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뚝의 물관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나무는 해저를 걷던 뿌리를 생각했다.말수 적은 아버지가 나무에 박히고 있었다.
나무와 나는
수많은 못질의 향방을 읽는다
콘크리트에 박히는 못의 환희를 떠올리면 불의 나라가 근처였다.쇠못은 고달픈 공성의 날들.당신의 여정을 기억한다.아버지 못은 나무못.나무의 빈 곳을 나무로 채우는 일은 어린 내게 시시해 보였다.뭉툭한 모서리가 버려진 나무들을 데려와 숲이 되었다.당신은 나무의 깊은 풍경으로 걸어갔다.내 콧수염이 무성해질 때까지 숲도 그렇게 무성해졌다.누군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박히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빈 곳은 신의 거처였고 나의 씨앗이었다.
그는 한 손만으로 신을 옮기는 사람
나무는 노동을 노동이라 부르지 않는다.당신에겐 노동은 어려운 말.그의 일은 산책처럼 낮은 곳의 이야기였다.숲과 숲 사이 빈 곳을 채우기 위해 걷고 걸었다.
신은 죽어 나무에 깃들고
아버지는 죽어 신이 되었다
나무가 햇살을 키우고
나는 매일 신의 술어를 읽는다
목어처럼 해저를 걷는다
[당선소감]송하담“보이지 않는 장벽에‘詩'라는 못 박을 것”
△송하담(본명 송용탁·45)△부산生△학원 국어강사
긴 채굴의 시간이었습니다.탄차의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코로나19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시 쓰는 일밖에 없었습니다.세상이 거리두기를 외칠 때 저는 무엇보다 나와의 거리두기가 중요했고 그 거리 언저리에 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지금은 출구가 저기 보이는 듯합니다.이번에 강원일보에서 부족한 글꾼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고대하던 등단은 또 다른 나와의 거리두기가 될 것이고 힘든 싸움의 시작임을 알고 있기에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지치지 않고 한 걸음씩 걷겠습니다.당선작의 첫 구절처럼 아버지는 목수이셨고 막노동의 현장 한가운데 서 계시던 분이었습니다.쉼 없이 못과 망치를 쥐시던 거친 두 손처럼 저 역시 보이지 않는 벽에 시라는 못을 박고 있습니다.우리가 사는 세상엔 벽이 너무 많습니다.보이지 않는 벽과 싸우는 많은 계층의 사람들을 대신해서 못을 박겠습니다.조금 더 겸손하게 더 낮은 곳을 바라보며 나의 아픔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무거운 옷들을 걸 수 있도록 열심히 시라는 못을 박겠습니다.쉬지 않는 목수가 되겠습니다.힘든 시간 옆에서 응원해 주신 전다형 시인님,황윤현 시인님,김선미 시인님,활연 시인님,세상에 나갈 물꼬를 터주신 용인문학회에 감사 인사드립니다.마지막으로 심사위원분들과 강원일보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심사평-목다보]“상상의 폭 넓게 두고 적확한 시어 찾아내
이영춘·이홍섭 시인
예심을 거친 작품들은 대부분 오랜 습작의 내공들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왜 이 시를 쓰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흔쾌한 답을 주는 작품은 드물었다.달아나기만 하는 언어를 붙잡아 내 존재의,삶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시 고유의 장르적 힘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선자들이 마지막까지 논의한 작품은 이용원의‘무심하게 미시령'외4편과 송하담의‘목다보'외4편이었다.이용원의 시들은 마치 베틀로 피륙을 짜내려가는 듯한 직조의 맛이 돋보였으나,이러한 정성이 오히려 시를 단조롭고 밋밋하게 만드는 아쉬움을 남겼다.
송하담의 시들은 이용원의 시들에 비해 좀 더 과감한 면이 있었다.거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목다보'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이 작품이 이러한 응모자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상상의 폭을 넓게 두면서도 적확한 시어를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그리고 이 상상과 언어 속에 삶의 비의와 존재의 근거를 담아내고자 하는 치열함이 그를 좋은 시인으로 우뚝 서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들은 늘 긴 여운을 남깁니다.그 여운을 감당할 힘이 없어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이 두려워질 때도 있었지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꺼냈습니다.새들은 진짜 비상을 위해 머나 먼 바다의 섬을 떠나 조그만 해변으로 날아와서 자신들의 몸뚱이를 던져 버리는 것일까요.나에게 떠나야 할 섬은 무엇인지,그리고 마지막 몸을 던져야 할 곳은 어디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언제부터인지 젊은 시절 굵은 노트에 적어 댔던 시들이 나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추억이 되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먹고사는 일에 몰입해온 현실을 핑계로 시의 바깥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나갈 수 없는 사막에 갇혀 버렸다는 절망감도 컸습니다.그러나 시를 쓰면서 운명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을 그 지독한 외로움,고통,무엇보다도 지켜내야 할 영혼의 투명함과 순수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음이 솔직한 고백일 겁니다.
