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을 읽다 /김이랑   
                                                                    


  텅 빈 가게, 빛바랜 간판만이 여기가 한때 버림받은 책들의 처소였음을 알린다. 아무런 안내가 없는 것으로 보아 머지않아 지도에서 사라질 모양이다. 발품을 보태 법서를 사던 시절부터 허기를 채워준 곳인데, 허전한 걸음으로 나는 다른 보물섬을 찾아 떠난다.


  헌책방의 질서는 뒤죽박죽이다. 정해진 자리는 형식일 뿐 계급이나 서열이 없다. 펄벅의 대지 위에 한국의 야생화가 피고 백과사전에 눌린 시집이 숨을 못 쉬겠다고 엄살을 떠는가 하면, 돈키호테가 이순신 장군에게 창을 겨누며 어서 칼을 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큰스님의 어깨에 발을 척 걸친 동화를 보며 명랑만화가 깔깔거리고 명심보감이 옆에서 웃음을 꾹 참으며 앉아있다. 법전을 깔고 앉은 사형수의 참회록과 명작 위에 드러누워 낮잠을 즐기는 잡지는 단연 압권이다.


  설욕을 벼르는가, 예리한 지혜에 탄탄한 논리를 입고도 무명 한 조각만 걸친 화보에 패한 철학이 침묵하고 있다. 처세술만 찾는 세상에게 단단히 삐쳤는지, 인문학은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바깥에는 저고리에 지문조차 찍히지 못하고 소박맞은 시집과 나이조차 까맣게 잊은 수필집이 단체로 결박당한 채 마지막 봄 햇살을 쐬고 있다. 자릿값도 못한 죄, 저들은 곧 저울대에 올라 영혼이 가난한 세상에게 동전 몇 닢 건네고 떠날 것이다.


  한물간 몸이지만 세상에게 할 말은 있다. 책장에 빳빳이 서서 지적 허영의 배경이 되는 건 싫다. 방구석에서 뒹굴다가 냄비 밑에 깔려 뜨거운 맛을 보느니 싸늘한 아랫목을 데우는 불쏘시개가 낫다. 가난한 고시생의 법서처럼 몸이 닳도록 읽히고 싶다. 서점 창고에서도 밀려나 산골로 전학 온 소녀처럼 옷자락에 먼지가 묻을까 새침을 떨고 있는 새 책은 아직 모른다, 벌 나비에게 탐닉 당하지 못하고 스러지는 꽃의 슬픔을.


  앞만 보고 달리는 세상에 지나간 시간을 잡아두는 곳이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과거로 유폐幽閉되었을까. 성벽 같은 책장과 지층처럼 쌓여있는 책 속에 묻히면 나는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떠난 방랑자다. 역사의 강물에서 노를 젓다가 티벳에서 불어오는 명상의 바람에 마음을 실어도 본다. 눈에 띄는 책장을 훑다가 잘 우려낸 문향文香에 취해 언어의 소우주를 유영하기도 한다. 이곳저곳 뒤지다가 반짝이는 무엇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은 방금 제본을 마친 신간보다 새것이다.


  활자로 낸 길을 가다보면 누군가의 흔적을 만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가 있는가 하면 잠시 멈추었다가 가라는 신호도 있다. 앞서 간 사람은 어째서 밑줄을 주욱 긋고 그 위에다 빨간 별을 켜놓았을까. 마음의 풍경風磬이 울리는 바람의 길목이거나, 반짝이는 깨달음 한 조각 주운 곳이거나, 아니면 문장 너머에 있는 함수를 풀지 못해 건너뛴 자리일 것이다. 나보다 먼저 떠난 사람이 몇 번이고 되돌아와 서성거린 자리에서 나는 이 땅에 온 영혼들의 지적방랑을 읽는다.


  존재의 의미를 찾아 형이상을 헤매는 철학자. 태초에 생성된 미립자를 찾아 까마득한 밤하늘을 떠도는 천체물리학자, 진화의 고리를 찾아 황량한 사막을 헤치는 생물학자. 문명의 사금파리를 찾아 굳은 땅을 파는 고고학자, 혼돈에서 진리의 조각을 찾는 방랑자는 외롭다. 아니, 깨달음을 찾아 홀연히 떠난 붓다만큼 고독해야 한다. 과거로 떠난 것들이 퇴적된 세계는 두꺼운 침묵으로 말을 하기에.


  배낭을 메고 홀로 변산반도로 떠난 적이 있다. 이 땅의 숨은 연대기가 차곡차곡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채석강彩石江, 지층을 몇 장 넘기면 백제의 병졸이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지르고, 몇 권 넘기면 털북숭이 조상이 사전에 없는 말을 걸어오고, 계속 넘기면 거대한 공룡이 달려들 것 같은 풍경은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발아래에서 파도가 뭐라고 철썩거리는데, 두꺼운 시간의 지층 앞에서 나는 한없이 납작해지고 말았으니, 반세기 동안 써내려온 내 일기는 낱장에 지나지 않음을 그날에야 알았다.


  나를 읽으면, 목마른 세상을 적시는 물 한 잔이나 될까. 영혼의 때를 닦는 한 소절 시도 아니고 내면의 풍경소리를 깨우는 한줄기 법문法文은 더욱 아니다. 사람의 향기가 그리운 가슴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산문이라면 자릿값이라도 하겠으나 통속소설처럼 자기도취에 빠져 나열한 활자, 내 전기傳記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서 웅크리다가 폐기될지 모른다. 미리 알았다면 기승전결이라도 갖추었을 것을, 더 성찰하고 교정했다면 문장이 얄팍하지는 않았을 것을, 헌책방에는 지난 삶을 뒤져 나를 재발견하는 내가 있다.


  내 삶도 반 이상이 과거로 퇴적되었다. 인생 이모작을 꿈꾸며 몸값을 한껏 낮추어도 불러주는 곳이 없어 이제는 정착할 기슭을 찾고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 시인지 소설인지 정체성을 찾는 잡지처럼 표류하다가 외딴 헌책방에 닿았을 때 산란한 마음이 정돈되는 까닭은 왜일까. 내일을 위해 오늘을 알뜰하게 살지만 내일은 오늘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낡고 닳아 쓸모없이 보여도 어제는 오늘에게 추억과 지혜 그리고 마음의 휴식을 준다. 어제의 모든 것이 한 자로 정돈되는 헌책방에서 헌, 그것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미학을 품은 단음절 언어이기 때문이리라.


  고독한 방랑자들이 찾아낸 지식과 사상의 채석강, 헌책방에서 알았다, 반짝이는 것은 현란한 조명 아래 나 보란 듯 서있는 게 아니라 삶의 뒷면에 안 보일 듯 숨어있음을.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그동안 못다 읽은 책장을 넘기다가 찾았다, 뒤죽박죽 내 안의 우주에 질서를 잡는 것은 두껍고 근엄한 법전이나 얇고 약삭빠른 처세술이 아니라 허름하고 컴컴한 구석에서 스스로 캐낸 별임을.


  책은 해져도 활자에 담긴 의미는 낡지 않는다. 시대의 조류에 쓸려 헌책방이 사라져도 어느 날 문득 우리는 길을 떠날 것이다, 지금은 금맥을 찾아 도시라는 이름의 정글을 뒤지지만, 멍석자리에 누워 별을 헤던 우리는 누구나 별똥별 주우러 산 너머로 떠난 지적 방랑자이므로.


 


 


김이랑(본명:김동수)


 


- 1960년 태백에서 출생해 정선에서 성장


- 영남대 법대 중퇴


- 제1회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 대상


- 제1회, 4회 경북문화체험 수필대전 은상


- 2012 낙동강전투 스토리텔링 우수상


- 2013 전국유배문학 스토리텔링 동상


- 인터넷 한겨레 논객


 


<수상소감>


 


 풀밭에 개미들이 왁자하다. 산 너머 먹구름이 밀려오나 보다. 여윈잠 뒤란 이슥토록 풀벌레가 칭얼거렸다. 내 이랑에 씨알 하나 움트나 보다. 마음이 가라는 길을 거역하다가 돌부리에 발 접질려 오금 찡그리기도 하는 보행의 나날, 번민이 끓는다면 그 내압은 차라리 풀빛이어라. 한바탕 소나기 두드린 강가, 열병 식힌 민들레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모락모락 몸을 말리고, 밤새 별빛 먹고 자란 꽃 한 송이 반짝반짝 세상에 바칠 터이니.


 


 세상에 글 한 송이 바쳤다고 하늘이 내리는 상을 받았다. 분에 넘친다는 걸 알기에 천강이라는 이름에 흠집을 내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재정을 지원한 의령군, 손을 잡아준 심사위원, 허드렛일을 맡은 의령문인, 여러 선생님께 감사한다. 이에 보답하고 또 이름값을 하려면 한동안 열병을 앓지 싶다.


