 사용했다. 요즘이야 보리쌀을 갈아 밥 짓는 일은 없어졌으니 확돌이 될 일은 없지만 어쩌다 제 몫의 일이 없어 바닥에 놓여 있거나 항아리 뚜껑에 올라와 있어도 어린 날을 추억케 하면서 내 삶의 누름돌을 생각게 한다.

두 동강이 나버린 누름돌을 보며 안타까워하시던 외할머니 모습도 생각난다. 단순히 못 쓰게 된 돌 하나가 아니었으리라. 웃자라는 욕심에도 성급한 마음에도, 서운함으로 파르르 떨리던 마음, 시집살이 고된 삶의 눈물도 누름돌을 씻으며 삭이던 친구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 설운 마음 꾸욱 누르고 누르고 하셨던 그 마음이 담겨있었을 텐데 깨져버리자 마음이 찢기는 안타까움과 헤어짐의 슬픔을 느끼셨을 것이다. 내 나이도 이젠 들만큼 들었는데도 팔딱거리는 성미며 여기저기 불쑥불쑥 나서는 당돌함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누름돌이 없어서일까. 이제라도 그런 내 못된 성질을 꾹 눌러 놓을 수 있도록 누름돌 하나 잘 닦아 가슴에 품어야겠다. 그게 나뿐이랴. 부부간에도 서로 누름돌이 되어주는 것이 좋겠고, 부모 자식 간이나 친구지간에도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도 훨씬 더 밝아지고 마음 편하게 되지 않을까. 김장을 처가에서 해와서인지, 김치 냉장고 때문인지 지난겨울 내내 베란다 바닥에 누름돌이 하릴없이 놓여있었다. 나도 그게 특별히 쓰일 데가 없어 그냥 본 체 만 체 했다. 그러나 내일은 마침 집에 있게 되니 아내 몰래 저 두 개의 돌을 깨끗이 씻어 뚜껑 덮인 항아리 위에라도 올려놓아야겠다. 그걸 보며 왠지 모르게 들떠있는 내 마음도 꾹 누르면서 말이다. 아니다. 그러기도 전에 정성껏 김장독에 올려놓던 할머니 모습이 먼저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종소리

최원현

 

 

대앵, 대애애앵종소리는 신기하게도 십리가 넘을 우리 집까지도 들려왔다. 교회와 우리 집이 모두 조금 높은 곳에 위치했다 하더라도 우리 집까지 오는 데는 동산도 두 개나 있건만 수요일 저녁만 되면 종소리는 어김없이 우리 집에까지 들려왔다. 할머니는 먼 어두운 밤길은 다녀올 수 없기에 종소리를 들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를 하시곤 했다. 그렇게 중학교 3년간을 들었던 종소리다.

막내이모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 화요일 저녁이었다. 어머니 대신 나를 업어 키워 주신 분이다. 몇 년 전부터 치매가 와서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돌아가신 것이다. 얼마 전 찾아뵈었을 때만 해도 이리 빨리 돌아가실 것 같진 않았었다.

하지만 기름기가 다 빠져나가 버린 뼈와 가죽만 남은 가느다란 몸매와 얼굴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앉아있는 것이라 할 정도로 똑같아 나를 놀라게 했다. 나이가 들면 부모 모습이 된다더니 이모의 모습은 아무리 모녀간이라도 저렇게 똑같아질 수 있을까싶게 닮았다. 할머니도 치매로 고생 하다 가셨다. 할머니가 여든 일곱에 가셨는데 이모는 일흔 여덟에 가시니 9년이나 빨리 가신 셈이다.

새벽 첫차로 이모님이 계시는 광주로 내려갔다. 성공한 세 아들의 문상객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빈소에서 이모님과 마주했다. 10여 년 전에 찍었다는 소라색 한복 저고리를 곱게 입은 영정사진 속에서 이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원현이 왔냐? 오느라 고생했다.”사진 속에서 이모는 그렇게 인사를 해왔다. 지난 번 병원으로 찾아뵈었을 때는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어디서 오셨소? 누구시요?”하던 이모였는데 오늘은 반갑게 알은 체를 하며 맞아주고 있다.

