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 김평남 씨/최은경
착한 아버지 김평남 씨는 유명한 플로리스트다. 창덕궁 옆, 눈알이 하나만 남은 1톤짜리 트럭 위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국화 꽃다발을 굽는다.
아버지의 눈동자처럼 검고 반질거리는 무쇠 틀에다 아버지의 가슴처럼 무르고 희디흰 반죽을 듬뿍 붓고 아버지의 말씨처럼 정직하고 달콤한 단팥을 넣어 바삐 앞뒤로 뒤집으면 국화꽃들이 송송히 피어난다.
국화꽃 향기를 싫어하는 단속반에게 이리저리 쫓기고 국화꽃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해도 올망졸망한 자식들 입에 들어갈 뜨겁고 차진 밥이 될 아버지 김평남 씨의 국화꽃은 시들지도 않고 부지런히 피고 진다.
뜨거운 여름이 물러나고 창덕궁의 노오란 국화꽃들이 때 이른 추위에 탐스러운 머리와 푸른 손을 움츠리면 어깨를 옹송 거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아버지 김평남 씨를 찾는다.
오늘의 날씨 이야기, 이번 주의 로또 이야기, 상사 놈 욕에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던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까지 술술 풀어내는 손님들에게 맞장구를 치면서도 아버지 김평남 씨는 유명한 플로리스트답게 국화꽃 한 다발을 뚝딱 굽는다.
어젯밤, 어머니가 밤새 접어 만든 흰 종이 봉지에 담긴 아버지의 풍성한 국화 꽃다발을 넙죽넙죽 받아먹은 사람들, 시린 제 가슴을 햇병아리의 온기 같은 따스함으로 덥히며 만원 버스에 올라 아침에 헤어진 가족에게로 돌아간다.
온종일 국화 꽃다발을 만드느라 할미꽃처럼 허리가 굽은 아버지 김평남 씨도 실은 매일 밤 7시 시만 되면 외눈박이 트럭을 타고 금호동 언덕배기 집에 가고 싶다.
'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화/이형기 (0) | 2022.02.23 |
---|---|
국화를 신다/고희수 (0) | 2022.02.23 |
비상, 잊어버리세요/사라 테즈데일 (0) | 2022.02.14 |
사라티즈데일 (0) | 2022.02.14 |
2022 국제신문신춘문예] 시 당선작 (0) | 2022.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