 


 


-심사평-


 


「헌책방을 읽다」는 사람살이의 다양한 모습과 오늘의 현실을 두루 생각하게 하는, 인문적 성찰 능력이 돋보이는 글이다. ‘헌책방’을 통해 주변으로 밀려난 것들을 따라가는 이 글의 시선은 자본-현실의 지리(地理)뿐만 아니라 생의 보편적 내력까지 생각하게 한다. 헌책에서 먼저 읽은 이의 흔적과 마음을 헤아리는 섬세함, 헌책방의 풍경을 유머러스하게 형상화하는 능력은 서로 겯고 트면서 이 글을 맛과 영양을 두루 갖춘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돌올한 개성과 구체적 실감을 모두 갖춘, 좋은 글이다.


 


 
 

봄, 수목원은 만연체다. 온갖 나무와 풀들이 저마다 화려한 문장을 쓰느라 술렁거린다. 노랗고 빨갛고 흰 색깔들이 나의 독서를 유혹한다. 나는 청명의 안개 속을 걸어 만화방창 꽃의 문장 속으로 들어간다. 병아리 깃털 같은 햇살이 민들레처럼 피어나는 낮 시간도 좋고, 청자 빛 하늘이 노을로 채색되는 저녁 무렵도 좋지만 나는 푸르스름한 이내가 깔린 여명의 수목원을 좋아한다.

 

제비꽃, 족두리풀, 목련, 명자꽃들이 새 명찰을 달고 제 이름을 불러달라는 듯 손을 흔들고 서있다. 문고판 같은 야생화며 전집류의 나무들이 수목원도서관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이 푸른 도서관의 사서는 잠시 출타중인 모양이다. 바람이 먼저 책을 읽으려는지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고 있다. 나는 서둘러 달려온 마음을 옆에 내려놓고 형형색색으로 단장된 신간들을 골라 읽는다. 사춘기 때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앉아 있던 생각이 나서 설핏 웃음이 난다. 깨알 같은 글씨들을 놓치지 않으려 쪼그려 앉았다 허리를 굽혔다 발뒤꿈치를 들었다하면 그 때마다 나무와 풀꽃들이 내 불편을 덜어주려 같이 쪼그려 앉았다 허리를 폈다 키를 낮추어준다.

 

제자백가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이만큼이나 할까. 초신성처럼 노란별을 마구 터트리는 생강나무, 자주색튀밥을 펑 튀기처럼 튀겨내는 박태기나무, 개 불알을 덜렁덜렁 매달고 있는 개불알꽃, 초롱모양의 귀걸이를 흔들고 있는 히어리. 나는 꽃과 나무가 전하는 휘황찬란한 문장에 주-욱, 밑줄을 긋는다. 문장들은 내 마음의 텃밭에 새겨진다. 꽃의 문장은 화려하지만 현학적이지 않고 형이상학적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무량한 깊이를 가진다.

 

꽃의 문장은 넉 장이다가 다섯 장이다가 홑받침이다가 더러는 겹받침이다가 변화무쌍하다. 꽃들의 배색은 어떤 단청보다 곱고 정겹다. 어느 채색가나 디자이너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독창적이다. 현호색은 보라의 농담(濃淡)이 아름답고 꿩의 바람꽃은 흰색과 노랑의 어우러짐이 다정하고, 깽깽이풀은 금방이라도 여우울음소리를 낼 것 같다. 꽃을 꺼내는 줄기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꽃받침과 꽃잎의 황금비율의 기울기 등은 인위적인 힘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없는 천연의 아름다움이다.

 

야생화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동물원처럼 야생의 식물을 가두어둔 것에 대해 내심 못마땅해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렇게나마 꽃을 가까이 두고서야 각박한 현실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꽃을 바라볼 때의 마음엔 악이 없다. 사람들은 꽃을 보는 순간 선해지고 샘물처럼 맑아지게 된다. 잠시 꽃을 바라보면서 세파에 찌든 자신을 정화시키는 것이다.

 

꽃들은 피어날 때를 알고 져야할 때를 제대로 지킨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한다. 명예와 부에 집착하지 않고 시들어 사라지는 것에 애달파하지 않으며 타자와 더불어 대동(大同)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가지면 더 가지려하고,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만을 고집하며 주변을 돌아보지 아니한다. 한낱 풀과 나무만도 못한 존재인 것이 사람이다. 그러니 꽃과 나무들은 우리를 가르치는 훌륭한 책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수목원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삶의 고비를 넘어오느라 받은 상처와 아픔들을 치유 받는 것이다. 추위와 강풍을 인내한 꽃들이 피워 올리는 환희의 시간들을 보면서 내 삶의 고단들도 어느 순간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나는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저 풀과 나무처럼 매순간마다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내가 나를 반성하는 때도 바로 이곳 수목원에서이다.

 

혹, 도연명의 도원기(桃園記)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여기가 아닐까? 나는 고기잡이가 되어 길을 잃고 여기 수목원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도 가도 온통 꽃으로 덮여있는 화원의 심연. 꽃잎은 푸른 잔디 위에 펄펄 눈처럼 날아 내리고 나는 그만 속세에서 실종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꽃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꽃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이제 꽃과 합일하여 한 몸이 된다.

 

다산(茶山)은 죽란시사(竹欄詩社)를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시를 나누었다고 한다. 조선조 책벌레인 이덕무는 책을 켜켜이 쌓아놓은 자신의 방을 소완정(素玩停)이라 불렀다. 풀벌레며 새들의 죽란시사에 귀를 귀울여본다. 꽃책으로 울타리를 삼은 이곳을 가만히 나의 소완정이라 불러보기도 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券氣)라 했다. 무릇 글씨에서는 향기가 있어야 하고 서책에서는 기(氣)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벌, 나비며 햇살과 바람, 사람까지 찾아들게 하는 꽃들이야말로 자연이 쓴 최고의 금석문이 아닐까?

 

어느새 해가 떠오른다. 꽃잎 끝에 매달려 있던 이슬 꽃들이 반짝 마지막 문장을 남기며 사라진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생을 살다가는 꽃. 생과 사를 한 몸에 담고 있는 저 촌철살인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 묘미 때문에 나는 여명의 수목원을 즐겨 찾아오는 것이다.

 

봄, 수목원은 싱그럽고 향기로운 도서관이다. 저마다 제 몸 속의 붓을 꺼내 혼신의 힘으로 일필휘지하는 꽃과 나무들. 나의 독서는 초록의 묵향에 흠뻑 물이 들었다. 나는 무슨 문장으로 이 봄을 기록할까? 수목원을 걸어 나오는, 오늘은 내 몸이 꽃이다.

 

 

 

 

제11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 겨울소리/문경희
붉은언덕추천 0조회 2521.11.10 17:1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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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소리
                                                                                                                       
                                                                                                                문경희                                                           
 사방 바람의 우범지대다홀로로는 결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는 부조리에 맞서듯 바람은 닿아지는 모든 것들을 다그쳐 소리를 만들어낸다소리를 앞세워 자신을 과시하고소리를 채찍 삼아 세상을 평정하려 든다.
 뒷산 능선을 넘어오는 북풍 역시 을씨년스러운 소리부터 앞세운다수척해진 나무들의 등짝에 냉냉冷冷한 문신을 새기고 있는지바람의 손이 스칠 때마다 구성없는 비명이 쏟아진다바람의 소리인지소리의 바람인지오늘 따라 집 뒤 굴참나무 숲정이는 귀곡산장이 따로 없다.  
 얼음장 같은 바람이 헤살을 놓는 날엔 무조건 퇴각을 외쳐야 한다바람에 항거하는 방법이란 고작 문이란 문을 꽁꽁 닫아걸고 보일러의 온도를 높이는 것뿐이다그러나 철옹성 같은 문도 소리의 출입까지는 막을 수 없나니휘잉바람이 흩뿌린 소리의 단검이 귓전으로 싸늘하게 내리꽂힌다잔뜩 벼려진 위세를 코앞에다 부려놓는 친절한 바람 씨들이다.
 불시에 허를 찔린 듯팔다리가 욱신거린다구멍이란 구멍으로는 냉기가 들이친다어깨를 추스르고 허리를 곧추 세워보지만먹은 것마저 명치끝에 묵직하게 얹히고 만다하여문 안의 무풍지대에 소심하게 움츠린 채 빼꼼 문 밖을 정탐하는 일로 시간을 뭉갠다곰처럼 챙겨 입고도 소리의 피난처를 찾아 귀를 펄럭이는 몰골이라니.  
 바야흐로 소멸의 계절겨울이다산도들도나무도 거머쥔 것들을 발밑으로 내려놓는다세상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월동이라는 가풀막을 넘지 못한 자에게 봄은 없다한 점 토르소처럼손발을 내어주더라도 숨줄만은 거머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 겨울에 임하는 그들의 생존법이다.  
 봄을 위한 전초일 뿐이라고 아무리 긍정의 주문을 걸어도뼈만 남은 풍경이 송곳처럼 마음을 후비고 든다남편은 귀촌 후 맞는 첫 겨울의 소회를 콧날이 시큰해질 정도의 스산함이라 한다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때때로 가슴 밑바닥을 할퀴고 가는 얄궂은 심사는 눈이 아니라 귀가 초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투둑귀로 들어와 몸과 마음을 죄 쓸쓸함으로 탈색해버리는 조락의 소리들 말이다언 땅을 딛고 선 나무처럼악착 같이 봄의 약속을 되새기는 것만이 겨울과겨울의 소리에 무너지지 않는 자구책이랄까.      
  팔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에게도 문 밖은 오로지 위험한 곳일지니느지막이 아침상을 물린 어머니께서 주섬주섬 리모컨을 챙겨든다작년 겨울감기 때문에 한 달여를 고생한 전적이 있어서인지 선뜻 바깥을 엄두내지 않으신다덕분에 연일 죄 없는 TV만 등짝이 뜨끈해지도록 고군분투를 한다.
 화면이 열리자 아침드라마를 예고하는 자막이 뜬다어정뜬 나이로 치매에 걸려 버린 아버지와그런 가장을 향한 애틋한 가족애를 그려내는 드라마다어제는 그간 숨겨오던 아버지의 와병 사실이 들통나면서 끝났으니 오늘은 분명 집안이 발칵 뒤집히는 장면으로 시작을 할 것이다.


