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똥

 

안이숲

 

멸치 똥을 깐다

변비 앓은 채로 죽어 할 이야기가 막힌

 

삶보다 긴 죽음이 달라붙은 멸치를 염습하면

방부제 없이

잘 건조된 완벽한 미라 한 구

바다의 비밀을 까발라줄까 삶은 쓰고

생땀보다 짜다는 걸 미리 알려줄까, 까맣게 윤기나는 멸치똥

 

죽은 바다와

살아있는 멸치의 꼬리지느러미에 새긴

섬세한 증언

까맣게 속 탄 말들

뜬 눈으로 말라 우북우북 쌓인다

 

오동나무를 흉내낸 종이관 속에 오래 들어 있다가

사람들에게 팔려온

누군가의 입맛이 된 주검

소금기를 떠난 적이 없는

가슴을 모두 도려낸 멸치들 육수에 풍덩빠져

한때 뜨거웠던 시절을 우려낸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뼈를 남기고

객사한 미련들은 집을 떠나온 지 얼마만인가

 

잘 비운 주검 하나 끓이면

우러나는 파도는 더욱 진한 맛을 낸다

 

 

<2019 제19회 평사리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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