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知覺)
김현승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숨결은
밖에서도 들여쉬고
안에서도 내어쉬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바다는
밀물이 되기도 하고
썰물이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 핵심정리
1. 갈래 : 자유시, 서정시
2. 운율 : 내재율(두운-내, 나/ 각운-다)
3. 성격 : 종교적, 역설적
4. 구성 : 6연 20행(기-승-전-결)
5. 특징
• ‘행복’과 ‘불행’을 ‘밖’과 ‘안’, ‘밀물’과 ‘썰물’로 표현하여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 시적 화자의 삶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이다.
• 대조적인 이미지를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6. 제재 : 행복
7. 주제 : 행복에 대한 깨달음
8. 구성
1연 - 행복과 불행에 감사함
2연 - 밖에서 오고 안에서 오는 행복
3연 - 안팎에서 열리는 행복의 문
4연 - 행복과 불행을 대하는 삶의 자세
5연 - 숨쉬는 것처럼 안팎에서 생기는 행복
6연 - 행복과 불행을 감싸는 생명의 바다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행복에 대한 시인의 깨달음을 평이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각>이라는 시의 제목은 그 행복을 어떻게 깨달았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과연 시인은 새삼스레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일까요. 보통 우리는 불행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제1연에서 행복은 물론 불행에 대해서도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어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뜻과 달리 어떤 의미에서 복합적인 뜻을 갖습니다. 불행에 대해 감사하며 이 불행을 행복으로 뒤바꾸는 것이 이 시의 기본적인 언어 구조입니다. 우리는 이를 ‘역설적’이라고 하거나 ‘반어적’이라고 합니다. 시의 언어는 보통 이 시와 같이 불행을 불행으로 보지 않는 부정어법에서 비롯됩니다.
위의 제2연을 보면 그 이유가 나타납니다. 행복은 밖에서도 오고 안에서도 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밖에서 불행이 오더라도 안에서 그것을 행복으로 뒤바꿀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그것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이 될 것입니다.
제3연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린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밖에서 열리는 행복의 문도 그것대로 좋은 것이지만, 안에서 열리는 행복의 문이 좀더 뜻 깊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4연에서는 행복과 불행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시인의 삶의 자세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행복한 오늘은 그 행복을 따뜻하게 사랑하고, 만약 오늘이 불행하더라도 내일의 기쁨을 생각하며 그 불행을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내일의 별’을 사랑한다고 상상하는 것은 어둔 밤하늘에 별들이 빛을 반짝이고 있는 것처럼 오늘의 불행, 즉 어둠 속에서도 그 어둠에 빛나는 내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여기서 ‘내일의 별’은 ‘내일의 희망’이나 ‘내일의 기쁨’으로 풀이될 수 있는 것으로서 ‘별’은 기쁨이나 희망을 함축하는 비유적 뜻을 나타냅니다. 시의 언어는 감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상징적인 매개물을 빌어 함축적인 뜻을 나타냅니다.
제2연에서 말한 안과 밖의 문제를 제5연에서 시인은 생명의 숨결로 한 단계 전진시킵니다. 우리들이 숨결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행복이나 불행 또한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라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의 생명적 주체가 안과 밖을 통합하면서 이 시의 중심은 일단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화자에게 모아집니다. 이 제5연을 고비로 마지막 제6연에서는 시적 상상이 생명의 바다로 크게 확대됩니다. 기-승-전-결이라는 시의 구성에서 전환을 보내주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마지막 제6연에서 시인의 생명은 그 ‘생명의 바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개체에서 전체로 확대되어 보편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생명의 숨결이 바다처럼 출렁거리면서 밀물과 썰물이 되어 출렁거릴 때 생명의 의미는 행복과 불행을 감싸 안고 더 큰 생명의 역동성을 드러냅니다. 바다의 출렁거림은 나 개인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지만 그것은 나 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모든 생명체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회적이며 개별적인 일을 다루는 역사와 달리 보편적이며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일을 다루는 시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위의 시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시가 평이한 일상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일상적 느낌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통 시를 어렵게만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이 시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적 상상은 일차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지만, 그 언어를 통해 발상의 전환이라든가 상상의 확대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움을 전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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