 “저기 참 더러븐 병이라저거한테는 안 붙들리고 가야될 낀데….
 드라마를 볼 때마다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지만 인생의 겨울에 발목을 적시고 계신 어머니가 아닌가이미 노하고 쇠함의 비명으로 오라를 지고 사시는 처지니 무엇엔들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마당을 장악한 고추바람처럼세월도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소리를 동원한다당신의 계절에도 삭풍이 부는 건지다섯 자식의 발원지인 어머니의 몸에서는 최근 들어 겨울의 소리가 잦아졌다앉고 일어설 때마다 ‘끙’‘아이쿠’의 신음을 지팡이처럼 짚으신다육신의 마디마디에 소리의 집이 들앉은 듯소리로 눕고소리로 뒤척이신다낡고 초라해졌으나마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느슨해지는 순간꽁꽁 단속을 해둔 소리들이 활개를 치는가 보았다흡사 소멸의 예고장 같다는 방정맞은 생각 때문일까의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터져 나오는 어머니의 소리에 머리끝이 주뼛 일어서는 때가 많다.  
 하긴당신이 온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 게다제 속을 깡그리 내어준 무광처럼거죽만 남아 흐느적거리는 것이 어머니의 신체지수인지도 모른다이건 이리해라저건 저리해라종종 이순 문턱의 나를 진두지휘하시는 모습을 보면 느슨해지다가도 기침처럼 툭툭 당신을 불거져 나오는 소리는 긴장의 끈을 바투 쥐게 만든다몇 마디 담소를 나누다가 감쪽같이 단잠에 빠지거나주무시겠거니 TV 음량을 낮추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시시콜콜 드라마를 생중계하시는 천연덕스러움에 가슴 한쪽이 무지근해진다.  
 한때는 카랑카랑 목청을 세우며 우리를 잡도리 하던 당신이다아들 하나에 딸 넷고만고만한 자식들은 단 하루도 고요히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뺏고 뺏기고울고불고육탄전까지 불사하는 천방지축 우리들을 단숨에 진압한 것은 어머니였다‘버럭’ 전법이 통하지 않으면 시커먼 부지깽이가 춤을 추고빗자루가 일순 몽둥이로 용도 변경되기도 했다자식들을 오금박던 쓴소리의 진원지는 늘 어머니였으니그저 허허실실따끔한 말의 회초리 한 번 들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 악역을 자처하셨던 셈이다.
 악역에 흔쾌한 이가 있으랴그러나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악역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한다저마다의 고집으로 제 목소리만 낼 줄 아는 자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데시벨도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쯤 어머니의 소리에서 해방되었을까몇 번인가 당신을 향해 앙칼진 소리로 대거리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불편한 심사를 있는 대로 표출하며 고집스레 방문을 걸어 잠갔던 적도 없지 않다돌아보면고함도회초리도 먹혀들지 않는 자식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기세등등하던 소리의 지휘봉을 내려놓도록 만들었지 싶다이제 와서 사무치게 그리워질 줄은 생각지도 못한 채.


 재작년 봄아버지가 세상을 뜨시고 나자 어머니는 소리 없는 여인이 되었다더러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생긴다한들 따따부따할 의욕이 없으신가 보았다뜬금없는 입의 파업으로 포식자를 잃어버린 소리들이 노쇠한 육신을 공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저토록 사사건건 당신의 행보를 간섭하고 드는 걸 보면.    
 어머니의 겨울을 겨울보다 더 황량하게 만드는 소리들다섯 자식에 이어저 난만한 소리마저 헐렁해진 노구에 공명을 일으키고 있으니 어찌 분답지 않으랴이따금 전설이 되어버린 청춘의 한때를 추억으로 환기시키지만잔고가 바닥나버린 계좌처럼 남루해진 세월만 도드라질 뿐이다늙어가는 일이란 절로 고요해지는 것이 아니라홀로 감내하고 홀로 삭여야 하는 소리가 점점 많아지는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설거지를 하고 찻물을 올리는 사이 나지막이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소리의 출구가 열리는 모양이다아무리 세월의 옷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가려도 침묵만으로는 갈앉힐 수 없는 것들이 사방에 널렸을 터저렇게라도 응어리진 소리들을 배출하고 나면 남모르게 견뎌야 하는 당신의 몫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인지.
 존재와 소멸의 경계에 어머니의 소리가 있다시곗바늘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 한당신께 더 이상 청춘이 소생하는 봄은 없을 것이다머잖아 겨울이 물러가고 어머니께서 부재한 계절이 오면저 뚝뚝한 소리나마 얼마나 간절해질 것인가.
 달달한 커피타임을 뒤로 한 채삭정이 같은 육신이 뱉어내는 겨울소리에 귀를 맡긴다어머니의 소리를 구절구절 내 안으로 받아 적는다당신이 있어 내가 있었음을 설법하는 소리의 경전이다.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소감
문경희
  
지난 가을손톱보다 작은 나리꽃 씨를 묻었다느긋해져라씨보다 나를 향해 주문을 걸었다그 작은 씨앗에게 얼음장 같은 겨울을 짐 지워 놓고 매정하게 ‘빨리’를 다그칠 수는 없어서였다.
 더러는 감쪽같이 잊은 채이따금은 조바심으로 넘겨다보며 겨울을 지나 봄을 맞았다씨앗은 여전히 침묵을 해제하지 않았다아무리 느림보 걸음이라도 생명의 물꼬를 돌리고 있다는 언질 정도는 주는 것이 매너라고혼잣말을 주억거린 것도 여러 번이었다기다림에 지쳐갈 무렵물 마른 논바닥처럼 단단해진 땅으로 실금이 열리더니 탱자가시 같은 싹이 솟았다그리곤 생장의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어느덧 모종이 된 나리 앞에 쭈그린 채 당선 소식을 들었다제 색과 향과 자태로 세상에 서기 위해 멀고 지난한 시간을 다시 뚜벅거려야 할 나리처럼내게 글도 오랜 기다림으로 피워낸 꽃이었음을 생각한다글은 내게 인고의 뿌리를 튼실히 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쳤다글로 하여 지치지 않는 법을 배우고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하여희로애락이 혼재하는 오늘들 속에서도 나는 건재하다.
 잠시 봄꽃처럼 하르르 기뻐하리라그리고 상이 주는 무게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숙명의 시시포스처럼내 안의 묵정밭에 수없이 씨를 묻고 수없이 기다림을 바치는 것으로 과분한 영광을 갈음하려 한다이 땅을 지켜낸 붉은 죽음들께그리고 졸작에 후한 점수를 주신 선자選者들께 감사드린다.    
제12회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

□ 부    문 : 시, 시조, 소설, 아동문학(동시ㆍ동화), 수필
□ 응모자격 : 대한민국 국민(기성문인 포함)
□ 작품내용 : 미발표 순수창작 작품(주제는 자유)
□ 응모방법

 시 : 7편
 시조 : 7편
 소설 :
중편 1편 - 200자 원고지 200장 내외
단편 2편 - 200자 원고지 80장 내외
 아동문학
동시 : 7편
동화 : 3편, 단편
 수필 : 3편 - 200자 원고지 20장 내외

□ 접수기간 : 2022년 1월 1일부터 2022년 1월 31일까지(등기우편 접수)

□ 당선작 발표 : 2022년 3월 초(예정)
 □ 유의사항
 ✔ 응모작품 표지서식(서식 1)을 작성하여 1부 제출하고, 겉봉투에는 본인의 주소를 기재해서 응모할 것
 ✔ 모든 부문 응모작품은 PC워드프로세서로 작성 제출 가능하며, 작품에는 성명, 개인 인적사항 기재를 금함
 ✔ 접수한 원고는 반환하지 않으며, 신인 수상자는 기성문인으로 예우함.
 ✔ 의병과 의령에 관한 작품은 우대할 수 있으며, 작품의 수준이 시상권에  미치지 못할 때는 시상하지 아니할 수 있음.
 ✔ 인터넷을 포함 어떠한 매체에도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 작품이어야 하며 표절, 모방 또는 중복 응모하여 입상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입상이 취소되고 상금은 회수함.
 ✔ 대상 수상자는 동일 부문에 응모할 수 없음.
 ✔ 우편접수만 가능하고 겉봉투에“천강문학상 응모작품”이라고 표기하시기 바라며, 마감일 소인이 찍힌 응모작까지 유효함.
 ✔ 입상작에 대한 저작재산권(판권)은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와 본인에게 귀속됨.