순간 어린 날 들었던 교회당 종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허나 종소리가 들려올만한 곳은 없었다. 그런데 이모가 요새도 교회 잘 댕기냐?” 하시는 게 아닌가. “할머니가 세상 천지에 네 의지 될 만헌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교회로 너를 데꾸 갔단다.” 이모는 웃는 얼굴 채로 조근조근 할머니 애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곱게 차려입은 모습도 외할머니 모습이다. 참 정갈하신 분이었다. 십리 황토 길을 하얀 버선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장에 다녀오셔도 어찌 걸음을 하셨는지 버선에 흙 한 점 튀지 않았고 결코 버선코를 넘어선 흙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할머니를 신기해했다. 그러나 세월에 장사는 없다더니 연세 들어가며 자신이 누군지도 잃어버렸다. 그 길이 뭐가 그리 좋다고 이모가 또 그 길까지 따라 걸었다. 해서일까. 내 어린 날 들었던 종소리로 나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하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로 장례 마지막까지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내 등 뒤로 괜찮다. 봤으니 되얐다. 잘 살어라.” 이모의 목소리가 종소리처럼 들려왔다.

왜 종소리였을까. 아마 이모도 나도 멀리 떨어져 살았기에 멀리 퍼지는 종소리처럼 여운을 붙잡고 살았다 함일까. 그렇다고 누가 그 그리움의 끈을 흔들어 종을 쳐 줄 것인가. 그래도 종소리의 긴 여운은 내 남은 삶 내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잘 사냐?” “잘 살어라 할머니와 이모 두 분 모두의 한결같은 물음이고 순하디 순한 그분들만의 나에 대한 축복이고 소원이었다. 나는 두 분의 목소리 여운을 내 가슴에도 울리고 있는 종소리로 들으며 두 분 바램의 의미 담긴 잘 사는 일을 남은 내 삶 동안 꼭 지켜가야 한다. 그런데 그분들이 말씀하신 잘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할머니는 평생 나만을 바라보며 사셨다. 참판 댁 장손녀로 태어나 어린 날에는 온갖 부러움 다 받으며 사셨지만 바람처럼 나다니시는 할아버지 만나 결혼 후에는 어렵게 어렵게만 사셨다. 거기다 딸만 셋을 두신 것도 큰 서러움이셨을 텐데 큰딸 내외에 둘째 셋째 사위를 다 먼저 보내셨으니 그 참담한 가슴을 무엇으로 다독일 수 있었겠는가. 그런 큰 딸이 홀로 남긴 세 살짜리의 유일한 피붙이인 나를 보는 할머니의 눈시울은 한시도 마를 날이 없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철이 드는 걸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노래처럼 말씀 하셨던 그 걱정 속 할머니의 성화로 일찍 결혼을 했던 나는 다행히 남매를 두게 되었고 딸과 아들은 내게 다섯이나 되는 손주를 안겨 주었다. 그 딸아이의 큰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까지도 보고 가셨으니 당신의 모든 염려는 기우(杞憂)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내 결혼식 날 돌아가셨다. 결혼식을 막 마쳤는데 돌아가셨다는 부음(訃音)의 전보를 받았다. 신혼여행 대신 상주가 되어 5일간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행길에 함께 했다. 멋쟁이셨던 할아버지, 그러나 당신의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암울한 시대에 가장 평범한 삶으로 살다 가신 분이셨다. 내게는 참으로 엄하셨다. 행동거지 하나, 사람의 도리 하나하나 어린 가슴에 못이 박히도록 심어주셨다.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내 삶의 방향을 인도하고 계시는 게 분명하다.

할머니나 할아버지 그리고 이모의 내게 대한 바램은 오직잘 살어라였다. 살어라의 의미를 아직까지도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언제나 은은한 종소리처럼 긴 여운으로 내 가슴 속을 울리고 있는 말씀이다.