작년에는 참으로 많이 걸었습니다.끝도 없는 길을 걸으면서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결국 시를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세상을 사랑하는 강력하고 유일한 방식이자 수단이 되어야 함을 길이 끝날 어느 즈음에야 알게 되었지요.시는 갈수록 희미해지는 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되살리고,내가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그래서 오래 전에 멈추어 버렸던 시를 다시 끄집어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시의 바깥에서 기웃거리지 않고,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겠습니다.고립된 섬을 벗어나 내 몸을 던질 마지막 해변을 향해 날아가겠습니다.긴 망설임의 여정에서 내 안에 생겨 난 상처를 치유하고,나의 치유로서 사막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감히 꿈꾸겠습니다.
이제까지 혼자 써 왔던 시였기에 세상에 내놓기가 참 부끄러웠습니다.채 다듬지 못한 나무처럼 거칠고 틀어진 저의 작품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과 귀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남신문사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저를 응원해 준 아내와 가족들,그리고 제가 어디를 가든 늘 함께 해 준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인사를 전합니다.아름답고 따뜻한 언어로 부지런히 좋은 시를 씀으로써 저를 사랑해 준 숱한 인연들에 보답하겠습니다.
시 부문 당선자 이경주 씨(△1963년생△충남 홍성 출생,서울 거주△서울대 농경제학과 졸업△신한금융투자 근무)
[2022경남신문 신춘문예‘시’심사평]울림 큰 문장들…시적 틀 만들어가는 상상력 돋보여
심사위원 이성모·배한봉
코로나19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접어들면서 코로나19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다시 확진자가 급증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등 여러 어려움이 많은 때이다.이런 시대적 상황 때문인지 예년보다 신춘문예 시부문 투고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여전히 수백명의 시인 지망생이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해 와 뜨거운 문학적 열기를 느끼게 했다.
올해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에는 신춘문예에 응모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시적 역량을 보여준다는 것이 오히려 과도한 수사에 매몰되어 시적인 깊이와 사유의 넓이를 놓치고
있는 작품들이 눈이 많이 띄었다.한 사물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집중력이나 정서를 짜임새 있게 압축하여 끌고 가는 긴장감이 부족한 경우도 많았다
숙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김난(김향숙),김휼,나영채,노수옥,이경주,이동우,임승환,최수안 제씨의 작품들을 본심에 올려 논의하였다.
몇 분은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 등 사회에 대한 인식을 담아내어 보여주기도 했지만 시대 정신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깊은 정서적 울림을 주지 못했다.또 몇 분은 토속적인 정서에 기대어 서정의 영역을 파고 든 경우도 있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내지 못하고 익숙한 어법에 머물러 있었다.또 시적 발화가 너무 무성하여 이미지를 응집시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이것이다,하고 단숨에 손꼽을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 속에서 노수옥씨와 이경주씨의 작품을 만난 것은 기쁜 일이었다.노수옥 씨의 응모작 가운데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끈 작품은‘입관’이다.언어를 세공하는 솜씨가 우수했다.주제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문장을 끌고 가는 힘도 좋았다.
이경주씨의‘엽록체에 대한 기억’은 현대인들의 고뇌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시적인 틀을 만들어나가는 능력과 상상력이 돋보였다.퇴색되고 변해가는 자아와 만나는 방의 풍경은 흡인력이 있다. “눈을 뜨면 다시 그 자리에 와 있고,녹색이 사라진 방으로 계속 나비들이 날아 들어온다”는 환상성을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해서 울림이 크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노수옥씨의‘입관’과 이경주씨의‘엽록체에 대한 기억’을 놓고 숙고하고 논의했다.논의한 끝에 응모작 전편이 편차 없이 고르다고 판단된 이경주씨를 당선자로 합의했다.