□ 제출서류
 ✔ 응모신청서 1매(의령군청 홈페이지)
 ✔ 분야별 응모작품 각 1부

□ 보내실 곳
 ✔ (52152) 경남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중동리 467-2) 충익사관리사무소 (의령문인협회)
□ 문 의 처 : 의령군 문화관광과(☏ 055-570-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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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 러시아워/김희정
보니/강길수추천 0조회 4321.10.08 13:3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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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러시아워
                                                                                                                 
                                                                                                                 김희정
 
 작은 것이라도 매듭이 생긴 부분은 바늘귀에 걸린다. 풀어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 바늘이 담쟁이 이파리 윤곽선을 바삐 들락거린다. 왕복 주행 하던 실이 덜컥 멈춘다. 교통이 원활하다 싶었는데 어느 지점부터 실이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교차로의 교통 체증이다. 바늘이 작은데다 땀이 너무 촘촘했는지 좌회전하려던 실과 우회전하려던 실이 만나 엉켰다. 접촉 사고다. 결국 멀쩡한 앞 실까지 잘라 내고 바늘귀에 새 실을 넣는다. 감정에도 때로 풀리지 않는 미세한 엉킴이 생길 때가 있다. 좁은 면에 실을 채우는 데도 변수가 생겨 시비가 엇갈리니 몇 번 끊어진 실을 이어 바꾸고 바느질을 한다. 
 빨강색만 눈에 띄던 날들이 있었다. 빨강색을 보면 설레고 흥분되었다. 인터넷 검색 창에 빨강이라고 치다가 다시 레드라고 바꿔 쓴다. 빨강색을 가진 모든 물건들이 줄을 선다. 심장이 바쁘게 뛰었다. 어떤 날은 밤새도록 빨간색 물건을 뒤져 내가 사고 싶던 모든 빨강을 주문했다. 배달 된 물건을 열었을 때, 그 펄펄뛰는 빨강에 행복했다. 그렇게 우리 집은 온통 빨강색이었다.
 유난히 몸살이 자주 나던 날들이었다. 내 빨강 실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그렇게 소진된 에너지를 채우고 싶었던 건지, 빨강이라는 불덩이가 위로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내 호르몬의 빨강이 최고치에 이르러 하향 곡선을 육박 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정신과 육신이 모두 지쳐서 자주 화가 나던 날들이었다. 뭔가 수습되지 못한 것들로 숨이 막힌다고 해야 할까. 내 육신의 골든아워였다. 가두어 놓은 별난 성향과 열정들이 출구를 못 찾고 방황하느라 나갈 곳을 원했다. 아이들 기르느라 내 존재를 꺼내 볼 여유가 없었고, 애씀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에 지칠 때도 있었다. 무슨 맛인지 모르고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과 버무려져 내 이름을 쓸 일 없음이 힘들었던 듯하다. 누구의 아내와 엄마로 사는 것도 행복하겠지만, 내 존재를 톺아보던 집착이 더 컸겠지. 그땐 그랬다. 누적된 혼잡의 정도가 최고조에 달한 시간이었다. 존재의 러시아워였다. 아마 여러 색깔 실들이 제 차선을 잃고 서로 충돌했던 것 같다.
 붉음이 되어 가는 일, 내가 주인공이었던 시간들이 무대 밖으로 사라지고 남의 분장을 위해 팔레트를 붙잡고 다리 아프게 서 있던 일. 조명을 켜 들고 주인공을 비추는 일.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배경에서 뛰는 일. 마네킹을 장식하는 일. 쇼윈도를 지나가는 뒷모습이나 나무 1, 나무 2, 행인 3으로 잠깐 찍히는 일. 관객으로 앉아 무대를 구경하던 일. 주인공을 위해 엑스트라가 되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옛 건물 벽을 타고 담쟁이가 뻗어 가듯이, 세월은 천천히 담장을 넘으며 슬쩍 나의 색을 바꾸고 있었다. 담쟁이로 덮인 돌담에도 무늬는 있다. 덩굴에 덮여 보이지 않을 뿐이다. 담쟁이는 매듭을 만들며 키를 늘리지만 결코 엉키지 않는다. 아마 매듭 푸는 일에 서툴렀던 시간을, 색깔에 위로받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붉어진다는 것은, 시간이 윤색되는 과정이다. 붉음 이전에 지녔던 것들을 고사하는 일이고, 파랑으로 다시 복귀할 수 없는 일이다. 풋고추가 빨갛게 여무는 것도 그 시간만큼의 아침과 저녁이 흘렀기 때문이겠다. 퍼런 사과가 먹음직스런 빨강으로 익는 것도, 햇볕과 비바람이 사과나무를 만지고 지나쳐갔음이다. 봄이 달궈진 여름이 되는 일도 몇 달의 초록이 태양 아래 데워지고 있던 것이리라. 빨강을 끝에 지니고 사는 생명은 뜨겁다. 빨갛게, 벌겋게, 불그스름하게, 혹은 새빨갛게 시간을 들이고 애쓴다.
 더위도 곧 지겠지. 본질로 돌아가는 일. 낮이 지면 저녁이 된다. 산다는 건, 해가 지는 일이다. 산을 넘는 일이고 침윤된 하루를 벗고 내일 뜨는 해를 장만하는 일이리라. 편한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흙 묻은 구두도 벗지 않았다. 밖에서 들여온 바람의 감촉과 빛나던 햇빛과 저녁의 너른 품을 잊지 못했다. 쉬어야 할 시간임에도 본질에 들어서지 못했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깨어 있고, 남들이 깨는 시간에 잠드는 버릇으로 늘 게으르다. 밤을 새고 앉아 바늘귀 안으로 쑥 들어가지 못하고 빨강 입구를 서성인다.
 수시로 실이 엉킨다. 끊어질 때도 있고 가끔 바늘도 부러진다. 같은 장소에 몰리는 이유다. 겹침의 러시아워다. 혼잡한 도로는 빨강색이다. 산다는 것은 매일 러시아워의 교차로를 건너는 일인지 모르겠다. 빨강 실을 꿰어 담쟁이 이파리를 꿰맨다. 마지막 잎이 남았다. 바늘이 들쑥날쑥 줄기를 타고 기어오르지만 어차피 낙엽이 될 텐데. 다 마치려면 실이 모자랄 수도 있겠다. 담쟁이의 저무는 빨강은 어떤 단풍보다 붉고 아름다우니. 젊음은 뜨거운 빨강이 아니라 새파랗게 젊은 파랑색인 모양이다.
 
 
 
 
수필부문 대상 수상소감
김희정
  
  나는 늘 침묵에게 진다. 점령당한다. 미루고 싶었던 감정들도 털리고 만다. 한계다. 말이 많다. 너무 말이 많다. 글을 쓴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인지 모르겠다. 글이 곧 수다다. 수다를 떨지 않는 것, 오늘도 깨닫는 건 힘을 빼는 일이다. 힘이 들어간 건 전부 아마추어다. 수다를 떨지 않는 글을 짓는 일이다. 핍진하게 사람을 사귀는 것과도 비슷하다. 
 수필은 내 안의 허구다. 시일 때도 있고 소설일 때도 있으며 그림이기도 하고 음악이기도 해서 결국 어울려 수필이다. 나는 소망한다. 내가 쓰는 글이 수다가 아닌 정확하게 문학이기를, 수필이란 결국 모든 예술을 감당하는 최선의 문학이어야 한다. 나를 뛰쳐나간 생각과 말이, 글자들이 관념만 흥건한 언어의 얄팍한 유희가 아닌, 공감할 만 한 치열한 사유이기를. 사유가 내뱉는 입버릇이 똘똘한 문장이 되기를. 저무는 삶을 횡단하다 외로움에 치이고 고독을 피하려고 저지른 사고事故이기를. 사고를 수습하러 들른 치유이기를.
 제대로 쓰고 있는가? 혼자 하는 터득 없는 교술인가? 늘 위태하고 불안하다. 내 언어들은 시끄럽다. 주눅 들고 방황할 때 괜찮다고, 적당하다고, 더 잘하라고 쓰다듬어 주시니 뭉클하다. ‘천강’이라는 떨리는 먼 빛을 받아 만져 보니 무겁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다.
 “의령, 천강, 이 멋진 나라에 와보고 싶었습니다. 의령군과 의령 문학에 감사드립니다. 잔치를 열어 주시고 가장 좋은 자리에 앉혀서 넘치는 상을 차려 주셔서 낯설도록 기쁩니다. 귀하게 대접 해주시고 심사 해주신 교수님과 선생님들께 삼가 감사를 올립니다”
 
►김희정
  1965 서울 출생
  2014 계간『문예춘추』등단
 
 
냇내, 그리움을 품다
(제9회 천강문학상 수필 대상) 

허정진


냄새는 그리움이다.