이모는 내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끈이었다. 그 끈도 이젠 끊긴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젠 그때의 교회당 종소리도 요즘엔 들을 수 없다. 그냥 시간 되면 교회도 알아서 가고 오라고 하지 않아도 갈 줄 안다. 그러나 오라거나 그렇지 않거나 관계없이 종소리가 울리면 그 종소리의 의미를 생각했었고 한 번쯤 마음도 가다듬었던 옛날의 그 종소리, 이모님은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까지도 내게 그 종소리를 상기시키셨는데 사실 이모님이 내게 들리던 마지막 종소리였던 것 같다. 그 종소리마저 끊긴 지금 이제는 그 종소리의 여운으로나 살아야 할까.

소라 색 한복 저고리를 입고 고운 미소로 나를 보던 이모님, 수요일 저녁이면 들려오던 종소리에 손 모으고 나를 위해 기도하시던 할머니,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하라며 가르침 주시던 할아버지,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게 다 나를 바로 세워주던 종소리였다. 그런데 긴 여운으로 들려오던 그 종소리조차 이젠 자꾸만 놓치는 것 같다. 그런 나는 누구에게 얼마큼의 어떤 종소리가 되고 있을까.

 

숨어있는 향기

최원현

 

 

, 살았구나!

드디어 새 촉이 나왔구나,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2년쯤 된 것 같다. 직장 동료들 몇이서 전라도 어딘가로 난을 캐러 간다고 하더니 춘란 몇 촉을 내게 주었다.

나는 원래 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고, 까다롭다고 하는 난 기르기에 선뜻 나서고 싶지도 않아 어느 집이건 한두 분()쯤은 있기 마련인 난 분 하나 갖추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난이라고 내 손에 들려진 것은 아무리 야생란이라고는 해도 내가 평소에 보아 왔던 그런 난의 품위도 찾아볼 수 없었고, 가느다랗고 연약해 보이는 잎은 과연 내가 이것을 살려낼 수 있을까 싶게 자신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도 명색이 글을 쓰는 사람에다 이 나이의 내 방에 난 분 하나 없다는 것도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의 집에 갔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던 난의 신비롭던 꽃 모습이며, 은은하게 풍겨나던 난향이 생각나 이 기회에 나도 한 번 시작해 볼까하는 호기도 생겼다.

꽃집에 들러 화분과 흙을 사고 그곳에서 일러준 대로 정성스레 심었다.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이던 것이었는데 화분에 심어 놓으니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그렇게 해서 내 방에 난이 놓여지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를 놓고 보니 너무 외로워 보인다. 정을 붙이고 뿌리를 내릴 엄두조차 못낼 것만 같다. 해서 평소 난을 좋아하시는 숙모님이 생각나 전화를 드렸더니 난을 나눠주시겠단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내친걸음에 숙모님 댁에서 난 분 하나를 얻어다 함께 놔주었다.

한결 좋아 보인다. 갑자기 방안의 분위기가 바뀐 것 같고, 나도 제법 운치깨나 아는 선비 같아 보인다.

나는 그 때부터 난에 상당한 정성을 기울였다.

헌데 숙모님 댁에서 가져온 난은 이내 새 촉이 올라오고 잘 자라는데 야생 춘란은 늘 그대로다. 혹시 뭔가 잘못 되었나 싶어 뿌리를 확인해 보면 뿌리가 매말라 있기도 했고, 어떤 땐 뿌리가 거의 다 썩어 있기도 해서 이게 어떻게 살아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러면 그럴수록 그 난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게 아닌가. 아내는 자기보다 난을 더 생각한다며 자기는 난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투정을 해댔지만 나는 그 난이 죽게 되면 정말로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것은 내가 마음을 주면 줄수록 난은 더 몸살을 하는 것 같았다. 더욱이 얼핏 보면 이미 죽은 것처럼 보여 식구들에게도 당부를 해 놓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내가 없는 사이에 밖에 내다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까지 겹쳐 나도 함께 앓기 시작했다.

그런 난이 죽지 않고 끈질기게 나와 함께 목숨 지키기를 하더니 오늘 이렇게 산을 들어올리는 감격으로 새 촉을 틔워 올린 것이다.

