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잠자고 싶다 그리고 어느 날

무덤이 열리고 물 빠진 꽃잎 같은 얼굴로 부스스 일어나

흔들리는 송곳니를 줄로 다듬어 고치고, 쩍 게으른 하품을 하며 입맛을 다시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의 목을 깨물면 좋겠지만

나는 백년, 천년 잊혀지지 않는 원수의 목을 찾아 나설 것이다

아뿔싸, 그는 이미 죽었을 테니 어쩐다

그의 관이라도 뜯어내고 들여다보면, 허망하게 웃으며 잠든 놈의 해골

나는 완전히 입맛을 잃고 국수나 먹으러 터미널로 걸어갈까

드라큘라가 국수를 먹고 살 수는 없으니, 돼지고기 수육이나 먹으러 시장에 갈까

사랑하는 여자도 세상에 없고, 물어 죽이고 싶은 원수도 세상에 없는

백년 동안의 잠, 세상은 여전히 거짓말쟁이들과 건방진 녀석들이 득세하고

공장 노동자 청년은 임금도 받지 못하고 자살하는데

술집에 가서 예쁜 창녀들이나 물어 죽일까, 어쩌다 술도 팔고 몸도 팔게 된 죄없는 여자를?

아아, 텔레비전이나 보러 혼자 사는 빈 집에 돌아갈까

고향집에 가서 냉이나 뜯어먹을까

포구에 가서 낚시나 좀 할까

배를 타고 먼 섬으로 이민이나 갈까

나는 세상에 없는 종, 드라큘라

기어 나온 무덤으로 기어들어가 다시 오래 잠이나 자야 할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백년 전의 친구들아, 나도 여기 왔다가 간다고 문자를 보내고

그만 너무 모든 것이 우울해져서

목을 매고 죽었으면 좋겠는데, 아아, 나는 영생의 벌을 받았구나

십자가 말뚝이나 끌어안고 뒹굴다가, 생각나면 그때 다시 죽어볼까

거미줄을 치렁치렁 감고 누워

잠도 오지 않고 말똥말똥

어떻게 살아야 하나



-2015년 <현대시> 8월호

출처 : 딩아돌하
글쓴이 : 늦은안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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