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창작 강의내용

 

3 차 시: 세한도/목성균

강의 날짜: 2022322일 화요일

강의 방식: 비대면(언텍트)으로 강의

강 사: 권 희 돈(청주대 명예교수)

<1교시> 1-1 완당 김정희의 歲寒圖감상

 

 

1.184459세의 나이에 마른 붓으로 그린 그림.

2. 논어의 자한 편: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이상적의 한결같은 지조를 비유

공자: 歲寒以前松柏也,歲寒以後松柏也-聖人 特稱之於歲寒之後

3. 藕船是賞: 우선은 이상적의 호, 우선 자네가 먼저 보게

4. 長毋相忘: 오래도록 잊지 말자

5. 지극히 가난한 집 양 가장자리에 두 그루의 소나무와 두 그루의 잣나무

6 발문: 작년에는 만학집과 대운산방문고 두 책을 보내주더니, 올 해는 청조경세문편을 보내 주었다. 추어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네, 그대가 나를 대함이 귀양 오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으니 그대는 공자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5. 1845년 중국 오찬의 잔치에 이상적이 세한도를 보여주자 이들(20)이 감동하여 찬시를 쓴다.

6. 세한도가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과정

이상적의 사후-민씨일가-후지츠카 치카시-손재형-손세기-손창근-서예가-국립중앙바물관

 

 

1-2, 목성균의 歲寒圖감상

 

# 알아둘 일

공자: 讀書百遍義自見-글을 백 번 읽으면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

 

휴전이 되던 해 음력 정월 초순께해가 설핏한 강나루 터에 아버지와 나는 서 있었다작은 증조부께 세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강만 건너면 바로 작은댁인데배가 강 건너편에 서 있었다아버지가 입에 두 손을 나팔처럼 모아대고 강 건너에다 소리를 지르셨다. “사공강 건너 주시오.”
건너편 강 언덕 위에 뱃사공의 오두막집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노랗게 식은 햇살에 동그마니 드러난 외딴집지붕 위로 하얀 연기가 저녁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지고 있었다그 오두막집 삽짝 앞에 능수버드나무가 맨몸뚱이로 비스듬히 서 있었다둥치에 비해서 가지가 부실한 것으로 보아서 고목인 듯싶었다나루터의 세월이 느껴졌다강심만 남기고 강은 얼어붙어 있었고해가 넘어가는 쪽 컴컴한 산기슭에는 적설이 하얗게 번쩍거렸다나루터의 마른 갈대는 서걱서걱 아픈 소리를 내면서 언 몸을 회오리 바람에 부대끼고 있었다마침내 해는 서산으로 떨어지고 갈대는 더 아픈 소리를 신음처럼 질렀다
나룻배는 건너오지 않았다나는 뱃사공이 나오나 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사공 네 오두막집 삽짝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부동의 자세로 사공 집 삽짝 앞의 버드나무 둥치처럼 꿈쩍도 안하셨다. “사공강 건너 주시오.”
나는 아버지가 그 소리를 한 번 더 질러주시기를 바랐다그러나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그걸 아버지는 치사(恥事)치사로 여기신 걸까사공은 분명히 따뜻한 방안에서 방문의 쪽문을 통해서 건너편 나루터에서 우리 부자가 하얗게 서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그러나 도선의 효율성과 사공의 존재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나루터에 선객이 더 모일 때를 기다렸지 싶다그게 사공의 도선 방침일지는 모르지만 엄동설한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옳은 처사는 아니다이 점이 아버지는 못마땅하셨으리라힘겨운 시대를 견뎌 내신 아버지의 완강함과 사공의 존재가치 간의 이념적 대치였다.
 
아버지는 주루막을 지고 계셨다주루막 안에는 정성들여 한지에 싼 육적(肉炙)과 술항아리에 용수를 질러서 뜬제주(祭酒)로 쓸 술이 한 병 들어있었다작은 증조부께 올릴 세의(歲儀)엄동설한 저문 강변에 세의를 지고 꿋꿋하게 서 계시던 분의 모습이 보인다.

 

3 차 시: 세한도/목성균

강의 날짜: 2022322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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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사: 권 희 돈(청주대 명예교수)

 

<1교시> 1-1 완당 김정희의 歲寒圖감상

 

 

 

1.184459세의 나이에 마른 붓으로 그린 그림.

2. 논어의 자한 편: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이상적의 한결같은 지조를 비유

공자: 歲寒以前松柏也,歲寒以後松柏也-聖人 特稱之於歲寒之後

3. 藕船是賞: 우선은 이상적의 호, 우선 자네가 먼저 보게

4. 長毋相忘: 오래도록 잊지 말자

5. 지극히 가난한 집 양 가장자리에 두 그루의 소나무와 두 그루의 잣나무

6 발문: 작년에는 만학집과 대운산방문고 두 책을 보내주더니, 올 해는 청조경세문편을 보내 주었다. 추어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네, 그대가 나를 대함이 귀양 오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으니 그대는 공자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5. 1845년 중국 오찬의 잔치에 이상적이 세한도를 보여주자 이들(20)이 감동하여 찬시를 쓴다.

6. 세한도가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과정

이상적의 사후-민씨일가-후지츠카 치카시-손재형-손세기-손창근-서예가-국립중앙바물관

 

 

1-2, 목성균의 歲寒圖감상

 

# 알아둘 일

공자: 讀書百遍義自見-글을 백 번 읽으면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

 

휴전이 되던 해 음력 정월 초순께해가 설핏한 강나루 터에 아버지와 나는 서 있었다작은 증조부께 세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강만 건너면 바로 작은댁인데배가 강 건너편에 서 있었다아버지가 입에 두 손을 나팔처럼 모아대고 강 건너에다 소리를 지르셨다. “사공강 건너 주시오.”
건너편 강 언덕 위에 뱃사공의 오두막집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노랗게 식은 햇살에 동그마니 드러난 외딴집지붕 위로 하얀 연기가 저녁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지고 있었다그 오두막집 삽짝 앞에 능수버드나무가 맨몸뚱이로 비스듬히 서 있었다둥치에 비해서 가지가 부실한 것으로 보아서 고목인 듯싶었다나루터의 세월이 느껴졌다강심만 남기고 강은 얼어붙어 있었고해가 넘어가는 쪽 컴컴한 산기슭에는 적설이 하얗게 번쩍거렸다나루터의 마른 갈대는 서걱서걱 아픈 소리를 내면서 언 몸을 회오리 바람에 부대끼고 있었다마침내 해는 서산으로 떨어지고 갈대는 더 아픈 소리를 신음처럼 질렀다
나룻배는 건너오지 않았다나는 뱃사공이 나오나 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사공 네 오두막집 삽짝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부동의 자세로 사공 집 삽짝 앞의 버드나무 둥치처럼 꿈쩍도 안하셨다. “사공강 건너 주시오.”
나는 아버지가 그 소리를 한 번 더 질러주시기를 바랐다그러나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그걸 아버지는 치사(恥事)치사로 여기신 걸까사공은 분명히 따뜻한 방안에서 방문의 쪽문을 통해서 건너편 나루터에서 우리 부자가 하얗게 서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그러나 도선의 효율성과 사공의 존재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나루터에 선객이 더 모일 때를 기다렸지 싶다그게 사공의 도선 방침일지는 모르지만 엄동설한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옳은 처사는 아니다이 점이 아버지는 못마땅하셨으리라힘겨운 시대를 견뎌 내신 아버지의 완강함과 사공의 존재가치 간의 이념적 대치였다.
 