그 동안 몇 개의 난 분이 늘었다. 그런 중에도 나는 그 춘란에 각별한 정성을 쏟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난을 파는 곳에서 우리 집의 난 이야기를 했더니 난의 생김새를 묻고는 그런 난은 일 이 천원이면 한 줌씩 준다면서 웃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그토록 애지중지 마음을 써 주었던 난이 그토록 값싸고 흔한 것이며,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정성을 쏟았구나 하는 후회와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속이 상하거나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 잘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만일에 내가 처음부터 난에 대한 지식이 있었으면 그런 난을 준다고 받기나 했겠으며, 설혹 받았다고 해도 그토록 정성을 쏟을 수 있었겠는가. 결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함께 앓으며 목숨을 지켜줄 수는 없었을 거란 생각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되는 세상이기에 좋아 보이면 우선 얼마짜리냐고 묻는 요즘 사회이지만 생명엔 귀천이 있을 수 없는 것, 비록 한 포기 난일지라도 하나님의 크고 깊으신 섭리와 은총이 내려진 생물체요, 어쩌면 인간보다도 하나님 보시기엔 더 아름다운 피조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그 때 앞으로 난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떤 것이 좋고 귀한 것인지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나도 필시 그 좋은 것, 일반적으로 누구나가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것들 쪽으로만 눈을 돌리고 그렇지 않은 것에선 자연스럽게 발을 돌릴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그것이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릴 것이다.

물론 난은 꽃을 보기 위함이니 나중에 내가 그처럼 정성을 쏟았던 난에서 피어난 꽃이 볼품이 없어서 몹시 속이 상할런 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보다 어쩌면 꽃조차 피워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해가 넘는 동안의 내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인내하며 참으로 힘겹게 힘겹게 뿌리를 내리고, 드디어는 하늘 문을 여는 감격으로 장하게 촉을 틔워 살아 있음의 의미를 내게 보여준 난에게서 고마움과 안쓰러움과 감동을 함께 안는다. 거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자 난의 감격, 환호, 기쁨, 보람이 정말 하늘에 닿는 충만함으로 내게 향해진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집안 어른 한 분의 별명이 '섰다'였다. 별명이 하도 이상하여 왜 '섰다'라 하느냐고 물었더니 서로 얼굴들을 쳐다보며 기다렸다는 듯 배를 움켜쥐곤 웃어댄다.

얘기인 즉, 그 할아버지가 일곱 살 때까지 일어서지를 못했단다. 그래서 영영 서지 못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리타작을 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방안에서 '섰다'하는 소리가 나서 하던 일을 멈추고 바라보니 일곱 살짜리가 열린 방문 고리를 붙잡고 일어서서 다리를 덜덜 떨며 저 혼자서 일어섰다고 환성을 지르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다리에 힘이 오르기 시작하여 곧 걷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 할아버지의 별명이 그 날 이후로 '섰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옛날에 들었던 그 '섰다 할아버지'의 감격이 어쩌면 저 춘란의 감격이 아닐까 싶다. 이제부터 저 난도 섰다 할아버지처럼 다른 난에 뒤지지 않고 쑥쑥 자라 오를 것 같고, 뿌리도 화분에 가득하도록 튼실하게 차오를 것 같다.

지금 당장 성과가 없다고,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게 없다고 쉽게 자포자기 해 버리고, 또 쉽게 저버리고 마는 이 시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신선하고 맑게 들려오는 한 소리인가.

난 분을 여리게 볕이 들 수 있는 쪽으로 옮겨주며 '어느 난도 가지지 못할 너만의 꽃을 피워다오' 가만히 속삭여 본다.

꽃도 피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제껏 맡아보지 못했던 솔향기, 풀내음들이 몰려와 춘란을 감싸고, 방안엔 때 아니게 피지 않은 난에서 나는 난향이 가득 차는 것 같다.

향기는 꼭 꽃에서만 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사람에게서도 품향이 나타나듯 어쩌면 가장 향기로운 것은 꽃을 속으로 머금고 있을 때의 숭고한 정성스러움에서 나는 것은 아닐까. (1994)

 

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

최원현

 

 

하늘과 바다가 반가운 포옹을 하고 있었다.

