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엔 없다. 그보다 난 기억을 믿지 않는다. 기억도 날 믿지 않을 것이다.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는 서로 배반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기억이 날 배반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지난 사십 몇 년 간의 세월을 지내온 것으로 믿어지는 기억의 총합이겠지만 그 기억은 언제든 나를 배반할 준비가 돼 있었다. 한때 사랑했던 기억도, 절망했던 기억도 청회색 살의殺意의 기억도 매우 불분명한 형태로 나를 따라오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에 없다. 다만 파편화되고 변색된 기억 조각들의 축조물 위에 배반을 게임처럼 설정하고 사귄 관계는 결코 배반의 쓰라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만 남아 있다. 얼핏 말장난 같지만 우리 선대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령, 내가 어렸을 때 술청에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가 주모가 아버지 앞에서 이런 육자배기를 털어놓는 과정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푹푹 질렀나 네가 먼저 살자고 엉덩이 팍팍 질렀지.

코흘리개(나는 사실은 코를 흘리고 다닌 적이 없다. 집단 무의식이나 관습적인 추억이 심어놓은 저 기억의 가증스러운 허구성이라니!)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옆구리 푹푹을 입에 올렸다가 호된 매를 맞았다. 이것 역시 기억에 흐릿하다. 난 기억을 믿을 수가 없다. 믿을 수 없는 그 기억이 나에게 끊임없이 퍼올리고 있는 과거는 매우 거추장스럽다.

그들은 장래에 대한 약속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과거와 기억에 대한 배반을 상정하고 통정을 해도 했을 것이다. 배반을 하더라도 그것을 배반이라 말하지 말자고,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어도 그들은 이미 알았을 것이다. 배반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에는 없지만 싸락싸락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마당에 떨어지고 있었다는 영상이 아버지의 어깨 뒤로 펼쳐 있다. 우리는 4남 1녀로 총 일곱 식구였다. 누나가 맏이였고, 그 밑으로 남동생이 넷이었다. 나는 누나와 띠동갑 막내였다.

누나는 고등학교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무렵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가출을 했다. 누나의 가출은 희생정신과 낭만주의의 결합이라고 나는 추억하고 있지만 누나가 당대의 전 인생을 걸었다는 점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가출의 명분은 돈이었다. 돈을 벌어야 해. 아버지 봉급으로 너희들(남동생들)을 대학까지 가르칠 수 없잖아.

행랑채 기왓장 위로 대추알이 도르르 굴러 떨어지던 어느 날 오후 외동딸이 집안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한 아버지는 아내와 아들들이 있는 자리에서 거의 독백에 가까운 어조의 단 한마디로 자신의 심정을 압축했다. 못된 년, 멕여도 내가 멕이고 굶겨도 내가 굶겨. 지깐년이 뭘하겠다고.

누나는 대전으로 갔다고 했다. 대전에는 먼 일가가 조그만 방직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곳에 가서 취직을 부탁했을 것이라는 게 어머니와 큰형이 수집한 정보였다. 아버지는 오버코트를 몸에 두르고 중절모를 꺼내 쓰셨다. 평소에는 잘 입지 않던 옷이었다.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 옷이었다. 아버지가 차비를 챙기고 검정색 구두를 싣고 나무로 만든 대문을 열고 나갈 때 그 곳까지 따라간 어머니가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라고 말했으나 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고 휑하니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골목을 빠져나가는 아버지의 등은 무척 많은 대답과 질책을 하고 있었다. 당신, 딸년 하나 간수 못해서 어찌 집안 살림을 한다 하시오? 이게 얼마나 낯부끄러운 집안 망신이고 동네 망신인지 알기나 하시오? 만에 하나 그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지기라도 했으면 어쩔 것이오? 아니 긴 말 할 것도 없소 다 내 탓이오.

아버지는 내가 상상으로 꾸며낸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말을 길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꼭 필요한 말의 절반만 하셨다. 나머지 절반은 상대편이 유추하면 됐다.

아버지를 보내고 대문을 잠그고 들어오다가 어머니는 마당 한가운데 우물 옆에 있던 대추나무 가지를 손으로 붙잡았다. 이미 잎을 모두 떨구고 서 있는 대추나무를 붙잡고 어머니는 뭐라고 중얼거렸다. 마루에 서서 물끄러미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막내를 의식했는지 어머니는 잿빛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그때 어머니가 눈으로 눈물을 삼키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 날 눈이 왔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눈이 내린 게 그 다음날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하룻밤을 주무시고 돌아오셨다. 해거름이었다. 초겨울이나 늦가을, 그러니까 그해 11월 하순쯤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물론이고 형들도 겉으론 아무런 동요 없이 그날 주어진 일정표 대로 자신들의 생활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온몸에 붙은 모든 신경다발은 대문에 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대문이 소리나게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그 뒤를 죄인처럼 손목을 잡힌 누나와 함께 걸어 들어오셨다.

대문 소리에 방에서 형들이 뛰쳐나온 것보다 부엌에서 저녁을 짓던 어머니가 더 빨리 마당으로 돌아 나왔다. 한동안 말이 없는 무성영화 같은 장면이 이어졌다. 형제들은 평소처럼 아버지 오셨습니까,라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 아들들과 아내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딸의 손목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토방 위에 아버지가 벗어놓은 구두도,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며 누나가 벗어놓은 운동화도 겉모양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으나, 신발의 분위기는 참 가지런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일이 잘 마무리되겠구나라는 마음이 가득 피어올랐다.