축하하며,한국시단을 이끄는 큰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안타깝게 당선을 놓친 노수옥씨에게 심심한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강희정 드르륵 교실문 열리는 소리 슨상님 야가 아침만 되믄 밥상머리에서 빗질을 했산단 말이요 긴 머리카락 짜르라 해도 안 짜르고 구신이 밥 달라 한 것도 아니고 참말로 아침마다 뭔 짓인지 모르것어라 킥킥 입을 가리고 웃어 대는 책상들 아버지는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낮술이 뺀질뺀질 빨갛게 웃고 있는 4교시 수업 시간 덩달아 붉어진 내 얼굴은 밖으로만 내달리고 싶어 아버님 살펴가세요 어서가세요 얘들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일찍 점심 먹고 운동장 나가 놀아라 나보다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 선생님 달걀 프라이가 들국화처럼 피어 있는 생일 도시락이 아버지 손을 잡고 산들산들 집으로 걸어간다 [시 당선 소감-강희정 씨] “시의 길에선 남과 다른 내가 더 나일 수 있다”
눈을 가리고 귀를 닫았다.의지가 개입할 겨를이 없이 바깥을 향해 열린 모든 세포를 걸어 잠갔다.물속에 오랫동안 잠겨 있었다. 정지된 시간을 다독여 수면 위로 올라와 녹슨 세포를 깨우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갇혀 있던 감각 촉수가 언어와 결합하며 나를 한 걸음씩 움직이게 했다. 기억처럼 지워졌다가 되살아난 진실이 시어가 되어 꿈틀거린다.하얀 종이 위에서 먹고 마시고 잠이 든다. 행복과 불행이 서로 곁눈질하면서 달린다.이 둘에게서 언제나 허둥대지만,그래도 나는 나아간다.시와 사랑을 향해.세상을 향해... 시의 길에서는 남들과 다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됩니다.다르니 내가 더 나일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광주일보와 이병률 시인께 감사드립니다.서울디지털대학교 이재무,오봉옥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정윤천,이대흠 시인님께 감사드리고 첫눈 시빚기반 회원들,시를 향해 탄탄한 근육을 보여준 선배 시인들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작년과 올해 바삐 곁을 떠나신 부모님께 영예를 안겨 드립니다.사랑하는 가족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신춘문예 시 심사평-이병률 시인]
“쨍하고도 명징한 시,탁한 세상에 차려놓는 기쁨” 시가 반드시 고통을 통과한 형태의 무엇은 아닐 것이다.번민과 고뇌를 통과한 흔적을 날것의 형태로 그려 놓을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시라거나 더군다나 그 누구도 홀릴 수 없는 시라면 신춘문예 같은 공모에선 감점법으로 접근하게 된다.장점이 충분한 작품을 두고 고민을 했다. 진영심의‘꾸미지오 미용실’은 제목부터 즐거운 이야기의 향을 품고 있는 것 같아 여러번 읽게 되었다.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바늘에 비유했다는 사실에 일단 선자는 놀랐다.하지만‘바늘’을 연상하고‘바늘귀’까지 끌어와 착상에 성공했다면 바늘귀에 뭐라도 꿰어야 하는데 그것이 빠진 채 후루룩 시를 맺고 말았다. 결국 강희정의‘조퇴’를 당선작으로 선한다. 새해에 여는 시 한 편으로서의 자격과 미덕을 찾자면 단연 양명함이었다. 동시(童詩)의 마스크를 쓴 시라고 가볍게 평할 수 있겠으나 이 시의 아름다움은 시 속에서 자기 자신이 들어갈‘자리’를 과감할 정도로 배제시키는 능력으로 완성도를 일으켰고 그것은 어떻게든 자신을 과잉하게 드러내려는 수많은 응모작들 속에서 분명한 빛을 발하는 지점이기도 하였다.멋진 다이빙이었다.쨍하고도 명징한 시 한 편을 골라 탁한 세상의 공기에 차려놓는 기쁨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최은우 자꾸 이야기하다 보니 말이 생깁니다 기분이 달라지고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기분 탓인가요?그러자고 한 건 아닌데 수다장이가 돼서 오물조물 오래 씹어 쉴 새 없이 꺼냈어요 이야기라면 해도 해도 할 게 많아요 귀를 여는 자가 없다면 저 무성한 나뭇잎들이 있잖아요 이리 와서 들어봐요 늘 같은 이야기지만 오늘은 하나 더 추가시킬 예정이에요 극적인 요소는 늘 있어요 마녀들이 밤에 모여 항아리에 대고 떠들던 주문 같은 것도 있다니까요 인생은 재미 아니겠어요?문밖 무성한 화분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이야길 엿듣고 흉내 내느라 줄거리가 아니 줄기가 생겨서 풍성해졌어요 염치도 없이 나무 옆에 나무를 낳네요 자꾸만 나무들이 생기는 오후에 하나 더 있다고 하나 더 없다고 나무가 나무 아닌 것은 아니겠지요 비 오는 오후에도 어김없이 이야기에 중독된 여자들이 똑같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감수분열하듯 옆에서 옆으로 다음 손님을 부르네요 여자는 거미 다리 같은 손가락으로 사뿐사뿐 머리카락을 잘라요 몸이 생기기 전부터 손가락만 있었던 것처럼 손은 여자를 떠나 가위를 들고 허공에서 춤을 춰요 원피스에서 요란하게 싸우고 있던 꽃무늬들이 살짝 얼굴을 빼자 잎사귀들이 떨어져요 떨어져서 허공으로 떠다니는 꽃들.차를 마시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요 알지 못해요 가위질 소리에 맞춰 간간이 웃음소리를 끼워 넣을 뿐.유리문이 밀릴 때마다 들어오세요 붙여진 팻말에서 글자들이 살짝 떨어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죠 비밀과 상처는 오늘은 괜찮고 내일은 거대해지다 모레면 잊고 글피엔 주저앉게 만드니까요 쉽게 묻는 게 좋을까요 쉽게 말하는 게 좋을까요 수다장이들이 수다스럽게 찻잔을 부딪치며 그런 건 관심 없다고 하네요