개구쟁이처럼 그 품안에서 빠져 나온 푸른 숲, 그리고 하얀 옷에 오렌지색 모자를 쓴 건물들이 쪽빛 바다에 내리다 반사되는 햇살을 받아 여유롭게 빛나고 있었다. 빛과 색이 수줍은 듯 어우러지며 이뤄내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조화였다.

내게 통영은 이상스러우리 만큼 그리움을 일으키는 곳이었다. 통제영(統制營)이라는 크고 엄숙한 느낌보다도 바다와 섬 그리고 섬 만한 산과 항구가 마치 모태 속 여덟 달 아기의 방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대개의 어항이 주는 음습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아니라 가을 하늘처럼 맑고, 청렴 고결한 선비 같은 품위를 자아내는 도시, 그래서 예로부터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해 미항으로 불려왔나 보다.

통영에 올 때마다 남망산엘 올라보고 싶었다. 중턱에 서있다는 청마의 시비도 보고 싶고, 저 한산대첩의 현장을 묵묵히 바라보며 서있을 충무공 상 앞에서 나도 그렇게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면 내 삶에도 어떤 신선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것 같았다.

역사는 말이 없다지만 아니었다. 통영에 오면 무수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귀로 듣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 수많은 말들이었다. 그래서 아련한 그리움이 피안의 모랫벌처럼 밀려들게도 하고, 날아오르는 갈매기를 보면 이 땅에서 살다간 이들의 애환이 몽실몽실 솜구름처럼 피어오르기도 했다.

 

미명의 아침이었다. 바다의 일출을 보고자 했는데 산 위로 해가 떠오른다. 아니 섬 뒤로 부끄러운 듯 사알짝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이내 둥실 몸을 드러낸다. 순식간에 누리의 바다가 온통 황금빛이 되어 버린다. 통영의 일출은 망망한 수평선 위에서 떠오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장엄하지 않으면서도 긴 여운의 감동을 오래도록 가슴에 남게 하는 그런 해 떠오름이었다.

남망산(南望山)에 올랐다. 높지도 낮지도 않게, 바다와 섬과 도시에 일부러 맞추기라도 한 듯 꼭 어울리는 키와 덩치로 자리한 산, 얼핏 고래의 등에 올라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산은 살아있었다. 수필 작가인 이곳 K 시장의 사랑과 꿈과 열정이 도시의 곳곳에서 살아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숨결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이곳 남망산인 것 같다. 시민회관이 그렇고, 작은 오솔길 하나에서도 정성스런 마음씀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남망산 조각공원은 국내작가 5명에 외국작가 10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랑블루(Grand Blue)라는 통영의 자연환경에 맞는 주제로 자신의 작품이 설치될 수 있도록 직접 설치될 장소와 주변환경을 검토하고, 거기에 맞는 작품의 내용과 크기와 재료를 결정하는 심포지엄 형식을 통해 이 일을 추진했다고 한다. 꿈꾸는 듯한 쪽빛 바다와 군데군데 떠있는 섬들의 어울림은 자연에 대한 겸허함과 흥겨움, 그리고 명상적 태도의 통일된 공감대로 승화시켜 내고자 함이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브론즈와 스텐레스 스틸을 소재로 한 <허공의 중심>이란 제목의 우리 나라 작가 작품이었다. 나신(裸身)의 남성상을 다섯 단계로 설치하였는데 삶과 죽음,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 등 이원론적 사고(思考)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대립과 분열을 극복해 내고자 하는 인간의 고귀한 염원을 나타낸 인체조각이었다. 강한 이미지의 나신 남성상(男性像)에서는 태초의 에덴과 같은 원초적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생명력은 생겨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았으며, 특히 삶에서 죽음으로 변해 가는 과정은 인간이 신 앞에서 생명에 대해선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인정케 하고 있었다.

또 하나 관심을 끄는 것은 프랑스 작가의 나무와 고무와 모터를 소재로 한 <잃어버린 조화>라는 작품이었다. 움직인다고 해서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단순한 반복 동작은 주제도 없는 수동적이고 무의미한 움직임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있었다. 곧 인간의 삶은 이런 무의미한 반복 동작일 수도 있다는 경고이기도 한 것으로 모터의 동력에 의해 연결된 여러 토막의 통나무가 움직임으로 인간 행위와 삶의 의미를 곰 새겨보게 하는 것이었다.