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에는 없지만, 밥을 짓기 위해 불을 땐 방안은 훈기가 돌았다. 어머니와 형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마무리’를 보기 위해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누나의 볼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행색은 그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는 딸의 손목을 마치 뿌리치듯 하면서 아랫목에 앉혔다. 그리고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네 이년, 넌 이제 내 딸이 아니다. 나가라. 집에서 썩 나가.

말하자면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문학을 느꼈다. 아하,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밤새 고생을 해서 데려온 딸을, 차가운 바깥바람에 퉁퉁해진 얼굴을 녹이라고 아랫목에 앉히면서까지 속마음을 숨기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문학이구나.

실컷 데려온 딸에게 이제 이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치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셰익스피어였다. 네 이년, 넌 이제 내 딸이 아니다. 나가라. 집에서 썩 나가. 그 말을 듣고 있었던 누나의 동생들과 어머니의 마음은 점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조마조마 졸여왔던 마음의 먹줄을 튕길 필요 없이 그냥 천천히 먹통에 되감으면 될 것이었다. 누나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집을 나가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며, 어머니는 다시 머릿수건을 쓰고 부엌으로 들어가 아무 말 없이 저녁을 지을 것이며, 누나도 안방 아랫목에서 잠시 몸을 녹인 후에 행랑채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옮겨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상차림을 도울 것이다.

그 날 잠시라도 집을 나간 사람은 다름아니라 아버지였다.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친 다음, 딸과 아들들과 아내가 동작 그만! 이라는 군대식 명령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 멈춘 상태로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을 두어 호흡의 시간 동안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가셨으며, 다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다. 틀림없이 아버지는 오늘 저녁에도 ‘옆구리 푹푹’ 집에 가서 몇 잔을 기울일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문학이 에필로그를 쓰는 방법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 에필로그를 집안 식구들은 들을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단 나만 빼놓고 말이다. 나는 식구들이 식사를 마친 후 어머니의 명령을 받을 것이다. 가서 아버지를 모셔 오너라. 나는 그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하듯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나 밖으로 나갈 것이다. 평소 같으면, 왜 만날 나만 보내는 것이냐, 형들도 있지 않으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어머니의 명령을 늦추거나 뒤집으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지만, 그날 저녁은 달랐다. 나는 한달음에 아버지가 계신 술청으로 가서 아버지의 동태를 살폈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서 몇 마디를 얻어들었을 술집 여인의 푸념 섞인 타령들을 통해 아버지 문학의 에필로그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튼 11월이었다.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 보는 서글픈 이 밤 노랫가락은 술청을 채우고 있고 아버지는 고개를 반쯤 기울인 채 말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전생애를 통해 단 한번도 무능한 적이 없으셨다. 언제나 꼿꼿하셨고, 언제나 부지런하셨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셨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어려운 일을 울러메셨다. 콧날은 늘 서늘하셨고, 턱수염이 검어지도록 내버려두는 법이 없으셨다.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적당한 각도로 이마를 숙이시고 항상 생각을 하셨다.

그런데도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로 하여금 가출을 결심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시절을 큰 걸음으로 앞질러 걷고 싶은 욕망이었을까? 처자식들에게 안분지족을 가르치지 못한 회한이 엄습하고 있었을까? 요동치는 격변의 1960년대에 나이 40대 중반을 넘기고 계셨던 아버지는 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집을 나간 큰딸을 찾으러 낯선 도시의 기차 정거장에 내려섰을 때 가슴에 와 닿았던 11월 하순의 찬바람이 얼마나 시려우셨을까?

나는 물론이었고 형들까지 합세한 우리는, 아니 어머니까지도 초미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큰누나를 찾아낸 그 전날 밤부터 그 다음날 오전, 그리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 두 사람은 도대체 무슨 대화를 했을까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문학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해질 무렵 돌아온 아버지가 누나를 아랫목에 팽개치듯 하면서 ‘썩 집을 나가라’고 하신 분위기가 다소 과장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버지는 누나를 찾아내자마자 위아래 옷차림과 얼굴 표정을 살폈을 것이고, 근처에 있는 여관에나 들어가 방을 잡았을 것이며, 다시 누나를 데리고 어떤 음식점에라도 가서 우선 뭣이라도 먹였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얘기는 아니더라도 다소간 몇 마디의 말씀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누나의 일기를 뒤졌다. 우리 형제들은 누나가 그 무렵 일기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간혹 그 세계를 훔쳐보기 위해 특공조特功組를 조직하곤 했었다. 조금 조심스럽긴 했으나, 우리 형제들보다 훨씬 성숙해져버린 누나의 새로운 세계를 알기 위해서라도 낯선 도시에서의 며칠, 그리고 아버지와 1박 2일을 보내면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세밀한 행적조사가 필요했다. 누나가 손때를 묻힌 ≪말테의 수기≫에 어떤 쪽지글 같은 것을 남겨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둘째형의 코치에 따라 행동대원인 내가 이것저것 들춰보았지만 끝내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어머니 나름으로 부엌에서 여러 가지 작전을 세워 누나의 입을 열어보려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그럴수록 우리는 점점 상상의 나래만 퍼득일 수밖에 없었고, 안달이 나서 못 견딜 지경이 돼갔으나, 어떤 고비를 넘으니 희한하게도 점차 시들해졌다. 철딱서니없는 사내들이란 그랬다.

그 때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머리 풀고 슬피 울던 시집간 누나의 독백에서 어떤 단서를 찾으려 해보았으나 그나마도 실패하고 말았다. 누나가 독백처럼 몇 마디 말을 했으나 워낙 설움이 큰 상태에서 눈물까지 어룽진 딸꾹질 발음이었기 때문에 알아듣기엔 너무 불명확했다.