시 당선 소감 / 최은우 ‘모든 봄은 언제나 첫 번째였다’는 걸 이젠 압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올 겁니다.누군가에게는 첫 번째 봄이고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봄이라 생각했습니다.그때마다 똑같이 피어나는 꽃들을 기를 쓰며 보러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왜 꽃들 앞에서 같은 포즈를 취하며 그곳에 그날,그 시각 거기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진을 찍는지를 말이지요. 아주 오랜 시간 낙방하고 이제 신춘문예는 봄이 오기 전 우체국에 들르는 작은 행사가 되었습니다.그 많은 연례행사를 치르며 나이를 먹고 왜 봄이 오면 사람들이 꽃을 보러 가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모든 봄은 언제나 첫 번째였고 짧은 진통으로 낳은 둘째도 결국은 내 처음의 아이였다는 것을요.어느 순간 핸드폰 카메라 앨범엔 꼭 찍혀야 할 단풍이 있고,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길고양이가 있으며,재개발을 기다리는 골목의 장미여관이 가지 말라며 제 발을 붙들었습니다.그 골목을 찍고 있는 순간도 다시 오지 않을 그 하루의 처음이었다는 것을요. 시와 함께 한 살 더 나이 먹을 수 있게 해주신 부산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에서 나의 아픈 손을 잡아 주어 나의 한쪽,나의 시가 되어가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약력: 1980년 전북 순창군 출생,원광대 문예창작과 졸업. 시 심사평
읽고 있어도,읽고 나서도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시
전동균 시인 유홍준 시인
506명이 보내온1903편의 작품에 깃들어 있는 무게감.당선작을 결정하는 일은 그것을 이겨내는 일이었다.마지막까지 심사자의 눈길을 끈 것은‘모두의 잠깐’ ‘뱉은 씨앗’ ‘숲에 살롱’세 편이었다. ‘모두의 잠깐’은 잘 쓴 시다. ‘우리는 중요한 일일수록/일의 틈틈마다 그 잠깐을 배치시켜 놓아요/하루가 연속성의 과정이라면/하루엔 얼마나 많은,다양한 잠깐들이 있을까요’라는 진단은 휴식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마땅하고 옳다.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 진단의 힘은 약해지고,잠깐의 목록들을 호출,나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뱉은 씨앗’은‘오물거리는 입속에서 톡톡 내뱉어지는/수박씨들,저것은 아마도 최초의 농법’이자‘직파법’이라는 발상이 뛰어났다.그러나 이 발상이 인간에게로 향하는 심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시를 닫아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다. ‘숲에 살롱’은 재미있다.읽고 있어도,읽고 나서도,얼굴에 웃음이 번진다.어느 동네나 있을 법한 살롱(미장원)과 어느 동네나 떠돌만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요리조리 이야기의 잎사귀들,시의 잎사귀들을 갖다 붙였다. 시가 독자를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대면이 어려운 이 시대에,이런 재미난 이야기의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첨언 한 가지.이 시가 만약 잎사귀가 아니고 꽃을 이야기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아무쪼록 좋은 시는 꽃이 아니라 잎사귀를 보기 좋게 매다는 일이다.축하드린다.
언젠가부터 절개지 묵정밭엔 어린 의혹들이 심겨지기 시작했다 깨진 항아리 속에 갇혀있던 뻐꾸기 소리에 둔덕 까마중 몇,복부인 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귀고리를 흔든다 전과자인양 담장 안을 기웃거리던 햇살,굴다리 밑으로 잠입하고 배 밭으로 달려간 그림자 하나가 이른 아침부터 풍선 불 듯 바람의 평수를 후후-부풀린다
뻥튀기 소리에 놀란 해바라기,발밑에 검은 태양들을 투투둑-파종하고 늦게 외출한 채송화는 발뒤꿈치를 높이 꺼내 분꽃의 망설임을 흔든다 태양이 시작되면 빨간 인주통이 열렸다 몇 평 봄이 처분되는 계약서 그 끝,마을경로당에선 코스모스와 금잔화가 형광빛 포스트잇처럼 끝도 없이 유예되고 있었다
이장 집 옆 모과나무가 늙은 귀띔이라도 들은 걸까 오래된 우물 속에다 노란 주먹을 툭툭 박았다 내가 헐값에 처분했던 그 시절 변두리 네온사인과 외딴집에 세를 든 귀뚜라미의 지하 방엔 오래도록 해가 들지 않았다 지난밤 거처를 잃은 두견새와 갑작스레 약수터에서 쫓겨난 달빛은 창문 틈에 허리가 끼어 아침까지 웅웅거렸다
누가 분실한 것일까
공사 중인 안테나처럼 힘껏 꼬리를 세운 고양이 한 마리
방금 눌러 찍은 붉은 태양이 채 마르지도 않은 부동산 계약서를 입에 물고서
인적 드문 논밭을 검은 천 조각처럼 가로질러 어디론가 재빨리 구겨지고 있다
[당선소감]
“앞으로는 내가 세상을詩로 위로할 차례”
패딩점퍼처럼 눈을 껴입은 세상이 고딕체로 서 있었다.애타게 기다리던 삶의 목록들이 연착되고 있었다.측은지심의 영혼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시 쓰기.내 가냘픈 노래는 원고지 속에서 자주 익사했다.악보의 실루엣이 보이면 음정이 삐걱거렸다.부러지고 흔들리는 것들이 시가 된다고 믿었기에 앞만 보고 계속 노를 저었다.이 글을 쓰는 동안 몇 년 전의 내가 나에게 웃으며 손을 내민다.살고 싶어서 시의 소맷자락을 간절히 붙들었다.시는 나를 살려주시려고 보내준 그분의 언약궤였다.이제는 내가 세상을 위로할 차례이다.
