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 김광균, <설야>


---

  '그리운', '서글픈', '잃어진 추억', '싸늘한 추회' 등 도처에 애상적인 정조가 깔려 있다. 으레 눈 내리는 밤의 정경이 그러하다. 그리움,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그 안타까움을 시인은 노래하고자 한 것. 그렇다면 이 시의 꽃은 역시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 한 구절을 위해 이 시가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다.

  그러나 현재 중등 교과서에실린 문학 작품 가운데 가장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이 표현이 주는 매혹을 제대로 음미해 볼 여유도 없이 안타깝게도 주로 기법적인 측면에서만 공부를 하게 될 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 대목을 두고, 바로 '시각의 청각화', '공감각적 이미지' 등을 운위하는 것이다. 헌데 명색이 시 전공자인 나 자신도 도대체 그런 설명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먼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가 귀에 들리겠는가. 왈가닥 처녀 아이도 아니고 여인이, 그것도 옆방에서가 아니라 먼 곳에서 옷을 벗는데 그 소리가 들릴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 옷은 하늘하늘한 실크 잠옷이거나 곱고 단아한 한복이거나 어딘가 그런 이미지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아무래도 안 들린다. 김광균이 주목한 것은 바로 밤눈의 이러한 속성, 곧 '소리 없음', '고요함'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눈은 소리 없이 내릴 뿐 아니라 눈 내리는 밤은 평소보다 더 고요하기까지 하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한데, 눈의 입자가 육각형 흡음 구조라서 밤에 눈이 쌓이면 사위가 고요해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 모두가 경험해 보았듯이 밤눈은 눈치도 못 채고 있다가 무심코 창밖을 보거나 방을 나서야 알 때가 많다. 그때의 감동과 설렘을 떠올려 보라. 어쩌면 이 시의 화자도 방 안에 있다가 눈을 맞이했고 그래서 뜰에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소리 없이 흩날리는 눈이었으니 정녕 그는 눈 오는 줄 미처 몰랐으리라.

  하지만 소리가 나는 것은 청각적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겠으나 소리가 나지않는다는 것은 과연 어찌 표현할까?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고 하는 것은 달리 어찌 표현하겠는가? 바로 이 지점에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표현의 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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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찬 지음.   <시를 잊은 그대에게>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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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시집《그대, 거침없는 사랑》(푸른숲) 中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거나 멋진 풍경을 만나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같은 자리에 없어 아쉬운 마음에, 달처럼 떠오르는 당신 생각에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당신의 눈썹 같은 예쁜 초승달이 강 위에 떠올라서, 그리워서 전화를 걸었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더 그리워지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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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난 1894년

*곰나루: 공주의 옛 이름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아사달 아사녀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링크

*초례청: 전통 혼례를 치르는 장소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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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어때] "경남에서 안전한 봄나들이 떠나볼까~"..경상남도, 봄맞이 안심여행지 18곳 소개

강종효 입력 2022. 02. 27. 13:2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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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가 단계적 일상회복 시기 국민들이 안전하게 봄나들이를 즐길 수 있도록 도내 야외 안심여행지 18곳을 추천‧소개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비대면 안전여행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도내 숨겨진 야외 관광지를 중심으로 선정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봄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경남 야외 안심여행지에서 봄을 만나러 지금 떠나보자. 

① 숲 향기 가득한 자연학습장

△경상남도 수목원(진주) = 3340여종의 식물과 야생동물관찰원, 산림박물관, 생태온실, 무궁화홍보관, 열대식물원 등 다양한 공간이 주제별로 조성돼 있다. 


교육용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사랑받는 곳이다. 

주기적으로 방역 소독을 실시하고 있고 출입과 퇴장이 정해진 입구로만 가능해 자연스럽게 일방향 관람이 이뤄져 안전하게 봄을 즐길 수 있다.

②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이순신공원(통영) = 한산대첩의 학익진이 펼쳐졌던 이순신공원 내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따라 걸어오르면 화사하게 봄을 물들이는 벚꽃과 호수같이 잔잔한 통영 앞바다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바닷길을 낀 오솔길을 따라 봄을 만끽하다보면 녹색성장의 산 교육장인 통영RCE자연생태공원(세자트라숲)도 만날 수 있다. 