이제 또 11월이 오고 있다. 11월만 오면 아버지의 문학이 생각나서 가슴이 감전된 듯 느닷없는 전압을 느끼곤 하지만, 누나는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다만 내가 이제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됐다.

만약 내 큰아들이 집안을 건사한다는 명목으로 가출을 한다면, 나도 그 아이를 찾으러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를 찾아낸 순간, 말에 앞서 그 아이의 행색을 살필 것이다. 눈동자는 여전히 맑은지, 그리고 이마는 여전히 거만하지도 비겁하지도 않은 각도로 사색에 잠겨 있는지를 확인하고 일단은 안도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제는 누나를 설득해서 그 날의 대화를 털어놓게 한다는 것이 왠지 부당한 요구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저 내 큰아이가 가출했다가 다시 돌아오게 됐을 때 그 아이에게 나는 무슨 말을 들려줄 것인지, 내 가슴에 물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내 가슴에서 우러난 그 말이 아버지가 누나에게 했던 말과 똑 닮지 않았을까 짐작하며 ‘11월이면 대추나무에서 들려온다는’ 집안의 전설을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만약 올 11월 하순에 눈이라도 뿌린다면, 누나에게 대전행 열차 여행을 제안해볼까 생각중이다. 그 때 눈이 왔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엔 없다. 그보다 난 기억을 믿지 않는다. 기억도 날 믿지 않을 것이다.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는 서로 배반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기억이 날 배반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지난 사십 몇 년 간의 세월을 지내온 것으로 믿어지는 기억의 총합이겠지만 그 기억은 언제든 나를 배반할 준비가 돼 있었다. 한때 사랑했던 기억도, 절망했던 기억도 청회색 살의殺意의 기억도 매우 불분명한 형태로 나를 따라오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에 없다. 다만 파편화되고 변색된 기억 조각들의 축조물 위에 배반을 게임처럼 설정하고 사귄 관계는 결코 배반의 쓰라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만 남아 있다. 얼핏 말장난 같지만 우리 선대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령, 내가 어렸을 때 술청에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가 주모가 아버지 앞에서 이런 육자배기를 털어놓는 과정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푹푹 질렀나 네가 먼저 살자고 엉덩이 팍팍 질렀지.

코흘리개(나는 사실은 코를 흘리고 다닌 적이 없다. 집단 무의식이나 관습적인 추억이 심어놓은 저 기억의 가증스러운 허구성이라니!)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옆구리 푹푹을 입에 올렸다가 호된 매를 맞았다. 이것 역시 기억에 흐릿하다. 난 기억을 믿을 수가 없다. 믿을 수 없는 그 기억이 나에게 끊임없이 퍼올리고 있는 과거는 매우 거추장스럽다.

그들은 장래에 대한 약속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과거와 기억에 대한 배반을 상정하고 통정을 해도 했을 것이다. 배반을 하더라도 그것을 배반이라 말하지 말자고,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어도 그들은 이미 알았을 것이다. 배반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에는 없지만 싸락싸락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마당에 떨어지고 있었다는 영상이 아버지의 어깨 뒤로 펼쳐 있다. 우리는 4남 1녀로 총 일곱 식구였다. 누나가 맏이였고, 그 밑으로 남동생이 넷이었다. 나는 누나와 띠동갑 막내였다.

누나는 고등학교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무렵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가출을 했다. 누나의 가출은 희생정신과 낭만주의의 결합이라고 나는 추억하고 있지만 누나가 당대의 전 인생을 걸었다는 점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가출의 명분은 돈이었다. 돈을 벌어야 해. 아버지 봉급으로 너희들(남동생들)을 대학까지 가르칠 수 없잖아.

행랑채 기왓장 위로 대추알이 도르르 굴러 떨어지던 어느 날 오후 외동딸이 집안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한 아버지는 아내와 아들들이 있는 자리에서 거의 독백에 가까운 어조의 단 한마디로 자신의 심정을 압축했다. 못된 년, 멕여도 내가 멕이고 굶겨도 내가 굶겨. 지깐년이 뭘하겠다고.

누나는 대전으로 갔다고 했다. 대전에는 먼 일가가 조그만 방직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곳에 가서 취직을 부탁했을 것이라는 게 어머니와 큰형이 수집한 정보였다. 아버지는 오버코트를 몸에 두르고 중절모를 꺼내 쓰셨다. 평소에는 잘 입지 않던 옷이었다.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 옷이었다. 아버지가 차비를 챙기고 검정색 구두를 싣고 나무로 만든 대문을 열고 나갈 때 그 곳까지 따라간 어머니가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라고 말했으나 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고 휑하니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골목을 빠져나가는 아버지의 등은 무척 많은 대답과 질책을 하고 있었다. 당신, 딸년 하나 간수 못해서 어찌 집안 살림을 한다 하시오? 이게 얼마나 낯부끄러운 집안 망신이고 동네 망신인지 알기나 하시오? 만에 하나 그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지기라도 했으면 어쩔 것이오? 아니 긴 말 할 것도 없소 다 내 탓이오.

아버지는 내가 상상으로 꾸며낸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말을 길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꼭 필요한 말의 절반만 하셨다. 나머지 절반은 상대편이 유추하면 됐다.