한 시도詩의 램프를 끄지 않는 시시각각(詩視刻各)스승님과 따뜻하고 치열했던 나의 도반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지치지 않도록 응원해준 아내와 두원,예은 고맙고 사랑합니다.지난해 하늘로 가신 어머니,늘 막내아들을 자랑스럽게 믿어주셨는데,하늘 향해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벼랑 끝에 선 제 시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신 전북문인협회장 김영 시인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마음이 춥고 외로운 이들에게 손난로가 되어줄 그런 시로 보답하겠습니다.
시 부문 심사평
2022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읽는 시간은‘어떻게 시를 써야 울림이 깊은가’에 대해 다시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천 편이 넘는 응모작에는 막 시를 쓰기 시작한 듯한 사람의 작품도 있었고,시적 완성도와 문장의 긴밀도가 만만치 않은 작품도 있었다.
각주와 외래어가 난무하는 작품과 언어의 유기적인 연결이 아쉬운 작품도 많았다.패기나 참신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적었고,그만그만한 내용이나 익숙한 수사가 버무려진 작품도 많았다.
주제 면에서는 개인의 서정을 노래한 작품부터 시대의 불합리에 대한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넓었다.시국의 영향인지 사회의 어두운 면과 개인의 어두운 시간을 직조한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최종까지 남은 작품으로 김선호 님의‘빙하의 숲을 걷다’,조희 님의‘파울라가 있는 풍경’과 김종태 님의‘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장성희 님의‘폭우’,김수형의‘포스트잇’이었다.
모두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었으나,제목이 내용을 끌고 가지 못하거나 내용이 제목을 받쳐주지 못하기도 했다.시상을 직조하는 솜씨가 매끄럽지 못하기도 하고 제출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조희 님의‘파울라가 있는 풍경’이었다.시상을 전개하는 힘이나 주제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 좋았으나 아쉽게 되었다.조금 더 힘을 내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김종태 님의‘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은 자신만의 언어로 시대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수준급이다.삶의 현실에서 시의 뿌리가 발아했으나 주관에 휩쓸리지 않고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는 솜씨가 시의 밭을 오래 가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도 고른 수준을 보인 점과 앞으로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시클라멘 화분에 영희 씨 젖꼭지만한 붉은 망울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꽃을 터트리기 전 베란다에서 햇살을 즐긴다는 그녀,피고 지면 또 다른 꽃대가 올라온다 했습니다.더 이상 꽃이 피지 않을 때가 여름이라고 했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요”라는 말에 물기 어린 글을 썼다 지우고 다시 또 쓰고….
오늘,꽃이 피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첫눈이 내리는 퇴근길이었지요.한겨울에 이토록 화사한 꽃을 피우다니….올해를 넘기지 않아 다행입니다.눈발이 바로 땅에 닿지 못하고 공중에 부유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저들도 심장이 뛰는구나.’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운전을 멈춰야 했습니다.눈의 방향을 따라 걸었습니다.큰길의 환한 불빛을 의지한 골목은 차갑고 희미했지요.내 시작의 지향점과 닮아 있습니다.삶의 무게를 시의 무게로 받아들일 때까지 겸허한 자세로 정진하겠습니다.어두운 곳에서 아프고 힘든 이들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시를 쓰겠습니다.그런 글들이 모여 내 자신을 표현하는 수식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기쁨에 가장 빨리 전염된 나의 영희 씨,연수와 지연이 사랑해.그동안 응원해 줘서 고마워.
첫 걸음을 올곧게 일깨워 준 강희안 교수님,인문학 강의로 시적 사유를 확장 시켜 준 소설가 연용흠 교수님,좌절과 절망으로 방황할 때마다 시의 연을 단단하게 붙잡아 준 이돈형 시인님,시의 길에서 만난 수레바퀴문학회와 시깡패들께 감사드립니다.부족한 제게 따뜻한 손 내밀어 주신 강대선 심사위원님과 전남매일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22전남매일 신춘문예]시 심사평
고통받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
강대선 시인
책상 위에 쌓인 응모작을 읽었다.정성을 다해 보내온 시들이라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코로나19시대에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고독과 우울한 내면을 다룬 시가 많았고 가족 서사와 함께 일상을 소재로 한 시들도 적지 않았다.사유의 깊이를 언어로 형상화한 시에 먼저 눈이 갔다.
그중에‘뒷모습’, ‘여우야 여우야’, ‘미역국’등이 시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뒷모습’은 시장의 노파를 새우로 비유하는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어시장에서 노파의 삶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좋았으나 너무 쉽게 풀린 부분이 있고 함께 제출한 시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해 아쉬움을 주었다.
‘여우야 여우야’는 코로나19로 격리된 상황을 동요로 표현한 발상이 신선했다.하지만 몇몇 시어들이 전체적인 시적 긴장감을 반감시켜 작품을 선정하는 데 망설이게 했다.
‘미역국’은 아기를 잃은‘아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다른 이들의 아픔과 함께하는 지점에 마음이 갔다.코로나19시대에 고통받는 현대인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울림이 컸다.나머지 작품의 수준이 고른 점도 신뢰를 주었다.축하드린다.깊은 울림을 주는 참신한 서정성을 기대한다.당선되지 못한 분들도 빛을 발하리라 믿는다.
