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교시: 공적 담론의 수필
간송 전형필, 『훈민정음해례본』을 구하다/이충렬
밤에 빗소리가 들렸는데 아침 하늘은 맑았다. 좋은 징조이려나. 전형필은 먹는 둥 마는 둥 아침상을 물리고, 돈을 준비해 한남서림으로 갔다. 김태준이 한 시에 나타나면 이순황을 오후 기차에 태워 내려가게 할 생각이었다. 여름 날씨가 더워서인가, 기다림에 땀이 나서인가. 전형필은 연신 부채질을 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하루가 여삼추(如三秋)가 아니라, 일각이 여삼추로 흘렀다.
저만치 말끔히 정장을 하고 안국동 쪽에서 걸어오는 김태준의 모습이 보였다. 전형필은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일어나 뛰쳐나가서는 김태준의 손을 붙잡고 한남서림으로 들어왔다. “간송! 일전에 얘기했지만, 안동에서 『훈민정음』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어 직접 확인해 봤더니 진본이 틀림없었소. 그러나 앞의 두 장은 연산군 때 언문 탄압을 피하느라 찢어진걸 저와 소유자가 복원을 했소이다. 간송이 구입하시면 좋을 것 같아 알려 드리려고 했소만….”
김태준은 이순황이 건넨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훈민정음』이라니! 정말 놀랍고 반갑구려. 천태산인이 직접 확인까지 하셨다니 진위는 따져 볼 것도 없고…. 큰 경사요, 경사!”
전형필은 이제 『훈민정음』이 거의 다 들어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유주가 얼마를 말씀하셨소?”
전형필이 조심스럽게 묻자, 김태준이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값이 좀 샙니다.”
김태준이 망설이자 전형필이 어서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 원을 달랍니다.”
김태준은 너무 큰 액수를 말한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전형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형필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태산인, 그런 귀한 보물의 가치는 집 한 채가 아니라 열 채라도 부족하오.”
김태준은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전형필의 표정을 살폈다. 전형필이 눈짓을 하자 이순황이 보자기 두 개를 전형필에게 건넸다. 전형필은 그중 천 원이 담긴 보자기를 김태준에게 밀었다.
“이건 『훈민정음』 값이 아니라, 천태산인께 드리는 사례요. 제가 성의로 천 원을 준비했소.”
김태준은 놀란 눈빛으로 전형필을 바라봤다. 사례비가 너무 많다고 말하려는데, 전형필이 말을 이었다.
“『훈민정음』 값으로는 만 원을 쳤습니다. 『훈민정음』 같은 보물은 적어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해요. 그러나 제 입장이 있고 또 남의 이목도 있으니, 『훈민정음』을 인수하는 건 여기 이순황 선생이 맡아 주실 겁니다. 이해해 주시겠지요?”
김태준은 만 원이라는 소리에 다시 한번 놀랐다. 전형필의 배포가 남다르고, 부르는 값이 낮아도 정당한 값을 계산해서 치른다는 말은 들었지만, 만 원이라니! 『훈민정음』이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그로서는 구경조차 해 본 적이 없는 큰돈이라, 할 말을 잊은 채 한동안 전형필을 바라보았다.
“간송의 후덕한 인품에 감탄할 뿐이오. 사례비로 천 원은 너무 큰돈이지만,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여의치 못하니 염치 불고하고 받겠소. 그리고 나중에라도 어디서 나왔는지 소문이 나지 않게 해 주시면 고맙겠소. 나도 간송이 구입하신다는 말을 하지 않았소.”
“천태산인, 그건 염려하지 마세요.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시국이 매우 엄중하기 때문에 『훈민정음』의 존재는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습니다. 훗날 조선이 해방되면 그때 세상에 내놓겠지만, 그때도 출처에 대해서는 함구하겠소.”
“맞아요. 간송의 판단이 정확하오. 지금은 이 책이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지만, 해방이 되면 조선의 보물이 될 게요. 그때까지 간송이 잘 간직해 주시오.”