아버지를 보내고 대문을 잠그고 들어오다가 어머니는 마당 한가운데 우물 옆에 있던 대추나무 가지를 손으로 붙잡았다. 이미 잎을 모두 떨구고 서 있는 대추나무를 붙잡고 어머니는 뭐라고 중얼거렸다. 마루에 서서 물끄러미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막내를 의식했는지 어머니는 잿빛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그때 어머니가 눈으로 눈물을 삼키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 날 눈이 왔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눈이 내린 게 그 다음날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하룻밤을 주무시고 돌아오셨다. 해거름이었다. 초겨울이나 늦가을, 그러니까 그해 11월 하순쯤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물론이고 형들도 겉으론 아무런 동요 없이 그날 주어진 일정표 대로 자신들의 생활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온몸에 붙은 모든 신경다발은 대문에 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대문이 소리나게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그 뒤를 죄인처럼 손목을 잡힌 누나와 함께 걸어 들어오셨다.

대문 소리에 방에서 형들이 뛰쳐나온 것보다 부엌에서 저녁을 짓던 어머니가 더 빨리 마당으로 돌아 나왔다. 한동안 말이 없는 무성영화 같은 장면이 이어졌다. 형제들은 평소처럼 아버지 오셨습니까,라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 아들들과 아내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딸의 손목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토방 위에 아버지가 벗어놓은 구두도,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며 누나가 벗어놓은 운동화도 겉모양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으나, 신발의 분위기는 참 가지런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일이 잘 마무리되겠구나라는 마음이 가득 피어올랐다.

그 날 눈이 왔던가 기억에는 없지만, 밥을 짓기 위해 불을 땐 방안은 훈기가 돌았다. 어머니와 형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마무리’를 보기 위해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누나의 볼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행색은 그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는 딸의 손목을 마치 뿌리치듯 하면서 아랫목에 앉혔다. 그리고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네 이년, 넌 이제 내 딸이 아니다. 나가라. 집에서 썩 나가.

말하자면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문학을 느꼈다. 아하,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밤새 고생을 해서 데려온 딸을, 차가운 바깥바람에 퉁퉁해진 얼굴을 녹이라고 아랫목에 앉히면서까지 속마음을 숨기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문학이구나.

실컷 데려온 딸에게 이제 이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치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셰익스피어였다. 네 이년, 넌 이제 내 딸이 아니다. 나가라. 집에서 썩 나가. 그 말을 듣고 있었던 누나의 동생들과 어머니의 마음은 점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조마조마 졸여왔던 마음의 먹줄을 튕길 필요 없이 그냥 천천히 먹통에 되감으면 될 것이었다. 누나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집을 나가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며, 어머니는 다시 머릿수건을 쓰고 부엌으로 들어가 아무 말 없이 저녁을 지을 것이며, 누나도 안방 아랫목에서 잠시 몸을 녹인 후에 행랑채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옮겨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상차림을 도울 것이다.

그 날 잠시라도 집을 나간 사람은 다름아니라 아버지였다.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친 다음, 딸과 아들들과 아내가 동작 그만! 이라는 군대식 명령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 멈춘 상태로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을 두어 호흡의 시간 동안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가셨으며, 다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다. 틀림없이 아버지는 오늘 저녁에도 ‘옆구리 푹푹’ 집에 가서 몇 잔을 기울일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문학이 에필로그를 쓰는 방법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 에필로그를 집안 식구들은 들을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단 나만 빼놓고 말이다. 나는 식구들이 식사를 마친 후 어머니의 명령을 받을 것이다. 가서 아버지를 모셔 오너라. 나는 그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하듯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나 밖으로 나갈 것이다. 평소 같으면, 왜 만날 나만 보내는 것이냐, 형들도 있지 않으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어머니의 명령을 늦추거나 뒤집으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지만, 그날 저녁은 달랐다. 나는 한달음에 아버지가 계신 술청으로 가서 아버지의 동태를 살폈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서 몇 마디를 얻어들었을 술집 여인의 푸념 섞인 타령들을 통해 아버지 문학의 에필로그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튼 11월이었다.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 보는 서글픈 이 밤 노랫가락은 술청을 채우고 있고 아버지는 고개를 반쯤 기울인 채 말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전생애를 통해 단 한번도 무능한 적이 없으셨다. 언제나 꼿꼿하셨고, 언제나 부지런하셨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셨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어려운 일을 울러메셨다. 콧날은 늘 서늘하셨고, 턱수염이 검어지도록 내버려두는 법이 없으셨다.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적당한 각도로 이마를 숙이시고 항상 생각을 하셨다.

그런데도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로 하여금 가출을 결심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시절을 큰 걸음으로 앞질러 걷고 싶은 욕망이었을까? 처자식들에게 안분지족을 가르치지 못한 회한이 엄습하고 있었을까? 요동치는 격변의 1960년대에 나이 40대 중반을 넘기고 계셨던 아버지는 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집을 나간 큰딸을 찾으러 낯선 도시의 기차 정거장에 내려섰을 때 가슴에 와 닿았던 11월 하순의 찬바람이 얼마나 시려우셨을까?