◇강대선 시인
‘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와‘광주일보’신춘문예 시에 당선, ‘시와사람’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광주전남작가회원이며 시집으로‘메타자본세콰이어 신전’외4권이 있다.한국해양문학상,한국가사문학상,여수해양문학상 소설부문 대상,김우종 문학상,제8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작품 ‘그리스도’(Man of Sorrows, 왼쪽)와 해당 작품에서 발견된 숨겨진 드로잉(그림 속 붉은 선)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작품 ‘그리스도’(Man of Sorrows)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작품에서 ‘숨겨진 이미지’가 발견됐다. 경매에 부쳐지기 직전에 발견된 숨겨진 이미지가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을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CNN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보티첼리가 15세기 후반~16세기 초반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도’(Man of Sorrows)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해당 작품을 그릴 당시의 보티첼리는 도미니크회(1216년 성 도미니코가 그리스도교를 전파할 목적으로 설립한 로마 가톨릭의 수도회) 수도자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기독교적인 상징과 예지적인 신앙심을 특징으로 하는 스타일을 보였다. 경매에 나올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상처와 가시 면류관, 작은 천사들의 후광을 가진 예수를 그렸으며, 보티첼리 후기작 3점 가운데 1점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경매업체인 소더비 측은 해당 작품을 경매에 올리기 전, 적외선 및 매크로 X선 형광 분석법(MA-XRF)을 이용한 분석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스케치를 발견했다. MA-XRF를 이용하면 그림 안쪽에 있는 물감 성분과 종류, 색상 등을 알 수 있다.
해당 스케치는 성모자상(Maddonna and Child)으로, 그리스도교미술에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장면을 표상한 것이다. 그림 속 성모는 아기 예수와 뺨을 맞대고, 아기 예수의 머리를 친밀하게 안고 있으며, 코와 눈, 웃고 있는 입 등이 선명하게 표현돼 있다.
작품 속 성모자상은 원작을 거꾸로 놓고 봤을 때 더욱 선명하게 식별된다. 성모자상의 밑그림 선은 각기 다른 두께이며, 선의 형태 등을 보아 흰색 액체 염료로 그려진 것으로 전문가들을 추정했다.
소더비 뉴욕지사의 선임 부사장인 크리스토퍼 아포슬은 “보티첼리가 활동한 르네상스 시대에 패널(그림을 그리는 판)은 매우 귀한 상품이었다. (작품을 만들다) 중단된 경우, 아무도 패널을 버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티첼리가 당초 성모자상을 그리려다 마음을 바꾸었거나 그림을 망쳤다고 여긴 뒤, 그 위에 현재의 ‘그리스도’를 그렸다고 추측한다는 것.
성모자상이 숨겨져 있던 보티첼리의 ‘그리스도’는 낙찰 가격이 4000만 달러(한화 약 477억 2000만원)를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앞서 지난해 1월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나온 보티첼리의 또 다른 작품 ‘원형 메달을 든 청년’(Young Man Holding a Roundel)의 낙찰가는 9220만 달러(약 1100억 원)으로, 이탈리아 화가의 작품 중 역대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했다.
피카소의 1903년 작인 ‘맹인의 식사’(사진 왼쪽)와 이 그림에 숨겨진 ‘외로운 웅크린 누드’
한편, 명화 속 ‘숨겨진 그림’이 첨단 과학 기술 덕분에 모습을 드러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입체파 대표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1903년 작품 ‘맹인의 식사’(The Blind Man‘s Meal)에서는 숨겨져 있던 미완성 작품이 발견됐다.
‘맹인의 식사’ 아래 숨겨져 있던 그림은 웅크린 누드의 여성을 표상한 것으로, 해당 그림은 ‘외로운 웅크린 누드’(The Lonesome Crouching Nude)로 명명됐다. 전문가들은 당시 피카소가 다른 화가들처럼 돈을 아끼려고 기존 그림 위에 덧칠을 한 작품을 남긴 것으로 추측했다.
색종이 위에 온 마음을 담는다. 모서리를 맞추어 엄지로 지그시 누른다. 멀리 떨어진 꼭짓점을 맞대고 힘주어 문지른다. 접을수록 좁아지는 종이를 따라 마음도 쪼그라든다.
종이접기는 유년의 나를 다양한 상상의 나라로 데려갔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올라 손오공을 만나고, 돛단배를 타고 무인도에 발을 디뎠다. 종이 인형에 빨간 저고리와 초록 바지를 입히며 엄마가 된 듯 흐뭇했다. 완성품을 만날 때마다 동심은 꿈속을 걸었다. 그 뒤로 성취감과 자신감이 따라왔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색종이는 시야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종이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해 좌충우돌하며 마음의 종이를 무던히도 접었다. 교과서적인 자를 들이대고 접은 모서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결혼 후 사 년 만에 우리 부부는 생명의 싹을 얻었다.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던 무거운 커튼이 걷혔다. 하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기쁨을 느끼는 것은 잠시였다. 어머님과 남편은 내 몸속의‘점’이 훌쩍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성장 과정을 짚어가며 직장을 그만두도록 다그쳤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어머님의 생각은 단호했다.