커다란 분재, 시간과 공간을 체험케 하는 입방체의 공간, 인체라는 소우주를 통해 초자연적인 우주의 원리와 생명력 및 영원의 활력을 표상하고 있는 <출산>, (-)과 양(+)의 균형 속에서 바라보이는 것들을 통해 명상할 수 있게 하는 <망산> 등은 삶과 죽음이란 대 주제를 자연적 지리적 환경을 통해 가슴으로 느끼게 함으로서 크게는 남망산 전체가 그대로 하나의 작품이 되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관심의 초점은 역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는 자리였다. 가만히 보면 통영은 우리 나라 모형의 축소판이다. 수군통제사가 수군을 통제 훈련하던 것처럼 삼면의 바다가 통영으로 모이고 통영에서 다시 나래를 편 물결은 태평양을 향해 더 힘차게 퍼져나가듯 통영은 세계로 세계로 한국을 빛내갈 힘의 발원지였다.

그래서일까. 통영이 낳은 이 시대 최고의 작가 박경리는 그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시작에서 자신의 고향 통영을 이렇게 그려놓았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 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내려오는 길에 청마(靑馬)의 시비 앞에 섰다. 그의 시 깃발이 바다를 등에 업고 새겨져 있다. 통영에는 청마가 살면서 거닐었던 거리와 그리움의 편지를 쓰고 보내던 우체국이며, 호심 커피숍 등 추억이 깃든 곳들이 많다. 물론 지금엔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버렸지만 그 자리엔 가지 못하더라도 통영에 오는 것만으로도 그의 숨결, 그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 같다. 시비 앞에 서니 더욱 그가 그립다. 새로 세운 청마문학관에 가면 그에 대한 그리움을 얼마큼이라도 채울 수 있을까.

청마는 그랬다.

"여기엘 오면 나도 어부가 되고싶다/그리하여 저 대해(大海)의 심산유곡으로 헤치고 나아가/억센 그들과 맞싸우며 그들을 모조리 잡아 비끌어오고 싶다"(청마의 시 어시장에서)...

사람들이 통영에 오면 그리움의 사람이 되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 같다.

언젠가 젖먹이 아이와 한참을 놀아주고 나서 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얼마동안을 간 곳이었는데 내 몸에서 아기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아기를 안고 놀았던 사이에 아기냄새가 몸에 배었나보다.

통영은 예향이다. 그것은 산자수려함뿐 아니라 그곳을 빛내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곳을 통해 맑고 깨끗한 성정에 젖었고 또 그렇게 청명한 사람이 되어 그의 주위까지도 청정하게 만들었다. 겨우내 얼어 있다 봄이 가까워지면 얼음장 밑으로 녹아 흐르는 산골 물 같은 맑고 시원함이 너른 바다에서도 느껴지는 곳, 비록 통영에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잠시 안아주었던 아기에게서 배어나던 아기 냄새처럼. 내게서도 분명 통영냄새가 솔솔 풍겨 날 것 같다.

함께 있어도 그리운 곳, 하물며 떠나가면 오죽 더하랴. 고향도 아니면서 이만한 그리움을 자아내는 건 아름다운 풍정만은 아닐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다음 번에 오게 될 때는 나도 오렌지색 모자를 쓰고 올까보다. 그럼 더욱 정감이 넘치지 않을까. 마지막 둘러보기인 해저터널을 빠져 나오자 남망산 위에 머물던 낮 해가 통영을 둘러본 느낌이 어떠냐는 듯 환한 웃음 가득 우리를 내려다 보고있다.