아버지는 주루막을 지고 계셨다주루막 안에는 정성들여 한지에 싼 육적(肉炙)과 술항아리에 용수를 질러서 뜬제주(祭酒)로 쓸 술이 한 병 들어있었다작은 증조부께 올릴 세의(歲儀)엄동설한 저문 강변에 세의를 지고 꿋꿋하게 서 계시던 분의 모습이 보인다.

 

3 차 시: 세한도/목성균

강의 날짜: 2022322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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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사: 권 희 돈(청주대 명예교수)

 

<1교시> 1-1 완당 김정희의 歲寒圖감상

 

 

 

1.184459세의 나이에 마른 붓으로 그린 그림.

2. 논어의 자한 편: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이상적의 한결같은 지조를 비유

공자: 歲寒以前松柏也,歲寒以後松柏也-聖人 特稱之於歲寒之後

3. 藕船是賞: 우선은 이상적의 호, 우선 자네가 먼저 보게

4. 長毋相忘: 오래도록 잊지 말자

5. 지극히 가난한 집 양 가장자리에 두 그루의 소나무와 두 그루의 잣나무

6 발문: 작년에는 만학집과 대운산방문고 두 책을 보내주더니, 올 해는 청조경세문편을 보내 주었다. 추어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네, 그대가 나를 대함이 귀양 오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으니 그대는 공자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5. 1845년 중국 오찬의 잔치에 이상적이 세한도를 보여주자 이들(20)이 감동하여 찬시를 쓴다.

6. 세한도가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과정

이상적의 사후-민씨일가-후지츠카 치카시-손재형-손세기-손창근-서예가-국립중앙바물관

 

 

1-2, 목성균의 歲寒圖감상

 

# 알아둘 일

공자: 讀書百遍義自見-글을 백 번 읽으면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

 

휴전이 되던 해 음력 정월 초순께해가 설핏한 강나루 터에 아버지와 나는 서 있었다작은 증조부께 세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강만 건너면 바로 작은댁인데배가 강 건너편에 서 있었다아버지가 입에 두 손을 나팔처럼 모아대고 강 건너에다 소리를 지르셨다. “사공강 건너 주시오.”
건너편 강 언덕 위에 뱃사공의 오두막집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노랗게 식은 햇살에 동그마니 드러난 외딴집지붕 위로 하얀 연기가 저녁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지고 있었다그 오두막집 삽짝 앞에 능수버드나무가 맨몸뚱이로 비스듬히 서 있었다둥치에 비해서 가지가 부실한 것으로 보아서 고목인 듯싶었다나루터의 세월이 느껴졌다강심만 남기고 강은 얼어붙어 있었고해가 넘어가는 쪽 컴컴한 산기슭에는 적설이 하얗게 번쩍거렸다나루터의 마른 갈대는 서걱서걱 아픈 소리를 내면서 언 몸을 회오리 바람에 부대끼고 있었다마침내 해는 서산으로 떨어지고 갈대는 더 아픈 소리를 신음처럼 질렀다
나룻배는 건너오지 않았다나는 뱃사공이 나오나 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사공 네 오두막집 삽짝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부동의 자세로 사공 집 삽짝 앞의 버드나무 둥치처럼 꿈쩍도 안하셨다. “사공강 건너 주시오.”
나는 아버지가 그 소리를 한 번 더 질러주시기를 바랐다그러나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그걸 아버지는 치사(恥事)치사로 여기신 걸까사공은 분명히 따뜻한 방안에서 방문의 쪽문을 통해서 건너편 나루터에서 우리 부자가 하얗게 서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그러나 도선의 효율성과 사공의 존재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나루터에 선객이 더 모일 때를 기다렸지 싶다그게 사공의 도선 방침일지는 모르지만 엄동설한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옳은 처사는 아니다이 점이 아버지는 못마땅하셨으리라힘겨운 시대를 견뎌 내신 아버지의 완강함과 사공의 존재가치 간의 이념적 대치였다.
 
아버지는 주루막을 지고 계셨다주루막 안에는 정성들여 한지에 싼 육적(肉炙)과 술항아리에 용수를 질러서 뜬제주(祭酒)로 쓸 술이 한 병 들어있었다작은 증조부께 올릴 세의(歲儀)엄동설한 저문 강변에 세의를 지고 꿋꿋하게 서 계시던 분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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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강가에서 / 맹난자

 

 

 

해질녘 적막한 강가에 나와 선다. 유장流長하게 흐르는 저 금빛 물살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간다는 것'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잔잔한 물살 위에 흐르는 시간, 물 수와 갈 거를 합하면 법이란 진리, 물이 흘러가는 '흐름'이 진리가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그 흐름의 원형은 시간일 터이다.

내 남루한 시간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젊은 날 나는 발길이 막힐 때면 남몰래 강가를 찾곤 했다. 유유히 흐르는 물살에 한참 눈을 주다보면 먼 데로 사라지고 마는 자잘한 근심 따위, 텅 빈 마음이 되곤 했다. 강물은 그때 내게 많은 걸 들려주었다.

 

위험하게 살아라.() 전쟁의 상태에서 살아라(). 운명을 사랑하라.

- 오디세이아에서

 

그리스의 작가 카잔차키스(1883~1957)는 과외선생처럼 일러주었다. 그의 소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다가 고국 이타카로 돌아오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이다. 나 또한 그들처럼 풍랑과 맞서 몸으로 견딘 세월이 얼마인가. 그러나 월계관 없는 고된 시간들이었다. 이제 귀향의 닻을 내려야 할 지점에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본다. 승리도 패배도 없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시간.

"가는 자 이와 같은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시간의 의미를 뒤좇게 된다. 참으로 많은 작가와 철학자들이 시간을 규명한 바 있다.

'시간은 지속적'이라고 말한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1959~1941)은 시간이란 다양한 연속성 안에서 과거에 흘러갔던 시간이 아니라 지금 현재도 흐르고 있는 시간을 의미하며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연속체이며 무엇보다 "우리의 내면 속에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의식의 흐름 자체"라고 했던 말을 나는 다시 주목하게 된다.

'베르그송 철학을 내면화한 최초의 예술가'라 칭해진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는 자신의 작품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간을 기억으로 환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물질을 따로 떼어 냈고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피력한 바 있다. 필자 역시 시간을 기억으로 환원하는 것이 문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간을 실제적 시간으로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이야기로 형상화할 때 그 시간은 존재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광맥을 캐는 광부'라고 자칭했던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문학의 주제도 '인간의 정체성' '시간'이었다. 그는 에세이 시간에 대한 새로운 반론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시간은 지속입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이 되는 것이며 우리들이 바로 시간입니다. 시간은 존재의 핵심이기 때문에 시간 없이 인간은 살 수 없어요. 우리들의 의식은 끊임없이 한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그 지속이 바로 시간입니다. 우리 또한 강처럼 흘러갑니다."