팔 년 동안의 교직 생활은 어려움도 많았지만, 아이들과 만남에서 생기를 얻었고 보람도 많았다. 어려운 일을 함께 헤쳐나가고 꿈을 심어주는 일이 신나고 재미있었다. 직장을 그만두면 나는 없어지고 남편과 아이의 조력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며느리와 아내의 삶에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 시어머님과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눌러 접었다.
퇴직 결정을 해야 하는 한 달 동안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드나들었다. 어린 시절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을 때 혹시라도 엄마가 없는 날은 텅 빈 마음을 달래느라 괜히 문풍지를 뜯었다. 태어나는 아이에게 허전한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다. 서늘했던 유년의 기억들이 접었던 마음을 펴라고 재촉했다. 마지막 출근하던 날 교정을 나서는 나를 향해 창문에 옹기종기 붙어서 손을 흔들던 아이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사람 살이가 끊임없는 접고 펴기의 연속이 아닐까.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났지만 펴는 것은 나의 몫일 게다. 종이를 접을 때는 머리와 손이 속삭이며 신중하게 접는다. 하지만 펴는 것은 책장 한 장 넘기는 만큼이나 쉽다. 마음접기는 나도 모르게 접히고, 펴기는 너럭바위를 옮기는 만큼이나 어렵다. 이해, 용서, 사랑 같은 넓은 품이 필요해서이리라.
몸속의 관절은 쉴새 없이 오므리고 펴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난다고 말한다. 관절의 접고 펴는 작동이 없으면 한시라도 살아갈 수가 없을 게다. 기지개를 켜면 혈관이 유연해지면서 온몸 구석구석으로 피가 흐른다. 새도 날개를 펼쳐야 높이 날아올라 먹이를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은가. 마음을 편 길 위에 건강하게 성장하여 사회인이 된 두 아들이 서 있다. 내 이름을 남길만한 큰일은 못 했지만, 세상을 떠나더라도 나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하다.
종이가 된 나무도 비바람과 해충, 아래로 향하는 자연의 힘을 견디려고 무던히도 접고 펴는 생이 있었으리라.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낸 섬유소가 물에 부풀려져 체에 걸러지고 압착을 받아 종이가 되었다. 어쩌면 삶의 이정표가 되어 내 앞에 놓여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램을 실어 띄우던 종이배를 만든다. 접었던 흔적의 선들이 다음 접기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살면서 마음접기로 그어진 선들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주었던 게 아닐까. 접고 펼치기가 반복되는 과정이 있어야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요양보호센터 어르신들이 종이접기 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굵은 주름이 생겨 고랑을 이룬 손으로 느리게 종이를 쓸어내린다. 신은 인간에게 빌려주었던 능력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거두어가는 듯하다. 두뇌의 유연성, 고막의 탄성, 뼈의 강도, 근육의 힘을 반납 중이신 어르신들은 이 세상에 첫발을 디딜 때의 모습처럼 어눌하다. 신의 섭리 앞에서, 말라가는 줄기 끝에 물기를 공급하려는 듯 어르신들의 온 마음이 종이 위에 놓여있다.
간단한 꽃을 만들고 나자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종이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웃음 속에는 다사다난했던 인생이 보인다. 고단했던 삶을 이어준 힘은 종이접기가 끝났을 때 찾아온 기쁨이 아니었을까. 인생의 미로를 걸으며 마음을 접고 펴면서 수많은 완성품을 만들었지 싶다. 어르신들의 기억은 접촉 불량의 형광등처럼 불규칙적이지만, 느릿하게 종이접기를 하며 아직도 마음 접기를 하고 있으리라.
책꽂이 한 편에 인생의 보물이 놓여있다. 교직 사 년째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던 날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이다. 이사 다닐 때도 천 마리의 학이 든 유리병은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다.‘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라는 소문을 아이들은 믿었던 모양이다. 선생님의 행복을 바라며 유리병 속에 수천 번의 접고 펴기를 담았으리라. 생각이 실타래처럼 엉길 때 병을 보며 마음 펴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헤르만 헤세는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변화와 도피뿐이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수십 번의 생일을 맞으며 끝이 없었던 나의 도피처는 마음속의 종이접기였다. 이순이 넘도록 꾸민 동산에 갖가지 꽃과 벌, 나비가 보인다. 꿈을 실어나르던 비행기와 배가 느리게 움직이며 여유로움을 운반한다. 마음을 접고 펴면서 만났던 다양한 인생길이 이제는 삶의 의미와 멋으로 다가온다.
접었던 종이를 편다. 덩달아 넓어지는 마음 위에 한 마리의 학이 날개를 펼친다.
당선소감 / “학처럼 힘차게 나는 연습을”
전화기 너머로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제 손바닥에서 고이 잠들어 있던 종이학이 비로소 날개를 펄럭였습니다.
