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가을 편지/김용채
    
   

가을이 오는 길목입니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새끼 강아지 걸음처럼,

가을이 오고있습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바다 끝에 연분홍 혀를 적시고,

떨리 듯 다가오는 미동

괜스레 가슴이 미어집니다.


가을이 오고있음에

내 마음 안달이 났습니다.

차마 전하지 못했던 사랑

가을 보다 먼저 전하고 싶어서,

내 마음 안달이 났습니다.


물살 같이 빠른 세월 따라

사랑도 그렇게 흘러 갈까봐,

미루고 미루어 전하지 못한 마음

어린 짐승 날숨 같이 떨며,

소리 없이 그대를 부릅니다.




가을이 온 뒤에도 지금처럼,

높은 산과 긴 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바라보아야 만 한다면,

꽃망울 속 노란 꽃가루 같이

가득한 그리움을 어떻게 할까요.


갓 핀 꽃잎 같이 곱고

성당의 종소리 같이 맑으며,

보름달 같이 밝은 그대는

잠든 새의 깃털 같이 부드럽고,

함박눈 같이 고요한 나라입니다.


 

 

아아, 가을이...

바다 끝에서 생겨난 가을이

새끼 고양이 눈망울 같이

내 마음을 바라봅니다.


어린 짐승 발소리처럼,

가을이 다가 오고있습니다.

가을이 나뭇잎에 안기기 전에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가을보다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첫 가을편지 - 김용채

 

 

 

 

 

 

 

 

 

 

 

 

 

 

 

 

 

 


비 듣는 가을나무





슬픔 많은 우리의 마음의 키들이

비로소 가지런해지는고나,

들앉은 사람들아.




넘치는 몸살이 아니라 염병(染病)이 아니라

적당한 하늘의 가을나무 키만한 데서

우리의 수심은 소리지는데....




돌팔매의 돌이었던 그런 돌들도

우리의 팔을 늘인 그늘에서

호젓이 비젖는 것을,




이젠 얼마 안 남은 이파리같이

우리의 얼마 안 남은 그 남은 것을 헤아려 보면

말라가는 눈물도 알아 보겠네.



詩.박재삼

 

 

 

 

 

 

 

 

 

 

 



 

 

 

 

    

 

 

 


  

 

 

 

 

 

 

 

 

 

 

 

 

 

 

 



 

 

 

 

 

 

 

 

 

 

 

 

 

 

 

 

 

 

 

 

 

 

 

 

 


출처 : 아트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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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윤동주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놓아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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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들에 들국 다 져불것소 / 김 용 택


날이면 날마다
내 맘은
그대 오실 저 들길에 가
서 있었습니다
이 꽃이 피면 오실랑가
저 꽃이 피면 오실랑가
꽃 피고 지고
저 들길에 해가 뜨고

저 들길에서 해가 졌지요

그대 어느 산그늘에 붙잡힌
풀꽃같이 서 있는지
내 몸에 산그늘 내리면
당신이 더 그리운 줄을
당신은 아실랑가요


대체 무슨 일이다요
저 꽃들 다 져불면 오실라요
찬바람 불어오고
강물소리 시려오면
내 맘 어디 가 서 있으라고
이리 어둡도록 안 온다요
나 혼자 어쩌라고
그대 없이 나 혼자 어쩌라고
저 들에 저 들국 지들끼리 다 져불것소. 
 

출처 : 아트힐
글쓴이 : 황씨아저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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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


고 영 민


한나절 새끼 낳을 곳을 찾아 울어대던
고양이가 잠잠하다
잠잠하다

불을 지피려 아궁이 잎에 앉으니
구들 깊은 곳 새끼고양이 울음소리가
야옹지다

오늘밤, 이 늙은 누대(累代)의 집은 구들 속
새끼를 밴 채 진통이 심하겠다
불 지피지 마라
불 지피지 마라

냉골에 모로 누워 식구들은 잠들고
나 혼자 두렷이 깨어
바닥에 귀 대노라면
내 귀 달팽이는 감잎만큼 커졌다가
연잎만큼 커졌다가

쉿, 누가 들을까
어미는 발끝을 든 채 새끼를 물어
눈 못 뜬
자리를 옮기고 또,
자리를 옮기고

출처 : 딩아돌하
글쓴이 : 요석공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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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잠자고 싶다 그리고 어느 날