③ 봄날, 가보고 싶은 섬

△대매물도(통영) = 통영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반쯤 걸리는 대매물도에는 수려한 풍광을 품고있는 해품길이 있다. 

이 길을 걷다보면 대나무 숲, 동백나무 군락지뿐만 아니라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의 푸른 바다, 등대섬 소매물도의 멋진 풍경이 걷는 이를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봄날 섬 아래에서 스킨스쿠버 다이빙 등 해양 레포츠까지 즐길 수 있다.

④ 흩날리는 벚꽃잎 사이의 여유

△선진리성(사천) =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물리진 격전지인 선진리성에서 바라보는 사천만 풍경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봄이면 선진리 입구부터 선진리성까지 이어지는 벚꽃길 드라이브 코스와 성안의 만개한 벚꽃들로 한층 더 풍성해진다. 

봄날 선진리 벚꽃터널을 거닐며 여유와 낭만을 즐겨보자.

⑤ 아이와 함께하는 환경학습 봄나들이

△기후변화 테마공원(김해) = 기후변화로 인한 각종 환경문제를 보다 알기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사전예약을 통해 아이들과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고 야외 공원에서도 놀이를 통해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를 학습할 수 있다. 

⑥ 봄꽃들과 함께 걷는 힐링산책로

△밀양댐 생태공원(밀양) = 밀양댐 아래 물문화관과 함께 조성된 생태공원에는 생태연못, 수변데크, 잔디광장, 등나무 테마정원 등이 설치돼 있다. 

LED 달 포토존이 설치돼 야간에 방문해도 좋다. 이팝꽃 피는 5월에 밀양댐으로 가는 10리 이팝꽃길을 지나 생태탐방로를 산책하다 보면 심신의 휴식이 저절로 이뤄지는 듯하다.

⑦ 미니기차 타고 달리는 봄길!

△황산공원(양산) = 낙동강변 넓고 시원하게 트인 황산공원에서는 봄에는 양귀비와 수레국화,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코스모스 등 계절별 색다른 꽃을 만날 수 있다. 

물금선착장에서 생태탐방선을 타고 낙동강의 오래된 이야기를 만나보기도 하고, 황산공원의 주요지점을 이어주는 미니기차를 타고 꽃길을 달려보는 것도 봄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⑧ 야생화 흐드러진 꽃길 낭만여행

△악양둑방길&악양생태공원(함안) = 유유히 흐르는 남강과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악양둑방길에는 길 따라 핀 빨간 꽃양귀비와 수레국화, 메리골드 등 봄꽃들이 봄나들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둑방길 끝에는 울창한 갯버들숲과 물안개가 낭만을 더하고, 둑방길을 지나 악양루와 악양생태공원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또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⑨ 벚꽃비 내리는 힐링 드라이브

△대가면 10리 벚꽃길(고성) = 한적한 마을 고성 대가면에는 가는 이를 자연스레 이끄는 십리벚꽃길이 있다. 


하늘을 수놓은 하얀 벚꽃들 사이로 초록색 산내음이 불어오고, 저멀리 척정저수지가 보이는 탁트인 풍경이 봄의 따뜻함과 여름의 시원함을 모두 선사한다.

⑩ 연분홍 진달래를 품은 숨겨진 작은 섬

△솔섬(고성) = 4월에 피는 진달래가 인상적인 작은 섬, 솔섬에 도착하면 나무데크길을 따라 해안을 산책해 보자. 

길을 따라 수많은 연분홍 진달래꽃이 길을 밝혀준다. 솔섬과 이어진 장여도는 밀물에는 솔섬과 떨어졌다가 썰물에 다시 솔섬과 이어지는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⑪ 나무로 만든 예술작품

△토피아랜드(남해) = 나뭇가지를 다듬어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낸 우리나라 최초의 토피어리 테마정원인 토피아랜드는 울창한 편백나무 숲에서 피톤치드를 만끽하면서 푸른 남해 앞바다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공원이다. 