나는 물론이었고 형들까지 합세한 우리는, 아니 어머니까지도 초미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큰누나를 찾아낸 그 전날 밤부터 그 다음날 오전, 그리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 두 사람은 도대체 무슨 대화를 했을까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문학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해질 무렵 돌아온 아버지가 누나를 아랫목에 팽개치듯 하면서 ‘썩 집을 나가라’고 하신 분위기가 다소 과장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버지는 누나를 찾아내자마자 위아래 옷차림과 얼굴 표정을 살폈을 것이고, 근처에 있는 여관에나 들어가 방을 잡았을 것이며, 다시 누나를 데리고 어떤 음식점에라도 가서 우선 뭣이라도 먹였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얘기는 아니더라도 다소간 몇 마디의 말씀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누나의 일기를 뒤졌다. 우리 형제들은 누나가 그 무렵 일기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간혹 그 세계를 훔쳐보기 위해 특공조特功組를 조직하곤 했었다. 조금 조심스럽긴 했으나, 우리 형제들보다 훨씬 성숙해져버린 누나의 새로운 세계를 알기 위해서라도 낯선 도시에서의 며칠, 그리고 아버지와 1박 2일을 보내면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세밀한 행적조사가 필요했다. 누나가 손때를 묻힌 ≪말테의 수기≫에 어떤 쪽지글 같은 것을 남겨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둘째형의 코치에 따라 행동대원인 내가 이것저것 들춰보았지만 끝내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어머니 나름으로 부엌에서 여러 가지 작전을 세워 누나의 입을 열어보려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그럴수록 우리는 점점 상상의 나래만 퍼득일 수밖에 없었고, 안달이 나서 못 견딜 지경이 돼갔으나, 어떤 고비를 넘으니 희한하게도 점차 시들해졌다. 철딱서니없는 사내들이란 그랬다.

그 때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머리 풀고 슬피 울던 시집간 누나의 독백에서 어떤 단서를 찾으려 해보았으나 그나마도 실패하고 말았다. 누나가 독백처럼 몇 마디 말을 했으나 워낙 설움이 큰 상태에서 눈물까지 어룽진 딸꾹질 발음이었기 때문에 알아듣기엔 너무 불명확했다.

이제 또 11월이 오고 있다. 11월만 오면 아버지의 문학이 생각나서 가슴이 감전된 듯 느닷없는 전압을 느끼곤 하지만, 누나는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다만 내가 이제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됐다.

만약 내 큰아들이 집안을 건사한다는 명목으로 가출을 한다면, 나도 그 아이를 찾으러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를 찾아낸 순간, 말에 앞서 그 아이의 행색을 살필 것이다. 눈동자는 여전히 맑은지, 그리고 이마는 여전히 거만하지도 비겁하지도 않은 각도로 사색에 잠겨 있는지를 확인하고 일단은 안도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제는 누나를 설득해서 그 날의 대화를 털어놓게 한다는 것이 왠지 부당한 요구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저 내 큰아이가 가출했다가 다시 돌아오게 됐을 때 그 아이에게 나는 무슨 말을 들려줄 것인지, 내 가슴에 물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내 가슴에서 우러난 그 말이 아버지가 누나에게 했던 말과 똑 닮지 않았을까 짐작하며 ‘11월이면 대추나무에서 들려온다는’ 집안의 전설을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만약 올 11월 하순에 눈이라도 뿌린다면, 누나에게 대전행 열차 여행을 제안해볼까 생각중이다. 그 때 눈이 왔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읽어볼 만한 글쓰기 관련 책들

1. 고종석 <국어의 풍경들>(문학과 지성사, 2004년, 6쇄)

2. 고종석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알마, 2014)

3. 고종석 <신화와 역사가 있는 7일간의 영어여행>(한겨레신문사, 1998)

4. 고종석 <고종석의 문장>(알마, 2014)

5. 김경원`김철호 <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낱말편1) 유토피아, 2010년

6. 김경원`김철호 <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낱말편2)

7.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문장편)

8. 김철호 <국어독립만세>(유토피아)

9. 안정효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10. 정희모, 이재성 <글쓰기의 전략>(들녘)

11. 루츠 폰 베르더 등저 <교양인이 되기 위한 즐거운 글쓰기>(들녘)

12. 김남미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나무의 철학, 2013)

13. 셰퍼드 코미나스 <치유의 글쓰기>(홍익출판사, 2008)

14. 이태준 <문장강화>(창비, 2005)

15. 이오덕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보림)

16. 사이토 다카시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루비박스)

17.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18. 나탈리 골드버그 <버리는 글쓰기>

19. 김탁환 <김탁환의 천년습작>

20. 이윤기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웅진지식하우스, 2013)

21. 이강룡 <번역자를 위한 우리글 공부>(유유, 2014)

22.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공부하는 삶>(유유, 2013)

23. 김영수 <일일일구>(유유, 2013)

24. 아이작 아시모프 <신화 속으로 떠나는 언어여행>(웅진)

25. 쇼펜하우어 <문장론>(지훈)

26.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27.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2013)

28. 남경태 <개념어 사전>(들녘)

29. 최준영 <결핍을 즐겨라>(추수밭, 2012)

30. 최준영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이지북, 2013)

31. 최준영 <유쾌한 420자 인문학>(이룸나무, 2011)

32. 베르나르 키리니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문학동네, 2013)

33. 쓰루가야 신이치 <책을 읽고 양을 잃다>(이순)

34. 메러디스 매런 <잘 쓰려고 하지마라>(생각의길, 2013)

35. 파리리뷰 인터뷰 <작가란 무엇인가>(다른)

36.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김영사, 2002)
스토리에 빠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글쓰기를 ‘연장통’에 비유하면서 글을 잘 쓰려면 연장을 골고루 갖추고 그것을 들 수 있는 팔심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토리에서 출발해 주제로 나아가라.’ ‘지옥 가는 길은 수동태와 부사로 뒤덮여 있다.’ ‘글은 쓰고 나서 10%쯤 줄여라.’ 이 책을 읽고 나면 글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돌베개, 2007)
글쓰기 고전답게 인상적인 대목이 많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많은 글을 접하고 자기 글을 많이 써보는 게 정답이다.’ ‘첫 문장을 읽고 그 다음이 궁금하지 않으면 죽은 글이다.’ ‘초고가 완벽하지 않을 확률은 100퍼센트에 가깝다.’ ‘문장에 문제가 있을 때 그 부분을 빼버리기만 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글 고치기 전략』 (장하늘, 다산초당, 2006)
처음부터 잘 쓴 글은 없고, 잘 고친 글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책. 퇴고의 정석이라 할 만한다. △많은 생각이 담긴 문단 △여기저기 박혀 있는 접속어 △지루하게 반복되는 어휘 △애매한 지시어 △겹치는 조사 △군살 붙은 문장 △힘없이 긴 문장 △국적 없는 번역체 표현 △한자어 추상접미사 ~적, ~화, ~성은 고치기 대상이다.