애향작품집 통영의 향기(2001.7. 교음사)

 

저녁 노을

최원현

 

 

도시 생활에 젖어버린 내게 저녁 노을은 반가운 충격이었다. 콘크리트 숲 속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소중한 것을 찾은 느낌이었다. 나는 홍시 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분명 홍시 빛이었다. 홍시 빛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30년도 넘게 묻혀있던 그리움 하나가 고개를 번쩍 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방학을 맞아 시골 외할머니 댁으로 내려갔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자 할머니께서 뭔가를 내오신다. 커다란 장도감이었다. 이곳에선 이렇게 큰 감을 보기가 어려운데 누군가 갖다드린 모양이다. 헌데 할머니께선 그 감을 보자 방학이면 내려올 내 생각을 하셨고, 그래 그걸 쌀독에 넣어두셨던 것이다. 잘 익은 홍시가 되라는 바람 가득.

헌데 그 겨울에 나는 내려가지 못했고, 할머니는 그 감을 내가 못 먹은 것이 안타까워하시다가 보여라도 주겠다며 다음 해 내가 내려갔을 때까지 두셨다는 것이다.

백태가 끼고, 쌀벌레가 묻어 있고, 역겨운 신 냄새까지 났다. 그러나 그런 냄새까지도 할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니 가슴에 아리아리 전율로 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할머니의 사랑은 어디까지일까.

밤차를 타기 위해 해으름녘에 집을 나섰다. 늘 넘어 다니던 산마루에 지는 해가 걸려 있었다. 노을은 할머니의 그 큰 감 홍시 빛이었다. 건드리면 분홍빛 진액이 툭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커다란 홍시 감이 서산 마루에 걸려있었다.

빨리 가라는 재촉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 해도 슬쩍 산을 넘고 만다. 그렇게 넘어가 버리는 저녁 해가 어느 순간 내 곁을 훌쩍 떠나버릴 할머니 같아 가슴이 아렸다. 한참을 가다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아직도 그대로 서 계신다. '그만 들어가세요!' 외쳐댔지만 목소리는 울음으로 잦아들고 만다. '할머니 오래 사세요!' 기도인지 독백인지 모를 말만 되풀이했다.

그 날의 홍시 빛 노을을 다시 본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니 계신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황혼 또한 아름다운 자연의 순리가 아닌가. 할머니가 받아들인 순리를 이제 내가 받아들일 차례가 된 것이다.

노을이 할머니의 얼굴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서 가!' 그런데 어디로 가라는 말씀일까.

《수필과 비평2002.4.5월호

 

 

잡초 뽑기

최원현

 

 

요즘 들어 나는 때 아닌 잡초 뽑기에 시달리고 있다. 하룻밤 자고나면 여기저기에 자리잡아버린 잡초들이다. 이놈들은 싹 터서 자라는 기간조차 없이 어딘 가로부터 불쑥 날아 들어와 터를 잡아버린 놈들이다.

그러니까 내가 운영하고 있는 문학사이트에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오는 광고물들인데 어찌나 교묘한 방법을 쓰는지 막아낼 길이 없다. 내 역량으로는 오로지 하나씩 열어서 제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소홀하면 제목만으로도 낯 뜨거운 음란 광고물들로 게시판이 온통 도배가 되어버린다. 주인 모르게 침입하여 나 몰라라 자리를 잡아버리는 아주 고약한 놈들로 도저히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다 어려운 걸음을 하신 분들께 큰 실례를 하게 될 일이다.

나는 제대로 농사를 지어보지 못해서인지 잡초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땅에게는 잡초가 있을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잡초라 하는 것이지 그게 만일 어느 땐가 요긴하게 소용되면 특별재배라도 해야 될 테고 잡초란 이름 대신 분명 어울리는 좋은 이름을 붙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가 잡초라 부르는 것들만으로 아름다운 꽃동산을 만든 이도 보았다. 그러나 이침이고 저녁이고 틈만 나면 들어가 없애야하는 내 문학의 방 온갖 광고물들은 정말 미운 잡초라 조금의 동정도 주고 싶지 않다.

