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은

 

겨울은 기별 없이 오고 있었다. 겹겹의 푸른빛으로 빛나던 하늘도, 단풍마다 햇솜처럼 내려앉던 햇볕도 어느새 창백하리만치 투명하였다. 코끝을 타고 들어와 손끝까지 저리게 하는 이른 된바람은 옅은 입김을 몰고 다녔다. 얼어붙은 듯 흘러가지 않는 구름을 보고 있자니 창문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을이 떠난 자리가 야속하기만 했다.

아무리 손끝을 감싸 쥐고 주물러 보아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감각이 둔해진 것은 손끝뿐인데, 온 몸에 냉기가 감도는 듯했다. 그럴 때면 알싸하게 목구멍을 타고 들어와 뜨거운 부피로 시린 속을 일어나게 해 줄 차 한 잔이 절실해진다. 진한 생강 향이 떠올랐다. 비스듬히 비추던 햇볕이 자칫하면 누워버릴 시간이었다. 시장에 나설 채비를 서둘렀다.

소란함이 들끓어 편안함이 우러나는 곳이 시장이다. “골라 골라, 싸다 싸, 구경은 거저, 맛없으면 공짜” 하는 질박한 초대가 입구부터 발길을 잡아끌었다. 장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녹아있는 우렁찬 목소리를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새 시장 한복판에 와 있는 것이다. 볕바를 때 생강을 사 가려던 조급한 마음은 잊은 지 오래였다. 말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흥정하는 소리가 가락을 타는 시장 곳곳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노량으로 걷고 있었다.

김장철은 김장철인가 보다. 여기저기 배추, 갓, 쪽파며 무가 여름의 푸성귀인 양 시퍼런 혀를 빼고 늘어졌다. 간판도 없는 좌판 주인은 얼굴도 목소리도 젊은 청년이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손님은 엄마로, 중년의 아주머니는 누님이라고 불렀다. 배추를 사는 엄마에게는 갓을, 알타리를 고르는 누님에게는 쪽파를 곁들여 내놓았다. 넉살도 보통이 아니다. 흘러간 시절의 엄마, 누님이었던 손님들은 청년이 바쁠까, 알아서 봉지에 물건을 넣고 돈까지 내밀었다. 누군가의 손주 같기도 아들 같기도 한 청년의 패기가 대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절을 역행한 호칭에 손님들의 얼굴은 상기된 듯하였다. 거저 얻은 생기가 아닌가. 흥정도 하지 않고 값을 치를만한 사정으로 그만하면 충분하지 싶었다.

철커덕 철커덕 소리가 맞은편에서부터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흥이 붙은 얼굴의 엿장수였다. 큰 가위가 대패 쇠 날을 툭툭 치면 엿가락은 먹기 좋게 잘려 나갔다. 둔탁한 소리만큼 묵직해 보이는 가위를 엿판 위에서 자유자재로 까부르는 솜씨가 구경꾼들의 입을 벌어지게 하였다. 엿장수의 콧소리 장단은 또 어찌나 구수하던지. 노랫가락에 사람들의 시선까지 엮는 엿장수는 곡예사이자 입담꾼이었다. 신명이 녹아든 엿은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한 봉지에 담기는 정량이 있기나 했을까. 돈만큼 적당히 떼어줄 장삿속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다. 엿판을 들썩이게 하는 엿장수의 흥에 맞춰 손님은 고갯방아만 잘 찧어 주면 되는 모양이었다. 즐거워하는 만큼 봉지에 엿이 담기는데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실한 대추가 흔한 계절이다. 가을 햇살의 애정이 담긴 붉은 껍질 위로 갈바람이 드나든 주름은 쪼글쪼글하다. 톡 쏘면서 쏴 하는 맛의 생강과 부드럽고 달큼한 맛의 대추는 궁합이 잘 맞는다고 들었다. 커다란 자루마다 들어찬 대추는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비슷비슷했다. 대추 볼 줄 모르는 눈도 요령은 있었다. 됫박에 대추를 담아놓는 상인의 손만 유심히 살폈다. 맛보라며 살집 붙은 대추를 내미는 상인에게 다가갔다. 상인은 두 손으로 됫박을 바쳐가며 대추를 수북이 담아 올렸다. 봉지에 넣을 때도 떨어질세라 신중하게 담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나서 한 줌도 모자라 한 줌을 더 넣어 주었다.

북적이는 시장통을 한참 만에 빠져나왔다. 인도의 가장자리에는 노점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빨강 노랑 하양이 연속으로 돌아가는 파라솔 아래가 그들 각자의 영역인 듯싶었다. 줄지어 늘어선 노점의 끝에는 하늘에 펴 받칠 것도 없이 장사하는 노인이 보였다. 볕조차 비껴가는 구석자리에 바람이 어찌나 왔다 갔는지, 노인이 기댄 나무는 졸가리만 앙상하였다. 졸가리는 축 늘어진 전봇대 전선 같은 그림자를 노인의 머리 위로 드리우고 있었다. 맨바닥에 찬기를 깔고 앉은 탓인지 얼어붙은 모양으로 꼼짝하지 않았다. 바짝 세운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노인은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다. 휘주근한 모습의 노인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듯 진열해 놓은 마늘이며 생강은 무척 알차 보였다. 머리채를 단단히 묶어 똬리를 틀어 놓은 마늘은 들어찬 알맹이로 미어질 것 같았다. 방파제의 둑처럼 쌓아 올린 생강에서는 코를 쨍하게 하는 향이 진동하고 있었다.

생강을 살피느라 쪼그리고 앉는 나를 보고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얼마냐는 물음에 노인은 뭐 하려는지 되레 묻는 것이다. 끓여 마실 요량인 나에게 요긴한 연륜의 비법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생강 담는 봉지를 펼쳐 든 손이 오래된 부뚜막을 지키는 솥단지처럼 검고 갈라져 있었다. 나는 씨알 굵은 생강을 골라 담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늘고 질겨 보이는 손은 무척 컸다. 눈썰미 없는 손님의 눈대중으로도 중량은 초과였다.

“가져가, 더 주려고 파는 거야.”

염치없어하는 나를 보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다 식은 무릎 사이로 파고드는 노인의 얼굴에서 겸연쩍어하는 미소를 보았다. 속 깊은 덤의 고갱이인 양 하얀 미소였다.

 

끓기 시작한 주전자는 도르륵 도르륵 밝은 소음을 냈다. 열기가 띄워 올리는 생강들이 서로 부딪치며 맛과 향을 내는 소리일 것이다. 주둥이로 빠져나온 희뿌연 김이 생각의 도화지로 펼쳐졌다. 줄기와 가지만으로 우뚝 서 있는 나무 곁에 시간의 흠결만큼 거칠고, 떨어지는 세월처럼 앙상한 노인의 모습이 정물로 그려졌다. 정적이고 많은 여백을 담은 그림은 한층 깊고 너그러운 느낌이었다. 자신의 그릇에서 기꺼이 더 내어주고 마음마저 얹어주면서 흥정을 하지도 생색을 내지도 않는 도타운 덤의 색깔로 채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에서 향이 배어 나왔다. 온몸 구석구석으로 온기를 전하는 진한 향은 덤이다.

 

제24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필 ‘덤’ 당선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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