문득 아니면 울컥, 그때 그 어느 날의 흔적과 시간을 찾아 영혼의 빗장을 푸는 알레고리이다. 갓 볶아낸 커피 향기, 담장너머 청국장 냄새, 새로 갈아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 그 목도리에서 그 사람의 언어와 체온과 숨결이 느껴지는 체취, 꽃그늘을 지나다 흠칫 돌아보는 향수 내음. 가슴이 먹먹한 날, 무심코 잊고 살아왔던 먼 기억들이 일상을 툭 치고 갑자기 밀려오는 그리운 냄새들이 있다.
인간은 아주 다양한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커피나 꽃들이 가진 특유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눈을 감고도 그 사람의 땀과 체취만으로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 후각수용체 신경은 특정 냄새에 대해 한 가지 세포만 존재하기 때문에 수많은 냄새에 대한 정밀한 뇌 지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식욕을 느끼거나, 좋다거나 불쾌하다거나, 위험을 감지하거나, 모든 생물체에 있어 후각은 먹이를 찾을 때 혹은 포식자를 피할 때 그리고 짝을 정할 때 등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적한 시골마을로 이사를 했다.
아직도 드문드문 고즈넉한 옛 풍경의 모서리들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무채색 계절에 홀로 반짝이는 샛노란 모과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숨구멍이 열리고 새콤한 향기를 토해낸다. 겨울로 들어서면서 해가 노루 꼬리만큼이나 짧아져 퇴근 무렵이면 벌써 주위가 어둑신하다. 어둠이 깔려 사방에 적막이 깃들면 산동네 공기는 금방 싸늘해진다.
동네어귀에 차를 주차하고 고샅길로 들어서면 어디서 따라오는지 매캐한 연기냄새가 코를 알싸하게 만든다. 고문서를 거풍하듯 잘 마른 장작 타는 냇내다. 보일러 시설뿐인 내 집에서 나는 냄새일리는 없고 아마도 옆집 누군가 군불을 지피는 모양이다. 모닥불처럼 냄새가 따뜻하다. 도시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낯선 상황에 내 볼일이 아니라는 듯 애써 외면하지만 그것쯤 아랑곳없이 발걸음마다 곰삭은 기억들이 밟혀온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선다. 혼자 사는 집에 반기는 불빛 하나 없는 대신 옆집의 연기냄새가 무단 침입해 자기영역 표시하는 짐승들처럼 만연체로 차지하고 있다. 별빛 총총한 밤의 청취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장작 냇내와 어우러져 달밤의 정감을 한껏 부추긴다. 귀 기울이면 어느 LP판 턴테이블에서 야상곡 멜로디가 댓잎 사이로 은은하게 흘러나올 것 같다. 지그프리트 바르헤트의 감미롭고 부드러운 첼로와 섬세하고 잔잔한 피아노 반주는 어떨까. 아궁이 앞에 군불을 지피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연주자의 그림자처럼 불현듯 눈앞에 그려진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른다. 시커먼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세찬 불길이 성난 황소 뿔처럼 울끈불끈하다. 탁, 탁, 탁, 장작 타는 소리. 불땀 좋은 마른 장작들이 죽비 터는 소리를 내며 나이테마다 옹이진 경전을 읽어내고 있다. 몸에 흰 연기를 칭칭 감고 방고래를 향해 기세 좋게 타들어가는 불길이 마치 젊은 시절 열정과 욕망으로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가던 날들을 보는 것 같다.
기운차게 타오르던 장작불이 어느 정도 사위어들면 부지깽이를 뒤적거리며 멍하니 불꽃을 바라본다. 삶의 아픔과 시름도 순간 잊어버리고 무념무상에 빠져들 것 같은 궁극의 순간이다. 이글거리는 황금빛 불꽃이 고흐의 인상주의 그림처럼 사뭇 몽환적이다. 빨갛게 불덩어리를 안은 장작개비 사이로 자기도 모르게 삶의 미련과 후회의 탄식을 내뱉기도 하고 까닭을 알 수없는 연민과 그리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등짝은 바깥 찬바람에 서늘한데 불꽃을 맞댄 얼굴은 매운 고추라도 삼킨 듯 화끈거린다.
군불 때는 일이 쉽지는 않다. 요령을 제대로 터득하려면 눈물깨나 흘려야 한다. 나무마다 특성을 잘 알아야 하고 바짝 마른 가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매운 연기가 꾸역꾸역 밀려나오기도 한다. 불을 빨리 키워볼 욕심에 한꺼번에 장작을 많이 밀어 넣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바람과 불길이 잘 들도록 숨구멍을 틔어 놓는 공간이 없었기에 오히려 따뜻한 불씨가 죽고만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공들이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 지나고 보면 이해와 관용, 배려와 여유가 늘 아쉬웠다.
저 불길이 온 방안의 구들장을 뜨끈하게 데울 것이다. 바깥은 세찬 눈보라가 몰아쳐도 뜨거운 제 몸의 온기를 지닌 구들방은 밤새 식구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날은 저녁 무렵부터 내리던 함박눈이 밤늦도록 소복이 쌓여가고 있었다. 긴 겨울밤을 톡톡 분지르며 바느질을 하고 있던 어머니는 이불을 걷어차며 단잠에 빠진 어린 자식들을 다독거리기도 하고 문풍지가 떨릴 때마다 아랫목에 앙구어놓은 밥주발에 걱정스레 눈길을 주곤 하였다. 엄동설한도 꾸벅대는 길고 긴 겨울밤, 아마도 달팽이 같은 시간을 아껴먹던 평온 같은 것이 아니었나싶다. 일터에서 밤늦게 귀가한 아버지는 고흐의 자화상처럼 동여맨 목도리에 새파랗게 얼어붙은 노동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런 날은 어린 눈에도 아버지란 존재를, 누군가의 어깨가 된다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해본 것 같다. 굳은 손을 부비며 아랫목 구들장에 추위를 녹이는 아버지의 등 그림자를 보면서 비로소 오늘밤에도 가계도 하나가 완성된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날은 왠지 늦잠을 자고 싶었다. 뒹굴뒹굴, 혼자 뒤늦게 눈을 뜨면 창호지에 비치는 아침 햇살은 한없이 따사로웠고 군불 땐 방 안은 마치 누군가의 품에 꼭 안기어 숨이 막히도록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자폐증에 빠진 겨울이다.
올해는 유달리 춥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사는 외로움이 가중된 모양이다. 저 옆집의 연기냄새는 누구를 위해 군불을 지피고 있는 것일까. 가족이거나, 모처럼 찾아온 손님을 위해서거나, 아니면 풍찬노숙 같은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자신을 위해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아궁이로 달려가 불을 지피는 그 모습은 아버지일수도, 오래된 친구일수도, 아니면 효심 많은 자식일수도 있다. 저녁안개처럼 온 동네에 내려앉은 냇내가 ‘관계’에 대한 목마름처럼 아득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군불을 지핀 적이 있을까. 한 사람의 가슴이라도 제대로 따뜻하게 데워본 적이 있었을까. 따뜻한 온돌도, 화로도, 연탄불도 되지 못해 아직도 내 구들장은 냉돌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덜 마른 나무로 방을 데우겠다고 불쏘시개만 아궁이에 쉴 새 없이 넣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은 꾸역꾸역 역류하는 매캐한 검은 연기처럼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고맙다며, 미안하다며, 감사하다며 왜 진작 말하지 못했을까. 이해관계 없이, 희생하고 있다는 군소리 없이 열의와 정성을 다해본 적이 있었던가. 내게 좋은 것, 편한 것, 필요한 것에만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숨겨진 삶의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외면했던 것은 아닌가. 나의 안녕과 평안만을 바라며 불목을 찾아 등짝을 지지기만 했을 뿐 찬바람 부는 바깥에서 들뜬 마음으로 방구들을 데우는 역할은 하지 못했던 지난날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은 소중한 일이다. 가족이거나 친구나 연인일수도 있겠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었어도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거나 아니면 상처받은 기억의 흔적들일 것이다. 그 그리움은 뒤늦은 깨달음일수도, 속죄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 힘으로 오늘을 반성하며 사는 것도 다행스런 일이다. 세상살이가 자신만만해서, 내 잘못은 없다며 스스로 당당해서, 그래서 되돌아볼 그리움도 없이 사는 삶은 빈 수수깡처럼 얼마나 쓸쓸한 일일까. 그때 그 일은 순전히 내 잘못이었던 것처럼, 후회와 원망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따스한 아랫목의 온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볼 일이다.
온기를 느끼고 온기를 주는 것.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로 경계를 넘어 온정이 생겨나고, “고생했어!” 한마디로 힘들었던 고통마저 눈 녹듯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잘 데워진 구들장처럼 삶이란 그 뜨끈한 온기로 추운 겨울을 함께 헤쳐 나가는 일이다.
 
