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점 맞은 연못/박승우


하늘 선생님이

연못을 채점한다.


부레옥잠, 수련, 소금쟁이

물방개, 붕어, 올챙이...


모두 모두

품 속에 안아 주고

예쁘게 잘 키웠다고


여기도 동그라미

저기도 동그라미


빗방울로

동그라미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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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봉숭아/도종환

도종환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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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클라멘

 고영민

 

   

화분에 붉은 꽃대 두 주가


나란히 올라와 서 있다


혼례를 올리는

 

신랑 신부 같다

 

신랑은 신부를, 신부는 신랑을

 

아내와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영원히 사랑하겠느뇨?

 

주례목사가 되어 나는 묻고

 

눈먼 신부가 울음을 터뜨렸는지

 

꽃 이파리의

 

뒷등이 흔들렸다

 

키 작은 신랑의 어깨도 흔들렸다

 

오늘은 눈이 부시게 좋은 날!

 

부케를 던지고

 

가까운 온천에 신혼여행이라도 다녀와야지

 

꽃이 피었다가 지는 사이,

 

저 캄캄한 꽃들에게도


평생 지켜야 할 약속이

 

생겼다

 




 

(2013년 <시와 사상> 봄호 ) 

 

** 고영민 시인

2002년 《문학사상》등단.

시집<악어> <공손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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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저수지 배꼽/송찬호






저수지가 얼마나 깊은가 보려고

저수지 한가운데

돌멩이를 던졌는데요


돌멩이가 날아가

물에 쏘옥, 들어간 곳에

저수지 배꼽이 생겼어요


점심 때도 잊고 노는

우리들처럼

배가 고픈지


저수지 배꼽 아래

꼬르륵 소리도 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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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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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_ 함민복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한해의 반이 지났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은 아득해 보여도 지나온 날들은 활에서 떠난 화살처럼 느껴집니다. 시간이 어쩌면 이리도 빨리 지나가나 싶지만, 순간순간 분명한 삶의 지향을 가지고 살았다면 밟아온 걸음걸음이 본인에게나 또한 누군가에게 소중한 길이 되었을 겁니다. 2018년 전반기는 저 개인적으로는 큰 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 목회의 자리를 옮기는 것은 삶의 틀이 새롭게 바뀌는 일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어야하고, 교회를 더욱 책임감 있게 섬겨야 합니다. 새로움은 낯 설은 것이어서 때로 난감한 상황과 마주할 때도 있지만, 새로움에 대한 기대에 마냥 설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막연한 기대는 아닙니다. 큰 변화의 중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해야 할 일을 만났고, 그러한 만남들이 하나님의 손길로 느껴져 순간순간 감사의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 남은 시간들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으며 올해의 반을 무사히 지나도록 은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이유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다가 함민복 시인의 성선설이란 시를 만났습니다. 매우 짧은 시이지요? 허나 그 안에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손가락이 열 개인 이유를 이제야 알았네요.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고,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한 무수한 은혜의 손길들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 은총에 대한 감사와 은혜갚음의 시간들로 채워져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찌 나 혼자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겠습니까? 가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참 고마운 손길들이 넘쳐납니다. 그 고마운 이들이 건네준 고운 시선과 따뜻한 손길, 평화를 주는 말들은 우리의 삶에 더없이 큰 힘이 됩니다. 우리 곁에 기꺼이 힘이 되어준 이런 분들에게 곁에 있어줘서 참 고맙다고 마음을 전해보시는 건 어떠실런지요?

 

이제 한해의 반을 또 시작합니다. 험한 진창길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주저하지 말고 주위의 고마운 인연들과 함께 어깨동무하며 즐겁게 그 길을 걸어갑시다. 북유럽 어느 과학자의 말입니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새롭게 열려진 한 해의 반을 맺혀질 감사의 열매를 기다리며 서로의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손잡고 나아갈 때, 생명이 깃든 푸르른 숲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린 손가락이 열 개입니다.<20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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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 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운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 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원자력 발전소에서 잠깐 근무하기도 했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그는 글 쓰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그의 아주 짧은 시 한 편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글 쓰는 생활 결심한 시인
가난한 시골 거친 삶 택해

자식 배곯을까 걱정한 어머니
“짜다”며 설렁탕 국물 더 얻어
자식 투가리에 몰래 덜어줘

그 순간 기록한 시인의 글은
가난 각오한 소명의 결실
숭고한 길 가는 이 있기에
국물 짠 이유 비로소 알게 돼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성선설’ 전문

이렇게 짧은 시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시인은 강화도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오직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생활을 하면서’라는 말에는, 여느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시를 위한다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게 아니라, 거친 노동도 하고, 

이웃과 어울리며 살아가면서 세상을 자분자분 들여다보고 어느 순간 단어들이 뚜벅뚜벅 가슴에서 걸어 나오면 

그걸 글자로 옮기는 그런 삶을 살기로 한 것입니다.

가난한 삶을 택한 결과 그의 작품에는 늘 생계의 비린내가 풍깁니다. 

게다가 홀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못하는지 안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어머니에 대한 애상이 배경으로 깔려 있습니다.

시인의 홀어머니는 참 딱한 사정에 처해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가난한 살림을 억척스레 돌보아왔지만, 

지금 여럿 있는 자식들 중에 누구 하나 어머니를 모실만한 형편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어머니는 오랜 시간 중이염을 앓았던 터라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인 만큼 시인이 두 팔을 걷고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나설 수도 있었을 겁니다. 

아니 나서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막 시인의 삶을 시작한 그는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그리고 독자인 내 짐작으로는, 생계를 위한 밥벌이를 하지 않겠노라고 작정했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를 모실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쪽은 어떨까요? 

어쩌면 아들이 제 앞가림을 해서 늘그막에 의지처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온통 아들 걱정뿐입니다. 

이런 지경에서 나온 그의 산문이 바로 저 유명한 ‘눈물은 왜 짠가’입니다.

어쩌면 이런 시인 아들을 두고서 ‘얼른 취직해서 어머니 모시고 효도할 일이지 

무슨 싸구려 감상인가’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딴은 이런 비난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사명은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시인도 생계를 꾸려야만 합니다. 

하지만 생계라는 일상에 자신을 묻어버리지 않고, 

비탈진 언덕에서 비스듬하게 매달려 일상을 지켜보는 사람이 시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찰이 있기에 우리는 가난하고 귀가 먼 어머니의 자식사랑과, 서툰 속임수와, 

보고도 못 본 척 속아 넘어가 주는 식당주인과, 깍두기 한 접시에 담긴 뜻과, 

그리고 눈물이 짠 이유까지도 알게 되는 것이겠지요.

모두가 제 살기 바빠서 팔을 걷어붙이고 앞으로 달음박질쳐 나가는 요즈음, 

누군가는 이 시인처럼 뒤로 물러서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치열한 몸부림에 인심과 인정은 힘없이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그런 인심과 인정을 다독이고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겠지요. 

시인이 그와 같은 사람이요, 수행자도 그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 가난을 자처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에게 효도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번민하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그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그의 걸음은 비틀거릴 테고, 그런 만큼 그 입에서 나온 말과 손끝에서 빚어낸 글은 처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함부로 쏟아내지 않고 몸 안에서 어르고 달래다 쏟아낸 언어라서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우리는 잊었던 서정을 회복합니다.

아참, 눈물이 왜 짜냐고 중얼거린 시인의 이름은 함민복입니다.  

 


법보신문 2014.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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