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강] 5. 무엇을 쓸 것인가 ①

무엇을 써야 할까?

수필은 일상생활에 대한 단편적 기록일 수도 있고, 일상에서 얻게 된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부담 없이 서술한 글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꼭 어떤 구조적 격식에 맞아야 하거나 논리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편의 글을 쓰고자 하면 첫째 왜 글을 쓰려 하는가, 둘째 무엇을 쓸 것인가, 셋째 어떻게 쓸 것인가 라는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오랜 동안 수필을 써 온 사람도 그렇고, 수필을 처음 써보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쓰기 자체가 즐겁기만 하고 행복한 작업이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글쓰기란 '창작'이기 때문입니다. 창작은 없는 것을 새롭게 탄생 시키는 것으로 분만의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수필이라고 해서 내용이 평이하고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지만 그만큼 내용이 다양할 수 있고, 글의 성격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철학적인 수필도 있고, 과학적인 수필도 있고, 음악이나 미술이나 건축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들어있는 수필도 있습니다. 따라서 수필의 내용은 시나 소설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나 비중 이상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것을 알아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보다 많은 직.간접적 체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직.간접적 체험을 한 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겪고, 느끼고, 얻어진 체험들이 수필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수필을 40대 이후의 문학이라고 했던 것도 풍부한 인생의 경험을 위시해서 많은 지식을 갖게 되는 40대 이후쯤 되어야 비로소 인생의 의미가 배인 한 편의 수필다운 수필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만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수필의 소재는 참으로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 중에서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주 심각합니다. 소재가 널려 있는 것 같다가도 막상 글감으로 선택하여 써보려 하면 눈에도 손에도 잡혀주지를 않는 게 글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좋은 수필을 쓰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많은 경험적 지식을 얻으려면 폭 넓고 무게 있는 독서가 필요하겠지요?
전문적인 것, 일상적인 것, 문학, 예술, 종교, 과학 할 것 없이 많은 독서를 하면 그것들이 값진 수필의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도 있습니다. 무조건 읽는 것보다는 좋은 책을 골라 읽어야 하는데 좋은 책 고르는 것이 또한 쉽지 않지요.
좋은 수필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겐 모범이 될 수 있는 좋은 수필을 많이 읽으라고 권해 주지만 그 좋은 수필의 기준, 좋은 수필집이 과연 어떤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수필가 윤모촌은 이에 대해
'문장에 재질(才質)이 있어도, 모범이 될만한 글을 읽지 않으면 만권의 책을 읽어도 글다운 글을 쓸 수 없다. 좋은 글이 몸에 배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은 어둠 속을 헤매는 격과 같다.' (수필문학의 이해/미리내/23쪽)
고 했습니다만 좋은 글이 담겨있는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베스트 셀러라고 해서 다 좋은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을 것이고, 추천을 받아 본인이 몇 편을 읽어보고 결정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둘째는 많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생각은 글쓰기의 첫 번째 단계가 아니겠습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커피를 맛있게 타먹는 것과도 같습니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아주 맛깔스럽게 타서 먹지만 어떤 사람은 아주 맛이 없게 타서 자기도 먹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리기도 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글의 주제나 방향이 달라져 버릴 수 있고, 좋은 글, 그렇지 못한 글로 판가름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수필은 문학입니다.
문학은 상상력을 중시합니다. 수필적 생각은 느낀 바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구성(構成)하는 것입니다.
예술은 느낌에서 출발하며, 그 느낌이 예술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느낌만으로 문학이나 수필이 되는 건 아닙니다.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구상(構想)하는 능력과 노력이 필요한데 여기에 문학적 상상이 필요하게 되며 그 상상이 바로 생각인 것입니다.
많이 생각한다는 것은 설계를 오래 꼼꼼이 잘 한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소재를 만나면 수필은 시작되지만 소재를 만난 충동만으로 생각의 과정 없이 쓰여진 수필은 좋은 수필이 되기 어렵습니다.

세 번째는 그렇게 얻은 재료(지식)를 갖고 생각을 통해 설계를 하고 그것을 무언가로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곧 수필로 써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했더라도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냥 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무엇을 수필로 쓸 것인가?

첫째, 내가 아는 것을 쓰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직접 겪은 경험, 책에서 읽은 간접적 체험,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깨달은 것, 그런 모든 것이 바로 수필로 쓸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옮겨 놓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알게 된 것, 내가 아는 것들을 남이 읽어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 사람의 이야기(共感)로 써야 하는 것입니다.
설익은 밥처럼 되게 해선 안되고, 뜸이 잘 들어 반찬이 없어도 맨밥으로 먹어도 아주 맛있는 밥처럼, 여과 할 것은 여과하고, 농축할 것은 농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많은 재료를 준비했다고 해서 보기도 좋고 맛있는 음식이 되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필요한 재료, 내가 만들고 싶은 음식에 꼭 들어가야 할 재료를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둘째, 생각한 것을 쓰는 것입니다. 생각되는 대로 쓰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에 대한 생각이면 훨씬 진보적이고 발전적이고 거기에 상상력까지 추가된 획기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생각을 자연스럽게 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 누군가에게 아주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할 때, 누구에게 무엇을 지시할 때 그 때마다 쓰는 글의 형태가 각기 다른 것처럼 글의 재료를 얼마큼 어떻게 사용하여 어떤 순서로 글을 쓸까 하는 심사 숙고가 필요합니다.
생각을 쓰되 정리된 생각을 쓰고, 생각을 쓰되 일방적이지 않게 쓰고, 생각을 쓰되 공감할 수 있게 써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써보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여러 번 써보다 보면 거기서도 또 새로운 감을 잡게 됩니다.
생각으로는 잘 될 것 같았는데 막상 서보면 잘 되지 않는 게 글쓰기입니다.
또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은 그래도 비교적 쉽게 문장을 풀어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주 힘이 듭니다. 몇 배의 훈련이 필요하고, 그 훈련도 더욱 힘이 들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수필은 단 한 번에 글 한편을 써내는 것이겠지만 이와 같은 빚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타고난 재질이 있거나 많은 훈련을 하고도 한 편의 수필을 쓰기 위해 아주 오랜 동안 머리 속에서, 가슴속에서 수없이 한 편의 수필이라는 집을 이리 짓고 저리 지으며 만들고 허무는 반복 속에서 이제 되었다 싶을 때 비로소 펜을 들고 써내려 가는 것이지 그냥 단번에 자, 지금부터 쓰자! 하고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이 생각입니다.
상상력까지 추가된 거듭 생각하기, 그래서 걸림도 막힘도 없이 술술 풀려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써보기의 많은 훈련이 좋은 수필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직접 작품을 쓴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수필을 썼을까요? 과연 무엇을 나타내려 했으며, 그것을 어떻게 썼는가를 한 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주) 여기서 예로 들 내용은 제가 문예지에 발표했던 <나의 수필론>인데 함께 다시 생각해 보는 자료로 활용코자 합니다.

출처 : 사랑의 쉼터 4050
글쓴이 : 정소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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