흐르는 강물에서 나도 시간을 바라본다.

 

시간은 나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다.

시간은 강물이어서 나를 휩쓸어가지만 내가 곧 강이다.

 

보르헤스의 말을 곱씹어 본다.

내 눈앞에서 자맥질을 하던 보르헤스가 불쑥 솟아올라 포효하듯 내게 외친다.

"내가 곧 강이다."

내가 왜 강인가? 곰곰이 생각한다. 저 강폭을 키워가는 강물이 때론 나를 휩쓸어가지만 내가 곧 강인 것은 내가 태어난 시간과 함께 저들도 태어났기 때문이며 내가 죽으면 저들도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시간과 강물은 나와 함께 태어났고 나와 함께 죽을 것이다. 이것을 철학자 다니엘 폰 체프코는 "시간은 나 이전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나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고백록에서 아우수스티누스(354~430) 시간이란 무엇이냐에 대해 "시간이란 과거·현재·미래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라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간은 바로 지금 존재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 독일의 철학자 니체나 하이데거도 이 시간의 현존성을 강조했지만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에서 이런 명구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이 물은 흘러 영원히 흐르고 있으나 언제나 그곳에 있다는 것을. 항상 그곳에 있어 어느 때와 같은 물이면서도 또한 순간마다 새로운 물이라는 것을.

 

강가에 나와 나 또한 얼마나 이 말을 되뇌었던가.

그는 영원에서 순간을 본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살 수도, 미래에 살 수도 없다.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현재뿐이다.

독일작가 토마스 만(1875~1955)은 그의 소설 마의 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을 즐겨라. 시간이란 이용하도록 인간에게 빌려준 신의 선물이다."

허용된 시간은 현재뿐임을 나 또한 숙지한다. 눈을 감는다. 그러나 발원지를 알 수 없는 내 시간의 출발점, 그 아득한 영겁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물길을 더듬어본다. 137억년전 빅뱅으로부터 우주가 형성된 그때 시간이라는 것도 만들어졌다. 불덩어리 같은 지구표면이 굳어 생명이 출현하게 된 것은 39억년 전 일이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별들의 기원과 진화에서 그 뿌리를 찾는 미국의 천재물리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을 따라 시공을 뛰어넘어 우주를 선회하다가 눈을 뜨니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염卽一念' 무량한 시간도 한 생각, [흐름]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보르헤스의 말대로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이 되는 것이다. 우주도 시간과 함께 태어났다. 모든 존재는 생멸生滅하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하고 또한 시간이 경과하기 때문에 생멸한다. 존재와 시간은 서로 인대因待한다. 만약 존재가 없다면 어떻게 시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보르헤스가 그의 에세이 시간에 대한 새로운 반론에서 시간을 부정했던 것처럼, 1700여년 전, 인도의 학승 나가르주나(Nāgārjuna 서기 150~250)도 자신의 저서 중론(中論)에서 다음과 같이 시간의 공성空性을 제기한 바 있다.

 

존재로 말미암아 시간이 만일 있다면

존재를 떠나서 시간은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런데 어떠한 존재도(실체로서는)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에 시간이 있을 것인가

(因物故有時 離物何有時 物尙無所有 何況當有時)

 

시간은 없다는 것이다. 시간의 없음을 여실히 보게 될 때, 단지 시간의 없음만을 보는 것이 아니고 시간에 따라 변해간다고 하는 생각하는 자아自我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과 자아는 실체가 없는 하나의 허구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하나의 환상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말이 생각난다. 아인슈타인은 또 어떠했는가. "시간은 시계로 측정하는 것에 불과하다.()물리학에서는 시간이 새로운 것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은 환상일 뿐이다."

시간은 왜 환상인가?

시간이 인대因待한 존재 자체가 자성自性이 없는 환이기 때문이다.

일어난 것은 전부 연기緣起로 일어났고 본성으로 볼 때는 하나도 일어난 것이 없다. 물이 흘러가듯 법성法性으로 보면 아무리 많은 일이 일어나도 본성本性에서는 일어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일랜드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1900~1989)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적고 있다. 그는 본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았던 것이다.

"시간이 머무는 것도 없고, 시간이 가는 것도 없다. 시간이 없는데 어찌 시간의 모습을 설명하겠는가?라던 나가르주나는 중론에서 가고 오는 것에 대해 다시 언급한다.

 

이미 간 것에는 감()이 없다.

아직 안 간 것에도 감()이 없다.

과거 미래 이 두 경우를 떠나

'가고 있는 현재도 감이 없다.

已去無有去 來去亦無去

離已去未去 去時亦無去

 

이와 같이 감이 없다면 가고 있는 현재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된다.

 

감 때문에 가는 자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가는 자가 자신에게 속해 있는

을 사용할 수 없다.

가는 자에 앞서서 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는 자는 감이 없다.

因去知去者 不能用是去

先無有去法 故無去者去

 

이런 까닭에 간다는 것과 가는 자와 갈 곳도 존재하지 않는다. 환언하자면 저 물과 시간과 나는 모두 가는 곳이 없다. 실체 없는 우리의 존재는 공성空性, 이기 때문이며, 존재를 떠난 시간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질이 시간이라면 개인의 정체성이란 시간의 환영일뿐"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에 나는 그만 덜미가 잡히고 만다.

시간과 함께 인간은 하나의 마야[幻影]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자성自省이 나를 잠시 무력하게 하지만 그러나 도도한 흐름 위에 실린 저 무주無住의 시간.

없으면서 지속하는 다르마, 그 법성의 법자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이 재 은

 

겨울은 기별 없이 오고 있었다. 겹겹의 푸른빛으로 빛나던 하늘도, 단풍마다 햇솜처럼 내려앉던 햇볕도 어느새 창백하리만치 투명하였다. 코끝을 타고 들어와 손끝까지 저리게 하는 이른 된바람은 옅은 입김을 몰고 다녔다. 얼어붙은 듯 흘러가지 않는 구름을 보고 있자니 창문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을이 떠난 자리가 야속하기만 했다.

아무리 손끝을 감싸 쥐고 주물러 보아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감각이 둔해진 것은 손끝뿐인데, 온 몸에 냉기가 감도는 듯했다. 그럴 때면 알싸하게 목구멍을 타고 들어와 뜨거운 부피로 시린 속을 일어나게 해 줄 차 한 잔이 절실해진다. 진한 생강 향이 떠올랐다. 비스듬히 비추던 햇볕이 자칫하면 누워버릴 시간이었다. 시장에 나설 채비를 서둘렀다.

