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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워
김희정 작은 것이라도 매듭이 생긴 부분은 바늘귀에 걸린다. 풀어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 바늘이 담쟁이 이파리 윤곽선을 바삐 들락거린다. 왕복 주행 하던 실이 덜컥 멈춘다. 교통이 원활하다 싶었는데 어느 지점부터 실이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교차로의 교통 체증이다. 바늘이 작은데다 땀이 너무 촘촘했는지 좌회전하려던 실과 우회전하려던 실이 만나 엉켰다. 접촉 사고다. 결국 멀쩡한 앞 실까지 잘라 내고 바늘귀에 새 실을 넣는다. 감정에도 때로 풀리지 않는 미세한 엉킴이 생길 때가 있다. 좁은 면에 실을 채우는 데도 변수가 생겨 시비가 엇갈리니 몇 번 끊어진 실을 이어 바꾸고 바느질을 한다. 빨강색만 눈에 띄던 날들이 있었다. 빨강색을 보면 설레고 흥분되었다. 인터넷 검색 창에 빨강이라고 치다가 다시 레드라고 바꿔 쓴다. 빨강색을 가진 모든 물건들이 줄을 선다. 심장이 바쁘게 뛰었다. 어떤 날은 밤새도록 빨간색 물건을 뒤져 내가 사고 싶던 모든 빨강을 주문했다. 배달 된 물건을 열었을 때, 그 펄펄뛰는 빨강에 행복했다. 그렇게 우리 집은 온통 빨강색이었다. 유난히 몸살이 자주 나던 날들이었다. 내 빨강 실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그렇게 소진된 에너지를 채우고 싶었던 건지, 빨강이라는 불덩이가 위로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내 호르몬의 빨강이 최고치에 이르러 하향 곡선을 육박 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정신과 육신이 모두 지쳐서 자주 화가 나던 날들이었다. 뭔가 수습되지 못한 것들로 숨이 막힌다고 해야 할까. 내 육신의 골든아워였다. 가두어 놓은 별난 성향과 열정들이 출구를 못 찾고 방황하느라 나갈 곳을 원했다. 아이들 기르느라 내 존재를 꺼내 볼 여유가 없었고, 애씀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에 지칠 때도 있었다. 무슨 맛인지 모르고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과 버무려져 내 이름을 쓸 일 없음이 힘들었던 듯하다. 누구의 아내와 엄마로 사는 것도 행복하겠지만, 내 존재를 톺아보던 집착이 더 컸겠지. 그땐 그랬다. 누적된 혼잡의 정도가 최고조에 달한 시간이었다. 존재의 러시아워였다. 아마 여러 색깔 실들이 제 차선을 잃고 서로 충돌했던 것 같다. 붉음이 되어 가는 일, 내가 주인공이었던 시간들이 무대 밖으로 사라지고 남의 분장을 위해 팔레트를 붙잡고 다리 아프게 서 있던 일. 조명을 켜 들고 주인공을 비추는 일.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배경에서 뛰는 일. 마네킹을 장식하는 일. 쇼윈도를 지나가는 뒷모습이나 나무 1, 나무 2, 행인 3으로 잠깐 찍히는 일. 관객으로 앉아 무대를 구경하던 일. 주인공을 위해 엑스트라가 되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옛 건물 벽을 타고 담쟁이가 뻗어 가듯이, 세월은 천천히 담장을 넘으며 슬쩍 나의 색을 바꾸고 있었다. 담쟁이로 덮인 돌담에도 무늬는 있다. 덩굴에 덮여 보이지 않을 뿐이다. 담쟁이는 매듭을 만들며 키를 늘리지만 결코 엉키지 않는다. 아마 매듭 푸는 일에 서툴렀던 시간을, 색깔에 위로받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붉어진다는 것은, 시간이 윤색되는 과정이다. 