무덤이 열리고 물 빠진 꽃잎 같은 얼굴로 부스스 일어나

흔들리는 송곳니를 줄로 다듬어 고치고, 쩍 게으른 하품을 하며 입맛을 다시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의 목을 깨물면 좋겠지만

나는 백년, 천년 잊혀지지 않는 원수의 목을 찾아 나설 것이다

아뿔싸, 그는 이미 죽었을 테니 어쩐다

그의 관이라도 뜯어내고 들여다보면, 허망하게 웃으며 잠든 놈의 해골

나는 완전히 입맛을 잃고 국수나 먹으러 터미널로 걸어갈까

드라큘라가 국수를 먹고 살 수는 없으니, 돼지고기 수육이나 먹으러 시장에 갈까

사랑하는 여자도 세상에 없고, 물어 죽이고 싶은 원수도 세상에 없는

백년 동안의 잠, 세상은 여전히 거짓말쟁이들과 건방진 녀석들이 득세하고

공장 노동자 청년은 임금도 받지 못하고 자살하는데

술집에 가서 예쁜 창녀들이나 물어 죽일까, 어쩌다 술도 팔고 몸도 팔게 된 죄없는 여자를?

아아, 텔레비전이나 보러 혼자 사는 빈 집에 돌아갈까

고향집에 가서 냉이나 뜯어먹을까

포구에 가서 낚시나 좀 할까

배를 타고 먼 섬으로 이민이나 갈까

나는 세상에 없는 종, 드라큘라

기어 나온 무덤으로 기어들어가 다시 오래 잠이나 자야 할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백년 전의 친구들아, 나도 여기 왔다가 간다고 문자를 보내고

그만 너무 모든 것이 우울해져서

목을 매고 죽었으면 좋겠는데, 아아, 나는 영생의 벌을 받았구나

십자가 말뚝이나 끌어안고 뒹굴다가, 생각나면 그때 다시 죽어볼까

거미줄을 치렁치렁 감고 누워

잠도 오지 않고 말똥말똥

어떻게 살아야 하나



-2015년 <현대시> 8월호

출처 : 딩아돌하
글쓴이 : 늦은안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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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애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오













 

출처 : 아트힐
글쓴이 : 황씨아저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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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운명

 

   이병률

 

 

 

 

저녁 어스름

축대 밑으로 늘어진 꽃가지를 꺾는 저이

 

저 꽃을 꺾어 어디로 가려는 걸까

 

멍을 찾아가는 걸까

열을 찾아가는 걸까

꽃을 꺾어 든 한 팔은 가만히 두고

나머지 한 팔을 저으며 가는 저이는

 

다만 기척 때문이었을까

꽃을 꺾은 것이

그것도 흰 꽃인 것이

 

자신이 여기 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소리치려는 것일까

높은 축대를 넘겠다며 가늠을 하는 것일까

 

나는 죽을 것처럼 휘몰아치는

이 저녁의 의문을

어디 심을 데 없어

그만두기로 한다

 

대신 고개를 숙이고 참으며 걸으려 한다

 

아름다움을 이해하려고 할 때나

아름다움을 받아내려고 할 때의 자세처럼

분질러 꺾을 수만 있다면

나를 한 손에 들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운명이라도 밀어야 한다

 

 

 

 

 

 

 

 

 

 

 

 

 

 

 

 

 

 

 

 

 

 

 

 

 

 

들꽃이 찬란해지고 있습니다. 그중 많은 것은 구절초라는 꽃입니다. 그 곁을 지나가자면 나도 모르게 한두 송이를 따게 됩니다. 코에 댑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쓴 것과 달콤한 것의 절묘한 배합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향기에 절제가 있는지요.

내 속에는 악마도 많건만 나는 어쩐 일로 꽃과 그 향기를 좋아하는 것인고. 꽃의 무엇이 나를 이끄는고. 좋으니 여럿 꺾어 가져가기도 합니다. 헌데 그것이 '멍'에게, 혹은 '열'에게 가져가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멍'쪽에 무게를 둡니다. 멍, 들여다보면 그것도 꽃이거든요. 속삭이기까지 하는 꽃이지요.저녁은 나라가 바뀌는 때이지요. 새로운 나라로 가기 위해 흰 꽃을 꺾어 든 '저이(이 호칭이야말로 꽃 꺾는 이를 부를 만한 호칭이군요)'를 몰래 숨어서 따라가고 싶은 저녁입니다. 가을이구요.

 

  

장석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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