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 안도현

 

이웃집 감나무가 울타리를 넘어왔다

가지 끝에 오촉 전구알 같은 홍시도 몇 개 데리고

우리집 마당으로 건너왔다

나는 이미 익을 대로 익은 저 홍시를

따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몇 날 며칠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은 당장 따먹어 버리자고 했고,

딸은 절대로 안 된다 했다

이웃집 감나무 주인도

월경(越境)한 감나무 가지 하나 때문에

꽤나 골치 아픈 모양이었다

우리 식구들이 홍시를

따먹었는지, 그냥 두었는지

여러 차례 담 너머로 눈길을 던지곤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감나무 가지에서

홍시가 떨어질까 싶어 마음을 졸였다 한다

밤중에 변소에 가다가도

감나무 가지에 불이 켜져 있나, 없나

먼저 살핀다고 한다

아,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감나무 때문인가

홍시 때문인가

울타리 때문인가
웃집 / 안도현

 

이웃집/안도현

 

이웃집 감나무가 울타리를 넘어왔다

가지 끝에 오촉 전구알 같은 홍시도 몇 개 데리고

우리집 마당으로 건너왔다

나는 이미 익을 대로 익은 저 홍시를

따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몇 날 며칠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은 당장 따먹어 버리자고 했고,

딸은 절대로 안 된다 했다

이웃집 감나무 주인도

월경(越境)한 감나무 가지 하나 때문에

꽤나 골치 아픈 모양이었다

우리 식구들이 홍시를

따먹었는지, 그냥 두었는지

여러 차례 담 너머로 눈길을 던지곤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감나무 가지에서

홍시가 떨어질까 싶어 마음을 졸였다 한다

밤중에 변소에 가다가도

감나무 가지에 불이 켜져 있나, 없나

먼저 살핀다고 한다

아,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감나무 때문인가

홍시 때문인가

울타리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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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돈 / 정호승

 

돈을 벌어야 사람이 

꽃으로 피어나는 시대를 

나는 너무나 오래 살아 왔다 

돈이 있어야 꽃이

꽃으로 피어나는 시대를 

나는 죽지 않고 

너무나 오래 살아왔다 

 

이제 죽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꽃을 빨래하는 일이다 

꽃에 묻은 돈의 떄를 

정성 들여 비누칠해서 벗기고 

무명옷처럼 빳빳하게 풀을 먹이고 

꽃을 다림질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죽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돈을 불태우는 일이다 

돈의 잿가루를 밭에 뿌려서 

꽃이 돈으로 피어나는 시대에 

다시 연꽃 같은 

맑은 꽃을 피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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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희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셈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 <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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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를 신다

 

고희수

 

먼 산비탈

할아버지의 유택

평생 즐겨 신던 흰고무신처럼 국화 놓여 있다.

 

몸 약한 손녀 앞장세우고

밭으로 밤 주우러 갈 때

벼 얼마나 고개 숙였는지 보러 갈 때

다리 아프다며 징징대는 어린발자국에 발맞추던 흰고무신

한걸음은 가슴에

또 한걸음은 마음에

기다림을 겹겹으로 쌓았다.

근심으로 얼굴 확 펴지 못한 낮달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병으로 잃은 당신의 어린자식

저 고운 신 신고

그곳에서

손녀 운동시키듯 발자국에 발맞추는지

서쪽 하늘이 자꾸 붉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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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스트 김평남 씨/최은경

 

 

착한 아버지 김평남 씨는 유명한 플로리스트다. 창덕궁 옆, 눈알이 하나만 남은 1톤짜리 트럭 위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국화 꽃다발을 굽는다.

 

아버지의 눈동자처럼 검고 반질거리는 무쇠 틀에다 아버지의 가슴처럼 무르고 희디흰 반죽을 듬뿍 붓고 아버지의 말씨처럼 정직하고 달콤한 단팥을 넣어 바삐 앞뒤로 뒤집으면 국화꽃들이 송송히 피어난다.

 

국화꽃 향기를 싫어하는 단속반에게 이리저리 쫓기고 국화꽃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해도 올망졸망한 자식들 입에 들어갈 뜨겁고 차진 밥이 될 아버지 김평남 씨의 국화꽃은 시들지도 않고 부지런히 피고 진다.

 

뜨거운 여름이 물러나고 창덕궁의 노오란 국화꽃들이 때 이른 추위에 탐스러운 머리와 푸른 손을 움츠리면 어깨를 옹송 거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아버지 김평남 씨를 찾는다.

 

오늘의 날씨 이야기, 이번 주의 로또 이야기, 상사 놈 욕에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던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까지 술술 풀어내는 손님들에게 맞장구를 치면서도 아버지 김평남 씨는 유명한 플로리스트답게 국화꽃 한 다발을 뚝딱 굽는다.

 

어젯밤, 어머니가 밤새 접어 만든 흰 종이 봉지에 담긴 아버지의 풍성한 국화 꽃다발을 넙죽넙죽 받아먹은 사람들, 시린 제 가슴을 햇병아리의 온기 같은 따스함으로 덥히며 만원 버스에 올라 아침에 헤어진 가족에게로 돌아간다.

 

온종일 국화 꽃다발을 만드느라 할미꽃처럼 허리가 굽은 아버지 김평남 씨도 실은 매일 밤 7시 시만 되면 외눈박이 트럭을 타고 금호동 언덕배기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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