『글쓰기 훈련소』 (임정섭, 경향미디어, 2009)
기본기 익히기에 적합한 실용적인 책. 멋진 글 대신 쉬운 글, 감상 대신 줄거리, 거창한 것 대신 일상, 장문 대신 단문을 쓰자고 제안한다. 중복 불가, 과잉 수식과 수사 금지, 불필요한 말의 축약 법칙도 소개돼 있다. 글쓰기 방법으로 P(포인트)-O(아웃라인)-I(배경 정보, 근거)-N(뉴스, 사례)-T(생각, 느낌, 의견)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 글 바로쓰기』 (이오덕, 한길사, 2009)
유시민 전 장관이 글쓰기 강연할 때마다 언급하는 책. 중국어와 일본어에 오염되어 있는 말과 글을 보기를 들어 바로 잡아준다. ‘경험한 일을 솔직하고 쉽게 멋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쓴 글이 좋은 글’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전 5권으로 되어 있다.

『글쓰기의 전략』 (정희모·이재성, 들녘, 2005)
글쓰기 교재에 가깝다. 발상에서부터 구성, 서두, 결말 쓰기 방법을 좋은 예문을 들어 설명한다. 기본전략으로 △초고는 가볍게 작성 △상세한 개요 △첫 문장 준비 △앞 문장 읽어가며 쓰기 △발상과 개요작성 때 가졌던 감각 유지 △좋은 글 참고를 제시.

『하버드 글쓰기 강의』 (바버라 베이그, 에쎄, 2011)
약간 원론적인 글쓰기 매뉴얼 같은 책이다. 할 말을 찾아내는 핵심 기술로 ‘프리라이팅(마음가는대로 쓰기)’이 눈길을 끈다. 편한 마음으로 아무런 부담 없이 10분간 써보라는 것. 글쓰기에는 네 가지가 필요하다. △담길 내용 찾기 △독자 헤아리기 △장르나 형식 정하기 △내 마음속 생각을 독자 마음에 넣기 위한 언어사용 능력이다.
 
『문장강화』 (이태준, 창비, 2005)
크게 도움은 안 되지만 한번쯤 읽어야 할 글쓰기 교본. ‘시는 지용, 문장은 태준’이란 말 대로 촌철살인의 문장이 돋보인다. ‘마음과 생각과 감정에 가까운 것은 말이니 글을 죽이고 말을 살려야 한다.’ ‘언어는 철두철미 생활용품이다.’ ‘문체란 사회적인 언어를 개인적이게 쓰는 것이다.’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서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한문화, 2013)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라고 규정한다. 문법에 얽매이거나 편집하고 생각하고 마음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손을 움직이며 더 깊이 파고들라고 한다. 자기 안에 흐르고 있는 내면의 소리를 말하지 말고 생생하게 보여주라 한다. 이를 위해 첫 생각을 밀고 나가라, 시간을 정해 멈추지 말고 써라, 한계를 넘어 계속 밀어붙이라고 조언한다.
 

 

엄마 그립습니다.

수도국산 송현동 집에서 빨래하는 모습을 그대로 그린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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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글:  이기철

 

 

 

 

잎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 져야 한다,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 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 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 갈때

하루는 또 한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 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 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 할때 하루는 들판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 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 가고 싶다,

 

떨어져도 향기로운 꽃잎에 말로

내가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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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주어가 변주하다: 주어

1. 숨은 주어를 찾아라(글쓰기의 비법은 주어 찾기 이다.).

 1) 간접 인용문은 직접인용문으로 바꾸면 문장을 정확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일본 문화의 진수가 여기에 다 있다고 말했다. ->간접인용문

 -  "일본 문호의 진수가 여기에 다 있다"라고 말했다 ->직접인용문

 2) 주어가 없다. 예문에 격 조사 '으로'가 부자연스럽게 사용되어 모호한 문장이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사찰이 13곳, 신사가 3곳, 성이 1곳으로 모두 17곳이나 된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교토에서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곳은 사찰 13곳, 신사3곳, 성1곳 등 모두 17곳이다.

           
2. 대명사나 지시어는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명시하라

 3. 이중 주어는 가능한 피하라

  ‣'되다'나 '아니다' 앞에 오는 어절은 주어가 아니라 보어다.

   ‣ "늙은이들은 뒷간 출입이 잦아진다."

  ‣ "늙은이들은 뒷간에 자주 출입한다."로 고친다.

2장 서술어와 함께 살다!:서술어

 4. 주어는 서술어와 호응해야 한다.

 5. 부사어도 서술어와 호응해야 한다.

  -함으로서는 영어식 표현이다. ~해로 바꾸는 게 좋다.

 6. 목적어도 서술어와 호응해야 한다. :목적어가 두개 이상이면 목적어마다 어울리는 서술어가 있는지 확인하라

7. 가능한 한 피동문은 능동문으로 바꾸어라

 - 피동문은 다음 두 가지 경우에 흔히 쓰인다.