[제 8회 천강문학상 수필 대상] 각도를 풀다 /이혜경
이혜경추천 0조회 32817.09.12 21:42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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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를 풀다/ 이혜경    
 
 그럴싸한 악기 하나쯤 배우고 싶다는 욕심을 기어이 행동으로 옮겼다. 야심차게 시작은 했지만 교습소 유리문을 열 때마다 손끝에 느껴지는 무게가 육중하기만 하다. 겨우 귀밑에 머리가 닿는 학생들 틈에 섞여 엉거주춤 플루트를 잡고 있노라면 괜스레 뒤통수가 가려운 기분이다.
 콧대 높은 아가씨를 보는 듯 플루트의 첫 인상은 도도했다. 서늘한 은빛 광택에 주눅이 들어 얼룩이 남을까봐 악기에 손을 대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다. 망설이는 마음에 긴장까지 보태어 시작도 전에 몸이 댕돌같이 굳었다. 선생님이 일러준 대로 입술을 최대한 오므리고 힘을 실어 보아도 정체 모를 바람 새는 소리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첫소리가 나오기까지 여러 날 헤맸지만 한 번 소리가 만들어진 후로는 탄력을 받아 며칠 만에 저음 음역에 안착했다. 그런데 작은 언덕 하나를 넘으니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옥타브가 높은 고음 음역을 정복하는 과정은 된비알을 오르는 일이었다. 풍선을 불 듯이 배에 숨을 몰아넣고 볼이 터지도록 입술에 단단히 힘을 주어 보았지만 번번이 고음 문턱에서 소리가 미끄러져 내렸다.
 문제는 각도였다. 음의 높낮이가 달라질 때마다 입술 모양을 바꾸어 각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저음을 익히면서 길들여진 입술의 모양과 각도가 몸에 배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초반에는 제대로 입술을 붙였다가도 마디가 넘어갈수록 모양이 흐트러지곤 했다. 각도를 벗어난 곳에 바람을 보내면 둥글게 모아져야 할 소리가 잘게 흩어져 깊은 울림이 없었다. 각도를 맞추느라 입술에 신경을 모으다 보면 악기를 잡은 팔의 각도까지 무너져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살짝 각도를 틀라는 주문이 내게는 무척 난이도가 높은 숙제였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정해진 각도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어 더 그런가 싶었다. 여러 형제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자란 터라 어릴 때부터 위로도, 아래로도 마음껏 팔을 뻗을 수 없었다. 격동의 사춘기 시절조차 부모님 말씀에 반기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도 꼬박 십이 년 개근상을 탈 정도로 정해진 각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미성년의 봉인이 해제된 대학 시절에도 필름이 끊길 정도로 취해본 적이 없었고, 그 흔한 배낭여행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채로 졸업을 맞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선을 긋고 일정한 각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정해진 틀 안에서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비교적 고요하게 지나갔던 사춘기가 중년의 나이에 다시 오려는지 언제나 똑같은 지점에 축을 끼우고 서 있는 내 모습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늘 같은 장소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일이 목이 늘어난 티셔츠처럼 편하기만 했는데 불현듯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끼니마다 더운밥을 짓고 흠치르르하게 집을 닦으면서도 정작 가슴 안쪽에는 허기가 지고 묵은 먼지가 쌓여갔다.  얼굴에 드러나는 잡티는 화장으로 가릴 수나 있지만 내면에 번지는 잡티는 손 쓸 도리도 없이 점점 짙어질 뿐이었다. 잠시라도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 보자고 스스로 처방을 내렸다. 오롯이 나만을 위해 지갑을 열고 악기를 배우는 것은 평소의 계산에서 한참 벗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계속 같은 자리에서 하나의 각도만 고집하다가는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낯선 영역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면 예각으로만 살아온 삶의 반경이 둔각으로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일상의 각도를 넓히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안고 시작했지만 정작 입술 각도를 바꾸는 사소한 일조차 만만하지 않았다.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시간의 중력이 몇 곱절 세져서 새로운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약점을 이기는 길은 연습밖에 없었다. 악기를 놓고 있을 때도 머릿속에 입술 모양을 그리며 부지런히 입술을 풀었다. 무작정 힘을 주기만 해도 안 되고 너무 느슨하게 풀어도 곤란하다. 고정되어 있는 입술 각도를 넓게 풀어야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음계에 맞추어 다른 각도와 모양으로 입술을 바꾸어 연습한 끝에 몇 갈래로 흩어지고 미끄러지던 소리가 네 박자의 온음표를 지탱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귀에도 옳은 소리로 들렸는지 다음 수업부터 연주곡으로 넘어가자고 했다. 그 곡을 연주하려면 저음과 고음을 수시로 넘나들어야 해서 입술 각도가 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뱃심도 필수다. 손가락 짚는 위치도 들쭉날쭉 바뀔 테니 또 하나의 고비를 맞은 셈이다. 장조가 바뀌고 박자가 불규칙한 곡을 만나 악보 위에서 수없이 엉덩방아를 찧을 내 모습이 훤히 그려져 슬며시 웃음이 났다.
 새로운 악기 하나 배운다고 해서 삶의 반경이 갑자기 넓어지는 드라마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플루트를 배우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같은 장소를 오가며 비슷한 리듬으로 지내고 있다. 다만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소리를 익히고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소소한 재미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복잡한 음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단지 악기에 익숙해지는 일만은 아니었다. 작은 음표 하나도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겨우 곡 하나를 익히고 한 계단 올라갔다 싶으면 더 높은 다음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곡의 분위기에 맞추어 박자를 밀고 당기면서 유연하게 리듬을 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가도 그 고비를 잘 넘기면 새로운 소리가 내 입술 끝에서 만들어졌다. 덤으로 성취감이라는 작은 선물도 따라왔다. 

 인생이라는 악보에서도 마찬가지다. 살다보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폭풍우를 만나기도 한다. 예전에 대입 시험장에서 실수로 답안을 밀려서 쓰고 와서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밤새 울었다. 그때는 당장 내일이라도 인생이 끝날 듯이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삶의 길목에는 시험 문제의 답을 제대로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삶의 각도를 넓히다 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멋진 곡을 완성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여러 언덕을 넘는 동안 배짱이 생겼는지 이제 낯선 악보 앞에서도 두렵지 않다. 예고 없이 올림표나 내림표 기호가 불쑥 튀어나와 발목을 잡아당기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다. 눈과 입과 손이 각도를 조금 벗어나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그렇게 흔들리고 미끄러지는 과정을 거치며 시나브로 곡이 자리를 잡아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는 사이 각도가 조금씩 풀어진다면,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악보 한 마디 만큼이라도 더 넓어질 수 있다면 그깟 음 이탈쯤 무슨 대수이랴.   -끝-

제8회 천강문학상 수필 심사평 
독자에게 읽히는 수필 
     
신재기(문학평론가, 경일대학교 교수)  
     
예심을 거쳐 30명의 작품 90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수필집 2권 정도의 분량을 짧은 시간 안에 꼼꼼하게 읽어야 할 형편이어서 적잖은 부담을 안고 심사를 시작했다. 중간 이상을 읽었는데도 크게 두드러지는 작품을 만날 수가 없었다. 엇비슷한 유형의 작품이 이어졌다. 이러다가 ‘천강문학상’이란 이름에 걸맞은 작품을 뽑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얼마간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거의 막판에 이르러 가뭄에 단비 같은 몇 편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야 긴장이 다소 풀리며 읽었던 전 작품의 위치와 층위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음의 힘을 빼니 작품이 각자의 고유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수필 창작 인구가 급증했다. 작품 발표 지면도 크게 확대되었고 개인 수필집도 쏟아져 나왔는데, 이런 양적 확대가 보여주는 화려함이 질적 수준까지 담보해주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데에는 실패했다. 물론 독자의 축소가 수필 장르만의 문제는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문학 전체가 직면한 일반적 현실이다. 하지만 독자의 외면을 가져온 수필 문학만의 문제점도 없지 않다.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의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개인의 내면에 안주하면서 자폐성만  키우다 보니 문학으로서 재미나 독자의 공감대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현재 우리 수필은 이 지점에서 새로운 창작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자아’를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수필이지만, ‘자아’에 함몰된 수필은 독자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자아의 밀폐된 공간에서 벗어나 자아와 세계와의 보편적 관계를 탐구하는 글쓰기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번 심사에서도 이런 관점을 기본 전제로 삼았다.   
     
최종으로 두 사람의 세 작품을 놓고 숙고와 고심을 거듭했다. 이혜경의 「각도를 풀다」와 「공룡은 살아 있다」, 김응숙의 「공터」가 수상작 후보로 마지막까지 남았다. 세 작품 어느 것도 수상작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결국, 투고한 한 작가의 세 작품 전체를 보고 그 무게를 가늠해보기로 했다. 이는 세 작품을 응모의 조건으로 삼은 의도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혜경의 「각도를 풀다」를 대상으로, 김응숙의 「공터」를 우수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각도를 풀다」는 구체적 경험을 해석하여 주제를 도출하는 안목이 돋보인다. 세상과 대상을 바라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새로운 세계를 만나거나 세계를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다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주제인데, 작가는 이것을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형상화했다. 주체의 고정관념, 선입견, 나르시시즘, 고집, 혹은 이데올로기로 말마이암 대상이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상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것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롭고 탄력 있는 시선이 요구된다. 이처럼 확장성을 염두에 둘 때 이 작품의 주제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개인의 경험을 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수필 쓰기의 모범적인 작품으로서 완성도가 매우 높다고 보았다. 한순간 같은 작가의 작품 「공룡은 살아 있다」를 수상작으로 뽑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유쾌함을 만끽했다. 언어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마음이 확 풀리고 웃음까지 배어나왔다. 어쩌면 우리 수필이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무거운 메시지를 만드는 데만 머물지 말고 이 같은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일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심사평을 쓰는 지금도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지 못한 나 자신의 용기 없음이 부끄럽다. 좋은 수필은 우선 독자에게 읽히는 수필이 아니겠는가.