야생화와 상록수가 많아 사계절 내내 푸른 공원이며 곳곳의 포토존은 인생사진을 남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⑫ 나만의 힐링 포레스트

△지리산 중산두류생태탐방로(산청) = 두류생태탐방로는 산청군 시천면 중산마을 입구에서 시작해 중산계곡을 따라 너덜바위까지 1.3km의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지리산 등산을 하지 않아도 천왕봉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중산리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와 맑은 공기, 싱그러운 숲을 여유롭게 느낄 수 있다.

⑬ 힐링 산림욕부터 짜릿한 레포츠까지

△대봉산 휴양밸리(함양) = 마치 세상을 끌어안은 모습의 산세를 가진 대봉산에 조성된 휴양밸리에서는 산림욕 등 자연 속 힐링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휴양밸리 내 스카이랜드에서는 고산준봉의 웅장함을 감상할 수 있는 모노레일(3.93km)과 짚라인(3.27km)을 체험하며 아찔한 스릴도 만끽할 수 있다.

⑭ 돌담길 따라 만나는 옛마을 봄소식

△개평한옥마을(함양) = 개평마을은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선비마을로 일두고택, 풍천노씨 대종가, 노참판댁 고가, 하동정씨 고가, 오담고택 등 100년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닌 한옥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토지, 미스터션샤인, 왕이 된 남자 등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으로 돌담길과 냇가를 따라 마을 골목을 둘러보면 옛 선조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⑮ 꽃창포 사이를 거닐면...

△창포원(거창) = 경상남도 제1호 지방정원 창포원은 국내 최대 규모(424,823㎡)로 축구장 66배 크기를 자랑한다. 

봄에는 100만본 이상 식재된 꽃창포 군락과 황강의 빼어난 수변경관이 어우러져 그 사이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공간이 넓어 자연스레 다른 관광객들과 거리두기가 가능하고, 자전거를 타고 창포원을 둘러볼 수도 있어 봄나들에 적격이다.

⑯ 벚꽃이 피면 생각나는 그곳

△덕천서원(거창) = 거창읍 장팔리 골짜기에 위치한 덕천서원은 거창의 벚꽃명소다. 봄이 오면 서원 고택 마당마다 목련이 하얀 수를 놓고, 벚꽃잔치가 벌어진다. 


호수를 끼고 천천히 산책하며 둘러보면 벚꽃에 둘러싸인 서원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호수에 비친다. 

봄날의 덕천서원에서는 어디서나 인생사진을 얻을 수 있다.

⑰ 아늑한 습지를 따라 봄맞이 산책

△정양늪 생태공원(합천) = 무려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날 무렵 해수면의 상승과 낙동강 본류의 퇴적으로 생겨난 정양늪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로 꼽힌다. 

봄날 정양늪 주변 탐방로를 걷다보면 노랗게 핀 개나리와 습지가 머금고 있는 뽀얀 물안개, 맑은 공기, 풀잎에 맺힌 이슬, 바람에 흔들리는 수초들이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⑱ 꽃길따라 마실갈래?

△황강 마실길(합천) = 합천의 걷기 좋은 산책로 황강 마실길은 총 4구간으로 짧게는 25분, 길게는 100분 코스로 구성돼 있다. 

신라시대 사찰인 연호사를 지나면 함벽루와 황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낮에는 꽃과 나무가 반겨주고, 일몰과 강물에 비친 야경 또한 멋진 곳이다. 

마실길 3구간에 있는 핫들생태공원에는 5월이 되면 알록달록 작약이 만개해 공원을 빛내준다.

경남 봄맞이 야외 안심여행지 18선은 경남관광길잡이 누리집 공지사항과 경남도 관광 누리소통망(SN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심상철 경남도 관광진흥과장은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여행할 수 있는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방역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창원=강종효 기자 k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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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로마 문명, 한국에서 수모를 당하다!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2-01-27 12:00 송고 | 2022-01-27 19:50 최종수정

 
로마 콜로세움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신년 벽두부터 한심하고 우울한 일의 연속이다. 어쩌다 한국사회의 수준이 이 지경까지 추락했을까. 광주아파트 붕괴사고도 그중 하나다.

반도체 강국 코리아에서 아프리카 최빈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벌어졌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현대아이파크 아파트 외벽 붕괴사고의 동영상을 여러 번 보았다. 보면 볼수록 기가 차고 어이없다.