  ‣ 행위의 주체가 불분명할 때다.

  ‣ 행위의 주체를 감추고 싶거나 책임을 피하고 싶을 때다.

3장 부사를 사랑하다! : 부사

8. 형용사는 부사로, 명사는 동사로 풀어주라

- 우리말은 동사와 부사가 발달했으므로 형용사는 부사로, 명사는 동사로 바꾸어ㅆ고 사물 주어는 부사어로 바꾼다.

  9. 꾸미는 말은 꾸밈을 받는 말 바로 앞에 두라

 - 문장부사는 문장전체를 꾸미는 부사다. 화자의 태도를 나타내는 양태 부사와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을 이어 주는 접속어로 나뉜다. 양태부사로는 '과연', '설마', '제발', '정말', '결코', '모름지기', '응당', '어찌', '아마', '정녕', '아무쪼록', '하물며'등이 있다. 접속어로는 '그리고', '그러나', '그러므로', '즉', '곧', '및', '혹은', '또는'등이 있다.

10. 사물주어는 부사어로 바꾸어라

 - 입간판이 오른쪽으로 화살표를 해 놓고 있다.

 - 입간판에는 오른쪽으로 향하는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다.

4장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장의 행진!: 연결 어미, 접속어

 11. 연결어미'-고'와 '-며'를 구별하라

   - '-며'는 두 가지 이상의 동작이나 상태 따위를 나열할 때 쓰는 연결 어미이다. 일반적으로 '-고'는 유사한 요소를 나열할 때 사용하고 '-며'는 다른 성격의 내용을 연결할 때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12 -고'와 '-는데'를 구별하라:

 - 고는 유사한 요소를 나열할 때 사용하고 '-는데' 는 앞의 내용을 뒤에서 부가적으로 설명할 때 사용한다. '-는데' 앞에는 상황이 미리 설정되고 뒤에서 앞의 말을 받거나 지시어를 사용할 때는 숨을 고르는 의미에서 는데 뒤에 쉼표를 붙여주는게 좋다.

 13. 접속어를 남용하지 말라.

-안 써도 되는 문장이면 접속어를 빼라. 그러나는 앞뒤 내용이 상반될 때 쓰는 접속어다. 비슷한 단어로 하지만이 있다. 하지만은 서로 일치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엄격히 말해 이 세상에는 완전히 상반되는 경우가 없으므로 그러나 대신 하지만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논리적으로도 그러나 보다 완화된 의미의 하지만이 바람직하다. 가능한 대명사 사용도 절제하라. 지시 대명사를 구체적으로 쓰면 접속사 '그러나'를 쓸 필요가 없다.

14. 문맥, 리듬, 지시어, 보조사는 문장을 잇는 역할을 한다.

-접속사로 인하여 글의 리듬과 속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그리고' 와 같은 접속어는 논리적으로도 절제해야 한다. 세상에는 완전한 역접이나 순접관계는 없기 때문에 지시어나 이미 언급된 어구가 나올 때도 접속사 사용을 자제하라 '은, 는, 도, 만, 까지, 마저, 조차, 부터'와 같은 보조사는 명사, 부사, 활용 어미 등에 붙어 특별한 의미를 더해 주기 때문에 문장 맨 앞에 접속어가 있으면 오히려 어색하다. 보조사의 용법을 잘 알아두자 보조사는 주어. 목적어. 보어에 어떤 뜻을 더해 준다. 부사어 서술어와 결합하여 특별한 의미를 첨가하기도 한다. 보조사는 우리말이 가진 특장점이다.

5장 일사불란하게 정렬하라! :대구

15. 연결어미 앞뒤는 대구를 이루게 하라

- 대등적 연결어미는 고, (으)며, -(으)나' 등이 있다. 종속적 연결 어미는 -니(이유), -면(조건), -려(의도)등이 있다. 이어진 문장에서 능동형과 피동형을 연이어 쓰거나 사람과 사람주어를 연이어 쓰는 것을 피해야 한다. 가장 좋은 퇴고 방법은 주어와 서술어를 확인하는 것이다.

16. 열거하거나 비교하는 요소는 대구를 이루게 하라: 단어를 열거할 때는 단어의 특성이 같아야 하고, 구나 절을 열거할 ㄹ때는 구나 절의 구조가 같아야 한다. 문장균형이 잡혀야 한다.

6장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문장! : 문장 분리

17. '-고' 앞뒤의 문장 구조가 다르면 분리하라:

-고 앞뒤의 문장 구조가 다르면 분리하라 홑문장+고+겹문장, 겹문장+고 홑문장, 두 번 이상 이루어지는 겹문자는 대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복잡해지므로 문장을 분리하라. 또한 , 도 등이 -고 뒤에 올 때는 문장을 나누는 게 자연스럽다. ‘또한’이나 ‘도’는 접속어나 연결 어미 없이도 자체적으로 문장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한기 때문이다. 답사의 초심자라는 글에서 의는 없어도 되는 경우이므로 답사 초심자로 바꿔도 된다.

18 복잡하게 이어진 겹문장은 분리하라: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개념을 담는 것이 좋다. 합친 문장은 조건을 의미하는 연결 어미 -면으로 이어져 있다. 이것은 앞 절과 뒤 절이 이유.조건.의도.결과.전화등을 의미하는 종속적 연결어미로 된 문장을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이라고 한다. 고나 '며'로 이어진 문장은 대등하게 이어진 문장이다. 서로 이어지거나 하나의 문장이 다른 문장 속에 안겨 여러 겹으로 된 문장을 겹문자이라고 한다. 겹문장에 안긴문장에는 명사절, 관형사절, 부사절, 서술절, 인용절이 있다. 우리말에는 문장을 만드는 여섯 가지 기본 틀이 있다. 홑문장, 대등하게 이어진 문장, 명사절 안긴 문장, 관형절 안긴 문장, 부사절 안긴 문장, 인용절 안긴 문장 등이다. 홑문장으로 글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겹문장을 쓰는데 글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홑문장을 이어주는 것이 좋다.