소란함이 들끓어 편안함이 우러나는 곳이 시장이다. “골라 골라, 싸다 싸, 구경은 거저, 맛없으면 공짜” 하는 질박한 초대가 입구부터 발길을 잡아끌었다. 장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녹아있는 우렁찬 목소리를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새 시장 한복판에 와 있는 것이다. 볕바를 때 생강을 사 가려던 조급한 마음은 잊은 지 오래였다. 말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흥정하는 소리가 가락을 타는 시장 곳곳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노량으로 걷고 있었다.

김장철은 김장철인가 보다. 여기저기 배추, 갓, 쪽파며 무가 여름의 푸성귀인 양 시퍼런 혀를 빼고 늘어졌다. 간판도 없는 좌판 주인은 얼굴도 목소리도 젊은 청년이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손님은 엄마로, 중년의 아주머니는 누님이라고 불렀다. 배추를 사는 엄마에게는 갓을, 알타리를 고르는 누님에게는 쪽파를 곁들여 내놓았다. 넉살도 보통이 아니다. 흘러간 시절의 엄마, 누님이었던 손님들은 청년이 바쁠까, 알아서 봉지에 물건을 넣고 돈까지 내밀었다. 누군가의 손주 같기도 아들 같기도 한 청년의 패기가 대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절을 역행한 호칭에 손님들의 얼굴은 상기된 듯하였다. 거저 얻은 생기가 아닌가. 흥정도 하지 않고 값을 치를만한 사정으로 그만하면 충분하지 싶었다.

철커덕 철커덕 소리가 맞은편에서부터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흥이 붙은 얼굴의 엿장수였다. 큰 가위가 대패 쇠 날을 툭툭 치면 엿가락은 먹기 좋게 잘려 나갔다. 둔탁한 소리만큼 묵직해 보이는 가위를 엿판 위에서 자유자재로 까부르는 솜씨가 구경꾼들의 입을 벌어지게 하였다. 엿장수의 콧소리 장단은 또 어찌나 구수하던지. 노랫가락에 사람들의 시선까지 엮는 엿장수는 곡예사이자 입담꾼이었다. 신명이 녹아든 엿은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한 봉지에 담기는 정량이 있기나 했을까. 돈만큼 적당히 떼어줄 장삿속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다. 엿판을 들썩이게 하는 엿장수의 흥에 맞춰 손님은 고갯방아만 잘 찧어 주면 되는 모양이었다. 즐거워하는 만큼 봉지에 엿이 담기는데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실한 대추가 흔한 계절이다. 가을 햇살의 애정이 담긴 붉은 껍질 위로 갈바람이 드나든 주름은 쪼글쪼글하다. 톡 쏘면서 쏴 하는 맛의 생강과 부드럽고 달큼한 맛의 대추는 궁합이 잘 맞는다고 들었다. 커다란 자루마다 들어찬 대추는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비슷비슷했다. 대추 볼 줄 모르는 눈도 요령은 있었다. 됫박에 대추를 담아놓는 상인의 손만 유심히 살폈다. 맛보라며 살집 붙은 대추를 내미는 상인에게 다가갔다. 상인은 두 손으로 됫박을 바쳐가며 대추를 수북이 담아 올렸다. 봉지에 넣을 때도 떨어질세라 신중하게 담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나서 한 줌도 모자라 한 줌을 더 넣어 주었다.

북적이는 시장통을 한참 만에 빠져나왔다. 인도의 가장자리에는 노점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빨강 노랑 하양이 연속으로 돌아가는 파라솔 아래가 그들 각자의 영역인 듯싶었다. 줄지어 늘어선 노점의 끝에는 하늘에 펴 받칠 것도 없이 장사하는 노인이 보였다. 볕조차 비껴가는 구석자리에 바람이 어찌나 왔다 갔는지, 노인이 기댄 나무는 졸가리만 앙상하였다. 졸가리는 축 늘어진 전봇대 전선 같은 그림자를 노인의 머리 위로 드리우고 있었다. 맨바닥에 찬기를 깔고 앉은 탓인지 얼어붙은 모양으로 꼼짝하지 않았다. 바짝 세운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노인은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다. 휘주근한 모습의 노인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듯 진열해 놓은 마늘이며 생강은 무척 알차 보였다. 머리채를 단단히 묶어 똬리를 틀어 놓은 마늘은 들어찬 알맹이로 미어질 것 같았다. 방파제의 둑처럼 쌓아 올린 생강에서는 코를 쨍하게 하는 향이 진동하고 있었다.

생강을 살피느라 쪼그리고 앉는 나를 보고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얼마냐는 물음에 노인은 뭐 하려는지 되레 묻는 것이다. 끓여 마실 요량인 나에게 요긴한 연륜의 비법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생강 담는 봉지를 펼쳐 든 손이 오래된 부뚜막을 지키는 솥단지처럼 검고 갈라져 있었다. 나는 씨알 굵은 생강을 골라 담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늘고 질겨 보이는 손은 무척 컸다. 눈썰미 없는 손님의 눈대중으로도 중량은 초과였다.

“가져가, 더 주려고 파는 거야.”

염치없어하는 나를 보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다 식은 무릎 사이로 파고드는 노인의 얼굴에서 겸연쩍어하는 미소를 보았다. 속 깊은 덤의 고갱이인 양 하얀 미소였다.

 

끓기 시작한 주전자는 도르륵 도르륵 밝은 소음을 냈다. 열기가 띄워 올리는 생강들이 서로 부딪치며 맛과 향을 내는 소리일 것이다. 주둥이로 빠져나온 희뿌연 김이 생각의 도화지로 펼쳐졌다. 줄기와 가지만으로 우뚝 서 있는 나무 곁에 시간의 흠결만큼 거칠고, 떨어지는 세월처럼 앙상한 노인의 모습이 정물로 그려졌다. 정적이고 많은 여백을 담은 그림은 한층 깊고 너그러운 느낌이었다. 자신의 그릇에서 기꺼이 더 내어주고 마음마저 얹어주면서 흥정을 하지도 생색을 내지도 않는 도타운 덤의 색깔로 채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에서 향이 배어 나왔다. 온몸 구석구석으로 온기를 전하는 진한 향은 덤이다.

 

제24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필 ‘덤’ 당선 (2017년)

 

 

 

내가 강릉영림서 진부관리소 말단 직원일 때 월급이 칠천 몇 백 원이었다. 그 돈으로 어린 애 둘과 아내와 내가 한 달을 빠듯하게 살았다. 어떤 때는 아내가 담배를 외상으로 사다 줄 정도였다. 새댁이 담배 갑을 건네주면서 조심스럽게 신랑한테 하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담배는 외상 주는 게 아니래, 자기 담배 못 끊지?”
늘 퇴근이 늦었다. 잔무가 있어서 늦을 때도 있었지만 잔무가 없어서 늦는 때도 많았다. 잔무가 없으면 미뤄두었던 고스톱 화투를 쳐야하기 때문이다. 직원들간에 숙직실에서 화투를 치는 것은 동료애를 돈독히 하는 것이지 절대로 노름은 아니다.
특히 산읍이 눈 속에 깊이 묻히는 겨울에 그랬다. 어두워져서 전등에 스위치를 넣으면 늙은 소장 님은 큰곰처럼 어정어정 소장실을 나갔다. 보나마나 면장 님 사택이거나 지서장님의 하숙집으로 마작 하러 가는 것이다. 우리는 눈을 맞추고 사무실 뒤 숙직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 사환은 알아서 관리소 앞에 있는 ‘삼척 집’에 직원들이 숙직실에서 고스톱 화투를 친다고 이르고 퇴근을 했다.