“고맙소, 천태산인. 그 와중에도 내가 『훈민정음』을 찾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이렇게 연결해 주셨구려.”
전형필은 김태준의 손을 잡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태준도 전형필의 손을 꽉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간송께 정말 고맙소. 내가 다시 일경(日警)에 붙잡히게 되더라도, 이 일은 끝까지 함구할 테니 염려하지 마시오.”
이번에는 김태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전형필이 어떤 모험을 하고 있는지.
마침내 전형필 앞에 놓인 『훈민정음』! 한글을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과 용례를 상세하게 밝힌 해례본이었다. 전형필은 밤이 새도록 『훈민정음』을 읽고 또 읽었다. 만들어진 지 500년 만에 발굴된 보물 중의 보물이었고, 전형필이 수집을 시작한 지 십여 년 만에 성취한 대발굴이었기에, 눈물을 흘리다가는 웃었고, 웃다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새벽 동이 틀 무렵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집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갈무리했다.
전형필은 『훈민정음』을 자신이 수장하고 있는 수집품 중 최고의 보물로 여겼다. 6·25 전쟁 당시 피란을 갈 때도 품속에 품었고, 잘 때는 베개 속에 넣고 지켰다.
오랜 기다림과 우여곡절 끝에 발굴되었고,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와중에도 무사히 지켜진 『훈민정음』! 1956년 통문관에서 학계의 연구를 위해 영인본으로 출판하고 싶다고 하자, 전형필은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손수 한 장 한 장 해체해서 사진을 찍게 했다. 이렇게 출판된 『훈민정음』 영인본을 통해 많은 학자가 체계적으로 한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전형필에 의해 발굴되고 지켜지고 세상에 알려진 『훈민정음』은, 1962년 12월에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UNESCO)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전형필이 살아 있었다면 춤을 추며 기뻐했을 일이다.
한글 창제의 원리 동영상
한남서림: 일제 강점기에 고서·고서화를 취급하는 서점. 인쇄소를 겸했으나 재정난으로 간송 전형필에게 인수되었고 이후 국내 주요 문화재를 수집하는데 투자를 많이 했던 곳이다.
김태준: 국문학자(1905~1949). 호는 천태산인. 저서로 『조선 한문학사』, 『조선 소설사』 등이 있다.
하루가 여삼추: 하루가 3년과 같다는 뜻으로, 짧은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각: 아주 짧은 시간.
언문: ‘한글’을 이르던 말
시국: 현재 놓여 있는 나라 안팎의 형편이나 상황.
엄중하다: 보통 있는 일로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다.
일경: 일본 경찰
성취하다: 목적한 바를 이루다.
갈무리하다: 물건 따위를 잘 정리하거나 간수하다.
수장하다: 거두어 깊이 간직하다.
영인본: 원본을 사진이나 기타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인쇄물
안동본은 일제 강점기의 국문학자 김태준의 제자였던 이용준(李容準)에 의해 그 존재가 처음 밝혀졌다. 이용준의 처가인 광산 김씨 종택 긍구당 서고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을, 이용준이 발견하고 김태준에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당연히 김태준은 깜짝 놀라 이용준과 함께 본가가 있는 안동으로 내려가 해례본을 직접 확인했다. 이용준은 잘 보관할 만한 사람에게 넘기고 싶다고 말했고, 김태준은 당시 문화재 수집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던 간송 전형필을 떠올렸다.
김태준은 전형필을 만나 해례본 이야기를 했고, 전형필은 그 자리에서 은행으로 달려가 1만 1천 원을 찾아와 1천 원은 김태준과 이용준에게 사례금으로 주고 1만 원은 해례본 값으로 치렀다. 그때 당시의 물가로 따지면 기와집 열 채값에 해당되는 금액이었고, 현대의 물가로 환산하면 무려 30억 원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당시 전형필이 해례본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봤는지 알 수 있는 일화.