붉음 이전에 지녔던 것들을 고사하는 일이고, 파랑으로 다시 복귀할 수 없는 일이다. 풋고추가 빨갛게 여무는 것도 그 시간만큼의 아침과 저녁이 흘렀기 때문이겠다. 퍼런 사과가 먹음직스런 빨강으로 익는 것도, 햇볕과 비바람이 사과나무를 만지고 지나쳐갔음이다. 봄이 달궈진 여름이 되는 일도 몇 달의 초록이 태양 아래 데워지고 있던 것이리라. 빨강을 끝에 지니고 사는 생명은 뜨겁다. 빨갛게, 벌겋게, 불그스름하게, 혹은 새빨갛게 시간을 들이고 애쓴다. 더위도 곧 지겠지. 본질로 돌아가는 일. 낮이 지면 저녁이 된다. 산다는 건, 해가 지는 일이다. 산을 넘는 일이고 침윤된 하루를 벗고 내일 뜨는 해를 장만하는 일이리라. 편한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흙 묻은 구두도 벗지 않았다. 밖에서 들여온 바람의 감촉과 빛나던 햇빛과 저녁의 너른 품을 잊지 못했다. 쉬어야 할 시간임에도 본질에 들어서지 못했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깨어 있고, 남들이 깨는 시간에 잠드는 버릇으로 늘 게으르다. 밤을 새고 앉아 바늘귀 안으로 쑥 들어가지 못하고 빨강 입구를 서성인다. 수시로 실이 엉킨다. 끊어질 때도 있고 가끔 바늘도 부러진다. 같은 장소에 몰리는 이유다. 겹침의 러시아워다. 혼잡한 도로는 빨강색이다. 산다는 것은 매일 러시아워의 교차로를 건너는 일인지 모르겠다. 빨강 실을 꿰어 담쟁이 이파리를 꿰맨다. 마지막 잎이 남았다. 바늘이 들쑥날쑥 줄기를 타고 기어오르지만 어차피 낙엽이 될 텐데. 다 마치려면 실이 모자랄 수도 있겠다. 담쟁이의 저무는 빨강은 어떤 단풍보다 붉고 아름다우니. 젊음은 뜨거운 빨강이 아니라 새파랗게 젊은 파랑색인 모양이다. 수필부문 대상 수상소감 김희정 나는 늘 침묵에게 진다. 점령당한다. 미루고 싶었던 감정들도 털리고 만다. 한계다. 말이 많다. 너무 말이 많다. 글을 쓴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인지 모르겠다. 글이 곧 수다다. 수다를 떨지 않는 것, 오늘도 깨닫는 건 힘을 빼는 일이다. 힘이 들어간 건 전부 아마추어다. 수다를 떨지 않는 글을 짓는 일이다. 핍진하게 사람을 사귀는 것과도 비슷하다. 수필은 내 안의 허구다. 시일 때도 있고 소설일 때도 있으며 그림이기도 하고 음악이기도 해서 결국 어울려 수필이다. 나는 소망한다. 내가 쓰는 글이 수다가 아닌 정확하게 문학이기를, 수필이란 결국 모든 예술을 감당하는 최선의 문학이어야 한다. 나를 뛰쳐나간 생각과 말이, 글자들이 관념만 흥건한 언어의 얄팍한 유희가 아닌, 공감할 만 한 치열한 사유이기를. 사유가 내뱉는 입버릇이 똘똘한 문장이 되기를. 저무는 삶을 횡단하다 외로움에 치이고 고독을 피하려고 저지른 사고事故이기를. 사고를 수습하러 들른 치유이기를. 제대로 쓰고 있는가? 혼자 하는 터득 없는 교술인가? 늘 위태하고 불안하다. 내 언어들은 시끄럽다. 주눅 들고 방황할 때 괜찮다고, 적당하다고, 더 잘하라고 쓰다듬어 주시니 뭉클하다. ‘천강’이라는 떨리는 먼 빛을 받아 만져 보니 무겁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다. “의령, 천강, 이 멋진 나라에 와보고 싶었습니다. 의령군과 의령 문학에 감사드립니다. 잔치를 열어 주시고 가장 좋은 자리에 앉혀서 넘치는 상을 차려 주셔서 낯설도록 기쁩니다. 귀하게 대접 해주시고 심사 해주신 교수님과 선생님들께 삼가 감사를 올립니다” ►김희정 1965 서울 출생 2014 계간『문예춘추』등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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