밤이 이슥해서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고 오는 소리가 숙직실 앞에 와서 멎으면 문이 벌컥 열렸다. ‘삼척 집’ 늙은 아주머니였다. 머리에 이고 온 도토리묵과 찌개와 막걸리 주전자가 담긴 함지박을 숙직실 안에 드려놓으며 볼멘소리를 질렀다.
“색시들 기다려, 먹고 그만 집에 가-.”
마치 자기가 직원들의 장모님이라도 되는 양 성미를 부렸다. 그러면 고스톱 판은 끝났다. 직원들은 밤참과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 만족해서 “크- 윽-” 트림을 하면서 숙직실을 나섰다. 지금도 가끔 행복한 포만감을 느낄 때면 그 때처럼 생리적인 소리를 일부러 내본다. 그러면 한결 행복하다.

숙직실을 나서면 흰눈이 소복한 부피를 지으며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나의 집은 읍내 밖 진부농고 뒤에 있는 농가의 바깥채였다. 버스정거장 앞을 지나서 논둑 길을 건너가야 했다. 아내가 어두워지면 윗방에 있는 전등을 내다가 추녀 밑에 걸어 놓고 불을 밝혀놓았다. 나는 그 전등 불빛을 등댓불처럼 의지하고 어두운 논배미를 건너서 집에 가곤 했다. 그러나 그 전등은 따뜻하게 내 삶을 고무해주는 정도지 삶의 길잡이 역할까지는 못했다. 적설에 뭍인 논배미에는 도대체 어디가 논바닥인지, 논둑인지 구분이 안되었다. 그 불빛은 논배미의 적설상태까지 밝혀 주진 못했다. 다만 ‘빨리 오세요’ 하는 아내의 눈짓에 불과했다. 논둑을 더듬어 가다가 실족하면 논둑아래 적설 속에 빠지고 말았다.

버스정거장 모퉁이에는 소아마비를 알아서 수족을 잘 못 쓰는 아주머니가 군고구마 장사를 하고 있었다. 눈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작은 산읍 모퉁이, 내가 집에 돌아오는 그 늦은 시간에는 군고구마가 팔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아주머니는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서있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 앞을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서 늘 몇 알의 고구마를 샀다. 그 해 겨울 나의 하루일과의 마지막은 그 아주머니에게 군고구마 몇 알을 사는 일로 끝나는 셈이었다. 늦은 밤 그 군고구마를 가지고 가서 깜박깜박 졸면서 신랑을 기다리던 새댁에게 불쑥 내밀면 참 좋아했다. 그 재미에 몇 알의 군고구마를 사들고 갔다.

군고구마를 사서 잠바 앞섶에 넣으면 온몸이 따뜻했다. 논둑에서 떨어져 눈 속에 빠져도 춥지 않았다. 따뜻한 고구마를 품어서 그런지 눈 속이 아늑했다. 넘어진 자리에서 쉬어간다는 말처럼 나는 눈 속에 빠져서 잠시동안 그대로 있었다. 고구마의 온기도 따뜻하고, 논배미 건너 내 셋집 추녀 밑에 걸린 분홍색 백열등 불빛도 따뜻하고, 내 마음도 따뜻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밤이 늦었다. 차라리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은 푹한데 눈이 오고 난 뒤 개인 날 밤은 숨을 못 쉴 지경으로 냉기가 혹독했다. 산맥들도 칼날처럼 등성이를 세우고, 별들도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날은 고스톱 화투를 해서 돈도 좀 땄다. 숙직실을 나서자 볼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다. 잠바 속에다 자라목처럼 얼굴을 묻고 종종걸음을 쳤다. 고구마도 몇 알 더 사고 아주머니에게 개평을 몇 푼 줄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정거장 모퉁이까지 왔다. 그런데 아주머니 대신 왼 어린 소년이 서있는 것이었다.
“너 누구냐?”
“영림서 아저씨이에요?”
“그래-”
“일찍 좀 다니세요”
처음 보는 녀석이 볼이 부어 가지고 감정적으로 그러는 것이었다.
“임마. 내가 일찍 다니든 늦게 다니든 네가 무슨 참견이야-.”
“아저씨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감기 걸렸으니까 그렇죠.”
그녀석이 군고구마장수 아주머니 아들인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늘 그래요. 영림서 아저씨 퇴근이 늦어서 늦었다고요.”
그 때 내 나이 서른 한 살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내가 그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에게 고구마 몇 알을 사는 것은 내 행복을 위한 것이지 그 아주머니 장사시켜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고구마 봉지를 가슴에 품고 발간 전등 불 빛을 지향해서 눈 쌓인 논배미를 건너가면서 나는 늘 행복했다. 먼바다에 나갔다가 포구의 등대 불을 지향하고 돌아오는 작은 만선 어부의 마음이 그럴까. 그 행복감은 따뜻한 고구마 봉지를 가슴에 안음으로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 아니었다.

그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는 나의 이 행복감에 차질을 주지 않으려고 고구마가 안 팔리는 그 추운 겨울밤에도 몇 시간씩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다.
소년은 물어보지도 않고 내가 늘 사 가지고 가는 그 몇 알의 고구마를 가슴에 안겨주고, 군고구마 화로가 실린 리어카를 끌고 휭하니 거리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졌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군고구마 값 받는 것도 잊어버리고 갔다.
그 소년은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내가 사 가지고 갈 그 몇 알의 고구마 온기를 혹한 속에 몇 시간 동안 떨고 서서 지켰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 대한 저의 어머니의 친절이 얼마나 가당찮은 것인가를 발견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다행이 그 아주머니는 바로 감기를 털고 고구마 장사를 했다. 나는 고스톱 화투를 치면서 아주머니를 거리모퉁이에 세워 놓지는 않았다. 일찍 그 아주머니 앞을 지나갔다.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것이 늦은 밤에 군고구마를 안고 들어가서 조는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것 만치 재미는 없었지만 아주머니가 고생할 생각을 하면 도리가 없었다.
장중한 태백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산읍의 겨울밤, 칠천 몇백원 짜리 말단 공무원을 행복하게 해준 아주머니의 행복한 고구마가 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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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수필에 대해 / 목성균


 

 명색이 수필가이면서 수필을 잘 모른다고 하면 나를 등단시켜준 월간 ‘수필문학’에 체면이 안 서는 줄 알지만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등단, 이제는 8년여 수필과 마주 대하기가 무섭습니다. 쓸수록 어려워서지요. 그래도 쓰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이런 걸 가지고 팔자소관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문명(文名)을 떨쳐보자는 오기도 아니면서, 수필을 모르면서 아는 척 나를 기만하면서, 마치 시지프가 산꼭대기로 바위 돌을 굴려 올리다 떨어뜨리기를 계속하듯 나는 수필쓰기를 계속합니다.