앞서 해례본의 앞쪽 두 장이 찢겨나갔다고 언급했는데, 2000년대의 연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공개되었을 때 그에 관련되어 있던 인물들이 소유주 몰래 팔아먹기 위해(!) 일부러 찢어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박종덕(2006년) - 훈민정음해례본의 유출에 대한 연구 《한국어학》 31호, 김주원(2005년) - 훈민정음해례본의 뒷면 글 내용과 그에 관련된 몇 문제 《국어학》 45호.)
사실은 이용준이 긍구당의 서고를 열람하다 해례본을 훔쳐갔던 것. 이용준이 해례본과 《매월당집》을 여기서 훔쳤는데 표지에 광산 김씨 가보를 뜻하는 도장이 찍혀있어 이를 찢어내어 팔았던 것이 표지 실종의 진실이었던 것이다. 현재 일본에 있는 《매월당집》 역시 해례본과 마찬가지로 앞 두 장이 인위적으로 찢겨져 있다. 나중에 이를 들키고 장인에게 혼나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편지도 있다.
그 이후 김태준과 이용준은 이걸 판 돈을 사회주의 운동에 써 경성 콤그룹의 거물이 되었다고 한다. 김태준은 지리산 빨치산으로 붙잡혀 죽었으며, 이용준은 월북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들의 공산주의 행적은 따로 평가하더라도 영원히 묻혀 버릴 뻔했던 해례본을 공개한 공적은 인정해야 한다. 소유주인 광산 김씨 문중에서는 이를 공개할 생각이 없었으며 후일의 인터뷰에서도 빼앗겨서 억울하다고 소유권을 주장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종택 서고에서 먼지 뒤집어쓰고 있거나 6.25 중 없어져 버렸거나 했을 것이다.
실제로, 소유권을 주장한 광산 김씨 종택과 그들의 의뢰를 받아 해례본이 광산 김씨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은 종택에 이것만큼 귀한 책들이 몇권 더 있다고 주장했으나 10년이 넘도록 아무 소식도 없다. 이용준, 김태준이 아니었으면 해례본은 공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정 억울하면 광산 김씨 문중이 간송 미술관에 소유권에 기한 소유물 반환소송을 걸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도 입수경로를 확실히는 말하지 못하는 듯하다.
** 간송 전형필, 그 이후
전형필은 이것을 사들이고 나서 광복이 될 때까지 이 해례본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고 한다. 한국 문화를 철저히 말살한 일제 강점기 말기에 한글 창제 원리를 자세히 설명한 이 책이 들켰다면 영 좋지 못한 꼴을 당할 것은 당연지사였기 때문. 이후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피난갈 때 이 책을 먼저 챙기고, 베개 밑에 두고 잠을 잘 정도로 애지중지하며 보존하였다. 지금까지 해례본이 이어져 내려온 것은 그런 간송 선생의 노력 덕이며, 1956년 이 소장본을 바탕으로 사진을 촬영하여 만든 영인본이 제작되었다. 전형필은 영인본 제작을 위해 이 소장본을 흔쾌히 내놓았다고 한다. 내놓은 것뿐만이 아니라 책을 한 장 한 장 해체하는 것까지 직접 했다고 한다.
그 이후 원본은 간송 미술관에서 보관되고 있으며,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는 날이 적어 직접 보기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어차피 내용은 원본 사진을 찍어서 만든 영인본이 따로 있는데다, 현 시점에서는 전부 공개되어 있어서 한글 연구를 위해서 굳이 원본을 볼 필요성은 없다. 보존을 위해서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도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이며 아주 희귀한 것이기 때문에 실물로 보기가 굉장히 힘들다. 2014년 3월 말부터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열리는 간송 문화전에 원본이 전시된 적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고려청자와 함께 다른 전시물과 다르게 손을 유리대고 볼 정도로 가까이 볼 수 없으며 약 1미터 이상 떨어져야 볼 수 있다.
간송 전형필 천태산인 김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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