김응숙의 「공터」를 처음 대하는 순간 문제작이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은 수필의 자리보다 소설에 자리에 놓이는 것이 합당하다. 주제, 구성, 어조, 분위기 등 모든 측면에서 한 편의 소설로서 손색이 없다. 더욱이 ‘나’라는 수필적 화자가 극도로 절제되어 있어 수필가의 경험적 요소가 허구로 의심될 정도다. “도심에 붙박기에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변두리 언덕 경사면의 백여 호에 살고 있다. 화자가 동네 신작로 건너에 있는 작은 공터를 언덕 위에서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공간을 무대로 살아가는 도시 변두리 가난한 소시민의 소외된 삶과 그 애환을 잘 보여준다. 제시된 시각적 장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공터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관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첫 단락의 배경 묘사, 마지막 단락의 “공터 맞은편 길갓집 들창에서 여전히 한 소녀가 공터를 바라보고 있었다.”라는 결구 처리는 압권이다. 치밀하고 탄탄한 문장도 돋보인다. 당선작으로 뽑지 못해 못내 아쉽다.


양성은의 「파란 방」, 류현서의 「접쇠」, 우광미의 「자리표」도 잘 다듬어진 좋은 작품이다. 이들 작품을 읽으면서 주위에 훌륭한 수필가로 성장할 작가가 많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한두 작품으로 어떤 상을 받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창작에 꾸준하게 매진하여 성숙한 수필가로서의 무게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수상한 두 분 작가와 더불어 이번에 응모한 모든 수필가에게 다시 한번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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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제 6회 천강문학상 수필 대상)

 

조현미 

소나기가 그었다. 빗물이 일필휘지한 뒤란 풍경은 동적動的이다. 옥수수 잎이, 호박 넝쿨이, 흰 보라 도라지꽃이 빗물체로 살아 꿈틀거린다. 갓 목욕을 마친 장독들의 때깔도 육덕지다. 반지레하지만 두루뭉술한 태가 꼭 촌부의 뒷모습 같아 관능과는 멀면서도 볼수록 정이 간다.

 나란히 어깨를 겯고 있는 항아리들을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아가리가 좁고 배는 불룩한 데다 굽도 없는 항아리들이 구석기시대의 유물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꼭 닮은 탓이다. 얼굴의 윤곽은 철저하게 무시한 반면 가슴과 배, 엉덩이는 지나칠 정도로 풍만한 조각상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란다. 크기에 관계없이 펑퍼짐한 복부가 영락없는 여성상의 추상이다. 당시의 크로마뇽인들에게나 현대인들에게나 항아리 형태의 몸매는 다산의 기원을 넘어 어쩌면 신앙 차원인지도 모르겠다.

 신혼 적, 시댁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이의 집알이를 하듯 번거롭고 불편했었다. ​식구들의 워낙 많기도 하려니와 데면데면한 시어머니 탓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게 사람 사이를 가르는 침묵이라는 것을 그때 절감했다. 안절부절 겉도는 나를 마치 오래 써 온 세간처럼 여기는 남편 또한 낯설었다. 그의 말마따나 일 년에 고작 네댓 차례가 아니겠는가. 때마다 스스로를 담금질했지만 하소연할 친정조차 없는 마음은 늘 도린곁을 맴돌았다.

 이방인처럼 외도는 내게 그나마 곁을 내 준 건 뒤란이었다. 군데군데 돌을 박은 토담이 둥글게 안고 있는 뒤란은 제법 널찍하고 아늑했다. 툇마루에 앉아 아가리도, 몸뚱이도, 귀때도, 어감까지도 동글동글한 항아리들을 보면 날 서있던 가슴 언저리가 절로 유연해졌다. 야트막한 토담 너머로 보이는 하늘과 모로 누운 능선, 부리부리한 눈망울을 가진 참나무들,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옹기들, 키 순서대로 늘어선 채송화와 맨드라미, 해바라기가 한 채의 집을 불러왔다. 오래 전 지상을 떠난, 작고 누추했지만 사철 온기가 끊이지 않았던 나의 옛집이 그렇게 되살아왔다.

 옹기가 오지그릇과 질그릇을 아울러 일컫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질흙을 비교적 낮은 온도에 맨몸뚱이로 구워낸 것이 질그릇이고, 잿물을 입혀 구워낸 쪽이 오지그릇이란 것은 덤으로 얻은 수확이다. 뿐일까. 장독대에 즐비한 옹기 또한 용도와 모양새에 따라 제각각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다. 아래위가 좁고 배가 불룩해 주로 장류를 저장하거나 곡식을 담는데 쓰이는 항아리, 시누이들처럼 엇비슷한 외모의 소래기와 버치, 자배기, 궁굴게 생긴 두멍과 방구리, 두루미처럼 길쭉한 아가리를 쭉 빼고 있는 식초 항아리며 이름조차 생소한 중두리와 바탱이…….

 동서들이 곰살궂게 설명을 해 줬지만 옹기 일가와 친해지는 건 서른 명 남짓한 조카들 이름을 외는 것만큼이나 버거운 일이었다. 질박하면서도 소소했으나 거뜬히 식구들의 사철 밥상을 바라지해줬던 옛집의 장독대가 자꾸만 오버랩 되었다.

 옛집의 장독대는 볕바른 자리에 있었다. 그곳은 햇살의 놀이터이자 냄새들의 천국이었다. 고춧가루와 엿기름, 찹쌀가루, 메주가 바다에서 시집 온 소금과 합방해서 시나브로 익어갔다. 햇볕과 바람, 시간이 숙성시킨 장맛은 재료가 여럿이되 겉돌지 않고 그윽했다. 

 유년의 봄은 장독대로부터 시작되었다. 햇살이 꼼지락꼼지락 돋을 무렵, 이가 빠진 사발에 양껏 모래 밥을 퍼 담고, 진달래꽃잎을 찧어 고추장을 담그고, 연둣빛 머위 잎으론 김치도 담갔다.

 "에구 이 방구리들아, 기어이 사달을 낼라."

 할머닌 잔소리가 여간 아니었지만 당신의 발소리가 삽짝을 나서기도 전 장독대로 모여들곤 했다. 토란잎 널따란 우산 아래서, 궂은 비에도 젖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키가 간장항아리만큼 자라 있었다.

 옹기의 값어치는 내용물의 양에 따라 결정되었다. 키가 훤칠한 옹기가 갓 조림造林된 나무처럼 즐비한 집들은 한결같이 행세 깨나 하던 집안이었다. 장독대야말로 그 집안의 재력을 증명하는 공간이자 안주인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옛집의 장독대는 단출했다. 묵향을 잊은 벼루가 여럿, 장독대와 마당 어름에 놓여 있는 게 여느 집과 달랐을 뿐, 누대에 걸쳐 훈장으로 업을 삼았던 가계였다. 강미講米*로 쌀 한 말을 받든 한 되를 받든, 배우러 온 사람을 내치지 말라는 가훈은 그럴싸했다. 반면 아녀자들에겐 모진 삶의 멍에로 되물림되었다. 가뭇없이 이상한 추구하던 아버지가 질화로 곁을 떠난 후, 어머니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가장 먼저 하루를 열고 밤이 이울도록 삶의 물꼬를 트러 바동거렸으나 대물림된 가난을 벗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어머닌 사명처럼 장독간 둘레에 꽃을 심었고 몇 안 되는 항아리를 부지런히 닦았다. 차 있는 날보다 비어있는 날이 더 많았던 곳간에 비하면 장독의 인심은 그나마 푼푼했다. 어쩌면 당신은 헛헛한 속을 그렇게나마 채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옛집을 떠나오던 날, 장독대부터 오래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많은 추억들을 싣기에 일 톤 트럭은 너무 좁았다. 그렁그렁 빗물 담은 항아리의 눈매가 둠벙처럼 깊었다. 허옇게 곰팡이 난을 치는 벼루들의 핼쑥한 낯이 빈집처럼 쓸쓸했다.

 나이 한 살씩 생애에 얹으면서 어머니의 장독대엔 빈 독들이 늘어 간다. 당신의 존재를 한층 윤이 나게 지탱하던 옹기들은 빈 하늘을 담고 있거나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 시판용 된장에 익숙했던 혀끝이 점차 시댁의 장맛에 길드는 동안 당신의 등도 수북해졌다. 그럼에도 어머닌 매해 본능처럼 장을 담근다. 열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손맛이 아직도 항아리마다 그득하다. 열다섯 살에 시집와 여든셋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뒤란에서 혼자 운 날도 수두룩할 것이다. 모진 불꽃을 온몸으로 받아 내며 그렇게, 어머닌 조금씩 단단해졌으리라. 가마 솥 같은 반 세기가 어머니로 하여금 맛깔스럽게 말을 빚는 법을 잊게 한 건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도 나는 질그릇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나이 마흔에 얻은 막내가 자기瓷器처럼 섬세한 색시를 얻길 바랐으나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며느리는 도기陶器처럼 투박했다. 동서들 사이에선 홈홈하다가도 당신 앞에선 꼬막처럼 입을 다물었다. 더러 한 줌 햇살이나 바람을 기대했으나 마음 어귀에 비밀번호를 설정해 두고 출입을 제한했다.