 

  수필은 이거라고 일가견을 내세울 수는 없다하더라도 나름대로의 수필의 문학 장르적 룰은 정해 놓고 쓰기는 합니다.

  나의 룰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거짓말(허구) 안 하기입니다. 수필이 나의 이야기를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라면 당연히 솔직해야겠지요. 그런데 나는 수필을 위한 약간의 거짓말은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약간의 거짓말이 어느 정도를 이르는 말이냐? 글쎄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그리 생각합니다. 솔직히란 말은 양심에 비춰서라는 말이니까 양심에 가책을 안 느끼는 정도의 거짓말은 해도 되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나를 위한 거짓말이 아니고 수필을 위한 거짓말은 해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하실 줄 압니다. 논리 정연한 학문적인 견해가 아니라 요령부득한 사견(私見)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편의상 저의 졸작 '歲寒圖'를 예로 들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졸작 ‘세한도’ 전문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세한도

 

  ‘휴전이 되던 해 음력 정월 초순께, 해가 설핏한 강 나루터에 아버지와 나는 서 있었다. 작은 증조부께 세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강만 건너면 바로 작은댁인데, 배가 강 건너편에 있었다. 아버지가 입에 손을 나팔처럼 모아대고 강 건너에다 소리를 지르셨다.

  “사공-. 강을 건너 주시오.”

  아버지의 고함소리는 저녁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졌다.

건너편 강 언덕 위에 뱃사공의 오두막집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노랗게 삭은 햇살에 동그마니 드러난 외딴집, 지붕 위로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저녁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 오두막집 삽짝 앞에 능수버드나무가 맨 몸뚱이로 비스듬하게 서 있었다. 둥치에 비해서 가지가 부실한 것으로 보아 고목인 듯싶었다. 나루터의 세월이 느껴졌다.

  강심만 남기고 강은 얼어붙어 있었고, 해가 넘어가는 쪽 컴컴한 산기슭에는 적설이 쌓여서 하얗게 번쩍거렸다. 나루터의 마른 갈대는 ‘서걱서걱’ 아픈 소리를 내면서 언 몸을 회리바람에 부대끼고 있었다. 마침내 해는 서산으로 떨어지고 갈대는 더 아픈 소리를 신음처럼 질렀다.

  나룻배는 건너오지 않았다. 나는 뱃사공이 나오나 하고 추워서 발을 동동거리며 사공 네 오두막집 삽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부동의 자세로 사공 집 삽짝 앞의 버드나무 둥치처럼 꿈쩍도 않으셨다. ‘사공-. 강 건너 주시오’ 나는 아버지가 그 소리를 한 번 더 질러 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 그걸 아버지는 치사로 여기신 것일까

  사공은 분명히 따뜻한 방안에서 방문의 쪽 유리를 통해서 건너편 나루터에 우리 부자가 하얗게 서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도선의 효율성과 사공의 존재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나루터에 선객이 더 모일 때를 기다렸기 쉽다. 그게 사공의 도선 방침일지는 모르지만 엄동설한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옳은 처사는 아니다. 이 점이 아버지는 못마땅하셨으리라. 힘겨운 시대를 견뎌 내신 아버지의 완강함과 사공의 존재가치 간의 이념적 대치였다.

아버지는 주루막을 지고 계셨다. 주루막 안에는 정성 들여 한지에 싼 육적(肉炙)과 술항아리에 용수를 질러서 뜬, 제주로 사용한 술이 한 병 들어있다. 작은 증조부께 올릴 세의(歲儀)다. 엄동설한 저문 강변에 세의를 지고 꿋꿋하게 서 계시던 분의 모습이 보인다.’

 

  새해를 맞이하여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집안 어른께 세배를 드리러 가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수필적으로 형상화해 본 것입니다. 이 글에서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아버지의 꿋꿋한 모습입니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존심을 이른 속담일 터이지요. 이 속담은 양반의 쓸데없는 자존심을 풍자한 속담일 수도 있지만, 양반의 자존심이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말도 된다고 봅니다.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양반이 상놈(뱃사공)에게 구차한 소리는 안 하겠다는 아버지의 높은 자존심이 이 수필의 소재입니다.

 

  ‘사공 강 건너 주시오’ 그 소리를 한 번 지른 것은 신호지만 두 번 지르면 구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아버지의 자존심과 한 번 더 ‘사공 강 건너 주시오’ 하고 자기 앞에 간청하기를 기다린 사공의 자존심간의 대치-. 여기서 ‘사공 강 건너 주시오’ 를 두 번 다시 안 하고 버티신 아버지의 자존심은 내 나이만큼씩 자라왔습니다. 그 자존심이 세속적인 내 삶에 하등의 도움도 못된 건 사실이지만, 못 되다 뿐 아니라 지장을 초래했을 뿐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강성(强性) 자존심을 존경하고 내가 그 강성을 물려받은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 내 마음이 이 수필의 주제입니다

 

  여기서 나의 기억에 생생한 것은 저문 강변에 아버지와 같이 서 있었는데 무척 추웠다는 것과 강 건너편에 있는 나룻배는 좀체 건너오지 않고, 강가 사공의 오두막집에서 하얗게 저녁연기가 피어올라서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추위에 굴함 없이 팔짱을 끼고 부동의 자세로 서서 배가 건너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풀을 세게 먹인 두루마기 자락이 펄럭펄럭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나부끼던 생각, 이것이 기억의 전부입니다. 그 외는 기억에 없는, 그럴 것이려니 하는 상상입니다.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나이 먹으면서 그 때의 아버지 모습이 점점 선명하게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더욱 간절하게 그 때 그 추운 강변에 서 계시던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반골(叛骨) 남자를 소묘(素描)해서 세한도(歲寒圖)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여기서 앞에 말한 분명한 사실 외의 상상은,

