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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세관, 여행
제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서울시립대 동창회보에는 <우리 동네 놀러오세요>라는 고정 코너가 있습니다. 동문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에 여행을 오라고 7만 동문에게 홍보하는 코너입니다. ‘군산의 근대문화유산거리’를 소개한 이철호 동문은 한국전력 군산지사장입니다. 제가 군산지사에 감사 강연을 하러 갔다가 동문임을 알고 즉석에서 원고 청탁을 했는데, 흔쾌히 글과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자신의 근무지가 있는 지역의 홍보대사가 되어준 이철호 동문 감사합니다.
연고도 없이 낯설기만 한 이곳 군산에 2019년 1월 초 인사 발령을 받고 근무하면서 틈틈이 군산을 공부하다보니 시나브로 알면 알수록 넘치는 매력에 빠져나오기 힘든 곳이 바로 군산임을 깨닫게 됩니다. 군산은 크게 테마별로 시내권(시간을 더듬어 걷는 군산), 금강권(강 따라 걷는 군산), 새만금권(바다 따라 달리는 군산), 고군산군도권(섬길 따라 달리는 군산) 등 4개 권역으로 나눌 수 있어 하나의 도시에 4가지 매력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제가 동문 선후배님께 소개해드릴 곳은 시내권에 해당하는 ‘근대문화유산거리’입니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전주 한옥마을과는 대조적으로 근대 일제 수탈의 아픔과 근현대 시가지 모습이 함께 공존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또한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 군산지사 사옥을 비롯해 옛 남선전기주식회사(한전의 전신(前身) 중의 하나) 군산지점 사옥건물도 자리하고 있어 남다른 애정이 있는 곳입니다.
근대문화유산거리의 시작은 씁쓸하게도 일제 강점기부터로 볼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군산은 금강 하구와 만경강 하구 사이에 위치해 있어 바다가 펼쳐지고 드넓은 호남평야가 이어지는 곳입니다. 들판 사이로 맑은 강물이 흘러 쌀이 모이고 또 사방으로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일제는 이러한 이점을 이용해 쌀 수탈 전초기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용되었던 다양한 건축물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현재의 근대문화유산거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근대문화유산거리에는 다양한 대표 건축물들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소개할 군산세관 건물은 1908년 준공되어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더불어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히며 빨간 벽돌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옆으로 몇 걸음 옮기면 1980년대 중반까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였던 조선총독부 건물 외관을 떠오르게 하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2011년 신축)이 있습니다.
주변에는 일제강점기 무역회사 ‘미즈상사’ 사옥으로 쓰였고, 지금은 커피 한 잔 하고 갈 수 있는 미즈카페, 신발 벗고 들어가 체험하는 장미 갤러리가 위치해 있으며,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수탈한 쌀을 보관했던 창고였으나 지금은 소극장으로 바뀐 장미공연장과 나가사키 18은행으로 알려진 군산근대미술관과 구(舊)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일제 경제 수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인 군산근대건축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근대문화유산거리 대표 건축물 구경이 끝나면 도보로 주변에 위치한 군산 원도심을 여행하면서 도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역사 거리 곳곳에는 낯선 일본식 저택이 고스란히 살아있는데, 신흥동에 자리한 2층 규모의 정통 일본식 저택(히로쓰 가옥)은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었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했던 초원사진관도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습니다.
특히, 원도심 여행 중 꼭 들러 주셨으면 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일본식 사찰 ‘동국사’입니다. 일본식 사찰의 건축양식을 지닌 동국사에는 조선 침략을 참회하고자 세운 최초의 참사문비가 있고, (얼마 전 미투 논란의 중심에 섰던)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가 고은 시인이 19세가 되어 출가했던 절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여행 중 눈요기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현재는 서울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유명한 이성당부터 소개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본인이 운영하던 제과점 이즈모야를 해방 후 한국인이 인수하면서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빵집이란 뜻으로 ‘이성당’이라는 이름을 짓고 빵과 과자를 내놓으며 그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이성당의 인기는 1950년대부터 승승장구했고 지금은 군산시민도 이 집 단팥빵과 야채빵을 사기 어려울 정도로 전국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또한, 화교 상인이 대대로 60년 넘게 운영해온 중화 요릿집 ‘빈해원’, 60년 전통의 떡갈비 전문점으로 한우만을 이용하는 ‘완주옥’, 투가리(뚝배기)째 끓이지 않고 토렴식(그릇에 밥을 담은 다음 국자로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는 방법으로 국자로 조롱박을 사용)으로 내는 콩나물국밥집 ‘일해옥’,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소고기무우국으로 명성을 떨쳐온 ‘한일옥’, 여행 중 해장 후 찾으면 그만인 군산에서 오래된 ‘군산복집’ 등 추천하고픈 맛집이 주변에 너무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제가 갑자기 사뭇 행복해지는 이유를 여러분도 이미 눈치 채셨을 겁니다.
빠른 시간 안에 근대문화유산거리에 방문하시기를 강권하며 한 가지 팁을 드립니다. 군산에 오시기 전에 채만식의 ‘탁류’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동문 여러분은 군산의 묘미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동문 선후배님들은 시간이 되면 근대문화경관지구와 조화를 이루며 건축된 한국전력공사 군산지사에도 꼭 들러 차 한 잔 하면서 동문의 정을 나누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