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시간 / 정목일 골목길에서 화가 o 교수를 만났다. “이 골목에 화실이 있으니 잠시 들렀다 가시라.”고 이끌어 작업실에 갔다. 벽에는 최근작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코스모스’ ‘민들레’ ‘풀꽃’ 등을 그린 그림들이었다. “꽃밭에 사시는군요.” O 교수는 환히 웃으며 “평생 꽃만 그려도 행복하다.”고 한다. 대학에서 은퇴한 지도 오래 되었건만 평생 ‘꽃’을 그리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자기만의 개성과 주제를 갖지 않고 누구나 좋아하는 꽃을 소재로 삼고 있음이 알 수 없었다. 화가로서의 개성, 탐구, 개척이 보이는 독창력은 없고 ‘꽃 타령’에 빠져 있는 듯했다. 안일하고 한가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은 누구나 좋아하는 소재이어서 평범하며 새로움을 얻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o교수는 어째서 평생 동안 꽃에만 빠져 있는가. 다른 사물과 소재에서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들지 않는가. 답답함을 말하려는 순간, 사군자가 떠올랐다. 평생 동안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만을 그렸던 조선시대 화가들도 있지 않았던가. 사군자 중에도 오로지 한 소재만을 탐닉하고 몰두하여 명인으로 떠오르는 화가도 있다. 사군자 그리기에 대하여 케케묵은 소재와 정신세계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새로운 세계의 창조가 예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지만, 전통예술도 지속돼야 할 일이 아닌가. o교수의 꽃그림 속으로 들어가 본다. 코스모스 꽃이 활짝 피어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꽃의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다사로운 가을 햇살이 온 몸과 마음에 닿아온다. 꽃은 이제 완성에 이르렀다. 가을 햇살과 바람의 말이 들려온다. 꽃은 절정의 순간을 맞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일생과 마음을 활짝 피워 놓았다. 꽃은 드디어 눈부신 햇살 속에 깨달음에 이르고 있다. 꽃은 절정 속에 낙하의 시간이 당도했음을 짐작하고 있다. 바야흐로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는다는 걸 알고 있다. 꽃은 절정을 말하지만, 땅에 떨어질 운명의 시간이 당도했음을 안다. 꽃자리는 최상, 최고의 자리이지만 한 순간에 불과하다. 꽃 피우기는 일생의 완성이지만, 꽃자리에서 곧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송이 꽃을 피우는 일이 소망이었다. 천둥과 태풍, 어둠과 추위를 견뎌서 비로소 한 송이의 꽃을 피워내지만, 꽃의 시간은 길지 않다. 꽃의 시간은 깨달음의 시간이다. 나팔꽃은 ‘하루’가 아닌 ‘아침’이란 말만을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존재의 의미와 깨달음의 꽃을 활짝 피워내고 있다.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나팔꽃은 벌써 절정에 서서 깨달음의 나팔소리를 울리고 있다. 아침 서기를 받고 집중력을 기울여 삶의 극치를 보여준다. 삶이란, 지금 이 순간의 자각과 깨달음으로 피워내야 하는 한 송이의 꽃임을 알려 준다. 나팔꽃은 내일에 기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모습과 완성을 꽃피워낸다. 꽃을 보는 일은 황홀하지만, 벼랑 끝에 서있음을 느낀다. 아슬아슬하고 현기증이 난다. 나의 꽃 시간은 언제였던가. 하루씩의 시간 파도 위에 서서, ‘오늘의 삶’이란 생명의 꽃을 바라본다. 꽃은 잠시 피었다 지는 것일지라도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일생의 흔적과 의미를 아로새겨 놓아야 한다.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와 수로부인 일행은 화창한 봄날, 동해안 절경을 지나치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높이가 천 길이고 위에 척촉화(철쭉)가 만개해 있었다. 수로부인은 아스라이 절벽 위에 피어있는 척촉화에 마음을 빼앗겨 무심결에 말하였다. “누가 저 꽃을 꺾어서 바치겠는가?” 일행들은 천길 높이 벼랑 위에 피어 있는 척촉화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때 마침 소를 끌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나섰다. 소고삐를 놓고 천 길 절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천 길 단애를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한 걸음씩 올라가고 있었다. 한 걸음씩 절벽 위로 오를 때마다, 꽃과 손의 거리가 차츰 좁혀져 갔다. 구경꾼들은 입을 벌리고 숨을 멈췄다. 노인은 생명을 걸고 최상, 최고의 꽃에 닿으려 하고 있었다. 노인은 마침내 아무도 꺾어 올 수 없었던 척촉화를 손에 들고, 절벽을 타고 내려와 수로부인에게 바쳤다. 푸른 바다와 절벽의 붉은 꽃, 절세의 미인과 노인은 이 순간 절정의 꽃이 되었다. 꽃의 시간 속으로 숨결을 돌리면서 나는 무슨 꽃이며 어떤 빛깔과 향기를 내고 있을까를 생각한다. 꽃송이들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꽃 시간은 언제인가?’ o교수가 평생 동안 꽃만을 그리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꽃은 일생의 절정이며 완성이지만, 비움의 시간에 임박해 있다. 꽃은 절벽 위에서 떨어질 듯 위태로운 순간 속에 있다. o교수는 평생 동안 ‘꽃’을 통해 일생의 정점과 완성을 바라보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인생이란 꽃을 피워놓지 못함을 느낀다. 그림 속의 수십 송이 코스모스 꽃들이 일제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활짝 핀 꽃을 바라보며 묻는다. 나는 삶의 꽃을 어떻게 피워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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