인생길을 걸으며 마음을 접었다 펴기를 수없이 되풀이한 지난 나날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좋아 어릴 때부터 꿈꿔 온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직장을 구하기 쉬운 이공계로 전공을 선택하면서 글쓰기 꿈을 접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로서기가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갖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사십 년이 훌쩍 넘어 눌러두었던 소망을 향해 걸음을 뗐습니다. 세상살이가 힘들어 마음 접을 일이 많더라도 순간순간 자신을 가다듬으며 희망을 품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부족한 글에 때로는 날카로운 평으로, 때로는 따뜻한 격려로 보듬어 준 포곡수필과 수필과지성 문우들, 수필다운 수필을 쓰라고 항상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내리시는 교수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아울러 어깨가 처져있을 때마다 용기를 주는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글로 인연을 맺은 모든 분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종이학의 날개에 힘을 불어넣어 주신 심사위원님과 전북도민일보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도록 학처럼 힘차게 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심사평
배귀선(수필가, 시인, 문학평론가)
한 편의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삶의 양태를 개성적 색채로 그려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구성과 형식에 따른 어휘의 차용과 비유와 묘사에 더하여 논리적 사고뿐 아니라 강렬하면서도 잔잔한 스토리에 이미지가 덧입혀져야 한다. 수필도 소재를 이끌어나감에 있어 적절한 비유와 묘사를 통한 형상화와 그에 따른 주제의 구현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같은 장면의 표현이라 할지라도 어휘의 선택과 배열, 수식과 구성 등의 정도에 따라 감도가 달라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테면 진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험현실에 작가만의 창의(견자)의 시각 도출과 그에 따른 사유의 확장이 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즈음하여 올해 응모작 작품 전반은 극과 극이었다. 시제와 형식이 미흡한 작품들은 차치하고 주최 측 규정을 살피지 않고 작품에 응모자의 이름을 표기하거나 기 발표된 작품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사용한 자기표절의 예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윤리와 도덕을 에둘러 표현하기보다는 직설적 아포리즘으로 표현하고 있었으며, 수식관계가 어색한 문장 또한 다수였다. 더불어 지나친 수식이 수필 문장의 의미를 퇴색시키는가 하면 감정의 과잉이 오히려 독자의 시선을 흩어놓는 작품도 다수였다. 더 안타까운 것은 소재의 협소함이었다. 응모작품 태반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등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소재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물론 가족을 바탕으로 확장된 서사에 따른 휴머니즘을 배면한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진술에 그친 작품이 태반이었다. 신춘문예 응모작이 천편일률적으로 가족 소재로 흐른다면 이는 수필 문학의 가능성을 확장하기보다 고착화하는 것일 터, 작가정신에 즈음한 응모자만의 새로운 시각이 절실한 이유다. 다행히 몇몇 응모자는 형식과 구성 소재의 새로움에 대한 시도를 하였으나 작품 전반에 녹아들지 못해 안타까웠다.
올해는 총 420여 편의 수필이 응모되었다. 밤을 새웠을 응모작 한 편 한 편이 소중하였기에 심사 내내 비평적 시각을 염두에 두고 세세하게 살폈다. 그 중 15명의 작품이 예심에서 가려졌고, 5편의 응모작이 최종심에 올랐다. 최종심에 오른 5편의 작품 중 안희옥의 <눈부처>는 관계의 삶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눈맞춤에 비유하고 있으나 예로 제시한 소재들이 긴밀하지 못해 주제의 집약이 흩어져 있어 아쉬웠다. 박덕은의 <신발>은 신발과 모자의 동질성과 상이성을 들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비유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글의 구성에서 실수가 엿보였다. 오미향의 <물허벅>은 비유와 상징이 상당한 수준에 있으나 같은 내용을 반복서술하고 있었으며, 특히 함께 제출한 응모작들에는 기 발표된 작품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사용한 점이 옥에 티라 하겠다. 오은정의 <겨울 동화>는 탈북의 과정의 긴박함을 회상장면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인 동화(冬靴)가 군인들이 신는 겨울 동화의 이미지로 중의성을 담보하는 가운데 삶의 고달픔을 은유하고 있으나 문장의 헐거움은 물론 시제와 문법의 혼란이 아쉬웠다.
늘 그렇듯 심사에서 한 명의 당선작을 선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최종심에 오른 5편 모두 약간의 흠결은 있으나 당선작에 올려도 손색이 없음을 먼저 밝힌다. 신춘문예 특성상 한 작품만을 선해야 하기에 심사자는 고심 끝에 이춘희의 <종이접기>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종이접기>는 종이를 접고 펴는 과정에 인간의 마음을 대입 비유함으로써 문학적 형상화를 이루었다. 예컨대 마음도 고달플 땐 접히고 그렇지 않을 땐 펴지는 전치의 효과와 그에 따른 성찰적 이미지의 구현이 돋보였다. 그러나 주제로의 집약이 다소 미약하다는 약점과 단락 간 긴밀성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로 판단된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당선작에 선한 만큼 정진하기 바란다.
끝으로, 420여 편의 작품을 낱낱이 읽는 예심보다 최종심에서 한 편의 당선작을 가리는 일이 어려웠고 시간이 더 소모되었음을 고백한다. 당선자에게는 끝이 아닌 다시 시작이라는 권면과 함께 축하를 보내고, 아깝게 낙선한 분들께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