"어떻게 저런 일이~~~."
 

 


내가 구독 중인 신문의 1면 톱 제목은.

"아래층 콘크리트 굳지도 않았는데 위층 올리다 사고"

건축공학 교수들의 지적을 제목으로 뽑은 것이다. 하층부 콘크리트가 충분히 양생(養生)되지 않아 필요한 강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한 추가 타설로 외벽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연쇄 붕괴했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납득이 가는 설명이다. 기본중의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벌어진 참사였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길을 걷다가 '콘크리트 양생 중이니 조심하세요'라는 안내문을 종종 본다. 그러나 거푸짚을 떼어냈을 때 누군가 양생 중인 콘크리트에 발자국을 남긴 것도 드물게 확인한다.

'콘크리트'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이 스르륵 VR(가상현실)로 눈앞에 떠올랐다. 이어서 콜로세움의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고대 유적지 중 세계인이 가장 가 보고 싶어 하는 상위 5위 안에 드는 게 콜로세움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 시안(西安)의 병마용 갱, 중국의 만리장성.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국어사전은 콜로세움을 이렇게 서술한다.

'고대 로마 시대에 세워진 원형 경기극장. (가운데에 투기장이 있음)'

로마 문명을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인 콜로세움은 서기 80년에 완성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942년 전이다. 콜로세움은 2000년에 가까운 장구한 세월을 지진과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아 지금 세계인을 매혹한다. 1942살의 콜로세움은 로마의 랜드마크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세계인의 관광객들은 그런 콜로세움 앞에서 기가 죽는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검투사들이 대결을 펼치고 있다.

콜로세움은 흔히 로마문명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웅변하는 증거라고 일컬어진다. 콜로세움은 TV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빈번하게 다뤄지는 고대 건축물이다. 건축물 자체뿐만 아니라 워낙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품고 있어서다. 영화 '벤허'에 나오는 마차 경기가 바로 콜로세움에서 벌어졌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검투사 경기도 실제로 콜로세움에서 행해졌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경기장에 선 검투사들. 죽느냐 사느냐! 흥분한 관중은 황제석(席)을 향해 외쳐댄다. 황제가 오른손을 든다. 그리고 죽음을 명하는 뜻으로 엄지를 내린다. 폴리체 베르소(Police verso)! 그때마다 콜로세움은 관중의 환호로 들썩거렸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콜로세움은 흔히 로마제국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뛰어난 건축기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첫 번째는 건축설계다. 좋은 설계도면만 있으면 끝인가? 도면대로 시공이 가능한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콜로세움은 콘크리트와 석재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로마문명이 인류에게 남겨준 유산이 바로 콘크리트의 발명이다. 로마제국은 유럽대륙과 지중해 연안에 거대한 식민지를 거느리면서 도로, 극장, 수도관과 같은 공공시설을 건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도시들은 대개 원형극장, 수도교, 목욕탕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런던과 파리에도 로마제국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영국의 역사 교과서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비로소 문명 세계에 접어들었다.'

어느 나라나 로마의 유적들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될수록 매력적인 관광 상품이 된다. 대부분 유적의 재료는 콘크리트와 석재다.

 
스페인 세고비아의 수도교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로마 시대 수도교로 가장 유명한 곳은 스페인 세고비아의 수도교다. 길이 728m, 높이 30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서기 50년에 지어졌다. 서기 50년이면, 우리나라 연표로 보면 고구려 시대다.

산에서 깨끗한 물을 길어 도시민에 식수로 공급하기 위해 놓은 것이 수도교다. 완만한 경사를 두어 물이 산 위의 수원지에서 자연스럽게 아래로 흐르게 했다. 물이 흐르는 맨 꼭대기의 수로는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틈새가 없이 평평하고 고르게 관을 만들려면 콘크리트를 사용해야 한다. 얼마나 정교하고 단단하게 만들었으면 세고비아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1970년 전 로마인이 건설한 콘크리트 수로를 통해 식수를 공급받았다.