19. 복잡한 관형절은 부사절로 바꾸거나 두 문장으로 나누어라:

- 관형어의 관은 왕관의 관 같은 글자이고 형은 형용사의 형과 같은 글자이다. 아름다운 소녀, 저 소녀, 소녀 시대‘에서 ’아름다운, 저 소녀‘가 관형어 이다. 저 모든, 새는 ㅎ관형사라고 한다. “철수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에서 '철수가 온다'는 관형절이다.  관형절이 길거나 부자연스러우면 부사절로 바꾸거나 문장을 나누는 것이 맞다. 냉철한 대응을 하다-> 냉철하게 대응하다가 더 자연스럽다. 연결어미 고 뒤에는 대등한 내용이 와야 한다. 앞의 주어가 사물이면 뒤어 주어도 사물이어야 한다.

7장 떠나보내는 것을 아쉬워 말라! :

20. 군더더기 표현을 절제하라:

 -군더더기 중복: 꼭 필요하지 않은 형용사나 부사도 생각의 흐름에 방해가 되면 없애는 게 좋다. ~것 같다는 아마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이유로”는 생략하고 ‘으므로’를 붙인다. ‘~만해도’와 ‘~이란 데서’는 있으나 마나한 말이다. 속도감을 떨어뜨리므로 삼가는 것이 좋다 (글에는) 최종 목표인 주제(메세지)가 있어야 한다. 주제가 두 문장에 공통으로 들어가면 '따라서'라는 접속사는 필요 없다. '따라서'는 는 이유나 근거를 나타내는 접속어이다. 이에 맞지 않으면 이를 위해로 고친다. 없어도 되는 표현은 삭제하라. 따라서는 이유나 근거를 나타내는데 애매한 경우 '이를위해'로 고쳐야 한다. 문장이 잘 흘러가려면 능동문을 쓰는 게 좋다.

21. 중복 표현을 피하라

8장 논리야, 놀자! :논리

22. 논리적으로 등식이 성립하는지 확인하라:

 'A는 B다'에서 A와 B는 긴밀히 관련되어 있어 근본적이 뜻이나 중요함에서 서로 같음을 의미한다. 잘못된 등식관계는 피해야 한다.  교문=약자(x), ㄱ ㅅ ㄷ=약자 (0), 몸 전체=응결(x), 시기=지금(x)->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 피어나고 있다. 시가를 맞고 있는 것이다. 로 바꾼다. '시기는 기간을 의미하고 '지금'은 시간의 한 지점을 뜻한다.  이책=이야기(x)->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변경

23.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확인하라:

글을 쓸 때 생각이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앞의 표현과 뒤의 표현이 달라지는 경우가 나온다. 비논리적인 표현이나 사실과 다른 내용도 흔히 쓰게 된다. 내용오류에 해당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대구를 이룬 문장은 안정감을 준다. 명사+의(조사_+명사는 영어의 영향을 받은 경직된 표현이다.

24. 단어에는 어울리는 짝이 있다: 단어는 문맥이 결정한다. 단어를 골라 쓸 때는 문맥을 고려해야 할 뿐 아니라 관용적 표현에도 주의해야 한다. 단어에는 고유한 의미와 특징이 있다. 이에 따라 단어는 특정한 단어와 어울리려는 성질이 있다. 단어의의미로 말미암아 단어를 선택하는데 제약을 받게 되는데, 이를 '의미상의 선택 제약'이라고 부른다.

9장 디테일에 강해져라!

25. 자격격 조사'(으)로'절제하라 :

조사 접미사: 자격을 나타내는 조사에는 '(으)로'가 있다. '(의)로는 주술 관계의 혼란을 초래하고 문장을 늘어지게 하므로 가능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으로'가 엉거주춤하게 끼어들면 문장의 리듬이나 균형이 깨진다. '으로'는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간결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26. 조사'의'를 남용하지 말라 :

관형격 조사 '의'는 소유.주체(주어).대상(목적어)을 나타낸다. 우리말에서 의는 주로 소유의 의미로 쓰인다. 의를 주어나 목적어 혹은 부사로 풀어주는게 좋다. '명사_+의+명사'에서  '의' 앞의 단어는 주어나 목적어로 처리하는 게 좋다. 이는 가능한 절제하고 '이(가) 어떠하다'는 식으로 풀어 주는 게 좋다. 문장과 문장은 접속어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문맥과 리듬으로 이어진다. 지시 대명사 '그'는 이미 문장을 접속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추상 명사는 글의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27. 복수임을 알 수 있을 때는 '-들'을 쓰지 말라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복수임을 알 수 있는 경우에는 복수를 의미하는 접미사 '-들'을 붙이지 않는게 바람직하다. -> ex) 개들은 귀여운 동물이다. (x) '가늠하다'는  '사물을 어림잡아 헤아리다'라는 뜻을 가진다. 저울은 치수나 무게를 정학하게 재는 도구이지, 가늠하는 도구가 아니다. 서양사람들-> 서양사람, 한국사람들-> 한국사람 견고하기가 철갑이다. 에서 견고=철갑(x) > "철갑처럼 견고하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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