우리네 논에 흔하던 물피. 물달개비. 쇠털골. 밭뚝외풀 .방동사니. 바람하늘지기. 마디꽃, 그런가 하면 밭에 성하던 바랭이. 뚝새풀. 돌피. 강아지풀. 쇠비름. 반하. 갈퀴덩굴. 명아주 등은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이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잡초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름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쓸모없다 해서 무심히 넘겨서 그렇지 조금만 정을 담고 눈여겨보면 그 아름다움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언젠가 미시령 휴게소 뒷산 능선을 오른 적이 있다. 그곳에 피어있던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들을 누가 잡초라 하랴. 그러나 그들이 우리들 밭에 있다면 그걸 아름답다며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잡초가 산이나 들에 있다면 아무도 그들을 잡초라 하며 나무라지 않을 것이요 오히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자기 분위기에 따라 칭찬도 받고 시인이 라면 그 아름다움을 한껏 시로 노래하기도 하리라. 그런데 사람이 자기 영역에 특별히 무언가를 기르려 터 잡아놓은 곳에서 불청객이 피어오른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건 풀꽃이건 제자리서 제 할일을 할 때 아름답다고 하는 것 같다.

자기에게 맞는 자리, 아니 그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곧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잡초란 이름은 참으로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표현이요 그 한계를 명확히 정의하는 말인 것 같다.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면 바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제거 대상이 된다. 지나침과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듯 자기 자리가 아니면 앉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잡초로부터 배운다.

 

전에 꽃씨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화분에 직접 심었는데 싹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아주 작은 싹이 하나 올라왔다. 한데 조금 자라고 보니 그건 잡초였다. 꽃씨는 안 나고 섞여있던 잡초 씨만 발아했던 것이다. 그러나 뽑아버리지 않고 두었더니 거기서도 꽃이 피었다. 나는 잡초로가 아니라 화초로 자라게 해 주었다. 이름도 모르지만 하얀 아주 작은 꽃을 오랫동안 피워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일까 잡초라면 끈질긴 생명력부터 연상 된다.

나는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농사일을 별로 해 보질 못했다. 중학교를 마치자 바로 서울로 올라와버린 때문도 있겠지만 약해서 다른 아이들처럼 억척스럽지도 못했고, 또 특별히 그런 일을 해야 할 기회도 별로 없었다. 고작 아이들과 함께 땔나무를 하러 가거나 학교에서 숙제로 내준 퇴비감을 준비하는 정도였지만 그나마도 시원스레 해내지 못해 그 또한 늘 남의 도움을 받기 일수였다.

그런데 팔자에 없는 잡초 뽑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사이트에 큰 문제가 생겨 거금을 들여 게시판 13개를 몽땅 바꾼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이러니 아무래도 다시 기술자의 신세를 져야 할 모양이다. 어릴 때도 땔나무나 퇴비 숙제조차 남의 도움을 받아 하곤 했는데 지금에도 그래야 할 모양이다.

문득 게으른 농사꾼네 밭에 잡초가 무성하다는 말이 생각나 또 한번 나를 부끄럽게 한다. 결국 내가 능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속이 상한다고 해서 하루만 걸러도 다음 날에 몇 배로 더 힘이 드는 작업을 해야만 할 테니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이다.

입장을 바꿔서도 생각을 해 본다. 저들은 이렇게라도 해야 살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저들의 생존 방법일까? 그렇다면 내가 너무 심한 것일까? 하지만 둘이 함께 살 수는 없잖은가. 그게 운명 아닌가. 그런데도 삶의 현장은 여전히 잡초와 곡식의 함께 삶터이다. 곡식에겐 잘 자라게 조건을 만들어주고 잡초는 제거를 기본으로 한다. 그래도 모두 없애지는 못하니 결국은 공존하는 셈이 된다.

다시 컴퓨터를 켠다. 잡초 뽑기를 해야 한다. 그나마 손을 안 대고 놔두고 있으면 필시 저들은 대단히 힘 있는 존재들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저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저희들 일을 하고 말리라. 그렇다면 그것이 지는 것이든 그냥 포용하는 것이든 차라리 저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도모하는 것이 좋을까. 세상이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의 공존의 장임을 어쩌랴.

계간수필》2004.4. 

 

 

 

최원현 nulsaem@hanmail.net

《한국수필》에 수필 《조선문학》으로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 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문학에게 길을 묻다》등 13권이 있으며, 중학교 교과서《국어1》《도덕2》및 여러 교재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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