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필의 개념


우리의 국어생활에서 듣기와 말하기가 주로 음성언어라고 한다면, 읽기와 쓰기는 문자언어가 된다. 또한 듣기와 읽기가 이해 의 측면이라면, 말하기와 쓰기는 표현의 측면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해의 영역인 듣기와 읽기가 수동적인 태도라면, 표현의 영역인 말하기와 쓰기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언어활동이다.

우리의 언어생활은 이 네 가지 영역을 두루 포용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현재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떠들고 말하는데 그것을 글로 써 보라면 주춤거리게 된다. 말은 재미있게 하는데 글로 쓰려면 전혀 절벽이다. 그러나 말이나 글이나 결국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글은 말보다 질서가 있고 논리가 있다는 것뿐이다. 글쓰기란 글로써 하는 '말하기'라 할 수 있다. 말에도 조리가 있어야 듣기 쉽듯, 쓰기도 순서만 지키면 아주 쉬운 것이다.

다만, 수필쓰기 전에 생각을 체계적으로 한번 정리해 보면 된다. 글쓰기에서의 사전정리, 그것을 작품구상이라고 한다. 시작-중간-끝 부분에 각기 무엇을 쓸 것인가, 설계도를 그리듯 간단 간단한 메모를 한 뒤에 집필을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줄기로 통일성 있게 얘기가 흘러내린다. 그러나, 사전준비를 하지 않고 시작하다 보면, 중간쯤 가서 쓸 것이 없어서 도중하차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물론, 세심한 관찰력, 넓은 통찰력, 날카로운 비판력이 요구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우선은 이웃집의 친한 친구와 얘기하듯이 평범하게 쓰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일상생활에서 극히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바람은 어디서 불어 오는가? 해와 달은 왜 뜨는가?' 등 일반 사물과 사실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이 저절로 생겨난다.


일반적인 글쓰기란 무엇인가. 우선 그 개념적 성격부터 살펴보자.

첫째, 글이란 마음속에 가진 생각과 감정을 문자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글은 말에 비하여 공간적으로 멀리 전달할 수 있고, 시간적으로 오래 남을 수 있으며, 내용을 재음미하여 완전히 이해할 수 있고, 생각을 재정리하여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등의 몇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글이 말보다 더욱 조리 있고 체계적일 수 있는 이유는 말은 즉시적인데 비해, 글은 통시적이다. 생각을 오랫동안 여과할 수가 있다. 말은 다만 의사전달을 하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글은 글의 형식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초적인 글쓰기로서 '수필'은 바로 이러한 일반적인 글의 초보적 형태이다.

둘째,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글이 운문이 아닌 산문인 까닭은, 운문이 일정한 운율을 갖추어야 하는 조탁의 어려움이 있는 데 비해, 산문은 자유로운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문의 기초는 수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수필을 잘 쓸 수 있는가'에 대해서 함께 노력해 보자.

리드Herbert Reed는 그의 <영국 산문록>에서 수필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심중에 잠재해 있는 관념이나, 기분-정서를 표현해 보는 것은 일종의 시도이다. 그것은 관념이나, 기분-정서 등과 상응하는 어떤 유형을 언어로써 창조하려고 하는 불형식(不形式-형식이 아니려고 하는)의 시도이다. 그것은 음악에 있어서 즉흥곡과 어느 정도 비슷한 데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에 있어서 서정시가 차지하는 위치를 산문분야에서 차지하는 것이다. 수필은 한마디로 특정인에게 보낼 필요가 없는 하나의 공개장이다." 리드의 견해는 수필의 성격,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말하는 보편적인 글쓰기의 성격을 함축적이고 일목요연하게 말해주고 있다.

또한 몽테뉴Montaigue도 그의 <수상록> 서문에서 말하기를 "이 수상록의 내용은 나 자신을 그린 것이다."고 하여 그는 그의 글쓰기에서 가장 자유스런 방법으로 단편적이고 산만하게 중얼거리고 있는데도 독자가 그의 독백에 자꾸 끌려간다. 바로 독자들은 자기 아닌 남의 얘기를, 그것도 산만하고 독백적인 형식으로 쓰여진 글을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수상록>은 자기실현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고, 그것은 곧, 글쓰기의 가장 순수한 목적 즉, 자기의 감정을 문자로 표현한다는 것에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몽테뉴의 이러한 독백이 바로 수필의 시작이 되었고, 성격이 되어버렸다.

위의 두 사람, 리드와 몽테뉴의 견해를 빌리면 작문은 형식과 내용에 제한이 없고, 무엇이든 소재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산문정신에 입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사로잡히지 않는 평정한 마음에서 마치 먼 곳의 그리운 친구에게 심정을 말하는 듯한 한편의 정성스런 글을 쓴다면 그것이 수필이 되는 것이다. 수필은 무형식의 형식이 특징이다. 이것이 수필의 운명이고 성격이다.


김진섭은 "한 시대나 한 세기의 소설, 시, 희곡은 내용이나 형식으로 보아서 몇 가지로 분류하여 논할 수 있다. 그것은 시대사조와 사회의식에 연결되어 발전·쇠퇴하는 특징을 가진 문학형식인 까닭이지만, 수필에 있어서는 그 성쇠기복이 시대적 제약에 의거한다고 간주한다기 보다 오히려, 생활단면에 부딪치는 까닭에 비교적 관련이 적게 자라간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그냥 그대로 내용이 될 수 있는 수필이 단순한 기록에 그쳐서는 우리를 긴장시키지 못할 것이다."고 했다.

요컨대 효과적인 글짓기를 위해서 우리는 아무런 구속 없이 온몸에 비치는 사실들을 여과하여 자기 나름의 느낌과 생각을 조리 있게 만들면 그것은 비로소 하나의 생명을 지닌, 자기만의 냄새를 가진 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생명이 있는 글을 쓰려고 한다면, 주어진 세계를 받아들여 삶을 고뇌하고, 고독과 절망을 직시하는 데에서 귀중한 주제성을 솎아내야 한다. 글은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써야 한다.


습작기에는 때로, 원고지가 백지의 공포로 느껴질 때가 더러 있다.

그것은 자기는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다는 좌절감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보다 자기의 진정한 감정과 사상을 호소하기에 앞서 '언제나 나는 유명한 작가가 될 것인가'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그런 명예욕보다는 마음을 텅 비우고 여유를 가질 때, 우리의 감정은 봄 날 언덕 위의 들꽃같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우리의 가슴에 만발하게 된다.

다음에서 수필과 다른 문학형태와의 차이를 비교해 보자. 이것은 수필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기초적인 문장형태인 '수필'에서 숙달된 후, 그 다음 단계인 시, 소설, 평론 등의 전문 문학형태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비교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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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박샘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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