  첫째 사공 집 삽짝 앞에 서있는 늙은 버드나무입니다. 저녁연기 피어올라서 겨울 강바람에 산란히 흩어지는 납작한 강변의 오두막집, 그 집만으로도 꿋꿋한 아버지의 모습을 부각하는 배경 묘사가 될지 모르지만, 그보다 좀 더 감동적인 문학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공 집 삽짝 앞에 늙은 버드나무 한 그루를 세워 놓았습니다. 물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의 늙은 소나무를 모방한 것입니다. 그래야 엄동설한의 저녁 강바람에 서있는 아버지의 꿋꿋함이 돋보일 것 같아서 문인화를 그려 넣은 것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기 늙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짓말을 한 것은 분명히 아니지요. 실제로 세한도의 장소인 달천강의 단월 나루의 상류인 괴강 배나무여울 나루의 사공 집 앞에는 늙은 버드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습니다. 강변 사공의 오두막집 앞에 버드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는 상상이 무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리 없는 상상, 이마저도 허구라서 안 된다는 것은 수필을 문예문(文藝文)으로 설자리를 박탈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즉, 이 정도의 상상은 어디까지나 상상이지 허구가 아니라는 주장이지요. 허구란 소설의 기법 상 스토리의 개연성(蓋然性)을 설정하는 작업이라고 본다면 나의 이 상상 정도는 허구가 아니라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가 주루막을 지고 계셨느냐, 안 지고 계셨느냐 입니다. 제 기억에 의하면 아버지는 평생 등짐이라고는 져보신 적이 없는 분입니다. 다만, 6. 25 피난 시에 바랑을 지신 기억 밖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 강변에 세의(歲儀)가 든 주루막은 안 지고 계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의도적인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 거짓말을 독자들은 양해하여 주리라고 믿습니다. 물론 고백했을 때 말입니다. 고백하지 않으면 거짓말한 것을 아는 사람은 나뿐일 것입니다. 나는 아주 지능적인 완전 범행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파렴치한 범행입니까? 저는 이 정도의 거짓말은 오히려 독자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아버지가 주루막을 안 지셨다면 어른께 세배 드리러 가면서 빈손으로 갔을 거냐는 것이지요. 고기 한 칼 아니면 정종 한 병이든지 무엇이건 간에 들고 갔을 것 아닙니까.

  그 때 어른께 세배 드리러 가는 사람의 행색은 통상 두루마기를 입고 주루막을 졌습니다. 주루막 안에 세의가 든 것이지요. 나는 지금도 그 행색을 아름다운 우리들의 전통풍습의 일면으로 기립니다. 아버지께서 어른께 올릴 세의지물(歲儀之物)은 분명히 가져가셨을 터인데, 그걸 손에 들고 갔든 주루막에 담아 지고 갔든 그게 큰 무슨 대수냐는 말이지요.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그 시대 세배 드리러 가는 행색에 맞게 그렸다고 해서 수필의 룰을 어겼다고 경고를 받아야합니까.

 

  주루막 건은 분명히 아버지가 안 지고 계셨으니까 상상이 아니라 허구일 것입니다만, 그러나 이 정도의 픽션은 표현과 묘사의 수단으로 볼 수 없을까요, 이 정도의 거짓말을 했다고 지탄을 받아야 한다면 구태여 수필가라는 장인 칭호가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지요. 굳이 수필이 ‘내 이야기를 붓 가는 대로 솔직하게 쓴 글’ 이라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내 손자의 일기보다 더 진솔한 글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한도에서 주루막을 소도구로 써먹은 것을 수필의 문학적 감동을 위한 최소한의 작문 조치이지, 수필의 본질을 흐트러뜨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내 생각이 궤변이라면 나는 사실상 수필의 격에 안 맞는 수필을 쓰는, 체격에 안 맞는 구제품 옷을 입은 것처럼 쑥스러운 몰골로 수필가인 체하고 서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나는 수필이 점점 더 무섭습니다.

  나의 궤변에 대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는 거짓말은 수필의 문학적 기교라고 말할 수 없고, 양심의 가책이 안 되는 거짓말은 수필의 문학적 기교다라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만 더 들까요. 어느 깊은 가을날 여행지에서 낙조를 보았다고 칩시다. 조락의 계절감과 여수가 어울려 감상미(感想美)를 느끼게 되는데, 거기 마지막 코스모스 꽃잎 조용히 머물러 노을에 저문다는 거짓말로 그 현장감을 살렸다고 해서 수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나는 수필에서 양심에 가책을 받는 거짓말은 내 이야기 자체를 꾸미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세한도의 경우 엄동설한 저문 강변에 서있는 어느 부자의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그 모습을 숫제 훔쳐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왜곡한다면 이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그렇지도 못한 주제에 그런 척하고 나를 미화하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수필가의 이름을 더럽히는 파렴치한 작태(作態)일 것입니다.

 

  내 이야기 내 생각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 내는 기술은 써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았으면서 그렇게 한 척, 그런 식견도 없으면서 그런 식자인 체하는 것, 이런 짓은 분명히 자기 양심에 가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수필을 쓰면서 그런 유혹을 얼마나 많이 받습니까. 실제로 나는 그런 유혹에 넘어가서 사이비 수필을 쓴 적이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런 파렴치한 글을 안 쓰려고 합니다만, 인간의 취약성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수필이 무섭습니다. 뒤늦게 무슨 시집살이인지 모릅니다.

 다만 앞에 세한도를 예로 들어 말씀드린 것과 같은 정도의 거짓말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나는 수필에서의 거짓말 허용 상한선을 그 정도에 그어 놓고 수필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만든 룰을 고집할 것입니다. 당신의 수필 사례를 말하라고 해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외람된 말이면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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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읽으면 좋은 책

 

어릴 적, 설이 다가오는 시기에는 집집마다 설 준비로 바빴다. 엿을 고고, 가래떡을 뽑고, 집안 대청소도 했다. 고향 떠나있던 자식들이 돌아오고, 친척들이 인사를 올 것이기에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올 설은 거리두기 하는 시기이다. 소설과 수필로 연휴를 채우고 백석의 시로 그날의 분위기를 대신 느껴보길 바란다.

△‘여우난골족’/ 백석 시·홍성찬 풀어쓰고 그림

이 그림책은 1935년 잡지 ‘조광’에 처음 발표된 백석의 대표시를 그린 것이다. 명절날 엄마, 아빠를 따라 큰집에 가 친척들을 만나 음식을 나눠먹고 즐겁게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는 풍경이 그려진다.

어린 ‘나’의 시점으로 구수하게 풀어낸 이야기가 대하드라마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인이 선택한 평안북도 정주 사투리 덕분이다.

백석의 고향 정서와 풍습이 잘 드러나도록 홍성찬 작가는 연변산골마을에서 설을 쇠며 그림책의 뼈대를 잡았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평안도 실향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판소리 사설처럼 구성지게 넘어가는 장단으로 평범한 우리 어른들의 삶과 고향의 밤을 잘 보여준다.

사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평안도사투리를 읽을 때는 다 이해하지 못한 느낌들이 그림책으로 펴내며 풀어놓아서 또 그림과 함께 읽으니 다 이해가 됐다. 그래도 어린이들이 다 이해하지 못 한 낱말은 뒷장에 사투리 사전처럼 적어두어 친절하게 찾아보도록 했다. 송기떡과 무이징게국, 텅납새는 처음 듣는 말이라 설명을 읽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코로나로 북적거리지 못 할 이번 설 분위기를 그림책을 통해 느껴본다.

△ ‘행복한 고구마’/ 목성균 수필선

목성균 작가는 글이 한창 피어날 즈음 돌아가셨다. 본인도 놀라셨겠지만 그분의 1집을 받아들고 좋아했던, 곧 뵈러 가자고 했던 우리들의 말들이 허공에 뿌려지게 되어 참 많이 놀랐었다.