 세상은 모든 꽃들은 이울고 나서야 단단해진다. 여자를 벗고 얻은 어머니란 이름은 몸도, 마음까지 둥글게 했다. 당신의 어투는 여전히 테석테석하지만 말씀의 이면에 숨은 참뜻을 마음이 먼저 마중하기에 이르렀다. 고부간에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무수한 날들이 피었다 이울었고, 꽤 여러 번 항아리 속의 주인도 바뀌었다. 애초 마음 어귀에 금줄을 친 장본인이 나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토록 멀고 컸던 '시'자와 '친정'의 간격으로부터 어머니를 읽었을 땐 당신 또한 장독대와 더불어 쇠락의 길에 접어든 무렵이었다.

 한 줌의 흙이 불을 만나 항아리가 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산고産苦나 매한가지였으리라. 그 오랜 인고의 시간이 여자로서의 숙명이었다면 철철이 장을 담그고 발효시켜 숙성에 이르기까지 겪은 진통은 어머니로서의 삶이었으리라.

 손끝이 야물지 못하다 지청구를 하시면서도 넘치도록 장을 담아 주시는 어머니, 쪼그려 앉은 뒷모습에 항아리가 우련하다. 장醬이든 사랑이든, 비우기 무섭게 채워지는 점에 있어서 항아리와 어머니의 속성은 유사하다. 여느 때와는 달리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든 당신, 장독대와 함께할 때 어머니의 자존심은 빛을 발한다. 한 고비씩, 어머니가 끌어안았던 시간들을 접하며 아직은 설익고 옹색한 나도 조금씩 깊어지리라. 세상의 모든 것들을 둥글게 안아 주는 항아리의 바탕을 조금씩 닮아 가리라. 아주 오래 전, 내 어머니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말끔히 목욕을 마친 장독대는 도량처럼 정靜하다. 경건한 풍경의 한가운데 발렌도르프의 비너스가 오밀조밀 사대四代를 위시하듯 앉아 있다. 태고부터 대물림된 조각상의 무표정이 그제야 활짝 웃는 듯하다.

 수 세기 동안 대가족을 먹여 살렸으니 이만한 보시가 또 있을까. 동글동글 웃고 있는 항아리들이 내 눈엔 다 보살 같다. 덜어도, 덜어도 즉시 채워지는, 어머니들 가슴안에 화수분 하나 산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처소다.

 *지난 날 글방 선생에게 보수로 돈 대신 바치던 곡식

 

 

무서운 년


마흔을 훌쩍 넘겼던 해의 어느 날, 부모님이 우리집에 왔다.

구석방에서 남편을 앉혀놓고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관심도 없었다. 부모님이 가고 난 후 남편이 내게 말했다.
"자기는 무서운 년이래"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 아버지는 내게 한 푼의 돈도 더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더없이 완강했다.

아무리 그런다고 내가 포기하겠나.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동생들을 다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다 학교에서 자퇴해라. 너희들의 월사금은 다 내가 쓰겠다.
너희들 중 한 놈도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수한 놈도 없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놈도 없다.
미래에 대한 야망도 없는 너희들은 어정쩡한 놈들이다.

그러니 너희가 돈을 쓰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낭비다.
너희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교통표지판과 날아오는 고지서만 읽을 줄 알면 충분하다.
너희들은 이미 한글을 깨쳤으니 그만 공부해라.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우수하다.
지금 공부를 중단한다는 것은 민족 자원의 훼손이다. 내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더 이상 돈을 안 쓰는 것은 애국 애족하는 길이다."

동생들은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그 광경을 부모님이 보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내게 등록금을 줬다.


그날 남편은 부모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도 부모님이 그렇게 선선히 등록금을 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동생들에게 한 일장 연설을 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부모님은 남편에게 "재는 무서운 년이니까 너도 조심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남편이 나처럼 무서운 년과 1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과 연민을 표했다.
백수였음에도 남편은 평생 내 부모님으로부터 무한한 동정과 연민을 받았다.
오로지 나와 살아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김점선 수필)

 

 

  

 

 

1946년~2009년3월22일 


김점선  이화여대에서 공부하였으며 1972년 홍익대 대학원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해 여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앙데팡당 전에서 제8회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로 선정되어

화단에 데뷔했다.

1983년 이후 20여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5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1987~1988년 2년 연속 평론 가협회가 선정한 미술 부문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에 선정되었다.

산문집 [나, 김점선] [10cm 예술1. 2] [나는 성인용이야] 등이 있으며,

박완서, 황석영, 최인호, 정민 등의 책에 그의 그림을 싣기도 했으며, 최근 신간으로 [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이 있다.

그림은 내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 

 

                                             김점선

  


나는 말 위에서 죽었다.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죽어가는 나를 태운 채 말은 달리고 있었다.
그때 말과 나는 구별이 되지 않았다.
말이 내 자신인지 내가 말인지……

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났다.
화가가 되었다.
말을 그린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하는 때가 되었을 때,
나는 죽음 밖에는 떠오르는 말이 없는,
낙오자가 되어 있었다.
머릿속에는 잡념과 잡지식 만이
썩은 지푸라기처럼 쑤셔 박혀 있는
아웃사이더가 되어 있었다.

학교 다니는 일 외에는,
아무 준비가 안된 미숙아인 채로 졸업을 당했다.
나는 그런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공부를 더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외쳐댔다.
그리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한숨을 쉬면서 등록금을 줬다.
그렇게 큰소리 치고 들어간 대학원에서
한 학기만에 제적당했다.
맘에 안 드는 과목을 수강 거부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나를 가르치던 미국인 선생님이
나의 제적을 안타까와하면서
동료와 일할 기회를 주었다.
통역 일을 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받았지만 모으지 않았다.
다시 죽음과 마주섰다.
나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 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림!
그림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그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림 그리는 일뿐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행복했다.
제대로 된 길을 찾은 기쁨을 느꼈다.
다시 회화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때 내 나이는 27살이고 지금부터 31년 전 일이다.
아버지는 나를 금치산자 취급을 했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나는 헝클어진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럴 때 엄마가 나섰다.
무조건 나를 지원했다.
열심히 그림 그리고 학교 다니는데
그것만으로는 예술가가 안 된다고 했다.
결혼을 해서 인생의 쓴맛을 이겨내고 나서야
진정한 예술가가 된다고 했다.
맞는 소리 같아서 결혼했다.
집 나온 청년과 이름도 나이도 묻지 않은 채 결혼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의 행동에 경악했다.
아이도 생겼다.
매우 가난했다.

우리가 굶는다고 해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굶는 줄 알았다. 재미나 멋으로.
그럴 때 사는 길은 극도로 아끼는 것이다.
어쩌다 5만원 주고 그림 한 점을 팔면
정부미만 사고 반찬 사는 데는 돈을 한푼도 안 썼다.

동네에서 얻은 된장에
산에서 캐온 풀을 넣고 끓여서 먹었다.
그림 그릴 캔버스도 돈을 아끼려고
광목을 사다가 합판에 붙여서 그렸다.
그런 그림을 모아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림이 꽤 팔렸다.
일년 먹을 쌀을 사고
물감과 광목을 살만할 돈이 생겼다.

작업실이 따로 있을 리가 없다.
지붕에서 물이 새는 좁은 셋방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 그린 그림은 제일 큰 게 30호를 넘지 않는다.
100호 짜리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게 꿈이었다.
비만 오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고인 물을 버리느라고 밤을 새야 했다,
그럴 때 멍히 물을 바라보느니
그림 그리면서 밤을 샜다.

내가 살던 마을의 산과 들에 대해서 환하다.
어디에 무슨 나물이 있는지
언제 어떤 먹을 만한 풀이 나는지를.
그 마을에서 산을 식량창고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그림 그리다가도 하루에 한시간 쯤 은
산을 헤메면서 반찬감을 구해야 했다.
그렇게 살면서도 해마다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꼭 일년을 버틸 만큼씩의 돈을 벌었다.
내 행동은 변함이 없는데 차츰 그림이 더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100호 캔버스를 100개나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해마다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는 내가 먹고살 돈을 버는 길이면서
또한 그림을 보여주는 기회이다.
그림은 경건한 예배다.
자신의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다.
내 영혼은 하늘이 내게 내린 숙제다.
평생 풀어나가야 할 대상이다.
내 영혼 속에는 가깝게는
나와 나의 부모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멀리는 구석기시대의 내 조상의 경험까지도
흔적으로 남아있다.
나는 내 영혼의 시각화에 몰두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그린다.


  

 




                          2년인가 암투병하시다가 2009년 3월 22일에 별세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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