콘크리트 말고도 우리가 로마인에게서 지혜를 빌려 사용하는 것이 여러 개다. 수도관, 포장도로, 중앙난방이다. 로마 시대에 목욕탕 문화가 발달한 것은 중앙난방, 수도관, 콘크리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토목은 문명의 기초

문명(文明)은 영어로 'civilization'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서 이 영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토목공학(土木工學)을 영어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10년 전까지 '토목공학'이 영어로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대학마다 재상봉 행사가 있다. 학교에 따라 입학 연도나 졸업 연도를 기준으로 25년, 30년 단위로 재상봉 행사를 한다. 인문대 어문계열 출신인 나는 재상봉 행사를 통해 공대 출신 여러 명과 친하게 지냈다. 공대 출신들과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던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하나둘씩 생겨서다. 어느 날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토목공학과 출신으로부터 토목공학이 영어로 civil engineering(시빌 엔지니어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토목(土木)은 단순하게 말하면 도로를 만들고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고 철도를 부설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는 '토목'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마치 토목이 저차원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내일부터 모든 도로와 다리가 사라지고 터널이 막힌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고대 로마는 격언의 발상지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지옥이 있다면 로마는 그 위에 지어졌다' '혀가 있는 자는 로마에 가도 좋다' 등.

그중에서 자주 인용되는 격언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이다. 이 격언은 로마 가도(街道)에서 유래되었다. 로마 가도는 총연장이 8만㎞에 달한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아피아 가도(Via Appia). 로마 제국은 유럽과 아시아로 뻗어 나가는 가도를 통해 문명을 실어나르며 제국을 건설하고 지배했다. 로마 가도의 재료는 콘크리트와 석재다. 2000년이 지났건만 지금껏 멀쩡하다.

콘크리트의 강도(强度) 시험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제대로 양생이 된 콘크리트가 얼마나 단단하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전시상황을 대비한 시설이 지하 벙커다. 대부분의 국가는 비상시를 대비해 지하 벙커 시설을 둔다.

 
처칠 수상이 2차대전 중 전시내각으로 사용한 지하 벙커 입구. 현재는 '처칠 워 룸'으로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조성관 작가 제공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영국을 항복시키려 영국섬 전체를 폭격했다. '더 블리츠'(The Blitz)'!. 나치는 영국 전역에 147회를 폭격했는데, 그중 71회가 런던에 집중되었다. 영국의 국가지도부를 몰살시키려 폭탄을 런던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윈스턴 처칠은 지하 벙커에 들어가 전쟁을 지휘했다. 두꺼운 콘크리트 속에서 전시내각(War Cabinet)은 정상적으로 운영되었고, 처칠은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콘크리트 벙커가 영국을 구해낸 것이다.

'더 블리츠'를 소재로 여러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2017년에 나온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가 그중 하나다. 영화 속에 처칠이 비좁은 지하 벙커에서 시가를 문 채 분주히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    

광주아파트 붕괴사고가 생각지도 않았던 로마 문명의 콘크리트를 소환했다. 로마 문명의 이란성 쌍둥이가 그리스문명이다. 그리스 문명의 유산이 Democracy, 즉 민주정(民主政)이다. 2500여 년 전 페리클레스가 민주정을 확립하면서 아테네는 인류사의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콘크리트 붕괴사고가 되묻는다. 대한민국의 민주정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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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주영순

 

바삭거리는 맨몸

지글거리는 태양과 모래알 속 그녀

 

때론

허리끈 풀어 멀리 던진

비단결 치마 같았지

 

헤어짐과 인사를 거듭하며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낙타가 무릎을 꿇듯

굴욕을 견디다 울었지

 

춤을 추듯

건너가는 세상

알록달록 연기가 피어오름에

전부를 걸었지

 

흘러내리는 치마끈 붙잡고

길을 가는 그녀

건너편 기슭엔

꽃 한 송이 폈을까

 

 

 

 

 

 

고비

                  정 호 승

 

고비 사막에 가지 않아도

늘 고비에 간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면서

오늘도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

이번이 마지막 고비다

 

                       (시집 <밥값>에 수록된 시) 

 

**

몽골의 고비사막은 어릴 적부터 알아왔지만

'고비'라는 말이 몽골어로 '풀이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란 것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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