‘행복한 고구마’는 작가의 1집, 2집, 유고집에서 골라 따로 엮은 수필이다. 어떤 이는 목성균의 수필을 소설이라고도 한다. 그림이 훤히 그려지고 이야기의 힘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세한도가 딱 그런 글이다. 사기등잔은 수필의 정석이라 처음 글을 배우는 이들에게 교과서처럼 읽히고, 어떤 직무위기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수필가들 속에서만 불려지던 목성균이란 이름이 전국에 알려지게 된 것은 KBS ‘아침마당’ 덕분이다. 어느 날 아침에 그 프로그램에 나와서 강의를 하던 분이 자신이 좋아하는 글이 있다고 잠시 언급한 것이 누비처네였다. 작가의 젊은 시절, 아버지가 부친 아기 포대기 값에 얽힌 이야기이다. 그 누비처네로 첫 아이를 업고 처가댁에 다니러 가던 달밤을 눈에 선하게 표현해놓았다. 목성균의 글 속엔 우리네 고향이 살아 흐른다. 설날에 읽으면 더없이 좋은 글이다.

△‘안녕 주정뱅이’/권여선 단편소설집

서울 사는 수정이가 집 근처 강가에 그늘막을 치고 한나절 이 책을 읽는다고 올렸길래 ‘제목이 익숙한데 우리 집에 있는 책 같아.’라고 말하고, 그 날 밤 침대에서 읽으려고 꺼내와 폈다. 첫 장을 넘기는데 어째 익숙한 듯 한 배경과 인물들, 몇 장 더 넘기자 밑줄이 좍좍 그어져있다. 내가 읽었던 책이었다.

권여선의 글은 문장이 참 좋다.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모든 인간은 1보다 크거나 작게 만드는 단순함, 그러나 절묘한 문장이 마음을 친다.

사람의 얼굴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또 놀랍다. ‘작은 눈, 작은 코, 작은 입에 광대뼈가 조금 도드라져 작은 언덕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몇 장 넘기면 ‘문정은 그토록 이상한 눈빛을 누구에게서도 본 적이 없었다. 작은 언덕이 있는 작은 마을에 이제 아무도 살지 않아요, 하고 말하는 눈빛이었다.’

‘삶에서 취소할 수 있는 건 간 한 가지도 없다.’라고 썼다. 우린 살면서 약속도 얼마나 쉽게 취소하는가. ‘안녕 주정뱅이’ 속에 단편 하나하나가 조곤조곤 속삭인다. 읽는 내내 행복했다.

 

△‘악마의 사전’/엠브로스 비어스 지음

이 책은 다년간 잡지에 발표한 것을 모아 1906년에 간행한 책이다. 세상에 나온 지 100년도 더 된 책이다. 아직도 살아서 팔리는 책이니 고전의 반열에 올려야 하겠지만 고전목록에 이 책을 끼워 넣은 것을 보지는 못 했다.

이 책과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나도 다시 대학생이 되기로 했다. 편입을 하고 강의를 들으며 조카뻘 되는 학우들과 공부를 하니 더 열심히 해야만 했다. 교수님이 하는 모든 말에 귀 기울이고 받아 적었다. 간간이 언급한 책 제목도 적어뒀다가 사서 읽었다. 그 중에 이 책의 제목도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얼른 검색해보고 주문했다. 작은 크기만큼 값도 저렴했다. 하지만 내용은 가격처럼 가볍지 않았다. 작가의 냉소적이고 예리한 시선으로 세상을 풍자한 낱말 풀이 책이었다.

지금에야 자신만의 사전이 넘쳐나지만 100년도 더 전에 이런 책을 썼다니 시대를 많이도 앞선 사람이었다.

단숨에 읽고는 다음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자신이 말을 했었나 하시며 웃으셨고, 강의하면서 수많은 책을 말했을 텐데 그 책을 사서 읽었다고 감사인사를 하는 학생은 처음이라며 밥을 사주셨다.

그 후 나도 독서회 수업마다 이 책을 학생들에게 전파했다. 좋은 것은 많은 이들과 나눠야 더 좋은 법이니까.

△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최도성 지음

10년 전 즈음, 스페인에 가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더랬다. 여행가이드북일 거라고 생각하고 샀다가 책장을 넘기면서 스페인과 세계의 역사가 들어있어서 놀랐다. 특히 내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일들이 사실이 아닌, 그래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어서 더 재밌었다.

그 중에 우리나라와 스페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흔히 한국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 풍랑을 만나 표류 중에 한국을 찾은 박연이나 하멜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실은 스페인 신부로 일본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군을 따라 1593년 조선 땅을 밟은 세스페데스 일행이다.

그는 편지로 로마교황청에 임진왜란과 거북선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철갑을 두르고 입에서 불을 뿜는 거북선이 백전백승하면서 일본군을 꼼짝 못하게 하며, 이순신 장군의 위업과 활약상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증명했다. 세스페데스의 고향인 스페인 라만차 지역 톨레도 근교의 비야누에바 데 알카르데테라는 마을에 가면 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진해로’라는 거리도 있다.

스페인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책을 읽게 했고, 책을 읽으며 그 마음을 다지자 드디어 나는 2017년 봄에 스페인 여행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도 곧 지나가리니, 그대 어디든 가고 싶다면 가고 싶은 곳에 관한 책을 사라. 곧 그곳에 가게 될 것이니.

/김순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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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출처 : 김기림, , 김기림 지음 길, 깊은샘, 1992.

 

? 해설

*호져: 홀려로 추정됨.

모래둔: 모래둔덕으로 추정됨.

 

우선 이 작품은 시가 아니고 수필이다. 이 작품은 김기림 시인의 유일한 산문집 바다와 육체에 실린 글이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는 종종 시로 소개되고 있다. 문장이 워낙 아름답고 서정적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에 의해서 시로 분류되어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문단에서도 큰 문제로 삼지는 않는다.

 

이 수필은 한 편의 파노라마 영화 스토리가 들어있는 작품이다.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이 첫 번째의 길이다. 그 다음은 조약돌 첫사랑의 길이 두 번째 길이다.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던 길이 세 번째 길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고 한 폭의 수채화다.

 

소년은 끝내는 마을 밖 버드나무 밑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들을 기다린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소년의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 가도 노을에 함뿍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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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값/최댓값, 최소값/최솟값

 

최솟값, 최댓값’이 ‘한글 맞춤법’에 맞는 표기입니다. 순우리말과 한자어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가 되면, <보기>와 같이 사이시옷을 써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남을 표시하였으므로, [최:소깝], [최:대깝]으로 소리 나는 이들 합성어에도 사이시옷을 받치어 ‘최솟값’, ‘최댓값’으로 적는 것이 맞습니다.
     
<보기>
‘한글 맞춤법’ 제4장 형태에 관한 것, 제30항
사이시옷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치어 적는다.

2.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1)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
귓병 머릿방 아랫방 자릿세 전셋집 콧병 탯줄 텃세 핏기 햇수 횟가루 횟배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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