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세베리아를 보며/최원현 수상을 축하 한다며 보내온 화분 중에 산세베리아가 있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공기정화식물 중 정화능력이 가장 뛰어난 식물이라고 발표 되었다는 선인장 계열의 식물이다. 음이온을 다른 식물보다 30배 이상 발생 시키며 새 집에서 방출하는 포름알데히드란 발암물질도 정화해 낸다 한다. 무엇보다 병충해가 거의 없고 신경을 많이 안 써도 잘 자라는 환경 정화식물이라고 보내온 것이다. 그런데 한달여가 지난 어느 날 보니 두 개의 줄기 끝이 뒤로 벌렁 나자빠져 있다. ‘아니, 그냥 놔 둬도 잘 자란다고 하더니 왜 이렇게 쉽게 썩어버리나.’ 놀라움과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안고 인터넷에서 산세베리아를 검색해 봤다. 비로소 알 것 같았다. 3주 내지 한 달 만에나 물을 줘야 하는데 난과 마찬가지로 1주일에 한 번씩 물을 준 데다 햇볕을 좋아하는 식물인데 햇볕을 피해 놓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지.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어도 잘 자라는 식물이 어디 있겠는가. 손이 좀 덜 간다 할 뿐이지 적당히 바람도 햇볕도 쏘이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때맞춰 물도 줘야 제대로 살 것 아닌가. 물을 가끔씩 주어야 하는데 자주 주어 죽이는 것 역시 관리를 잘 못 한 것 아니던가. 식물을 보면서 가끔씩 나는 흠칫 놀라곤 한다.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와 나, 네 식구 또한 가정이란 탁자 위에 올려져 자라는 네 개의 화분이 아닐까. 제각기 성향이 달라 더러는 키가 크고 잎이 넓게, 혹은 키는 작지만 꽃은 탐스럽게, 그렇게 저마다의 특성대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꽃들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들녀석은 물을 잘 안 먹는다. 그래선지 키만 껀정할 뿐 몸은 호리호리 하다. 그런가 하면 딸아이는 얼굴은 나 닮아 작은 편인데 약간 통통해 보이는 편이다. 아내는 키가 조금 작다보니 보통 몸이건만 조금 뚱해 보인다. 나는 호리호리 하다 못 해 가냘퍼 보이던 체형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갑자기 몸이 불기 시작 하더니 꿈에도 그려하던(?) 몸무게를 훌쩍 넘어서서 이젠 걱정거리 1호로 과중량을 지니게 되었다. 두 아이와 나는 눈물이 많다. 작은 일에도 금방 눈물이 나와 버린다. 마음이 여려서인지 아니면 감정이 넘쳐서인지 모르지만 때로 그게 영 신경 쓰일 때가 있다. 하찮은 일인데도 금방 눈물이 맺히는 것을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만이 아니라 두 아이가 다 그렇다. 그런가 하면 두 아이 모두 나처럼 멀리서 보면 걸어갈 때 약간 등이 구부정해 보인다. 그건 내 아버지께서도 그러셨단다. 어렸을 적엔 어른들로부터 곧잘 그 얘길 듣곤 했었다. ‘네 아비가 그랬느니라. 저만큼서 오거나 저만치 앞에 가도 금방 알아보았느니라’ 참 모를 일이다. 그런 것까지도 유전이 되는가. 그래 나는 곧잘 할머니로부터 허리를 곧추 펴고 걸으라는 당부를 많이 들었었다. 요즘은 신경을 안 써서 잘 모르겠지만 그땐 꽤 노력을 했는데도 그런 구부정 버릇은 쉽게 고쳐지질 않았었다. 나는 지천명을 벌써 넘겼지만 아직 흰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염색을 잘 했느냐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머리카락 색 그대로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만도 하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아내는 혹여 내 머리에서 새치라도 하나 발견할라치면 뽑아주려 하는 게 아니라 무슨 큰 보배라도 되는 양 뽑지 못 하게 한다. 자기만 머리가 하얘지고 나만 검은 채로인 것이 불공평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거야 어찌 내 탓인가, 딱히 하려면 조상 탓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가족이란 뭔가, 부부는 서로 남남에서 이뤄지는 것이지만 그 부부로부터 태어난 자식들은 씨앗의 소산이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사랑하고 아끼고 나를 희생해서라도 지키고 보살펴 줘야 할 대상으로 인식을 한다. 그렇다고 어찌 그들이 거저 자라는 것이랴.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자식인 법, 부모 눈엔 늘 철부지한 아이로만 보이기 마련이다. 이젠 성인이 다 되었건만 그래도 밤 12시가 가까워도 들어오지 않으면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아내 역시 그렇다. 괜시리 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혹여 아내가 일하는 데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그렇고 보면 가족이란 함께 산다는 것이고, 함께 산다는 것은 곧 어떤 일이든 공유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아닐까. 산세베리아를 보면서 나를 많이 뉘우친다. 설혹 튼실히 뿌리를 내렸다 하더라도 햇볕과 물을 제대로 공급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사람 특히 가족도 그런 배려와 서로간의 보살핌이 없으면 공동의 목표인 행복에 이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부부가 함께 살다보면 오누이처럼 닮는다고 한다. 부모자식간에는 국화빵이니 붕어방인 할 만큼 빼다 박은 듯 닮은 모습이 많다. 식성도 버릇도 누가 가르쳐 주거나 하라고 한 것도 아니건만 똑같을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족은 더더욱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모른다. 어느 날 한 생명이 태어났는데 그게 내 모습을 판에 박은 듯 닮았다고 하자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일 것인가. 얼마 전의 장모님 전화가 생각난다. ‘복숭아나무에선 복숭아꽃이 피고, 살구나무에선 살구꽃이 피었더라’ 봄이 되면 꽃은 피기 마련이건만 어떻게 제가 복숭아나무인 줄 알고 복숭아꽃을 피우고, 살구나무인 줄 알고 살구꽃을 피우느냐는 말씀이었다. 이 위대한 자연의 섭리와 질서는 사람이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산세베리아를 바람과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 놓는다. 앞으로 3주간은 물을 주지 말라고 써 붙여 놓아야겠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에게도 아내에게도 미안한 게 너무 많다. 나의 무심이 저들의 가슴에 어떤 아픔을 심어놓았을까. 산세베리아의 잎을 닦아주는 내 손이 그만 부끄러움으로 떨리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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